[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프린스 호텔 맞은편 '세종한정식'
◇…푸근함과 푸짐함 사이 푸근함 옆에 푸짐함이 살죠. 식당도 푸근하며 푸짐해야 됩니다. 많이 퍼준다는 의미보다 정성 쏟고 더 배려한다는 의미, 성실하고 정직하다는 거죠. 대구시 중구 남산3동 세종 한정식 여사장 손정우. 예순을 훌쩍 넘은 그녀는 지역 내에선 일명 '초리(회초리) 여사'로 불립니다. 솔직히 단골들은 음식 맛 이전에 그녀의 탁월한 센스와 포용력이 결합된 마음 맛에 다들 엎어지고 맙니다. 말 맛도 끝내주죠. 하지만 손님이라도 무조건 웃지는 않습니다. 실수와 잘못을 지적해야 직성이 풀린답니다. 세종은 나이 든 향토 예인들, 특히 문인들의 베이스 캠프입니다. 선거철이면 온갖 루머와 정보가 여기로 모여듭니다. "여긴 그냥 식당이 아이다. 난 음식만 팔지 않는다. 문화를 판다. 그래서 단골 눈에 영양분을 넣어줘야해. 그래서 그림과 나무가 많지. 가난한 단골 화가가 그림은 그려놓았는데 사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 내가 건져줘야지." 그녀가 그린 수채화 몇 점이 보입니다. 그녀는 들에서 등산을 합니다. 한 다리 건너 온 식재료를 믿지 못하는 까탈스러운 성미. 결국 경산시 압량면 한 켠에 수천평 밭을 마련했습니다. 거기서 웬만한 채소는 조달합니다. 막걸리 문화를 존중한 탓에 칠곡의 한 집에서 만든 가양주도 내놓습니다. ◇…세종의 등장 원래 이 집은 집안 어른들이 살던 데였습니다. 14년전 수리해서 식당으로 내놓을 심산이었는데 IMF 외환위기로 인해 일이 여의치 않아 결국 자신이 식당 주인으로 나서게 된 겁니다. 그녀는 식당 일을 별도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냥 집에서 해먹는 식단으로 갑니다. 첫 걸림돌은 종업원이었죠. 종업원들이 혈육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일단 화장실 청소 등 굳은 일을 솔선수범했고, 다음은 종업원 가정사를 남 모르게 챙겨나갑니다. 종업원이 내 사람이 되니 일이 훨씬 수월하게 풀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식당 할 때 중요한 건 단골의 기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세종도 단골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 압니다. 원래 주말에는 놀고 싶었다네요. 그런데 어느 날 한 장관 가족이 일요일 서울서 일부러 세종으로 내려온 것에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자기 시간을 반납하기로 맘 먹습니다. 김치, 더덕, 갈비찜, 전, 나물, 신선로, 잡채, 생선 등 10가지 앞 요리가 나옵니다. 나중에 밥과 우거지, 명태국 등 각종 제철 국 갖고 식사 끝.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 줄 압니까? 바로 음식 안 남기는 사람입니다. 참 많은 주사급 문인들이 들락거렸지만 눈에 벗어나는 주사를 떨군 분은 없다는군요. "남자들 예비군복 입으면 아무데나 오줌누는 것처럼 내가 분위기를 토란잎 이슬처럼 굴면 단골도 이슬처럼 노는 거지." 그렇습니다. 여기 오는 분들은 다 예심 통과한 격조를 갖고 있습니다. 정재익, 권기호, 도광의, 손남주, 문무학, 강현국, 송일호, 화가로는 이장우, 김일환, 김병수, 윤상천 등이 단골이라네요. 지역 문사들 중 그녀의 드센 치맛단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고 하네요. 어떨 때는 유관순, 어떨 때는 박경리여사, 정(靜)과 동(動)을 동시에 주무릅니다. 그녀는 사리분명한'여걸'이죠. 사람에 대한 평가도 면도날 같습니다. 그러나 다급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겐 따뜻한 손바닥을 줍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한 기관장이 요인들과 식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기관장의 양말에 구멍이 난 걸 발견했습니다. 부리나케 새 양말 구해 상 밑으로 던져줬습니다. 그 기관장,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대취한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출근하다보면 양말 구멍난 줄도 모르고 신고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양말은 물론 넥타이, 와이셔츠도 상비약처럼 비치해둔다." ◇…얼마전 시인이 됐다 그녀가 얼마전 시인이 됐습니다. 그녀는 절대 수사에 의존한 글은 안 적겠다고 다짐합니다. 서문시장 좌판 아줌마도 이해할 수 있는 글만 품겠답니다. 음식 메뉴 자랑 해보라고 했더니 고개 절레절레 흔듭니다. 문 연지 14년 버텼다고 하면 자기 집 음식 맛이 대충 어느 정도인 줄 감 잡아라네요. 비가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벽에 칠성시장에 장보러 나간다는 사실만은 알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이 인터뷰를 위해 '신선로'란 신작시 한 편을 내밉니다. 시집올 때 할머님이 주신 무명천으로 이날 입은 치마저고리를 해 입었다는 표현은 참기름 향기 머금은 달래 맛. ◇…회초리 여사 가라사대 인터뷰 내내 밑줄 긋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이혼하려는 분들에게 한 말씀하시겠다네요. "어느 날 한 쌍의 중년 남녀가 대낮부터 맥주잔에 소주를 연거푸 비우고 있었어. 이혼 직전의 부부란 사실을 알고 대뜸 둘에게 일갈했어. 여자야, 니 고운 손보니 밖에 나가면 한달에 100만원도 못 벌겠다. 정신 차려라. 니 님자가 한달에 300만원 벌어준다카제? 니는 굴러 들어온 300만원짜리 가정부 자리 걷어찰 심산이가. 남자야, 니 몸은 애인이 좋아할 지 모르지만 보배같은 자식들 양귀비가 와도 엄마 소리 쉽게 못한다. 단디 들어라. 자식 위해 부모가 희생해야지, 어떻게 자식이 부모 위해 희생할 수 있노!" 둘은 지금 잘 살고 있단다. 요즘 지역 예술가 보면 또 쓴소리. "나와 너는 있는 데 우리가 없어. 우리 위해 모두 자기 키 좀 낮춰라." 중년에 든 사람에게 한 조언. "마흔 후부터는 자꾸 베풀어라. 이유는 그 전에는 이쁘잖나. 마흔 이후에는 화장발이 안받는다. 이때부터 살 길은 지갑 자주 여는 거." 엔딩 멘트 하나. "단골한테 도움 받았으니 주인은 마땅히 단골 하는 일의 단골도 되어야 그게 경우 아이가?"
2008.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