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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人사이드 & 직터뷰]
[토크 人사이드] '범어천의 시인' 정호승 "문학관은 현대인 정신적 곳간…더 많은 대구 시인 문학관 세워져야"
가뭄으로 물이 모조리 덜려나간 범어천은 허연 바닥을 드러냈다. 물이 빠진 자리엔 바짝 마른 자갈들만 경계 없이 가득했다. 걸음을 옮길 적마다 발밑에서는 '자갈자갈' 소리가 났다. "일주일 말미를 주마. 시 한 편씩을 써 오너라."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를 배운 날, 국어 선생님은 시 쓰기 숙제를 내주었다. 그날 이후 소년의 근심은 쌓여 갔다. 시라고는 써 본 적이 없었다. 걱정은 내내 명치에 걸린 듯 툭툭 가슴을 짓눌렀다.다시 자갈자갈 발밑이 울었다. 범어천을 걷던 소년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서서 자신에게 집중했다. 생각에 생각을 보탰다. 느낌에 느낌을 얹어가며 몰두했다. 곧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자갈자갈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 '우리 집은 왜 가난할까' '아! 가난. 낯선 가난. 누구의 탓일까'.소년은 문득 숨어버리고 싶었다. 자갈밭에 선 자신의 모습이 마치 길가에 버려진 죽은 나무작대기처럼 하찮게 보였다. 소년은 슬퍼졌다. 슬픔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따로 알고 있지도 않았다. 그 슬픔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슬픔은 또 다른 슬픔을 몰고 왔다. 그제서야 '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날 밤, 소년은 꾸역꾸역 시 한 편을 완성했다. 제목은 '자갈밭에서'였다."다들 숙제 해 왔나?" "네."소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그럼, 일어나서 한번 읽어 보거라."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읽어나갔다. 힘겹게 시를 발표한 후 자리에 앉자 선생님은 조용히 소년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겠구나."그날, 소년은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2023년 3월31일, 소년의 이름을 내건 문학관이 대구 수성구 범어천 변에 들어섰다. '정호승문학관'이다."한평생 제 이름을 내건 문학관이 생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신의 큰 선물이고 신의 큰 축복이라고 여깁니다."지난 12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호승 시인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정호승문학관'은 옛 범어3동 행정복지센터를 리모델링해 들어섰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시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를 왔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가 외지에 있다가 고향 대구로 발령을 받으면서다. 동네 주민들은 소년 호승이 살던 그 집을 '은행집'이라고 불렀다. 고무신을 신고 범어천을 따라 삼덕초등, 계성중, 대륜고를 다녔다. "문학관 맞은편에 어릴 때 살던 옛집이 있었습니다. 지금 문학관이 들어선 자리는 배추밭이었고요. 겨울이 되면 배추밭은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연날리기며 쥐불놀이, 딱지치기를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죠. '호승아 밥 먹어라'며 어머니가 부를 때까지요. 어릴 때 놀던 놀이터에 문학관에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더욱 영광이고 의미 있고 감회가 남다릅니다."정호승문학관 시민 영혼 안식처 기대 대구가 시인과 문학관의 도시로 변모땐 비교할 수 없는 문화자산 갖추게 될 것시인은 앞으로 문학관이 '영혼의 안식처'가 되길 바랐다. "시는 고통스러운 삶에 큰 위안이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시를 쓰고 있기도 합니다. 문학관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큰 힘이 되고 위안을 줄 수 있는 영혼의 휴식처가 되길 바랍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문학관을 찾아 사색하고 시집을 보면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으면 합니다."그러면서 그는 정호승문학관을 계기로 대구에 더 많은 문학관이 들어서길 희망했다."대구는 문향이면서 시인의 도시입니다. 6·25전쟁 당시에는 수많은 문인이 대구에 모여 작품활동을 이어갔고,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인 이상화 시비도 달성공원에 있습니다. 지금도 전국적인 인지도가 있는 대구 출신 시인들이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호승문학관이 계기가 되어서 현대시 문학사에 자리매김한 대구 시인들의 문학관이 많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한편으로는 문학관이 많이 생기는 것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이 많아진다고 해서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학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사들이 몰려들면서 파주가 독특한 특색을 지닌 도시가 된 것처럼 대구는 문학관이 많은 도시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특히 육체적인 배고픔이 해결되면 더 중요한 것을 찾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앞으로 인간은 정신적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문화적 양식을 찾을 것입니다. 