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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농특산물 수출액 1천억 '눈앞'…해외서도 고품질 인정받아
경북 상주는 농특산물 수출 선도 도시다. 상주의 농특산물 수출액은 경북 전체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해마다 수출액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어 '수출액 1천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상주 농특산물은 세계 각국에 고품질 상품으로 인식돼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 수출량에 비해 수출액이 급성장하는 농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상주, 삼백의 고장에서 스마트팜 도시로' 8편에서는 상주시의 농특산품 수출 현황과 노력에 대해 다룬다.작년 4646t수출…경북지역 내 1위농식품부 지정 등 전문수출단지 21곳배·포도·토마토·곶감 등 품목도 다양 자연환경·숙련된 기술로 상품질 우수市, 해외 주요국 홍보관 운영 성과도 4년연속 道 수출정책 평가 대상 수상 ◆상주의 농특산물 전문수출단지지난 16일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덕가리에 있는 참배수출단지 앞마당. 지게차가 'PREMIUM KOREAN PEAR'라고 적힌 15㎏짜리 종이 상자를 가득 실어 트레일러로 연신 날랐다. 트레일러는 금세 배가 든 상자로 가득 채워졌다. 모두 1천80상자, 무게만 16.2t에 달한다. 금액으로는 4천만원어치다."트레일러에 실린 배는 항구를 통해 베트남으로 수출됩니다. 저희는 수출업체, 해외 바이어와 신뢰가 잘 구축돼 있어요. 내일모레에는 인도네시아로 갈 배가 선적될 예정입니다." 이정원(67) 참배수출단지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 회장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정을 받아 2006년부터 배와 포도 전문수출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사벌국면에서 배농사 6㏊(1만8천평)와 쌀농사 2㏊(6천평)를 짓는 대농(大農)이기도 하다. 상주에서 나온 만풍이라는 배 품종을 최근 '청배'라는 브랜드로 만들어 해외에 수출도 한다. 참배수출단지 건물 안에는 '참배수출단지'라고 적힌 플라스틱 상자가 가득했다. 15단 이상, 5m 이상 높이로 쌓여 있다. 상자에는 갓 들어온 배로 빼곡했고, 생산 날짜와 농민 이름이 붙어있다. 건물 한쪽에는 '경축 참배수출단지 대통령상 수상'이라고 적힌 펼침막이 눈길을 끈다."상주 배니까 잘 팔리죠. 상주는 지형과 풍토가 좋아요. 낙동강 옆 기름진 옥토에서 재배되고 국토 중간에 위치해 있어 자연 재해도 없습니다. 이번 태풍에도 상주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어요." 상주 배를 살펴보던 이 회장은 흡족해하며 설명했다. 참배수출단지 건물 내부에는 선별장이 따로 마련돼 있다. 당도측정기부터 포장기, 저울, 에어세척기 등 선별장에 필요한 시설을 모두 갖췄다. 농민들이 납품한 배는 선별장에서 세척→선별→포장 과정을 거쳐 해외로 수출된다. 선별장 곳곳에는 'Premium Korean Pears' 'Sweet & Fresh Korean Pears', 'Korean Jumbo Pears' 등이 적힌 배 포장 상자가 가득 쌓여있다. "이건 호주로 가는 거예요. 코스트코에서 팔리죠." 'FRESH PEAR For Austrailia'라고 적힌 포장 상자를 가리키며 이 회장이 말했다. 선별장 반대편에는 저온저장고가 여러 개 자리한다. 저온저장고를 열자 배가 든 상자가 한가득이다. "여기 보관된 배는 인도네시아에 가는 거고, 저기 보관된 배는 호주로 가는 거예요. 이렇게 보관해야 배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어요"라며 이 회장이 상주 배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농특산물 수출액 1천억원 눈앞상주는 농특산물 수출이 경북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좀처럼 '수출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상주의 농특산품 수출량은 2015년 3천832t에서 지난해 4천646t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수출액은 205억원에서 870억원으로 4배 이상 껑충 뛰었다. 수출량보다 수출액이 훨씬 가파르게 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해외에서 상주 농특산물이 고품질의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지난해 상주에서는 모두 27개 품목, 4천646t·870억원어치의 농특산물이 수출됐다. 수출량으로는 배가 2천727t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포도 1천5t, 토마토 261t, 선인장 63t, 곶감 41t, 복숭아 13t 등의 순이다. 수출액은 포도가 206억원으로 배(105억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토마토(12억5천만원)와 선인장(11억원)도 10억원 이상을 기록했고 곶감(7억5천만원), 복숭아(1억2천만원)가 뒤를 이었다.상주 농특산물이 수출된 나라는 30개 국가에 달한다. 수출량으로만 보면 대만 1천367t, 미국 1천146t, 베트남 586t, 중국 446t, 홍콩 229t 등 순이다. 반면 수출액으로는 중국이 500억원으로 압도적이다. 이어 미국 58억원, 베트남 54억원, 대만 45억원, 홍콩 30억원으로 집계됐다. 상주에서는 농특산물 전문수출단지만 21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단지만 11곳이다. 나머지 10곳은 경북도 지정 단지와 예비단지로 구성돼 있다. 농특산물 중에서는 배(8곳)와 포도(7곳) 전문수출단지가 가장 많다. 복숭아, 사과, 화훼, 토마토, 선인장, 쌀 전문수출단지도 각각 1개씩 있다. 상주가 농특산물 수출 거점으로 우뚝 선 것은 농업에 유리한 자연환경과 농민들의 숙련된 재배 기술 덕분이다. 백두대간이 상주 북서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일교차가 크고 자연재해가 적다. 더욱이 상주 동쪽은 낙동강이 비옥한 평야지대를 만들어 일찍이 농경이 발달했고, 재배 기술도 함께 발전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주 농특산물이 최고로 인정받게 된 배경이다.농특산물 수출 확대를 위한 상주시의 노력도 빛을 발했다. 상주시는 2017년부터 해외 주요 도시에 지역 농특산물 해외 홍보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독일(2곳)을 비롯해 태국(3곳), 홍콩(3곳), 뉴질랜드(3곳), 대만(1곳) 5개국에 12곳의 홍보관을 운영 중이다. 상주시는 신선농산물 수출을 위한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만 농가와 단체, 수출업체 80곳에 모두 4억원을 지원했다. 농가·단체 41곳은 2억5천만원, 수출업체 39곳은 1억5천만원의 혜택을 받았다.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상주는 농특산물 수출 선도 지역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에도 경북도 농식품 수출정책 우수 시·군 평가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8년 이후 4년째 대상을 거머쥐었다.상주시가 이 평가에서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은 상주의 농특산물 수출액이 매년 크게 늘고 있어서다. 또 해외 홍보관 운영과 해외시장 개척 노력 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과 전문수출단지, 상주시의 행정적 지원이 삼박자를 이룬 결과다.이종진 상주시 경제산업국 유통마케팅 과장은 "농특산물 해외 홍보관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상주가 여러 시기마다 다양한 농산물이 나오는 '농산물 백화점'이기 때문"이라며 "상주는 비옥한 토지와 자연재해가 없는 환경에서 최고 품질의 농특산물이 생산되는 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양보다 질을 중시해 왔던 만큼 해외에서도 프리미엄급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상주시 사벌국면 덕가리에 위치한 참배수출단지 앞마당에서 직원이 지게차로 수출용 배 상자를 트레일러에 옮기고 있다.이정원 참배수출단지 회장이 해외로 수출되는 배를 가리키며 상주 배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지난 8월 상주 외서농협유통센터에서 열린 상주 배 수출 선적식에서 참석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태국 방콕에 위치한 상주시 농특산품 해외 홍보관에서 외국인 직원이 상주 농특산물을 홍보하고 있다.
2022.09.21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12·<끝>] 해병대문화로드…100만 예비역 '팔각모 사나이들' 추억·애환 고스란히
크고 작은 재해 현장마다 어김없이 볼 수 있는 빨간 추리닝의 사나이들, 또한 빨간 명찰을 오른쪽 가슴에 달고 팔각모를 쓴, 새까만 얼굴로 각인되어 있는 군인들이 있다. 바로 해병이다. 투철한 사명감과 호국정신으로 무장한 '무적 해병'이 태어나는 곳이 바로 경북 포항이다. 대원이라면 예외 없이 포항의 해병대 교육훈련단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포항은 해병인의 영원한 고향이라 불린다. ◆해병의 거리 포항 오천읍은 해병대 1사단, 해병대 교육훈련단과 해병대 군수지원단, 해병대 항공단 등이 자리해 있는 무적 해병대의 고장이다. 복무 중인 군인과 가족을 합치면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해병대의 요람이기도 하다. 해병대 1사단은 6·25 전쟁이 끝난 1959년 3월12일, 경기도 파주군 금촌에서 포항 오천으로 주둔지를 옮기면서 포항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베트남 파병과 포스코 및 포항 항구 등 국가의 중요한 시설을 방호하면서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포항시와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해병부대는 남구 오천읍과 동해면·청림동에 걸쳐 넓게 자리한다. 부대 서편의 도로는 해병로(海兵路)다. 포항 오천을 가로질러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냉천을 따라 포항시 남구 청림동에서 오천읍 문덕리를 연결하는 도로로, 2009년 해병대 1사단 창설 50주년을 맞아 해병로로 명명됐다. 해병로는 봄마다 벚꽃과 개나리가 터널을 이루는 포항의 이름난 봄꽃 명소이기도 하다. 해병로에서 충무로를 따라 들어가면 해병대 정문인 서문이 있다. 서문 앞은 '해병의 거리'다. 예전에는 서문사거리라고 불렀고 오천의 심장이라고 했다. 각종 가게로 빼곡한 거리 곳곳에서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한다' '귀신 잡는 해병대 무적해병'이라는 자부심 넘치는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해병대 1959년에 오천읍으로 옮겨와60여 년간 포항과 희로애락 함께 해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장정 입영식부대 서문 '해병의 거리' 1만여 인파교육훈련단 입구 조성 일월문화공원민족정기 오롯이…장병 쉼터 역할도해마다 해병대문화축제로 긍지 높여실전같은 시범 해상기동훈련 선보여다양한 병영체험 프로그램도 큰 인기예전에는 동·서·남·북 4개 문이 있었다. 정문과 함께 남구 일월동에 있던 동문은 주말이면 외출과 외박을 나온 장병으로 가득했다. 특히 동문은 1970년 초반까지 베트남전에 참전한 청룡부대 면회소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장병의 애환을 함께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병훈련소와 같은 외부인 왕래가 잦은 부대 없이 현역병이나 부사관·장교들만이 드나드는 전투사단만 있다 보니 부대를 둘러싸고 있는 상권 형성의 속도는 느렸다.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해병대는 1949년 창설 이후 경남 진주와 제주도에서 해군과 뒤섞여 기초 군사훈련 및 각종 특기훈련을 실시했었다. 이후 고유의 양성교육을 계승하고 최강 해병대원을 자체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1977년 1월1일 해병대 교육훈련단을 포항에 창설한 것이다. 당시 교육훈련단은 출입문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30년간 한 달에 1·2기씩 선발하는 신병의 입소식이 열리는 날이면 입영 장정과 가족 수천여 명이 서문을 드나들었다. 그때부터 서문은 '무적해병'이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되었다. 이렇듯 외부인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서문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다. 이는 포항공항 인근에 위치한 동문이 1970년대 후반 폐쇄되면서 더욱 가속화했다. 여기에 주말과 휴일이면 현역병과 직업군인이 무리 지어 쏟아져 나오면서 인근의 각종 상가는 문전성시를 이뤘고 가게들은 밤늦도록 불야성을 이뤘다. 서문이 호황기를 이뤘던 1980∼90년대에는 평일 저녁에도 가게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해병의 거리는 2000년대에 들어 쇠퇴기를 맞았다. 2007년 7월 교육훈련단이 정문을 개방하면서 더 이상 서문을 통해 신병이 입소하는 일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빨간 추리닝을 사고 이름을 새기기 위해 마크사를 방문하는 배 나온 아저씨들이 '해병의 거리'를 걷는다.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외지인의 방문은 꾸준하다. 해병대 커트·돌격머리를 만들어주는 이용원도 많이 보인다. 해병대 동문도 2016년 다시 열렸다. 주변에 몰개월 비행기 전시장과 청포도 테마길이 있고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의 시작점이자 해병대 상륙훈련장인 청림 해변과 도구해안이 가까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해병대 서문 '해병의 거리'에서 영일만 바다로 향하는 동문까지, 해병부대를 둘러싼 길은 100만 예비역 해병의 아련한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해병대 교육훈련단과 일월문화공원해병대 서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모든 대한민국 해병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해병대 교육훈련단(교훈단) 입구가 있다. 커다란 문에는 '해병대는 이곳에서 시작된다'라는 문구가 문보다 더 크게 적혀 있다. 이 문으로 매월 1개 기수, 1천여 명의 장정이 교훈단에 입영한다.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면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 인근 도로는 입대자와 가족이 타고 온 차량으로 거대한 주차장이 된다. 거의 1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포항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교훈단 입구 앞에는 일월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문체부 신라문화바닷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에 공원 조성계획이 세워져 2022년 최종 완공됐다.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부대 안에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일월지가 있다. 일월지 부근에는 신라시대부터 일월에 제사를 드리던 천제단이 있었고 매년 9월 중양절에 해와 달에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데 천제단은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됐다. 일월문화공원은 천제단이 있던 곳을 추측해 조성했다고 한다. 일월문화공원은 연오랑 세오녀 전승의 뿌리 또는 포항 정신의 원류에 대한 또 다른 마당으로 역사 유적의 복원이자 민족정기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있다. 공원에는 연오랑세오녀상과 일월문화기념단·전시관 등이 있고 새로운 일월지도 조성되어 있다. 너른 부지에는 영일만 일대의 고대 제천문화를 보여주는 암각화와 고인돌·선돌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어 포항에 산재되어 있는 제천 문화와 유물을 한곳에서 둘러보기에 좋다. 무엇보다도 그늘막 쉼터와 정자·해병광장 등이 마련되어 있어 매달 교훈단을 찾는 수많은 사람에게 보다 편안한 공간이 되어 준다. ◆포항 해병대문화축제100만 해병의 본고장 포항에서는 2017년부터 매년 포항 해병대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해병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집결시키고 국난극복과 안보 공감대 형성을 위한 축제로 포항에서만 유일하게 열린다. 축제는 메인행사장인 냉천수변공원에서부터 동문과 가까운 도구해안·형산강 등지에서 펼쳐지며 카 퍼레이드·헬기 레펠·고공 강하·헬기 비행 시범·블랙 이글스 에어쇼 등 축제의 장은 육해공을 아우른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해병 의장대와 군악대 공연·무적도 시범공연 등은 대한민국 무적해병만의 절도 있는 동작과 늠름하고 믿음직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매료한다. 특히 도구해안에서 펼쳐지는 해병대 해상기동훈련은 최첨단 해상기동장비와 공중기동장비 등이 대거 투입돼 실제와 다름없는 웅장하고 용맹한 시범훈련을 선보인다. 형산강에서는 해상 퍼레이드·상륙돌격장갑차와 상륙돌격용 고무보트 탑승 체험 행사가 열린다.축제장 주변에는 어린이를 위한 대형 에어바운스(Air-bounce)존을 비롯해 군 생활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군복 착용체험·병영생활 체험·군 장비 체험·전투식량체험·위장크림 페이스 페인팅·부대 개방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먹거리장터도 열린다. 포항의 대표 건어물과 해산물·농산물 등 특산품 판매장이 운영되며 소비촉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객을 상대로 현장에서 포항사랑 상품권을 할인 판매하기도 한다. 포항 해병대문화축제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한다. 축제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왜 이제야 왔지?"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해병대 정문인 서문 앞은 '해병의 거리'다. 이곳은 빨간 추리닝을 사고 이름을 새기기 위해 마크사를 방문하는 배 나온 아저씨들에게 추억의 장소다. 또 맛집으로 이름난 식당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외지인의 방문은 꾸준하다.해병대 교육훈련단 입구 앞에 조성되어 있는 일월문화공원 전경. 일월문화공원은 연오랑 세오녀 전승의 뿌리 또는 포항 정신의 원류에 대한 또 다른 마당으로 역사 유적의 복원이자 민족정기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있다.일월문화공원에는 연오랑세오녀상과 일월문화기념단·전시관 등을 비롯해 영일만 일대의 고대 제천문화를 보여주는 암각화와 고인돌·선돌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일월문화공원에는 연오랑세오녀상과 일월문화기념단·전시관 등을 비롯해 영일만 일대의 고대 제천문화를 보여주는 암각화와 고인돌·선돌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2022.09.19
[농업으로 행복한 영양 .1] 전국 최고의 품질 영양고추…색깔 곱고 매콤달콤 깊은 맛…당질·비타민 함량 월등
▶연재를 시작하며= 경북 동북부 깊숙한 곳에 있는 영양군은 인구가 1만6천320명(2021년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도서지역인 울릉군(8천867명) 다음으로 인구가 적다. 영양의 면적(815.77㎢)은 대구와 비슷하지만 85%가 임야다. 경북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영양읍은 해발 200m, 고추가 많이 나는 수비면은 해발 400m가 넘는다. 영양은 이런 맑은 자연환경 속에서 최고 품질의 농산물과 임산물·축산물을 생산한다. 인구도 적고 농경지도 작지만, 강하고 경쟁력 있는 농촌이다. 영남일보는 13회에 걸쳐 영양의 주요 특산물을 통해 농업 선진도시를 꿈꾸는 영양을 소개한다. 고추 하면 영양이다. 영양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고추 주산지다. 영양은 과거부터 수비초 등 고추 재래종의 품질이 뛰어나 일찌감치 고추로 명성을 얻었다. 영양 고추는 청정지역에서 앞선 재배 기술을 가진 농민들에 의해 생산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품질의 고추가 나온다. '농업으로 행복한 영양' 1편에서는 국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영양 고추에 대해 살펴본다.◆재래종에서 시작된 영양 고추의 명성고추는 한국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채소다. 고추는 국내 채소 중 재배면적이 가장 넓고 생산량도 가장 많다. 하지만 고추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고추는 1614년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고추는 각 지역의 기후풍토에 적응하며 다양한 재래종이 생겨났다.영양에서도 수비초와 칠성초 등 뛰어난 고추 재래종이 재배됐다. 수비초는 1960년대 초 수비면 오기리에서 재배되고 있던 고추 품종이다. 매운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등 품질이 매우 뛰어났다. 수비초는 1982년쯤 다른 지역으로 종자가 보급되며 확산했다. 수비초는 당시 전국농업기술자대회에 출품돼 그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명성을 얻었다. 수비초는 아직도 고추 품종 중에서는 품질만을 따지자면 최고로 꼽힌다. 칠성초도 유명했다. 1978년 일월면 칠성리에서 농민 신모씨가 강원도에서 재배되던 고추를 가져다 재배한 것이 시초다. 1981년부터 영양에 확대 재배됐다. 칠성초는 매운맛이 강하고 과피가 두꺼웠으며 색깔도 좋았다. 병해충에도 어느 정도 강해 당시 농가에서 꽤 많이 재배했다.하지만 1970년대 중반 잡종강세(雜種强勢)를 이용한 교잡종 고추 품종이 각 종묘회사에 의해 보급되면서 영양의 고추 재래종은 줄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수량성과 병저항성이 높은 새로운 교잡종이 보급되며 재래종은 급격히 감소했다. 결국 재래종은 조광·금탑 등과 같이 교잡(交雜)으로 만들어진 F1 세대 품종에 밀려 자리를 내줬다. 2000년대부터 영양에서는 고추 재래종이 하나둘씩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경북도농업기술원 영양고추연구소에서 영양의 우수한 고추 재래종을 잇달아 복원하면서다. 영양고추연구소는 2001년 수비초를 복원한 '영고4호'를 시작으로, 2004년에는 칠성초를 복원한 '영고 5호'를 육성했다. 이후 2014년 수비초를 복원한 '수미향'까지 모두 21개 토종 고추 품종을 내놨다. 고추연구소는 이렇게 육성한 재래종을 몇 년 전부터 각 농가에 분양하고 있다.이렇게 재래종의 고유 형질을 바탕으로 육성된 영양 고추 품종은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수비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미향의 경우에는 일반 고추보다 매운맛이 3~4배 정도 강하며 당도도 높다. 또 맛과 향이 뛰어난 데다가 색깔이 곱고 선명해 인기가 많다. 지난해 기준 영양 고추 재배면적은 1천459㏊에 이른다. 고추 재배 농가만 2천138가구다. 영양 전체 농경지가 7천349㏊, 전체 농가가 4천101가구인 것을 감안하면 영양 농가 2곳 중 1곳은 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영양의 고추 재배면적은 경북의 16.0%, 전국의 4.4%를 차지한다. 지난해 영양의 고추 생산량은 4천494t, 생산액은 822억4천만원에 이른다. 영양 1개 읍과 5개 면 중에서는 청기면(378.5㏊)과 수비면(306.6㏊)에서 고추가 가장 많이 재배된다. 영양은 고춧가루 등 조미료로 만들어지는 건고추 생산량이 생식용인 풋고추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영양의 고추 재배 방식은 노지 재배가 55%로 가장 많다. ◆전국 최고 품질 영양 고추고온성 채소인 고추는 재배단계에서 낮 기온은 25~28℃, 밤 기온은 18~22℃가 가장 적당하다. 고추는 햇빛의 영향은 적게 받지만 햇빛이 충분한 것이 생육에 좋다. 고추는 건조·침수에 약하기 때문에 보수력(수분을 보유하는 능력)이 좋은 토양이 재배에 유리하다. 강우량은 조금 적은 편이 좋다. 영양은 이런 환경을 두루 갖춘 고추 재배 적지다. 영양은 주변 지역보다 일조량이 풍부하며, 기온의 일교차가 크고 강우량도 적은 편이다. 영양의 연평균 기온은 10.2℃, 강수량은 882㎜이다. 특히 영양의 여름(6~8월) 기후조건은 평균온도 22.2℃, 최고 평균온도 27.9℃, 최저 평균온도 17.8℃, 일교차 10.1℃, 강우량 514㎜로 고추 재배에 알맞다. 영양의 토양도 대부분 점질토나 식양토로 고추 농사 재배에 적합하다. 이런 자연환경 덕분에 같은 품종의 고추라 하더라도 영양에서 재배된 것이 더 품질이 좋다. 영양 고추는 맛과 향이 뛰어나며 색깔이 곱고 선명하다. 고추 겉은 윤기가 많이 나고 매끈하며 모양도 좋다. 또 고추의 질감이 좋고 과피가 두껍다. 특히 영양 고추는 고춧가루가 많고 고추씨가 적은 특징도 있다. 단맛과 매운맛이 잘 조화돼 매콤달콤하고 고추의 고유 향기가 강하다.고랭지에서 재배된 영양고추는 당질 함량이 많고 비타민A·비타민C 함량도 많다. 또 섬유질이 적고 단맛이 많아 식미가 좋은 편이다. 영양 고춧가루로 김장을 하면 김치가 잘 시지 않다. 특히 영양 재래종인 수비초는 김장김치를 담글 때 다른 고추보다 맛과 색깔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농촌진흥청 생활과학연구소의 성분 분석에서 영양 고추는 당질과 비타민 등이 다른 지역 고추에 비해 훨씬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영양 홍고추의 경우 100g당 비타민C는 121㎜g(전국 평균 30㎜g), 비타민B2는 0.36㎜g(전국 평균 0.05㎜g), 당질은 7.9g(전국 평균 6.3g)이 들어있었다. 또 수비초를 건조해 만든 고춧가루에는 100g당 비타민C가 92.0㎜g(전국 평균 55.8㎜g), 비타민B2가 1.13㎜g(전국 평균 0.96㎜g), 당질이 38.0g(전국 평균 37.7g)이 함유돼 있다. 영양고추는 이런 품질을 인정받아 전국으뜸농산물품평회에서 지금까지 10차례나 대상을 받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뛰어난 재래종을 재배해온 영양 농민들의 고추 재배 기술도 뛰어나다. 영양은 고추 재배 농민들의 품종 선택과 재배 관리 기술·건조 기술은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다. 영양 고추 재배 기술은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영양은 1962년 이전에는 노지직파 재배를 했지만, 이후 보리 뒷그루 노지육묘 이식재배를 도입했다. 이어 1965년에는 비닐터널 간이온상육묘가 시작됐고, 1968년에는 처음으로 양열온상 비닐멀칭재배가 도입돼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1982년부터는 전열온상 육묘와 함께 안정적인 육묘기술이 보급됐고, 2010년부터는 부직포 막덮기 재배기술이 시작되며 재배 기술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영양은 고추와 관련한 각종 인프라도 풍부하다. 경북도농업기술원은 1995년 영양읍 대천리에 영양고추연구소를 설립했다. 전국에서 유일한 고추 전문연구기관이다. 영양고추연구소는 우량품종 육성·고추 품질 향상 연구·생산비 절감 기술 개발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영양군은 2006년 일월면 가곡리에 지방공기업인 영양고추유통공사를 세웠다. 영양고추유통공사는 고추 건조처리공장과 고추 분쇄공장·저온저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정부는 2007년 일월면과 수비면 일원을 영양고추산업특구로 지정했다. 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공동기획 : 영양군'고추=영양'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은 과거부터 전국에서 손꼽히는 고추 주산지다. 가을철 영양에 가면 어디에서나 흔하게 고추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을볕에 건조되고 있는 빨간 고추의 색깔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영양군 제공〉영양 전체 농가 4천101가구 가운데 고추 재배 농가만 2천138가구다. 영양 농가 2곳 중 1곳은 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농부들이 고추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영양군 제공〉
2022.09.15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11] 호미반도 둘레길…아우성치거나 적요하거나…매 순간 놀라운 '미혹의 길'
영일만의 가운데에 자리한 포항 신항의 남쪽으로 유난히 보드라운 모래의 청림 해변과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를 타고 바다 너머로 떠나갔다는 전설의 도구 해변이 길게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해안선은 호랑이 꼬리의 윗선을 따라 동진하면서 임곡·입암·마산·흥환·발산·대동배·구만과 같은 무구한 이름의 마을들을 지난다. 길은 한시도 바다로부터 눈길을 거두지 않고 이어져 저 상생의 손이 기다리고 있는 호미곶에 다다른다. 청림에서 호미곶까지, 약 25㎞에 4개 코스로 이루어진 이 길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라 한다. 지나가고도 머무는 바다와 함께, 만에서 대양으로 향하는 미혹의 길이다. 청림해변 초반은 해병대 상륙훈련장주민·여행자 위해 낮 시간대만 개방입암리 선바우 앞서 시작 해상데크길해안절벽·기암괴석 가까워 인기 높아발산리엔 천연기념물 모감주 군락지바람 거센 구만길 지나면 '상생의 손'◆1코스 연오랑세오녀길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의 1코스는 '연오랑세오녀길'이다. 시작점은 청림운동장으로 포항시에서 둘레길 행사를 열 때면 이곳에서 출발한다. 주변에 너른 주차장과 쉼터·화장실 등이 잘 갖춰져 있고 바다는 지척이다. 청림 해변의 초반은 해병대 상륙훈련장이다. 일반적으로 개방하지 않는 곳이지만 마을 주민들과 둘레길 여행자를 위해 낮 시간대에만 개방하고 있다. 달빛 같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해송의 숲이 길고 푸르게 뻗어 나가는 가운데 데크길이 나 있다. 청림(靑林)은 바닷가에 긴 숲이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한다. 지금 솔숲은 어려서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을 선사한다. 언젠가는 어엿한 청림으로 자라나 방풍림의 역할을 톡톡히 하겠지만 그때는 지금과 같은 풍경을 보지 못할 것이다. 환하고도 적요한 길은 도구해수욕장으로 부드럽게 연장된다. 한여름에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는 도구 해변은 800m나 뻗어 나가고 풍요롭고 눈부신 빛에 흠뻑 젖어 있다. 도구해수욕장을 지나면 임곡리다. 마을에 들어서면 연오랑과 세오녀를 주제로 한 벽화들이 오래된 설화를 이야기해 준다. 조용한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은 바다의 호흡에 맞춰 삐걱거리고 길고양이들은 소리도 없이 느긋하게 골목길을 누빈다. 임곡항의 위쪽, 청룡회관 앞을 지난다. 해병대가 운영하는 휴양시설이었던 청룡회관은 지난해 호텔마린으로 바뀌었다. 최근 전망 좋은 숙소로 입소문이 조금씩 나는 중이다. 임곡 촌락의 동쪽 끝에 다다르면,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는 가벼운 산언덕에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이 펼쳐진다. 바다를 마당으로 가진 공원이다. 전시실인 귀비고를 중심으로 신라마을·한국 뜰·일본 뜰,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타고 간 바위이자 세오녀가 짠 비단을 싣고 돌아왔다는 쌍거북 바위 등 공원은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바닷가 벼랑에는 커다란 누각인 일월대가 자리한다. 누각에 오르면 만 너머의 도시와 동쪽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찬다. ◆2코스 선바우길호젓한 억새의 오솔길과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하게 어우러진 숲을 통과해 검은 갯돌 해안을 지나면 6m 정도 높이의 뾰족한 바위가 우뚝 서 있다. 2코스가 시작되는 입암리의 선바우다. 선바우 앞에서부터 바다 위를 걷는 해상 데크길이 시작된다.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 폭이 넓고 단차 없이 평탄해 걷기에 아주 편하다. 특히 이 길은 접근하기 힘든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선바우를 지나면 여왕바위·손바닥 바위·남근바위·폭포바위·소원바위·킹콩바위·힌디기 등이 줄줄이 등장한다. 이 일대는 신생대 제3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지형으로 오랜 시간 풍화되어 조각된 암석들이 대단한 장관을 보여준다. 이들 중 흰빛을 띠는 힌디기는 화산재가 쌓여서 만들어진 벤토나이트 암석으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힌디기 바위 구멍에 돌을 던져 넣고 소원을 빌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다.힌디기에서 자갈해변을 지나 데크길을 조금 가면 하선대(下仙臺) 전망대가 나온다. 하선대는 바다 가운데 살짝 드러난 바위섬으로 마을 사람들은 '하잇돌'이라고도 부른다. 동해의 용왕이 매년 칠석날 선녀들을 초청해 놀았다는 곳이다. 하선대에서부터 마산리가 시작된다. 마을 뒷산이 뛰어가는 말의 형상이라 마산 또는 말미라 부르고 산에 말을 놓아 먹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산리 항구에서 흥환으로 가는 길 역시 먹바우·비문바우·미인바위·신랑각시바위·군상바위 등이 즐비한 기암의 해변이라 매 순간이 놀라움이다. 머지않아 흥환 간이해수욕장이다. 작은 솔숲을 가진 작은 해변을 지나 흥환리 항구에 닿는다. 항구의 가장자리에 장기 목장성 비각이 바다를 향해 서 있다. 비각 안에는 군마 등을 키우고 관장했다는 비와 목장을 관장하던 감목관(監牧官)의 공덕비 등이 함께 세워져 있다.◆3코스 구룡소길흥환 항구에서부터 3코스가 시작된다. 크고 판판한 돌을 이어 길을 낸 해안길을 따라가면서 온갖 형상과 질감이 기묘한 바위들을 본다. 그러고 나면 봄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골짜기에 꽃이 만발한다는 발산(發山)리다. 장군이 아이를 업고 영일만으로 걸어가는 모양이라는 장군바위를 지나면 발산리 항구다. 이 마을에는 세계 희귀 수목이자 천연기념물 제371호인 모감주나무의 최대 군락지가 있다. 여름에 피어났던 노란 꽃은 지고 이제 열매가 익어간다. 발산리에서 대동배리로 향하는 해안에는 절벽 아래 갯바위들과 자갈이 펼쳐져 있다. 길은 그리 길지 않지만 거듭거듭 돌아보게 되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러다 숲으로 덮인 암벽을 오른다. 동을배봉이라 부르는 벼랑이다. 벼랑 아래는 고려 충렬왕 때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소가 있다. 구룡소에는 용들이 승천하면서 남긴 9개의 굴이 있는데 그중 5리가량 되는 깊은 굴은 옛날 도승들의 수도처였다고 전한다. 파도가 거칠게 들이친다. 흰 물보라가 거세게 밀고 들어오더니 왈칵 쏟아져 나간다. 소름 돋는 아우성이다. 벼랑에서 내려와 거친 낙석지대를 재빨리 돌아 나오면 대동배1리 마을이다. 대동배리의 옛 이름은 학달비(鶴達飛)다. 마을 사람들은 한달비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렀다. 먼바다에서 보면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라 한다. 좁은 자갈해안을 따라 대동배2리로 간다. 몇 채의 집들을 지나 유독 하얀 돌들의 바닷가에서 해상 데크가 이어진다. 굽이진 벼랑의 모서리에서 모아이상 바위가 턱을 살짝 들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모아이상보다 좀 더 잘생긴 얼굴이다. ◆4코스 호미길대동배 2리를 지나면 해안가 구만길이 호미곶으로 향한다.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은 듯 고요하고 적요한 길이다. 그 길옆에 점점이 내려앉은 갯바위들로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구만리 바다가 열린다. 바람과 파도가 거센 날이면 청어 떼를 토해내었다는 바다, 그 청어들을 사람들이 까꾸리(갈고리)로 끌어 모았다고 까꾸리개라 부르는 바다다. 갯바위들 사이에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청어 떼를 기다리는 듯 바다를 주시한다. 까꾸리개 언덕길에는 고향 호미곶을 노래한 서상만 시인의 '나 죽어서' 시비가 서 있다. 구만길 바람이 세다. 구만리에는 '내 밥 먹고 구만 허릿등 쐬지 마라'는 말이 있다. 호미곶면사무소가 있는 언덕을 허릿등이라 하는데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라 생긴 말이다. '봄 샛바람에 목장 말 얼어 죽는다'는 속담도 이 지역에서 생겼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 모든 계절이 아름다웠다고 기억한다. 덧없는 아름다움으로 가슴 먹먹한 길이 저 앞으로 나아간다. 적요했던 구만길은 대보항이 가까워지자 요란해진다. 방파제는 내항의 바다를 주름살 하나 없이 펴놓았고 그 문진 같은 방파제 너머로 갯바위들이 새 떼처럼 앉아 곶을 향해 와글와글 전진한다. 대양을 향해 시나브로 걸어가는 땅, 그 끝에서 호미곶의 실루엣이 아슴아슴 다가온다. 그 바다에 상생의 손이 기다리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공동기획 : 포항시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선바우길은 선바우 앞에서부터 바다 위를 걷는 해상 데크길이 시작된다. 이 길은 접근하기 힘든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호미반도 해안둘레길 1코스 연오랑세오녀길에서 만나는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는 가벼운 산언덕에 자리하고 있다.호미반도 해안둘레길 4코스 호미길에서는 청어 떼를 기다리듯 바다를 주시하는 독수리바위가 눈길을 끈다.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선바우길에 자리한 자갈해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달그락거리는 자갈들의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평화롭게 들린다.