그 양식을 채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문학관입니다. 문학관이 바로 정신적 양식을 쌓아두는 곳간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대구가 시인의 도시, 문학관의 도시로 거듭나는 순간, 대구는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자산을 가지는 것입니다." 정호승 문학관이 들어서기까지는 사실상 우여곡절도 많았다. 시작은 2016년 그의 대표작 '수선화에게'가 새겨진 범어천의 '정호승 시비'부터였다. 당시 일부에서는 '이상화문학관도 없는 마당에 대구 출신도 아닌 시인의 시비가 말이 되느냐'며 비판을 쏟아냈다. 문학관 조성도 그 연장선에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시인은 서운해하지 않았다. 되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전국에 제 시비가 많습니다. 연락도 없이 세워진 시비도 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아파트 단지 내에도 있습니다. 지난해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명동성당에 제 시비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호승 시비가 아닙니다. 명동성당의 시비죠. 물론 제 시가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범어천의 시비도 정호승의 시비이기 전에 범어천의 시비, 수성구의 시비, 대구의 시비입니다. 특히 문학관은 시가 흐르는 범어천 프로젝트 일환으로 조성됐습니다. 정호승보다는 장소적 의미가 큰 문학관입니다. 정호승문학관은 수성구민의 문학관이면서 대구시민의 문학관입니다. 이제는 범어천의 시인, 대구의 시인으로 인정해 주길 바랍니다."앞으로 시를 너무 많이 쓰지 않을 것양이 아니라 현재성 속에서 시를 쓰는시인으로 사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시인은 범어천에 대해 물을 때마다 "내 시의 고향이자 내 문학의 모성적 원천이었다"고 강조했다. "내 문학의 살과 뼈는 범어천에서 형성됐다"고 할 만큼 깊은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곳에서 시인의 꿈을 키웠고, 자연을 배우며 인간을 이해했다. 범어천 자갈밭에 버려져 있던 아기의 탯줄이며, 장대비가 내린 다음 날 떠내려오던 젊은 송장이며, 가마니에 덮인 채 발만 삐죽 빠져나와 있던 동사자를 보면서 때로는 죽음과 오그라드는 두려움을 배우기도 했다. 죽음의 임시처가 된 그 모습은 훗날 시가 되었다."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사랑한다' 부분)지난해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를 펴내기도 했다. 시인은 시집에서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택배' 중) 나이이지만 '시를 쓰는 고통'마저 기쁨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했다. "저에게 시는 존재의 가치입니다. 등단 50년이 넘어 인생의 황혼 녘에 와있지만 돌이켜보면 '시인으로서 살아온 가치'가 가장 소중합니다. 저는 시를 통해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려 하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시집을 열네 권 정도 냈는데 시집에 실린 시가 1천100여 편 정도 됩니다.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쓸 생각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쓰지는 않을 겁니다.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성 속에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인터뷰 내내 시인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지금은 낯선 아파트와 빌딩들이 빼곡하게 들어섰지만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지도 그리듯 그려냈다. '저 골목 맞은편에는 옥이네가 있었고, 친구 부모님이 염색공장을 하셨고….' 옛 추억을 끄집어내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시인의 모습은 여전히 '범어천 자갈밭을 걷는 소년'처럼 보였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유튜브 '영남일보'에 동영상정호승 시인은 대구가 시인의 도시이면서 문학관의 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했다. 특히 '정호승문학관' 개관을 계기로 한국시단에 자리매김한 대구 시인들의 문학관이 더 많이 들어서길 바랐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2023.04.19
[토크 人사이드] 박형준 부산시장 "가덕도신공항과 TK신공항은 상호보완적 관계"
"부산만의 엑스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엑스포입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경험과 기술, 심지어 어려움을 극복한 과정을 갖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매력과 장점을 어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11일 부산시청 집무실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부산의 엑스포 유치 당위성을 역설했다. 최근 부산시는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고, 박 시장은 유치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박 시장은 30여 분에 걸친 인터뷰 시간 동안 진지한 자세로 엑스포 유치를 염원하는 국민과 부산시민의 노력을 설명했다. ▶ 최근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부산을 찾았다. 