2022.09.14
[대한민국 선진농업 1번지, 산소 카페 청송 .8] 귀농·귀촌 지원사업…"청송으로 오시는 귀농인은 귀인입니다"
노령화와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농촌에 귀농인은 말 그대로 '귀인'이다. 이들은 침체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때로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소멸 위기의 농촌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귀농어·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과 함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귀농인 지원에 힘을 쏟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한민국 선진농업 1번지 산소카페 청송' 8편에서는 청송에서 인생 2막을 꾸려나가는 귀농인과 청송군의 지원 정책을 소개한다.◆청송의 늦깎이 귀농인 부부"태풍(제11호 태풍 힌남노)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사과나무가 피해를 입을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다행히 높은 산이 막아줘서 별 피해가 없었네요. 농사짓고 살기 좋은 지역이에요." 지난 9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두현리 달샘이농원에서 만난 박강열(63)·김영남(59)씨 부부가 웃으며 말했다. 부부는 12년 전 이곳에 자리 잡은 귀농인이다. 현재 현서면 6곳에 모두 2.0㏊(6천평)의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이들이 선택한 현서면은 청송 최남단에 위치한 고지대다. 보현산(해발 1천124m)과 면봉산(해발 1천120m) 등에 둘러싸여 자연재해가 적다. 또 영천시 등에 인접해 있어 청송에서 귀농인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다.청송에 특별한 연고는 없었다. 박씨는 경남 창원시, 김씨는 경남 산청군 출신이다. 부부는 원래 경남 김해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 돈은 벌었지만 여유 없이 늘 바빴다. 먹고 사느라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벌어서 누구 주겠냐'고. 아이들도 다 컸고 농촌에서 여유를 갖고 살아보자는 생각에 귀농을 결심했죠." 부부는 과거를 회상했다. 마음을 굳힌 뒤 귀농할 농촌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창원과 가까운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두 지역의 땅값이 너무 비싸 결국 청송을 선택했다. 사과 주산지인 청송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면 소득이 안정적일 거라 생각했다. 2011년 부부는 현서면에 과수원 0.9㏊(2천800평)을 사서 작은 집을 지었다.누구나 그렇듯 귀농 초기 시행착오를 겪었다. 과수원에 심긴 사과나무는 모두 15년 이상 된 노목이라 생산성과 품질이 좋지 않았다. 고민 끝에 부부는 귀농 2년 만에 과수원을 갈아엎고 새로운 사과나무를 심었다. 품종도 경쟁이 심한 후지(부사)를 피해 감홍을 선택했다. 이후에는 시나노 골드 품종도 키웠고, 몇 년 전에는 현서면에서 가장 먼저 엔부 품종도 심었다.부부는 귀농한 이후 5년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농업 소득도 높지 않았고, 사과 재배 지식이라곤 책과 인터넷을 통해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 사과 농사 잘 짓는 법을 배우기 위해 박씨는 선도 농가를 찾아다녔다. 경북지역뿐만 아니었다. 낮에는 농사일하고, 밤에는 사과 재배 공부에 매달렸다. 부족한 소득을 메우기 위해 다른 농가에서 농사일도 도왔다. 부부는 2015년을 잊지 못한다. 귀농 5년 차였다. 부부는 그해 처음으로 1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렸다. 억대 소득 농가가 된 것. 이후 과수원 규모도 늘리고, 집도 고쳐 지었다. 저온창고와 농기계도 사들였다. "친구들에게 '귀농하더니 망해서 돌아왔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정말 열심히 사과 재배 공부를 했어요." 박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농의 꿈을 이룬 뒤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박씨는 2019년 2월부터 2년간 군위군 효령면에 있는 경북농민사관학교도 다니며 전문적인 사과 재배 기술을 익혔다. 경북대 사과연구소가 교육하는 마이스터대학 사과1전공 교육과정에도 참여해 사과나무 생리·재배·과육 관리 등을 배웠다. 이탈리아까지 날아가 사과 재배 견학도 다녀왔다. 십수 년 만에 그는 이축·밀식 재배의 '달인'이 됐다. 다른 지역 농가에서 사과 재배 기술을 배우러 그를 찾아올 정도다. 4년 전부터는 월정리 청년회장도 맡고 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식당 운영할 때보다 소득도 높고 시간 여유도 있어요. 창원에서 결혼해 직장에 다니는 작은 아들에게 여기 와서 농사 물려받으라고 했어요. 이렇게 일궈놓은 농업 기반이 아까워서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부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청송의 귀농인 지원과 교육청송에는 매년 100가구 안팎의 귀농인이 꾸준히 들어온다. 포항과 인접한 부남면, 영천과 인접한 현서면이 귀농 인기 지역이다. 실제 최근 2년간(2020~2021년) 청송에 귀농한 가구(190가구)의 48.42%가 현서면(52가구)과 부남면(40가구)에 자리를 잡았다. 초보 귀농인에게는 비교적 도시와 가까운 접근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농촌에서의 생활이 아직 낯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농사 재배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데다 정착을 위한 자금적인 여유도 부족하다.이에 청송군은 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농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귀농인 지원 사업'이다. 지원 대상은 귀농한 지 3년 이내인 만 65살 이하 세대주다. 농가당 영농정착자금지원 400만원, 주택수리비지원 400만원, 농지구입세제지원 200만원, 농지구입이자지원 150만원, 귀농학교수강료지원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 신청은 매년 2월 읍·면사무소에서 하면 된다.'귀농인 정착 지원 사업'도 있다. 귀농인에게 영농규모 확대, 시설 확충 및 개·보수, 농기계 구입, 하우스 설치, 과원 조성, 묘목 및 종근 구입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가족이 함께 귀농한 지 5년 이내인 만 65살 이하 세대주가 지원 대상이다. 자부담 20%를 조건으로 농가마다 500만원이 지원된다. 매년 1월 읍·면사무소에서 신청할 수 있다.'귀농 농업창업 및 주택구입 지원 사업'도 눈여겨 볼만하다. 귀농인의 농업창업 및 주거공간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낮은 금리로 대출을 내준다. 귀농 만 5년 이하 만 65살 이하 세대주라면 매년 1월과 6월 두 차례 읍·면사무소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대출 한도는 가구당 농업창업에 3억원, 주택 구입·신축 및 증·개축 7천500만원이다.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 대출금리는 연 2%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상환은 5년 거치, 10년 원금균등 분활상환 방식이다. 이외에도 청송군은 귀농인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청송군농업기술센터는 매년 귀농귀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보통 5~6월 교육신청을 받아 6~8월 교육을 진행한다. 귀농인과 귀촌인뿐만 아니라 예비귀농인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 △ 귀농·귀촌 성공전략 △농업·농촌의 이해 △지역특화작목 기초영농기술 △농업기계 안전사용교육 등을 가르쳐준다. 5년 이내 귀농·귀촌인을 1순위, 만 40세 미만 청년농업인을 2순위로 선발한다. 청송군이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는 청송귀농귀촌정보센터도 단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송귀농귀촌정보센터는 지난달 13~14일 귀농인과 귀촌인 15명에게 신청을 받아 '제3기 귀농·귀촌인 심화교육' 과정을 진행했다. △블로그 마케팅 △스마트스토어 마케팅 △SNS 마케팅 △고객관리를 위한 카카오톡 채널 △자두 재배 방법 △청송에서 살아남기 등 주제도 다양하다.귀농·귀촌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사업도 준비돼 있다. 청송군은 지난 5월부터 '농촌에서 살아보기'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실제 청송에서 최소 두 달간 거주하며 농촌의 생활을 이해하고 영농실습·지역민 교류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마을이나 공동체가 운영자로 참여해 참가자에게 숙박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청송군이 운영자에게 이에 필요한 비용과 인센티브 등을 주는 방식이다. 참가자들은 별다른 비용 부담 없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지난 9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두현리 달샘이농원에서 박강열·김영남씨 부부가 사과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12년 전 귀농한 부부는 초창기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는 사과 재배 선도 농업인으로 성장했다.청송군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교육생들이 농산물가공식품 제조실습(위쪽)과 스마트팜 현장체험 학습을 하고 있다.
2022.09.13
4차 산업혁명기술로 '예측 가능한 농업'…2년새 도입 농가 34% 급증
한국 농업은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이상 기후와 갈수록 심해지는 고령화 문제는 농업의 위기를 부채질한다. 스마트팜(Smart Farm)은 이런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첨단농업기술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IoT(사물인터넷)를 접목해 예측 가능한 농업을 할 수 있게 한다. '상주, 삼백의 고장에서 스마트팜 도시로' 7편에서는 국내 스마트팜 중심도시 상주에 대해 소개한다.◆국내 최대 규모 딸기 재배 스마트팜"태풍이 와도 크게 걱정이 없어요. 스마트팜은 날씨라는 변수의 영향을 최소화해 주거든요."지난 2일 경북 상주시 외서면 관동리에서 만난 박홍희(50) 우공의딸기<주> 대표이사는 이렇게 웃으며 말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Hinnamnor)'가 한반도를 향해 북상한다는 소식에 비상이 걸린 다른 농가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은 농업회사법인 우공의딸기가 운영하는 스마트팜이다. 국내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스마트팜으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 한눈에 봐도 규모가 꽤 넓다. 온실인 만큼 외부는 모두 유리로 마감돼 있다. 내부로 들어서자 천장 아래에 이중으로 설치된 커튼이 눈길을 끈다. 이 커튼을 접었다 폈다 하면 햇빛양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딸기가 재배되는 '업다운 행잉베드(상하이동식 베드)'도 인상적이다. 어른 가슴 높이에 매달려 있는데 베드 높이는 위아래로 조절 가능하다. 베드 바로 위에는 물에 비료를 섞어 공급하는 양액공급관이, 바로 아래에는 이산화탄소(CO2 )공급관이 지난다. 베드 아래 땅바닥에는 난방온수관이 위치한다. 또 공기를 순환해 스마트팜 내부의 온도를 균일하게 맞춰주는 교반기, 흰가루병 방제 역할을 하는 유황훈증기도 내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스마트팜 옆 육묘장에는 딸기 모종이 한창 자라는 중이다. 육모장에서 5~6개월 가량 자란 딸기 모종을 스마트팜으로 옮긴 뒤 11월쯤 수확에 들어간다. 박 대표는 "내부에서 컨트롤 가능한 요소는 광(빛),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CO2 ) 시비량(施肥量), 관수량 등이다. 정밀하게 생육관리를 할 수 있고 병해충 위험도 적다. 또 딸기 수확량과 수확시기도 알 수가 있어 예측 가능한 농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스마트팜의 특징을 설명했다.◆대기업 직원에서 스마트팜 사업가로박 대표는 2013년 직장을 그만두고 상주에 귀농했다. 이듬해에는 대기업에 다니던 아내 곽연미(49)씨도 남편을 따라왔다. 연고는 없었지만 한국의 농업 중심도시인 데다가 정주여건도 좋아 상주를 선택했다. 딸기를 재배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해 소득이 나오고, 체험이나 문화사업 등과 연계하기도 좋다고 생각해서다. 급작스러운 결단이 아니라 직장 일을 하면서 틈틈이 귀농 준비를 해왔다.처음 그는 상주시 청리면 수상리에 0.6㏊(1천800평) 정도 땅을 빌려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재배 기술을 익혔다. 2014년부터는 딸기 농장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4~5년 정도 딸기 농사가 손에 익을 때쯤 농업을 비즈니스로 확장할 준비를 했다. 그 결과물이 이 스마트팜이었다. 지난해 8월, 44억원을 들여 딸기 재배 환경에 최적화된 최첨단 스마트팜을 지었다. 공사 기간은 약 1년이 걸렸다. 유리온실 면적만 2㏊(6천평), 육묘장 면적은 0.8㏊(2천400평)에 달한다. 딸기 재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화된 스마트팜 복합환경제어 시스템을 적용해 생산량도 높였다. 이곳에서는 시설 딸기의 평균 생산량보다 약 80%가 많은 딸기가 생산된다. 2020년 스마트팜 운영을 위해 박 대표는 농업회사법인 우공의딸기<주>를 설립했다. 스마트팜 운영 첫해인 2021년에는 딸기 100t을 생산했다. 올해는 130t, 장기적으로는 170t 생산이 목표다. 재배 품종은 가장 대중적인 '설향'과 '금실'이다. 금실은 설향과 매향을 교배해 만든 품종이다. 설향과 비슷하지만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아 수출에 유리하다.박 대표는 스마트팜 외에도 청리면 수상리에서 0.9㏊(2천700평) 규모로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또 아내와 함께 농업 유통과 교육컨설팅 사업을 하는 굿파머스그룹<주>과 ICT, 스마트팜 설비 사업을 하는 씨앗<주>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청년 농부 멘토링사업도 병행한다. 스마트팜에서 일하는 정규직 직원 12명 가운데 75%인 9명이 20·30대다. 교육을 통해 이들이 농업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농업을 가르치고 있다. 경북도와 상주시도 직원 1명당 10개월 동안 월 100만원의 임금을 지원해 준다. 민간과 공공이 힘을 합쳐 청년 농부를 육성하기 위해 그가 경북도와 상주시에 제안해 받아들여진 사업이다. 특히 그는 직원의 직급 체계를 전문직처럼 만들었다. 직원은 입사와 함께 정규직 신분이지만 입사 6개월까지는 인턴농부다. 인턴 기간이 끝나면 농업을 중도 포기할지 계속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남은 직원은 레지던트 농부로 전환된다. 레지던트 농부는 2년을 일하며 농사에 대한 전문성을 높인다. 2년 뒤에는 독립해 자신의 농업을 하는 독립농부로 나아가든지 아니면 직원으로 남아 일을 하는 파트너농부가 된다. "청년 농부들이 여기서 많이 농업 기술을 익혀 우공의딸기 모델로 성공해 함께 생산자 네트워크를 갖췄으면 좋겠어요. 농업은 생산량이 많고 네트워크를 갖춰야 생산자가 힘을 가질 수 있거든요. 젊은 농부와 함께 좋은 농업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의 야심 찬 목표다. ◆스마트팜 중심도시로 성장하는 상주스마트팜은 비닐하우스, 유리온실 등에 IoT,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작물의 생육환경을 원격·자동으로 적정하게 유지·관리할 수 있는 농장을 뜻한다. 원격제어 단계의 1세대, 데이터 기반 정밀 생육관리 단계의 2세대, 무인자동화 단계인 3세대로 나뉜다. 전 세계 스마트농업 시장은 2020년 138억달러에서 2025년 22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스마트농업 시장도 같은 기간 2억4천만달러에서 4억9천만달러로 연평균 15.5%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상주는 전북 김제, 경남 밀양, 전남 고흥과 함께 정부가 육성하고 있는 스마트팜 중심도시다. 주로 딸기, 오이, 토마토, 샤인머스캣 재배 농가를 중심으로 스마트팜 재배 비율이 늘고 있다. 2019년까지 상주 스마트팜 농가는 116가구, 재배 면적은 59㏊였다. 최근 스마트팜 도입이 크게 늘어 지난해 기준으로는 156가구가 79㏊의 스마트팜을 운영 중이다. 불과 2년 만에 34%가 증가한 셈이다.특히 상주 딸기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딸기 주산지는 충남과 경남이다. 상주의 경우, 딸기 재배 면적은 넓지 않지만 고품종 재배가 이뤄진다. 2020년 기준으로 상주에서는 43농가가 20㏊ 규모로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생산량은 438t, 생산액은 23억원이다. 딸기 재배 농가 중에서는 고설재배가 40가구로 대부분이며, 토경재배는 3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고설재배 면적이 경북에서 가장 넓다. 상주에서는 주로 청리면, 사벌국면, 낙동면에서 딸기가 재배되고 설향 품종이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김정수 상주시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과장은 "상주는 딸기농사의 규모는 타 시·군에 비해 작지만, 토경에서 고설수경재배로의 전환이 빠를 정도로 고품질 딸기를 생산하기 위한 교육열이 높고, 새 기술도 잘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경북 상주시 외서면 관동리에 위치한 우공의딸기〈주〉 스마트팜 안에서 딸기가 자라고 있다. 상주에는 딸기·오이·샤인머스캣 농가를 중심으로 스마트팜 재배 비율이 늘고 있다. 지난 2일 우공의딸기가 운영하는 스마트팜 안에서 박홍희 대표이사가 내부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스마트팜에서 생산한 딸기.
2022.09.07
[대한민국 선진농업 1번지, 산소 카페 청송 .7] 후계농업인 지원사업…농기계 구입비부터 가계자금까지 경영·정착 지원 '든든'
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농업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 기반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섣불리 농업에 뛰어들었다가는 실패를 맛보기 십상이다. 특히 농작물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역에 따라 재배에 적합한 작물과 품종이 다르다. 지역별로 후계 농업인을 키우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를 위해 청송군에서도 다양한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선배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자체 지원책을 접목한 후계 농업인들이 지역 농업 발전을 이끌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선진농업 1번지 산소카페 청송' 7편에서는 청송에서 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후계농업인을 소개한다.◆청송의 후계농업인 지원 정책농촌 고령화는 심각하다. 1970년 한국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은 4.9%에 불과했다. 50년이 흐른 2020년 기준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은 42.4%에 이른다. 현재 농촌은 일손 부족은 물론 농업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국내 농업의 근간을 지키고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전문 후계농업인 양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후계농업인에 대한 지원은 2009년 4월1일 제정된 '농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농어업경영체법)'을 근거로 이뤄졌다. 이후 후계농업인을 체계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며 2020년 5월19일 '후계농어업인 및 청년농어업인 육성·지원에 관한 법률(후계청년농어업인법)'이 새로 만들어졌다.후계청년농어업인법에서는 후계농업인에 대해 '농업의 계승·발전을 위해 농업을 경영하거나 경영할 의사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대통령령으로 '50세 미만이며 총 영농 기간이 10년 미만인 사람'을 후계농업인으로 정해 놨다. 후계청년농어업인법에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5년마다 후계농업인의 육성·정책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또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매년 심사를 통해 후계농업경영인을 선정해 각종 지원을 한다.청송군도 후계농업인 양성과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이다. 청년 후계농업인에게 영농 정착에 필요한 농가경영비나 일반가계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독립영농경력 3년 이하인 만 18~39세 농업인 또는 농업인 예정자가 지원대상이다. 독립영농이란 본인 명의로 영농기반을 마련하고 농업경영체(농업인·농업법인) 등록을 마친 뒤 영농에 종사한 것을 말한다.지원은 최대 3년 동안 이뤄진다. 1년차에는 월 100만원, 2년차에는 월 90만원, 3년차에는 월 80만원이 지원된다. 신청기간은 매년 1월이며 농림사업정보시스템(Agrix)을 통해 신청을 받는다. 이와 함께 후계농업경영인 육성자금, 농어촌공사 농지은행사업, 교육·컨설팅도 연계 지원된다.농지·시설·농기계 구입 등을 위한 자금을 융자해 주는 '후계농업경영인 지원사업'도 있다. 대상은 만 18~49세 독립영농경력 10년 이하인 농업인이다. 융자한도는 가구당 최대 3억원으로 연리 2%, 5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조건이다. 매년 1월 읍·면사무소에서 신청하면 된다. 이외에 '가업승계 우수농업인 정착지원'사업도 진행한다. 농산물의 생산·가공·유통을 위한 시설 등의 확충과 개보수를 돕는다. 특히 ICT(정보통신기술) 융복합·6차 산업화·신기술 도입 등을 위한 시설과 장비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 49세 이하 농업경력 3년 이상의 농업인이면 신청 가능하다. 단, 직계존속(본인 또는 배우자)의 농지(1천㎡)와 시설물을 승계받았거나 승계 예정이어야 한다. 지원금은 5천만원 이내로 자부담 30%가 조건이다. 신청기간은 매년 2~3월이며 읍·면사무소에서 신청 접수한다.중기리서 3대째 농사짓는 김주환씨고추·복숭아·사과 등 5만㎡규모 경영선대 일군 농업기반 토대 억대부농 돼"워라밸 생활 만족…지자체도 큰 도움"郡, 3년이하 종사자 3년간 매월 지원농지나 시설 구입 위한 자금 융자도가공·유통시설에는 신기술 도입지원◆3대째 가업 이은 후계농지난 2일 찾은 경북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의 한 과수농원.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농사일이 한창이었다. 조금씩 불던 바람은 어느새 강해져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초강력 태풍 힌남노(Hinnamnor)가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태풍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해발 350m에 위치한 이곳 인덕농원은 고요함 속에 긴장이 감돌았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 정신없이 바빠요. 강한 바람에 복숭아와 고추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익은 건 빨리 수확하고 과수나무 지지대 보강과 배수로 정비도 해야 돼요." 농원 창고 안에서 일을 하던 김주환(45)씨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창고 안에는 4kg짜리 복숭아 상자가 사람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 자루째로 놓여있는 갓 수확한 고추도 눈길을 끌었다.김씨는 중기리에서만 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후계농업인이다. 청송을 떠나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부친의 건강이 악화돼 귀향했다. 고향에 돌아온 뒤 그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대신했고, 결국 가업을 이어받았다.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궈놓은 농업 기반이 사라지는 게 못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2004년쯤의 일이다.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거들었던 터라 적응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농지와 농기계도 물려받았기 때문에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수익이 나면 농지를 더 사들여 농장 규모를 늘려나갔다. 현재 그는 사과 2만9천752㎡(9천평), 복숭아 1만6천528㎡(5천평), 고추 3305㎡(1천평) 등 4만9천586㎡(1만5천평) 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다."제가 대구에서 직장에 다닐 때 연봉이 4천만원이었는데 지금은 한해 소득 억대 농가가 됐어요. 고향에 잘 돌아왔다고 생각해요. 몸은 힘들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어요. 농사만큼 좋은 직업은 없다고 생각해요.".김씨가 아내와 함께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자녀는 한 명뿐이었다. 농사를 지으며 자녀 넷을 더 낳았다.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우는 것은 대도시 직장인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만큼 농사일은 '워라밸'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직종 중 하나다.그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청송군의 지원도 한몫했다. 2007년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선정된 뒤 '후계농업경영인 지원사업'을 통해 낮은 이자율로 융자를 받았다. 그는 후계영농인을 위한 활동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 9년째 중기1리 마을 이장을 맡고 있고 한국농업경영인청송군연합회에서 4년 동안 사무국장을 하다가 2년째 사업부회장직을 수행 중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이 저의 농사일을 이어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둘째가 농사를 지을지는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겠죠." 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한국 농촌의 현실에서 4대째 농업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뜻깊은 일이기도 하다. 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경북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인덕농원 창고에서 김주환씨가 갓 수확한 고추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3대째 청송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후계농업인이다.청송 능금농협 직원이 지게차로 복숭아 상자를 실어나르고 있다.
2022.09.06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10] 장기의 바다, 모포에서 두원까지…긴 해안선 따라 들어선 어촌마을…바다가 토해낸 옛 이야기 줄줄이
포항의 남쪽 장기면의 해안선은 14.5㎞ 정도다. 산을 등지고 바다에 접한 좁고 긴 땅에 12개의 어촌마을이 들어서 있다. 뇌성산 자락에 기대어 있는 모포리, 크고 깨끗한 모래해변이 있는 대진리, 갓 모양의 바위가 있는 영암리, 일출암이 솟아있는 신창리, 커다란 양포리, 이언적이 칠언절구를 남긴 계원리 그리고 포항의 남쪽 끝 지경(地境)에 자리한 두원리 등이 둘 혹은 셋의 작은 마을을 품고 있다. 사람들은 파도가 실어다 준 큰 나무와 아주 오래된 줄다리기 줄을 아무렇지도 않게 신으로 모시고, 기이하게 생긴 바위를 마을 이름으로 삼고 산다. 순정하고 순정하여 언제나 발이 젖어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은 풍성한 수목처럼 소리 없이 일하고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친근한 미소를 건넨다. ◆모포리에서 대진리까지산은 바다 가까이에서 등줄기를 곧추세우고 서 있고, 마을은 그 산자락을 꽉 붙잡고 바짝 기대어 있다. 산은 뇌성산, 마을은 모포리(牟浦里)다. 모포는 어느 지역보다도 봄에 보리가 일찍 되는 포구라 하여 보리 '모(牟)' 자를 붙여 모포라 했다고 한다. 뇌성산에는 봉수대가 있었고 모포에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수군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 효종 9년인 1658년에 동래로 기지를 옮긴 뒤에도 해창(海倉)을 설치해 화물 교역장으로 번창했다고 한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방풍림을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마을은 길고 좁은 띠처럼 이어지고 산자락은 손 뻗으면 닿을 듯 따라온다. 마을 안 빈 터마다 방풍나물 텃밭이다. 산은 듬직한 소의 등처럼 흐르다가, 풀 뜯는 말의 목덜미처럼 남쪽으로 흘러내린다. 산이 내려앉은 자리에 모포2리, 칠전마을이 있다. 뇌성산에서 뇌록(磊錄)·인삼(人蔘)·오합(蜈蛤)·유뢰(維瀨)·봉청(蜂淸)·자지(紫芝)·동철(銅鐵) 등 7가지 보물이 난다고 칠전(七田), 또는 옻나무가 많다고 칠전(漆田)이라고도 한다. 뇌성산 아래 도로 가까이에 우물 하나와 아주 오래된 줄다리기 줄이 보관되어 있는 당집이 서 있다. 줄다리기 줄은 칡덩굴과 굴피로 엮은 줄 한 쌍으로 백 년이 넘은 것이라 한다. 모포리 사람은 이 줄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신다. 옛날 장기 현감이 꿈을 꾸었는데, 뇌성산에서 한 장군이 용마를 타고 내려와 우물물을 마신 후 '이곳은 만인이 밟아주면 마을이 번창하고 태평하며 재앙이 없을 것'이라 했다 한다. 이후 현감은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통해 땅을 밟게 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과 한가위 때 제를 지내고 모포 줄다리기는 포항의 여러 축제에서 재연되고 있다. 마을 끝 해변에 방풍나물밭이 아주 넓다. 길은 잠시 도로로 이어진다. 대화천을 건너 해군생활훈련대라는 군 시설과 자그마한 솔숲 사이를 통과해 대진리(大津里) 백사장에 닿는다. 생각보다 크고 깨끗한 모래사장에 놀란다. 대진이라는 이름에서 수군만호진의 기미가 느껴진다. 오늘날 군 시설이 들어서 있는 것도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땅의 유전이 아닐까 싶다. 너른 바다에, 한가로이 해수욕을 즐기는 청년들이 눈부시다.포항의 남쪽 장기면 해안선 14.5㎞산 등진 좁은 땅에 12개 마을 자리모포리 수호신 '100년 넘은 줄 한쌍'줄다리기 통해 번창·태평 이끌어장기천이 바다 만나는 곳 '일출암'육당 최남선 '조선 10경'으로 꼽아신창2리엔 '부챗살 바위' 의기양양60년전 '사라' 태풍때 밀려왔다고제일 먼저 달빛이 비친다는 양포리큰 항구로 문어·아귀가 제일 유명◆영암리에서 신창리까지대진리 해안 길을 따라 영암리(靈岩里)로 간다. "여긴 3리, 남쪽으로 2리, 1리." 물질을 하고 나온 아주머니의 젖은 얼굴이 환하다. 길 한가운데에 금줄을 두른 마른 솔가지 더미가 서 있다. "골목 할아버지시지. 옛날에 큰 나무가 떠밀려 왔어. 그 자리에 모신 마을의 신이야." 골목에서 만난 동네 할아버지께서 찬찬히 말씀해주신다. "저기 방파제 옆 바다에는 동그란 바위가 있었어. 그 위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파도에 떠내려갔다고 해. 옛날 일이지." 바다가 토해내고 또 삼킨 옛이야기들이 어르신들에 의해 전해진다. 영암 1리 마을 한가운데 어느 댁 마당에는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옛날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잠시 쉬면서 벗어두고 간 갓이라고도 하고, 조그맣던 바위가 해가 뜰 때마다 삿갓 모양으로 자랐다고도 한다. 그래서 마을은 갓바위 혹은 관암(冠岩)으로 불리다가 이 바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영험이 있어 영암(靈巖)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영암에 소원하나 얹어 둔다. 영암리의 남쪽 가장자리는 장기면의 대표적인 암석해안이다. 해안 절벽으로 감싸인 안온하고 작은 항구에 조용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절벽으로 끊어진 해안 길은 다시 국도로 이어져 신창리(新倉里)로 향한다. 멸치 찌는 냄새, 멸치 마르는 냄새로 그득한 신창1리 포구를 지나 금곡교를 건넌다. 다리 북쪽은 죽하, 남쪽은 대양, 내륙 쪽이 신양, 합해서 신창1리다. 금곡교 아래에는 장기천이 바다로 흘러간다. 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일출암이 우뚝 서 있다. 옛날부터 생수가 솟는다 하여 날물치 혹은 생수암(生水岩)이라 불렀던 바위다. 육당 최남선은 이곳에서의 일출을 조선 10경 중 하나로 꼽았다. 일출암 남쪽으로 모래밭이 길다. 고소한 생선 냄새가 폴폴 풍겨온다. 해변은 가자미 덕장이다. 가지런한 가자미들이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다. 신창리 앞바다는 포항지역 최고의 가자미 낚시터라 한다. 생선 냄새가 희미해지면 신창2리 '창바우 마을'이 시작된다. 포구를 지나다 보면 곳집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마을 이름이 유래된 창바우(倉岩)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과 6월이면 창바우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파도 소리가 똘망똘망하게 들린다. 마을 앞바다는 거대한 암반이다. 암반은 자연산 돌미역과 전복·고둥·성게·따개비 등이 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 되고 이를 기반으로 마을에서는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 끝자락에는 '부챗살 바위'가 있다. 믿기 어렵지만 이 바위는 60년 전 사라 태풍 때 밀려온 것이라 한다. 태풍의 위력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구나 싶다.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부챗살 바위는 마치 예전부터 이 자리가 제 자리인 양 의기양양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옆에는 작은 풀장이 원래부터 제 자리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져 있다. ◆양포리에서 두원리까지양포리(良浦里)는 양월리(良月里)에서 온 이름이라 한다. '달이 뜨면 제일 먼저 달빛이 비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양포리는 만도 크고 항구도 크고 오가는 사람도 많다. 거리에는 다방이 많이 보인다. 다방 수는 항구의 크기를 가늠하는 가장 쉬운 척도다. 다방보다 많은 것은 아귀탕 간판이다. 양포는 문어와 아귀가 제일로 유명하다고 한다. 양포항은 국토해양부가 개발한 어촌어항 복합 공간으로 해상 공연장과 산책로·요트 계류장 등이 갖춰져 있다. 항구에는 뱃일하는 어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공원에는 텐트를 치고 앉은 캠핑족들의 게으른 오후가 흘러간다. 방파제 산책로 아래에는 낚시꾼들의 하루가 멈춰 있다. 양포만 남쪽에 툭 튀어나온 곶인 니바우끝이 만을 닫으면 길은 지나온 번잡함을 감쪽같이 지우며 계원리(溪院里)에 닿는다. 마을 앞에 작은 바위섬 하나가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옛날 작은 봉수대가 있었다는 소봉대(小峰臺)다. 섬은 방파제로 이어져 있고 봉수대는 무너져 흔적이 없다. 지금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한산한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이 풍광에 반해 찾아드는 문인들이 많았다 한다. 소봉대에 올라 노래한 회재 이언적의 칠언절구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대지 뻗어나 동해에 닿았는데/ 천지 어디에 삼신산이 있느뇨./ 비속한 티끌 세상 벗어나려니/ 추풍에 배 띄워 선계를 찾고 싶구나.' 푸른 풀이 돋아있는 자갈 많은 계원리 해변에는 이름을 얻지 못한 바위들이 고적한 아름다움으로 서 있다. 도롯가 절벽 아래로 이름 없는, 혹은 이름 모를 수많은 바위를 보내고 또 보내고, 부드러운 고개를 넘었나 싶을 때 지경(地境)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을 만난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두원리(斗院里), 이곳이 포항 해안선의 남쪽 끝이다. 산은 바다로부터 살짝 물러서 있고, 도로 양쪽으로 이어지는 땅에서 단구 지형을 느낀다. 그래서 투명한 버스정류장 안에는 바다가 넘치고, 간잔지런한 집들은 층층이 바다로 간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포항 양포리는 만도 크고 항구도 크고 오가는 사람도 많다. 양포항에 정박한 어선들 뒤로 양포리가 보인다. 이곳 양포에서는 문어와 아귀가 제일 유명하다.장기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일출암이 우뚝 서 있다. 옛날부터 생수가 솟는다 하여 날물치 혹은 생수암(生水岩)이라 불렀던 바위다. 육당 최남선은 이곳에서의 일출을 조선 10경 중 하나로 꼽았다.국토해양부가 어촌어항 복합 공간으로 조성한 양포항에는 해상 공연장(위)과 요트 계류장등이 갖춰져 있다.양포항 북방파제 산책로에 랜드마크처럼 빨간색 등대가 서 있다.
2022.09.05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9] 장기읍성…山海 벽으로 막힌 오지 외로이 지키는 '천년 古城'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가파르다. 아랫마을이 자그맣게 멀어질 즈음 산은 긴박한 사선으로 떨어진다. 그 위로 하늘과 맞닿은 성벽의 곡선이 보인다. 사라져 저절로 열린 채인 문 위로 나무 한 그루가 파수꾼처럼 서 있다. 성벽은 산정에서 흘러내린 주름진 산자락을 타고 구불구불 이어진다. 천천히 상승하고, 평탄하다가도 깊이 떨어져 다시 날아오른다. 서쪽으로는 산이 연이어진다. 남쪽과 북쪽으로는 마을이 멀다. 동쪽은, 바다다. 탁 트여 눈부신 시야를 가졌으나 섬처럼 외로운 성, 장기읍성이다. ◆바다를 지키던 산정의 마을, 장기읍성산은 동악산(東岳山), 고도는 해발 252m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동악산은 '거산(巨山)이 고을을 지켜준다는 뜻의 진산(鎭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장기면은 포항의 남쪽 끝이다. 장기(長기)는 '긴 갈기'라는 뜻으로 긴 해안의 모습이 말갈기와 같다고 생긴 이름으로 추측된다. 경주의 동쪽 외곽지대라 신라 때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 읍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려 현종 2년인 1011년에 동쪽으로는 왜적을 막고 북쪽으로는 여진족의 해안 침입에 대비하여 옛 읍성의 북쪽에 성을 쌓았다. 지금의 장기읍성 자리다. 처음에는 토성이었다. 이후 조선 세종 때인 1439년에 이르러 석성으로 더욱 굳건히 쌓고 동해안의 군사기지 및 치소( 治所)로 이용했다. 당시에는 동·서·북쪽에 3개의 성문이 있었고, 성안에는 동헌과 관청 소속의 다양한 건물들과 4개의 우물, 그리고 2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성의 입구는 동문이다. 문은 사라졌고 그곳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뒤로 '배일대(拜日臺)'라 새겨진 바위가 동그마니 자리한다. 저 아래 장기초등학교에서 저 멀리 신창리 바다까지, 그사이 드넓은 현내들과 바다로 달리는 장기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동문에는 '조해루(朝海樓)'라는 문루가 있었고 정월 초마다 장기 현감이 태양을 맞이하며 제를 올렸다 한다. 서문은 우직해 보이는 옹성으로 남아 있고, 북문은 최근 복원되어 문루가 올라 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4㎞로 12개의 치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지금도 성안 마을에 사람들이 산다. 마을을 둘러싼 공기는 고인 듯 잔잔하다. 이따금 괜스레 개가 짖고 커다란 대숲이 파도 소리를 낸다. 마을의 한가운데에는 장기향교가 자리하고 옛 관아인 동헌 터가 남아 있다. 향교는 장기초등학교 동쪽에 있던 것을 1931년에 성안에 옮겨 세운 것이고, 성안에 있던 동헌 건물인 '근민당'은 1986년 장기면사무소 안에 복원해 두었다. 면사무소 정원에는 '장기척화비'가 있다. 구한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이후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전국의 요지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다. 장기척화비는 원래 장기읍성 안에 세워져 있었으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봄에 장기지서 입구에서 찾은 것이라 한다. ◆우암과 다산의 유배지 장기장기는 군사적 요충지였지만 한편으로는 산해의 벽으로 막힌 오지였다. 한양에서 십여 일을 걸어 도착하면 그곳이 곧 섬이었던 땅, 그래서 옛날 장기는 유배지였다. 조선 태조 1년 설장수를 시작으로 홍여방·양희지·김수흥 등 수많은 사대부가 장기를 거쳐 갔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다. 우암은 숙종 때인 1675년 5월, 임금과 왕후의 사후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벌인 제2차 예송논쟁으로 이곳으로 유배되어 마산촌 오도전이라는 이의 집에서 약 5년간 머물렀다.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에게 장기는 자신과 대립하는 남인의 땅이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우암을 통해 유학의 핵심과 중앙정계의 움직임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유배생활 중에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많은 시문과 '주자대전차의' '이정서분류' 등의 책을 썼다. 우암은 숙종 5년인 1679년에 자신이 머물던 사관 안에 자생하던 느티나무를 베어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는 거제도로 떠났다고 한다.그로부터 100여 년 뒤인 1801년 3월, 장기 땅에 도착한 이는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신유년의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유배되었고 마현리 성선봉(成善封)의 집에서 7개월간 생활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다산은 마을 사람의 삶과 고을 관리의 목민 형태를 담은 '부옹정가'와 '기성잡시 27수' '오적어행' '장기농가 10장' 등 130여 편의 시를 남겼다. '기성잡시' 중에 '느릅나무 숲을 거닐며'라는 시가 있다. '지팡이 짚고 시냇가 사립을 나와/ 고운 모래 밟으며 천천히 걸어보니…/ 느릅나무 잎사귀 토한 듯 무성한데/ 우거진 녹음 아래 둘러앉은 촌사람들…/ 나라 다스리는 방책을 알려거든/ 마땅히 농부들에게 물어야 할 일.' 다산이 거닐었던 느릅나무 숲은 지금 몇 그루의 나무로 남았지만 그의 걸음은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다산은 그해 10월20일, 백서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다시 서울로 압송되었다.우암이 머물렀던 마산촌의 집과 다산이 머물렀던 마현리의 집은 지금 장기초등학교 근방으로 짐작된다. 읍성 아래 장기초등학교 교정에는 우암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고목이 한쪽에 서 있고, 그 옆에는 우암과 다산의 사적비가 나란히 서 있다. 다산과 우암은 때때로 장기읍성의 배일대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고 한다. ◆장기에 꽃핀 유배문화, 유배문화체험촌우암이 장기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전국의 많은 선비가 그를 찾아 장기로 왔다고 한다. 노론과 소론 분당의 계기가 된 곳도 장기라고 알려져 있다. 우암이 장기를 떠난 이후 제자들은 죽림서원을 세워 학문에 정진했고, 우암이 기거했던 집의 주인장인 오도전은 선생에게 학문을 배워 훗날 향교의 훈장이 되었다 한다. 다산은 장기에 있는 동안 마을 사람들과 매우 밀착해 살았다. 기간은 짧았으나 그가 남긴 글들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느끼게 한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이 궁벽한 해곡으로 유배된 이들은 무려 220여 명에 이른다. 그들은 우암과 다산과 같은 석학들이거나 지식인 또는 중앙의 고위 관료들이었다. 장기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몸을 누이면 머리끝과 발끝이 닿는 초가집 작은 방에서도 글 읽고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지역민과 교류하면서 지역의 선비들을 가르쳤다. 조선시대 장기에 세워졌던 서원은 무려 12개나 된다. 장기는 인근 동해안 마을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서원이 있던 고을이었다. 그러한 시간을 거쳐 장기에는 학문을 숭상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서원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다. 수많은 석학이 장기에서 보낸 유배의 시간은 이 고장을 학문과 예절을 중요시하는 유교의 마을로 변화시킬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그것은 유배라는 상황이 벽지에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 특별한 유배문화였다. 이러한 장기의 유배문화를 느낄 수 있는 체험촌이 있다. 장기읍성 북문에서 '다산과 우암의 사색의 길'을 따라가면 약 9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이 자리한다. 조선 시대의 유배 문화에 대한 여러 전시물을 비롯해 우암과 다산의 적거지·오도전의 안채 등 유배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가옥들이 재현되어 있으며 당시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는 모형들이 구현돼 있다. 또한 유배 가마와 곤장·주리·칼 등의 형벌을 체험할 수 있으며, 이 외에도 전통놀이체험·전통음식체험·한지뜨기·베틀짜기·고서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공동기획 : 포항시포항의 남쪽 끝인 장기면은 경주의 동쪽 외곽지대라 신라 때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 읍성이 있었다. 고려 때 왜적과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읍성의 북쪽에 성을 쌓았다. 지금의 장기읍성 자리다. 처음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세종 때 석성으로 더욱 굳건히 쌓았다.장기면사무소 정원에는 흥선대원군이 세운 '장기척화비'가 있다. 원래 읍성 안에 있었으나 이곳에 자리하게 됐다.'장기유배문화체험촌'에는 조선시대 유배 문화에 대한 여러 전시물을 비롯해 우암과 다산의 적거지·오도전의 안채 등 유배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가옥들이 재현되어 있으며(위) 당시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는 모형들이 구현돼 있다.
2022.08.29
일조시간·일교차 등 재배환경 최적…향 좋고 당도 높아 명성 자자
한국에서 재배하는 포도의 품종 변화가 뚜렷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캠벨얼리(Campbell early)와 거봉이 주력이었으나 최근 샤인머스캣(Shine Muscat)이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 포도 주산지인 경북 상주도 마찬가지다. 샤인머스캣을 키우는 농가가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샤인머스캣 재배면적이 캠벨얼리 재배면적을 뛰어넘었다. 생산량과 생산농가수도 조만간 순위가 뒤바뀔 전망이다. '상주, 삼백의 고장에서 스마트팜 도시로' 6편에서는 상주의 대표 과일로 떠오른 샤인머스캣을 소개한다.작년 1602가구서 1만2934t 생산재배 면적 캠벨얼리 품종 따돌려1988년 일본 과수연구소서 개발국내선 2014년쯤부터 재배 시작씨 없어 먹기 편하고 식감도 아삭비타민C·마그네슘·칼륨 등 풍부◆상주 샤인머스캣의 '맛'22일 경북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에 위치한 아인포도농장. 익숙한 소음이 하우스 안을 가득 메운다. 내부 곳곳에 설치된 순환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다. 찬찬히 내부를 들여다 본다. 하우스 철제 파이프를 따라 나무가 만든 아치형 터널이 먼저 시선을 끈다. 나무에는 가지마다 하얀 종이 봉지에 쌓인 밝은 연두색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보기만 해도 청량한 기분이 든다. 최근 들어 주가를 올리고 있는 포도 품종인 샤인머스캣이다. 김완진(45) 아인포도농장 대표는 "9년 전부터 샤인머스캣을 재배했는데 지금까지 가격이 크게 떨어진 적이 없다"며 "소비자에게 이렇게 인기 좋은 포도 품종은 앞으로 100년 안에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이어 "기존에 많이 키우던 캠벨얼리는 Brix(당도 측정 단위)가 14~16 정도지만 샤인머스캣은 17~18로 매우 높다"며 "씨가 없는 데다 달면서 아삭아삭한 식감을 가져 소비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김 대표의 말처럼 샤인머스캣은 최근 들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향이 좋은 데다 먹기 편하고 당도까지 높아 찾는 이가 많다. 경제성도 뛰어나 재배 농가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기준 상주지역 샤인머스캣 재배 농가는 1천602가구로 캠벨얼리 재배 농가(1천687가구)에 근접했다. 생산량도 1만2천934t으로 캠벨얼리 생산량(1만4천672t)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히려 재배면적은 샤인머스캣이 955㏊로 캠벨얼리(866㏊를 따돌렸다.특히 상주지역 샤인머스캣은 상품성이 높기로 유명하다. 포도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내습성과 내건성이 강해 재배 범위가 넓다. 반면 성숙기에 비가 많이 오면 당함량이 떨어지고 탄저병을 비롯한 각종 병해와 열과가 심하다. 재배 기온은 성숙기(8월) 20~25℃ 가 적당하다. 토양 적응성 범위가 넓은 편으로 pH(수소이온농도)는 6.0~6.5 정도가 적당하다. 주산지인 만큼 상주는 포도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해발 250m 이상인 산지로 일조시간이 2천570시간으로 많은 편이고, 밤과 낮의 일교차도 크다. 7~9월 평균 온도는 21℃로 포도가 자라기에 적당하다. 특히 연평균 강우량이 1천200㎜로 많지 않은 편이다. 2020년 기준 한국 연평균 강수량은 1천626㎜, 일조시간은 2천236.8시간 정도다. 그만큼 상주에서 자라는 포도가 다른 지역 포도에 비해 향이 깊고 당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김 대표는 "샤인머스캣은 무엇보다 당도와 식감, 향이 좋아야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전국적으로 재배면적이 많이 늘긴 했지만 상주에서 나는 샤인머스캣은 그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예부터 상주 포도가 맛있다고 소문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치켜세웠다. ◆'포도의 미래' 샤인머스캣포도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과일 중 하나다. 감귤과 사과에 이어 과일 연간 소비량이 세 번째, 생산량도 감귤·사과·복숭아 다음으로 많다. 포도는 경북지역에서 많이 나며, 그중에서도 영천·김천·상주·경산 등이 주산지다. 특히 포도는 다른 과일에 비해 적은 농약을 사용해 '친환경 먹거리'로 꼽힌다. 포도가 국내로 들어온 건 중국 산둥지역과 교역이 활발했던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다만 최초의 기록이 박흥생(朴興生·1375~1458년)의 '촬요신서(撮要新書)'에 나오는 것으로 미뤄 볼 때 널리 재배된 시기는 15세기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포도가 과수원의 형태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부터다. 1906년 고종황제 칙령 제37호로 뚝섬에 독도원예 모범장(纛島園藝 摸範場)이 설치되면서다. 이때부터 외국의 포도 품종을 들여와 시험 재배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또는 일본 유학자에 의해 신기술이 도입됐다. 광복 후 정부는 지역별 특화 사업으로 포도재배를 권장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원예시험장의 확장·발전과 더불어 외국 품종과 대목을 대대적으로 가져와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졌다.한국의 포도 재배면적은 꾸준히 증가돼 1986년 1만7천37㏊에 이르렀다. 하지만 1990년 포도주 수입 개방에 따른 양조용 포도품종의 폐원 정책으로 1991년 1만4천802㏊까지 줄었다. 이후 포도 가격이 오르면서 재배면적이 늘어나 1998년 2만9천871㏊로 정점을 찍은 뒤 다시 감소했다. 포도의 과피색은 녹황색, 적색, 자흑색 등 세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녹황색계 포도를 일명 '청포도'라고 한다. 청포도 가운데 중생종 품종인 샤인머스캣은 일본 아키즈과수연구소에서 1988년에 '아키즈 21호' 품종에 '하쿠난' 품종을 교배해 개발했다. 품종 등록은 2006년 이뤄졌다. 한국에서는 2014년쯤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중순경 수확하며 당도는 물론 보존성이 높아 고급 품종으로 분류된다. 과육이 단단하고 식감이 아삭아삭한 데다 과즙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 유럽 포도에서 맡을 수 있는 가벼우면서 상쾌한 머스캣향이 난다. 식감이 좋으면서 껍질째 섭취가 가능한 장점을 지녀 최근 과일 소비 트렌드에도 부합하는 품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중이다. 또한 샤인머스캣은 비타민C, 마그네슘, 칼륨 등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때문에 면역력 개선, 피부 미용, 감기 예방, 혈액 응고, 뼈 강화 등에 도움을 준다. 특히 철분이 풍부해 빈혈 증상을 억제해 준다. 폴리페놀이 들어있어 심장 질환이나 혈관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맛과 영양을 모두 갖춰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생산면적도 덩달아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6년 국내 포도 품종별 재배 면적은 캠벨얼리가 61.4%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거봉이 23.8%를 차지했고, 샤인머스캣은 1.9%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품종별 재배면적은 샤이머스캣이 31.6%로 캠벨얼리(36.6%)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올해 샤인머스캣 재배면적이 캠벨얼리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지난 22일 경북 상주시 모동면 상판리에 있는 아인포도농장에서 김완진씨가 샤인머스캣을 살펴보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연평균 일조량이 많으면서도 강수량이 적은 상주에서 생산된 샤인머스캣은 상품성이 뛰어나다.선별과 포장 작업을 거쳐 출하를 기다리는 상주 샤인머스캣.
2022.08.24
[대한민국 선진농업 1번지, 산소 카페 청송 .6] 사과 농사로 성공한 지수농원 대표 김지수씨, 사과 직거래로 억대 연봉…부농 꿈 이룬 서른두 살 청년농부
농촌이 늙어간다. 청년은 떠나고, 노인만 남는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로 일손 부족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농촌의 위기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농촌에서 꿈을 키우는 '청년 농부'들이 하나둘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직접 농사일을 배우며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다. 선배 농부들의 노하우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고수익을 내는 사례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위기의 농촌이 오히려 청년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선진농업 1번지 산소카페 청송' 6편에서는 부농의 꿈을 이룬 서른두 살 청년 농부를 소개한다.◆사과 농사 8년 차 청년 농부지난 19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에 있는 지수농원. 청송읍에서 피나무재(고개)를 넘어 한참을 더 가야 나오는 사과 농장이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주왕산 남쪽 청송얼음골 근처에 있다. 해발 300m가 넘는 곳에 자리 잡은 농장에는 나무마다 사과가 주렁주렁하다.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는 사과들은 저마다 탐스러운 자태를 뽐낸다.농장 한쪽에 자리 잡은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부에는 앳된 청년 한 명이 '과수화상병 약제 살포방법' 자료를 열심히 읽고 있다. 김지수(32) 지수농원 대표다. 조그만 사무실 안에는 농업과 관련된 서류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사무실과 연결된 창고 안에는 저온저장고를 비롯해 사과 선별기·지게차 등 각종 농기계가 가득하다. 김 대표는 "1만평(3.3㏊) 정도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데,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힘들 정도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 청송은 김 대표 어머니 고향이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청송에 온 뒤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도시로 나갔다. 대학에 진학해 방사선학을 전공한 것. 대학을 졸업한 이후 병원에서 일할 생각이었던 그는 갑자기 취업을 포기했다. 그리곤 부모가 있는 청송에 돌아와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2015년 일이다.부모님 사과농사 승계 위해 청송 귀농 1년간 농사 착실히 배운 뒤에 독립1㏊ 규모 시작한 농장, 몇년만에 3배수도권 은행·증권회사 등 주거래처자체개발 '얼음골 ABC 주스'도 판매청송군 '청년농부 육성지원' 대상 선정 포장상자 디자인 개발 제작 등 보탬"농업 사업체 만들어 지역 공헌" 포부 "대도시에 있는 병원에 취업해서 막상 일하려고 보니 생각보다 소득이 너무 적었습니다. 사과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농업 기반도 사라지는 게 아까워 고민 끝에 진로를 변경했어요." 청송으로 돌아온 첫해 부모의 일을 거들며 농사를 착실히 배웠다. 이듬해에는 독립해 1㏊(3천평) 규모로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사과를 팔아 수익이 나면 땅을 사 모았다. 불과 몇 년 만에 농장 규모는 세배나 커졌다. 소득도 늘어 지금은 억대 연 수입 농장주가 됐다. 비법은 직거래였다. 공판장 대신 택배를 이용해 사과를 직접 판매한다. 명절 선물 수요가 많은 수도권의 은행, 증권회사 등이 주거래처다. 사과와 비트레드, 당근이 들어간 '청송 얼음골 ABC 주스'도 자체 개발해 팔고 있다. 그는 "최고 품질의 사과만 골라 택배로 보내고 조금이라도 품질이 떨어지면 아예 팔지를 않는다"며 "대신 남은 사과는 직접 키운 비트레드, 당근과 함께 주스 원료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청송군이 운영하는 청년 지원 제도의 덕도 봤다. 청송군 '청년농부 육성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한 해 1천만원씩 3년 동안 지원을 받았다. 지원금으로 사과 포장 상자 디자인을 개발해 제작하고, 비싼 농기계를 구매하는 데 보탰다.어엿한 농부로 성장하는 데 고충이 없진 않았다. 청송에 돌아온 직후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외로움 때문이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도시 풍경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참을 수 없을 땐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안동의 번화가에 가서 사람을 구경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로움은 차츰 치유됐다. 친한 이들이 생겨나고 농사일에도 재미가 더 붙었다. 그는 지역 청년 농업인들과 함께 동네 자율방범대 등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내룡리 이장·주왕산 얼음골 청년회 사무국장·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청송군연합회 사무국장 등 현재 맡고 있는 직책만 3개다.김 대표는 "직장 생활과 달리 농업은 자신이 모든 것을 일구고, 그만큼의 대가를 갖는 게 재미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농업 관련 사업체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청송군의 청년 농부 지원 정책한국 농촌은 여러 숙제를 안고 있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청송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기준 청송 인구는 2만4천539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8.84%(9천530명)에 이른다. 평균 연령도 56세를 넘어섰다.청송에서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세대는 60대(5천734명·23.37%)다. 이어 50대(4천471명·18.22%), 70대(3천970명·16.18%), 80대(2천583명·10.53%), 40대(2천239명·9.12%) 순이다. 전체 인구에서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6.41%(1천572명)와 6.33%(1천554명)에 불과하다. 청송군은 젊은이들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표적인 지원 제도가 '청년농부 육성지원사업' '청년농부 창농기반 구축지원사업' '초보청년농부 멘토링(mentoring) 지원사업' 등이다.'청년농부 육성지원사업'은 청년들이 농업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사업 자금과 활동비를 지원해 준다. 만 18~39세 예비농업인과 3년 이내 농업경영체를 등록한 농업인이 지원대상이다. 한해 1천만원씩 3년 동안 혜택이 유지된다. 농민사관학교 교육과정을 수료하거나 선정 뒤 2년 이내 수료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청 기간은 매년 9~10월이다.청년 농업인과 선도농가를 '멘티(mentee)'와 '멘토(mentor)'로 이어주는 '초보 청년농부 멘토링 지원사업'도 인기다. 만 18~39세 청년 (예비)농업인은 연수생으로 신지식농업인·우수농업법인·6차산업농가·우수농업경영체 등은 연수시행자로 참여할 수 있다. 연수생에게는 교육훈련비가 지급된다. 하루 8시간 기준 6만원, 월 100만원 한도 안에서 지원한다. 연수시행자도 하루 8시간 기준 3만원(월 50만원 한도)의 기술전수비를 받을 수 있다.'청년농부 창농기반 구축지원사업'은 지역 농특산물 생산·유통·가공·체험 등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 등의 구매지원이 골자다. 농업경영체를 등록한 만 18~39세 청년농업인에게 30% 자부담을 조건으로 2억원이 지원된다. 신청은 매년 8~9월 받는다.이외에 '청년농업CEO농어촌진흥기금' 제도도 있다. 만 39세 이하 청년 농업인이 대상이다. 농업 시설, 장비, 자재 구매비로 농가당 2억원 이내 융자를 내준다. 이자율은 연 1% 정도로 매우 낮다.청송군이 2020년부터 시행 중인 '농민수당 제도'도 청년 농부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청송군은 경북 지역에서 봉화군(2019년) 다음으로 농민수당(연간 50만원)을 도입했다. 올해부터는 경북도가 지역 전체 농·어가에 농어민수당(6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1년 이상 청송에 주소를 둔 농업인이라면 매년 농민수당 110만원씩을 지원받는다. 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지난 19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에 위치한 지수농원에서 김지수 대표가 사과 생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과 농사 8년차인 김 대표는 고객과 직거래를 통해 연간 1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지수농원 창고에서 김지수 대표가 보관 중인 사과를 정리하고 있다.사과와 비트레드, 당근이 들어간 '청송 얼음골 ABC 주스'.
2022.08.23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8] 구룡포의 바다, 석병에서 삼정리 주상절리까지…'시커먼 아우성'…용암 분출되는 그 순간 보는 듯
작열하는 태양에 재가 되어버릴 것 같은 계절에도, 칼바람에 베이고 눈동자마저 얼어붙을 것만 같은 날씨에도, 평온히 바라볼 수 있는 가까운 바다가 보물처럼 내 기억 속에 숨겨져 있다. 물론 종 모양이나 별 모양의 작은 꽃들이 따뜻하고 신선한 공기 속에서 마른 향기를 채우는 시절이 가장 좋다. 그 바다에는 초승달 모양의 소박한 모래사장과 귀엽게 종알대는 자갈해변이 있고, 아흔아홉 개의 뾰족한 골짜기를 만드는 갯바위들의 숲이 있고, 무성한 솔숲과 바람을 바라보는 바위섬이 있다. 그리고 갈 수 없는 땅끝이 있다. 그곳은 한반도 최동단이라는 석병리에서 삼정리 주상절리로 이어지는 구룡포의 바다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촬영 석병리여행객 많아져 없던 펜스 생기기도국토지리원서 '한반도 최동단' 인증삼정리 너른 길 모두가 과메기 덕장덜 알려진 해변은 쉬쉬하며 찾는 곳단애 아래로 주상절리 비경 드러내사선모양 우세 속 다양한 형태 관찰◆석병리 구룡포읍의 북쪽 끝은 석병2리다. 석병리의 본 마을로 나루터가 넓다고 하여 '범진' 혹은 '범늘'이라고도 한다. 정말 내항이 널찍하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가는 방파제 초입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툭 떨어져 있다. 주변으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성혈(性穴)바위'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성혈은 고대인이 만들어 놓은 바위 구멍 그림이다. 청동기 시대 이후의 유적으로 주로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자연 암반에 새겨졌다.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민속에서는 알구멍·알바위·알터·알미·알뫼 등으로도 부른다. 고대인들은 바위에 홈을 내고, 홈에 작은 돌을 굴려 구멍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작은 홈이 탱자 혹은 달걀 크기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작은 돌을 굴리며 풍요와 다산과 안전과 장수를 빌었을 것이다. 바위에 무수한 구멍이 있다. 긴 시간 바닷바람을 맞은 구멍은 깨진 달걀처럼 흘러내린 모양새다. 오래 운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다에 바짝 붙은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해안선은 완만하고 좁은 해안에는 자갈이 많다. 오른쪽으로는 짙은 솔숲이 길게 따라온다. 마을에서 멀어지는 것을 알려주는 외딴집들과 녹으로 얼룩진 창고들을 이따금 지나친다. 바다에는 오랜 세월 동안 모서리가 부드러워진 바위들이 널려 있고 좁은 길가에는 작은 풀들이 가득하다. 파도 소리로 가득한 고요한 이 길은 무척 쓸쓸하고 사랑스럽다. 수년 전 이 일대는 군부대였다고 한다. 어느 날 부대는 떠났고 오토캠핑장이 들어섰다. 정자가 서 있는 살짝 굽이진 길을 돌면 소나무 숲속에 캠핑장이 보인다. 곧 바다로 뻗어 나간 갯바위와 반도의 땅 사이에 콘크리트로 밭 전(田)자를 그린 양식장이 나타난다. 먼 갯바위 위에 지구본 모양의 동그란 돌탑이 동그마니 서 있다. 저곳이 땅끝이다. 돌탑에는 '한반도 동쪽 땅끝, 동경 129° 35' 10", 북위 36° 02' 51", 포항시 구룡포읍 석병리'라고 새겨져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세운 것이니 땅끝이 분명하다. 석병(石屛)은 돌병풍이라는 뜻이다. 마을 앞 바닷가에 병풍 같은 바위가 있는데 끝이 뾰족하게 솟아 아흔아홉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양식장 앞에서 바닷길은 끊긴다. 끊어져 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바다에 아흔아홉 골짜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륙으로 에돌아 석병1리 두일포(斗日浦)로 향한다. 잠시 바다를 등진다 해도 서운하지 않다. 길 양쪽으로 향기롭고 목가적인 들이 펼쳐져 있다. 두일포는 우암 송시열이 지은 이름이라 한다. 마을 뒷산의 모양이 말(斗)을 엎어 놓은 것 같고, 마을 앞의 나루터가 일(日)자형을 이루고 있어 두일(斗日)이라 했다 한다. 해안선을 따라 집들이 들어서 있다. 바다에 면한 집들은 높직한 돌담장을 가졌다. 아무렇게나 오린 색종이처럼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이 시멘트와 일체가 되어 있다. 담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두꺼워지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무척 견고해 보인다. 그처럼 굳건한 담장에 대문 없는 집이 수두룩하다.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열어젖힌 집들이다. 대문이 없던 집에 출입금지 펜스가 생기기도 했다. 요즘 이 마을에는 찾아오는 여행객이 많다. 이곳에서 몇 해 전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촬영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살던 집이 이 마을에 밀집해 있다. 마을 중턱의 빨간 벽돌집은 혜진의 집이다. 집 앞에서 포구와 빨간 등대가 내려다보인다. 작은 평상이 있는 집은 홍반장 두식의 집이고 옥색 지붕에 외벽을 타일로 장식한 예쁜 집은 감리할머니 댁이다. 실제 주민들이 살던 집을 빌려 촬영했다고 한다. 대문 기둥에 주민의 생활을 방해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삼정리삼정리 초입은 길이 제법 넓다. 넉넉한 길은 삼정3리에서 삼정2리까지 이어지는데 겨울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삼정리는 구룡포의 이름난 과메기 덕장이다. 마을의 너른 길은 모두 과메기 덕장이 된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가 주재료였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서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하는데 '목'을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 하여 과메기가 되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청어가 알을 낳으려고 해안을 따라 몰려오는데 수억 마리가 대열을 이루어 바다를 덮을 지경'이라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해마다 겨울이면 청어가 제일 먼저 영일현으로 몰려오는데 잡은 청어는 나라에 먼저 진상하고 난 후 각 고을에서 청어를 잡기 시작한다. 잡히는 청어가 많고 적음에 따라 그해 풍년을 점쳤다'고 한다. 영일현이 포항이다. 동해안을 따라 북쪽에서 내려오던 청어 떼가 포항 앞바다에서 제일 먼저 잡히는데 그때가 제일 통통하게 살이 오른 맛난 청어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청어 생산량이 크게 줄어서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이제는 관목 하지도 않는다. 꽁치의 몸을 세로로 갈라 덕대에 걸쳐 놓는다. 석병에서 잡고 삼정에서 말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정리 어느 곳에서나 과메기 덕장을 찾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3리의 덕장은 가장 집중적이고 장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지금과 같은 계절에 덕장은 텅 빈다. 텅 빈 채로 넉넉하고 고즈넉하다. 길을 따라가다 돌연한 활기가 느껴지고 소나무 울창한 바위섬 하나가 보인다면 삼정2리다. 섬은 관풍대(觀風臺), 바람을 보는 곳이다. 삼정리 사람들은 삼정섬이라 부른다.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이면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고 한다. 삼정3리와 2리가 통째로 본마을이다. 신라 때 삼정승이 살았다고도 하고 삼정승이 날 만큼 지세가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정1리는 삼정해변이 펼쳐진 곳이다. 본마을과는 하천으로 분리되어 있다. 옛날에는 하천이 자주 범람해 '범진(凡津)'이라 불렀다 한다. 삼정해변은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라 아는 사람들만 쉬쉬하며 찾아오는 곳이다.◆삼정리 주상절리삼정해변을 지나 남쪽으로 향하면 길은 훌쩍 상승하면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단애 아래로 비경을 드러낸다. 삼정리 주상절리 지대다. 신생대 제3기, 6천500만년 전부터 170만년 전 사이의 어느 날, 이곳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분화구를 박차고 튀어나온 용암이 흘러넘쳤고, 시간이 지나면서 용암은 굳어 바위가 되었다. 용암이 굳으면서 수축에 의해 생겨난 암석의 틈이 절리(節理)다. 기둥 모양으로 발달하면 주상(柱狀)절리, 나무판과 같은 모양으로 발달하면 판상(板狀)절리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방사형·부채꼴 등 다양한 방향의 절리가 관찰되지만 가장 우세한 것은 사선의 주상절리다. 벼랑을 내려가 거친 암석의 해안에서 주상절리를 바라본다. 아물아물 내려다보는 것과 정면으로 보는 것에는 역시 차이가 있다. 보다 역동적이고 입체적이다. 지금 막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되는 바로 그 순간을 보는 듯하다. 사선의 용암 너머로 구룡포 해수욕장이 보인다. 사운거리는 달 같은 해변이, 이 단애와, 이 시커먼 아우성들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환히 빛난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공동기획 : 포항시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삼정리 주상절리 지대. 이곳에서는 방사형·부채꼴 등 다양한 방향의 절리가 관찰되지만 가장 우세한 것은 사선의 주상절리다. 지금 막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되는 바로 그 순간을 보는 듯하다.마을 앞 바닷가에 병풍 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석병리라 불린다. 석병(石屛)은 돌병풍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촬영했다.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주인공인 홍반장의 집(위쪽)과 감리 할머니의 집 등이 마을에 밀집해 있다. 실제 주민들이 살던 집을 빌려 촬영했다.
2022.08.22
[골목부터 바닷길까지, 포항 힐링로드 .7] 구룡포항…잔잔한 바다, 낮잠 든 항구·달큰함 펄떡이는 횟집거리·100년 시간 거스르는 골목
항구의 반드러운 바다에 수많은 배가 정박해 있다. 턱을 치켜세우고 돌진하듯, 일제히 뭍을 향한 배들 때문에 저 너머의 큰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항구를 둘러싼 거리는 비할 데 없이 벅적한다.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골목이 있고, 별별 날것들이 순진하게 헤엄치는 횟집들이 있고, 커다란 대게로 외벽을 장식한 즐거운 가게들이 있고, 과메기나 물회와 같은 달큰하고 비린 이름들이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항구마을 고유의 억양과 온갖 고장의 악센트가 뒤섞여 펄떡이는 활기가 넘쳐난다. 고개를 들면, 하루 종일 바다를 내다보는 집들과 마주한다. 그들 너머에 비로소 큰 바다를 보여주는 언덕이 있다. 구룡포다. ◆구룡포항신라 진흥왕 때의 일이다. 잔잔하던 바다에 갑자기 큰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열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중 한 마리가 바다로 떨어졌고 바닷물은 이내 붉게 물들었다. 그러자 폭풍우가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고 한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바다가 구룡포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용두산 아래 깊은 소에 살던 아홉 마리 용이 동해로 승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들이 승천한 이후 조선시대까지 구룡포는 대체로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1883년 조일통상장정이 체결되자 일본인의 조선 출어가 본격화되면서 조용한 어촌마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06년에는 가가와현의 어업단 80여 척이 고등어 떼를 따라와 구룡포에 눌러앉았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구룡포 앞바다는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었고 갈퀴로 쓸어 담을 만큼 고기가 잘 잡히는 곳이었다.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어구를 버려야 무사히 항구로 돌아올 정도였다는 말이 전설처럼 떠돈다. 이에 일본인 수산업자인 '도가와 야사브로'는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추진했다.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든 것이 1923년.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왔다. 방파제를 쌓아 생긴 새로운 땅에는 일식가옥이 빼곡히 들어섰다. 약 10년 후인 1932년 구룡포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숫자는 287가구 1천161명에 이른다. 당시 구룡포항 주변에 조선인 민가는 겨우 3채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구룡포에는 대게·오징어·청어·꽁치·미역·대구·가자미·전복·고래 등 어장이 어마어마하다. 계절마다 전국 최고의 특산품이 생산되고 거리는 온갖 먹거리로 넘쳐난다. 횟집거리에서 독보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커다란 대게 조형물이다. 전국 유통물량의 절반 이상이 구룡포 산 대게라 한다. 새롭게 개발한 대게빵도 덩달아 인기다. 오징어도 구룡포의 특산물이다. 구룡포항의 오징어는 경북도 내 어획고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2007년에 구룡포 일대는 과메기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과메기는 꽁치나 청어를 해풍에 말린 것으로 겨울 구룡포는 과메기와 동의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산물 위판장 주변 길가에는 '과메기 물회 거리'가 조성돼 있다. 50여 개의 횟집이 줄을 서 있는 '과메기 물회 거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전국 음식테마거리 2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매년 11∼12월에는 구룡포항 아라광장을 중심으로 과메기를 시식하고 판매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일제강점기 최적 어업기지로 떠올라1923년 방파제 쌓고 부두 만들어져대게·오징어·꽁치·고래·가자미 등계절마다 전국 최고의 특산품 생산일본가옥 보존 근대문화역사거리로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흔적 가득과메기 본고장답게 '문화관' 들어서전시홍보관·특산물판매장 등 갖춰◆일본인 가옥 거리아라광장 앞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백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던 집들이 남아있다. 일본풍을 물씬 풍기는 이 골목은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포항시는 2010년부터 지역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해방 이후 몇 채 남아있던 일본 가옥과 원형이 보존되어 있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집을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조성했다.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는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부를 쌓은 사람이다. 그의 집은 100년 전 일본의 전통가옥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2층 목조건물로 내부에는 일본인의 생활상과 구룡포의 역사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2011년에는 근대역사관을 중심으로 28채의 가옥을 정비해 커피숍과 추억의 상회·우체통·일본의상 대여점 등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거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오래전 드라마인 '여명의 눈동자'와 2019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등을 촬영했다. 특히 '동백꽃 필 무렵'의 영향력은 대단히 커서 때때로 일본인 거류지의 느낌보다 '동백이 동네'의 감성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동백이의 가게 '까멜리아'는 드라마 이후 카페가 됐다. 내부는 '동백꽃 필 무렵'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원래는 마을 주민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용되던 '문화마실'이었고, 80여 년 전에는 누구나 묵고 싶어 할 정도로 좋은 여관이었다. 까멜리아 오른쪽에는 드라마 이름을 본뜬 동백서점이 있다. 서점 창문에 노규태 군수 후보의 홍보 포스터가 여전히 붙어 있다. 이외에도 '동백점빵' '동백 상회' '구룡포에 과메기가 필 무렵' 등 드라마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이름을 만날 수 있다.거리 가운데에서 언덕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백여 년 전 언덕 위에는 신사가 있었고 계단 양편의 돌기둥에는 신사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해방 후 돌기둥의 이름들은 시멘트로 덮였고 구룡포 유공자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영일군수 김우복·영일교육감 임종락·제일제당 구룡포통조림공장 하사룡·이판길 등. 단기 4276년(1943) 7월에 세웠다는 기록도 보인다. 언덕 위는 구룡포공원이다.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서로를 휘감고 있는 구룡포 전설의 용 조형물이 있고, 도가와 야스브로 성덕비가 시멘트를 뒤집어쓴 채 서 있다. 신사가 있던 자리에는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 돌아가신 분들과 6·25전쟁 때 산화한 호국 영령을 기리는 충혼탑과 충혼각 그리고 구룡포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당이 자리한다. ◆아라예술촌과 과메기 문화관 충혼각 옆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면 '아라예술촌'이 나타난다. 구룡포의 생활문화센터로 도예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예술가들의 작업실도 있고 각종 전시와 공연, 소규모 발표회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과메기 문화관이 있다. 주차장도 넓고 잔디밭도 넓다. 원래 이곳에는 구룡포 동부초등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1946년 개교한 학교는 2011년 폐교되었고 그 자리에 과메기 문화관이 들어섰다.과메기 문화관은 포항의 자랑인 과메기의 품질관리와 홍보를 위해 건립되었다. 1층에는 기획전시관과 다양한 체험 교실 그리고 과메기를 비롯한 포항의 다양한 특산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 및 시식할 수 있는 특산물 판매장이 있다. 2층에는 과메기 연구센터와 진짜 물고기를 만날 수 있는 해양체험관, 심해를 경험할 수 있는 가상해저영상체험관이 있다. 3층에는 문화관의 주 테마관인 과메기 홍보관이 있다. 과메기 유래와 역사·과메기 덕장·과메기 주점·과메기 산업 등 과메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과메기의 본고장인 구룡포읍의 유래와 역사도 이곳에서 접할 수 있다. 펭귄, 북극곰 등과 함께 북극을 체험해 보는 증강현실(AR) 존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기다. 4층에는 각종 놀이 공간과 카페, 야외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벽면에 '어화만대(漁花滿臺)'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물고기를 부르는 배들의 빛이 밤마다 가득 꽃으로 만발한다'는 뜻이다. 지난밤 꽃으로 만발했던 배들은 항구에 기대 오수에 들었다. 항구를 둘러싼 거리는 속살거리는 듯 준동한다. 소담스러운 바닷가의 집들은 저마다 고운 색깔의 지붕들을 맞대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리고 비로소 너른 바다에 눈길이 멎는다. 먼 옛날 한 마리 용이 피 흘리자 잔잔해진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일제강점기에 어업기지로 떠오른 구룡포는 지금도 계절마다 전국 최고의 특산품이 생산되고 거리는 온갖 먹거리로 넘쳐난다.구룡포 횟집거리에서 눈길을 끄는 커다란 대게 조형물. 전국 유통물량의 절반 이상이 구룡포산 대게다.100여 년 전 일본인이 살던 집들이 남아있는 골목은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다.구룡포공원에서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서로를 휘감고 있는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2022.08.17
[대한민국 선진농업 1번지, 산소 카페 청송 .5] 차세대 과수 복숭아, 아삭한 과육 한입 베어물면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경북 청송군은 사과 주산지로 유명하지만 최근 다른 과수(果樹) 재배가 조금씩 늘고 있다. 대표적인 작물이 복숭아다. 맑은 물과 공기, 햇볕을 머금은 청송 복숭아는 과육이 단단하면서도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특히 복숭아는 미래 기후 변화에 대응할 과수로 성장 가능성이 더욱 크다.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되는 사과와 달리 복숭아는 온난한 기후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선진농업 1번지 산소카페 청송' 5편에서는 차세대 주요 과수작물로 각광받고 있는 복숭아를 소개한다.주왕산면 중심 복숭아 농가 늘어일조량 풍부 자연재해 거의 없어다른 곳 비해 과육 단단 과즙 풍부◆온난화에 '뜨는' 청송 복숭아"기후 변화 시대를 맞아 앞으로 복숭아가 사과를 대체하는 청송의 대표 과수가 될 겁니다."지난 5일 청송 안덕면 문거리에서 만난 정연섭(62)씨가 강조한 말이다. 정씨는 아내 신미란(61)씨와 함께 30여 년째 과수 농사를 짓고 있다. 3만3천㎡(1만평) 규모의 과수원에서 복숭아와 사과를 절반씩 키운다. 특히 그는 '사과의 고장' 청송에서 복숭아 농사에 먼저 뛰어들었다. 그가 복숭아 나무를 처음 심은 것은 199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청송에는 사과 재배 농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과수 재배 지형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터였다. 미리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영천 등지에서 사과 농사를 짓던 농가들이 온난화 영향으로 청송에 많이 건너왔다"며 "이걸 보면서 앞으로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사과보다 복숭아가 유망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의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실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지난 4월13일 '온난화로 미래 과일 재배 지도 바뀐다'는 제목의 분석 자료를 내놨다. 자료에 따르면 사과는 온난화 영향으로 재배 가능지가 급격히 준다. 207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다. 반면 복숭아는 사과보다 더 높은 기온에서 잘 자란다. 재배에 적당한 연평균 기온이 사과(8~11℃)에 비해 4℃가량 높다.복숭아 재배를 결심한 정씨는 다른 지역에 가서 여러 품종의 묘목을 구해왔다. 재배 기술이 앞선 농가를 찾아 노하우도 익혔다. 그는 아직도 청송 기후·토양 환경에 맞는 복숭아 품종을 찾고, 보다 효율적인 재배 방법을 익히려 애쓰는 중이다. 그가 키우는 복숭아 품종만 '단금도' 등 10여 개에 달한다. 30년 이상 복숭아 재배에 매달린 그는 현재 청송복숭아GAP사업단 회장을 맡고 있다. GAP란 'Good Agricultural Practices'의 약자로 '농산물우수관리제도'를 뜻한다. 청송복숭아GAP사업단에는 50여 복숭아 재배 농가가 가입해 있다.그는 "청송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복숭아는 우리 가정을 지켜준 고마운 과일"이라며 "복숭아 재배 연구를 이렇게 열심히 해놓으면 나중에 다른 복숭아 재배 농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소를 보였다.◆늘어나는 복숭아 재배 농가청송에서도 사과 외에 다른 과수 재배 면적이 조금씩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복숭아와 자두다. 복숭아 재배 면적은 2017년 58㏊에서 지난해 66㏊로 13.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두 재배 면적도 62㏊에서 130㏊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복숭아의 경우 재배 농가 수도 크게 늘었다. 2017년 106가구였던 재배 농가 수는 지난해 157가구로 48.1% 신장했다. 복숭아 재배 농가는 재배 환경이 뛰어난 주왕산면에 몰려있다.복숭아는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과수다. 햇빛에 민감해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생육이 좋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과실 내 당분 축적률이 떨어져 품질이 나빠진다. 특히 수확기에 비가 많이 내리면 병해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복숭아는 내습성(耐濕性)이 매우 약한 과수다. 때문에 물이 잘 빠지고 지하수위가 높지 않은 양토나 사양토에서 재배하는 것이 유리하다. 물빠짐이 나쁘면 복숭아 나무가 말라죽거나 복숭아 발육이 나빠진다. 또 복숭아는 바람이 강하면 낙과 피해가 발생해 자연 재해가 적은 곳에서 키워야 한다. 청송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크며 태풍 등 자연재해가 거의 없다. 더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도 적게 오는 편이다. 이런 이유로 청송 복숭아는 당도는 물론 경도가 높고 과즙이 많다. 청송은 '맛있는 복숭아'가 자라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복숭아는 경제성도 높은 작물로 알려져 있다. 복숭아는 사과에 비해 일손이 조금 덜 든다. 사과와 수확시기가 달라 인력 공급도 수월하다. 또 복숭아 나무는 관리만 잘해주면 30년이 넘어도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청송에서는 조생종(6월 중순~7월 하순 수확) 복숭아는 키우지 않는다. 대신 중생종(8월 상순~중순)과 만생종(8월 중순~9월 하순)을 주로 재배한다. 주요 품종은 천홍, 천중도, 단금도 등이다.비타민·미네랄 함유 종합영양제장내 유해균 억제해 대장암 예방노화까지 막는 대표적 장수 식품◆'종합영양제' 복숭아복숭아 원산지는 중국 화북의 산시(陜西省)성과 간쑤(甘肅省)성의 해발 600∼2천m 고원지대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식용과 약용 등으로 복숭아를 일찍부터 재배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 복숭아 재배기술이 실려 있을 정도다. 한국 복숭아의 재배 기원은 확실치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백제 제1대 온조왕 3년(기원전 16년) 겨울 우레가 일어나고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때문에 한국에서 복숭아 재배 역사는 적어도 2천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 밀양 금천리에서는 3천년이 지난 복숭아 핵(核)이 나오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시기인 한말(韓末)까지만 해도 국내 복숭아 과실의 크기나 품질은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져 있었다. 이후 서구문화가 유입되며 지금의 복숭아 품종과 재배 기술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복숭아 재배는 1991년 우루과이 농업협상(UR)과 2004년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크게 감소했다가 최근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복숭아는 비타민A와 C가 많이 들어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펙틴질도 풍부하다. 복숭아는 단맛이 많이 나지만 실제 당분은 10% 정도로 적은 편이다. 또 섬유소, 무기질, 당분, 유기산 등 사람의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으며 단백질과 아미노산, 식이섬유 함유량도 높다. 때문에 복숭아는 대장암 예방에 좋으며, 배변을 촉진해 변비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이외에도 생체 리듬을 유지하고, 신체가 산성화되는 것을 방지해주며 노화를 억제하는 장점도 갖고 있다. 특히 복숭아는 혈중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춰주고 장내 유해균을 억제하는 등 '몸에 좋은 과일' 중 하나로 꼽힌다. 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최근 청송에는 온난한 기후에도 잘 자라는 복숭아를 키우는 농가가 늘고 있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큰 청송에서 자란 복숭아는 과육이 단단하면서도 당도가 높다.정연섭·신미란씨 부부가 자신들의 과수원에서 재배하는 복숭아를 살펴보고 있다.농가에서 수확한 복숭아는 크기별로 선별 과정을 거친다.
2022.08.16
둥시 자연건조시켜 맛 깊고 당도 높아…美·英 등 전세계로 수출
지난해 전국 생산량의 60%, 6천577t생산2005년 350여농가 국내 최대 유통센터 설립조선시대 진상품…750년 넘은 감나무 남아해마다 열리는 곶감축제·곶감공원도 인기 6천577t. 2021년 한 해 동안 경북 상주에서 생산된 곶감의 양이다. 이는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에 달하는 규모다. 더욱이 상주 곶감은 식감이 찰지고 과육이 많아 곶감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힌다. 상주가 조선시대부터 삼백(三白, 곶감·쌀·누에)의 고장이라 불린 이유다. 비타민A·폴리페놀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다량 포함된 상주 곶감은 이제 국내를 넘어 미국·영국·캐나다·대만·태국·싱가포르 등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상주, 삼백의 고장에서 스마트팜 도시로' 5편에서는 상주 곶감의 우수성을 소개한다. ◆국내 최대 규모 상주곶감유통센터지난 8일 경북 상주시 헌신동에 있는 상주곶감유통센터. 아직 곶감 생산 시기는 아니지만 곶감 선별기 앞에는 곶감을 만드는 데 필요한 농자재 상자가 빽빽이 쌓여있었다. 센터 직원은 지게차를 이용해 농자재를 소형 트럭에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신경재 상주곶감유통센터 팀장은 "10월 중순이 되면 본격적으로 곶감으로 만들 떫은 감이 들어온다"며 "그때는 밤늦게까지 선별기 4대를 모두 돌려도 부족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고 말했다. 상주곶감유통센터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곶감 영농조합법인이다. 상주 곶감 생산 350여 농가가 32억원을 출자해 설립했다. 2005년 9월 '상주곶감발전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뒤 두 차례 명칭이 바뀌었다.2012년에는 현재 위치에 대지면적 1만3천734㎡·건축면적 3천730㎡ 규모로 상주곶감선별장 및 유통센터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선별기부터 세척기·포장기·냉동 창고 등 곶감 유통을 위한 여러 시설이 갖춰져 있다. 시설 내에는 상주시 농특산품 수출홍보 전시관과 상주 곶감 직판장도 자리한다. 운영은 상주곶감유통센터가 맡고 있다.상주곶감유통센터는 곶감의 원료가 되는 생감을 농가에서 사들여 엄격한 선별작업을 한다. 이후 선별된 생감을 다시 농가에 팔고, 농가는 곶감으로 만들어 상주곶감유통센터에 되판다. 상주곶감유통센터는 다시 사들인 곶감을 수출하거나 군납 또는 급식용으로 판매한다. 상주 곶감은 베트남·싱가포르·태국 등 동남아를 비롯해 미국·캐나다·네덜란드·영국·뉴질랜드 등 전 세계로 수출된다. 감은 단감과 떫은 감으로 나눠진다. 보통 단감은 그대로 먹지만 떫은 감은 홍시나 곶감으로 만들어 먹는다. 곶감은 떫은 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 것이다. 곶감 중에서 50~60일 동안 숙성시키고 건조한 것을 '건시(乾枾)'라고 한다. 40~45일 동안 숙성시키고 건조하면 '반건시(半乾枾)'가 된다.곶감으로 만드는 떫은 감 품종에는 둥시·수시·월하시·고종시·단성시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상주 둥시는 으뜸으로 꼽힌다. 수분이 적어 곶감으로 만들면 식감이 찰지고 속이 꽉 차기 때문이다. 신 팀장은 "곶감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은 기계를 이용해 건조하지만 상주에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자연건조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며 "둥시를 자연 건조한 상주 곶감은 맛이 깊고 당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진상품감은 원산지가 동양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늦어도 고려시대부터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제23대 고종(재위 1213~1259년) 시기에 편찬된 의학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감 재배와 관련한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문헌에는 곶감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곶감은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주는 15세기 이전부터 곶감 주산지였다.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상주 홍시와 곶감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1468년 편찬된 '예종실록(睿宗實錄)'에도 곶감의 진상을 상주에서 나눠 정했다고 기록돼 있다. 상주 외남면 소은리 379-1에는 750년이 넘은 감나무가 아직 남아있다. 일찌감치 농업이 발달한 상주는 서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은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이다. 서쪽은 백두대간을 따라 소백산맥이 우뚝 솟았고, 동남쪽은 낙동강을 따라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래서 상주 사람은 옛날부터 평야에서는 쌀을, 구릉성 산지와 집 주변에서는 감을 재배했다.상주는 감을 재배하고 곶감을 만드는 데 적합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대륙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온화하고 맑은 기후에 비옥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까지 갖춰 감을 재배하기에 알맞다. 또 연평균 기온이 11.9℃, 연평균 강우량 1천200㎜, 낮은 상대습도는 곶감을 말리기에 적합했다.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상주 곶감은 일찌감치 전국 최고 자리에 올랐다. 조선 세종과 예종 때 진상(進上)할 정도로 상주 곶감은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상주 곶감은 상주 고유의 떫은 감 품종인 둥시로 만들어 맛이 좋다. 또 떫은 감 껍질을 얇게 벗긴 뒤 60일 이상 자연적으로 숙성·건조해 감칠맛이 난다. 특히 비타민A가 사과보다 450배나 포함돼 있을 정도로 영양도 풍부하다. 항혈전작용·혈액순환·숙취해소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상주 곶감은 다른 지역 곶감보다 폴리페놀 함량이 더 많아 생리(生理) 활성능(活性能)도 우수하다.◆지역 특산물에서 관광 자원으로상주는 국내 최대 곶감 산지다. 떫은 감과 곶감 생산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지난해 상주의 떫은 감 생산량은 2만9천717t(319억원)으로 국내 전체 생산량의 18%를 차지했다. 곶감의 경우는 국내 전체 생산량의 60%(6천577t·1천745억원)를 책임지고 있다. 곶감이 주산지인 상주 남장동과 외남면 일대(면적 99만650㎡)는 2005년 9월 곶감특구로 지정됐으며, 상주 둥시 품종은 이듬해 8월 산림청에 품종 등록됐다. 상주시는 2007년 6월 상주 곶감의 지리적표시제 등록도 마쳤다. 조선시대부터 품질을 인정받은 상주 곶감은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2008년 설 명절 대통령 선물용으로 정부에 납품됐고, 2018년에는 남북 고위급 대표단 오찬장에 후식으로 상에 올랐다. 2019년 11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상주 전통 곶감 농업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했다.상주 곶감은 이제 지역 특산물을 넘어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주곶감축제와 상주곶감공원이다. 상주에서는 상주곶감유통센터와 외남면 주민이 매년 12월 각각의 곶감축제를 열어왔다. 곶감축제는 해를 더할수록 내실 있는 축제로 성장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상주시는 올해부터 두 곶감축제를 하나로 합쳐 시너지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상주곶감공원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5년 문을 열었다.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대지면적 3만2천21㎡, 건축면적 3천317.47㎡ 규모로 조성했다. 투입된 예산만 118억1천400만원에 달한다. 상주곶감공원에 가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을 주제로 만든 동화를 만날 수 있다. 또 상주 곶감에 녹아있는 상주의 역사와 전통을 알 수 있다. 감 따기·감 깎기 등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상주곶감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자연건조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상주시 곶감건조장에서 한 농민이 건조대에 매달린 둥시(곶감용 감)를 살펴보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상주는 15세기 이전부터 곶감 주산지였다. 상주 외남면 소은리 379-1에는 750년이 넘은 감나무가 아직 남아있다.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5년 문을 연 상주곶감공원에 가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을 주제로 만들어진 동화를 만날 수 있다.신경재 상주곶감유통센터 팀장이 유통센터 안에 있는 상주시 농특산품 수출홍보 전시관에서 상주 곶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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