박람회 유치가 국가적·지역적으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대한민국이 '원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제일 큰 성과다. 실사단도 대한민국처럼 온 국민, 정부, 여야가 함께 엑스포 유치를 성원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한다. 대통령이 사실상 진두지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한 의지를 갖고 실사 준비를 챙기셨다. 국회도 다른 사안에서는 많이 다투지만, 엑스포 유치에 대해선 만장일치 결의안을 채택했다. 특히 부산시민들이 보여준 열기와 열정은 실사단을 대단히 감동시켰다고 생각한다. 실사단도 이구동성으로 그런 평가를 해 줘서 부산시도 엑스포 유치에 상당히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실사단 방문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실사단이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이 부산역 광장에 모여 플래시몹을 했다. 수천 명이 춤추는 걸 보면서 실사단이 입을 못 다물더라 (웃음). 탄소중립형 불꽃쇼도 준비했는데 특히 아름다웠다. 실사단이 맨 앞에 앉아서 동영상 찍으랴, (불꽃) 보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모습을 봤다. 100만 가까운 시민들이 아주 질서정연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줬다. 대형 행사를 충분히 치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시민이라는 걸 보여줬다. 시장으로서 자랑스럽다."▶ 오일머니를 앞세운 경쟁도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와 비교했을 때 부산의 우위점은 무엇인가."이제 엑스포는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특성이 굉장히 강하다. '어떤 기술과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냐'하는 솔루션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가 가야 할 미래방향과 관련해 그 보편적 가치를 담지한 나라다. 자유, 인권이 있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격차·차별 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나라에서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만큼 선진국과 발전도상국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어 왔고, 그 과정을 굉장히 압축적으로 달성했다. 전 세계 압도적 다수 BIE 회원국가가 아직도 발전도상국이다. 그런 발전도상국들이 어떻게 인류 문명에 기여하고,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그 해결 과정과 내용을 엑스포로 가지고 올 것인가, 이 점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협력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대구경북민이 부산의 박람회 유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 말이 있다면."대한민국의 엑스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이제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 가는 단계에 왔다. 한 나라, 한 나라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하고, 그들이 우리와 협력하는 게 기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 계기가 엑스포라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우군을 엄청나게 넓힐 기회다. 경제적 효과도 크다. 올림픽과 월드컵보다도 2~3배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 또 촘촘해진 인프라와 또 관련 시설, 콘텐츠가 남는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을 새로운 각도에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수도권 일극주의'로 지방이 고통을 받는데, (엑스포 유치는) 남부권 발전 축의 굉장히 좋은 계기가 된다. 엑스포를 계기로 남부권 전체를 1시간 광역 교통망으로 묶으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이 있듯, 남부권도 하나의 큰 경제권으로 함께 갈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고 본다. 남부권에는 호남도 포함된다."▶ 6월 프랑스 파리에서의 4차 프레젠테이션(PT)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이번 실사를 바탕으로 해서 지금부터는 외국 한 나라 한 나라 표를 잡아내는 일을 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기업, 부산시가 역할 분담을 해서 세계를 누벼야 한다. 또 전 세계 많은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을 국내로 초청하는 작업도 해야 하고, 파리 현지에서 BIE 대표들을 상대로 지지 교섭 활동을 해야 한다. 총력 체제를 가동할 생각이다.▶ 가덕도 신공항과 대구경북(TK)신공항과의 상생 전략은 무엇인가."대한민국 항공 물류 98%가 인천에 집중돼 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항공 물류 없는 지역발전은 어렵다. 그동안 항공 기능을 지방에 활성화 못한 게 균형 발전에도 큰 한계가 됐다. 가덕도 공항은 1990년대부터 그런 차원에서 굉장히 강하게 요구됐다. 김해공항이 군사공항이라서 물류 기능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간 지역 갈등 등으로 지체되면서 20년이 늦춰졌고, 그만큼 부산 발전도 늦었다고 본다. 가덕도 공항이 생기면 부산만 이용하는 공항이 아니라 남부권 전체가 이용하는 공항이 될 거다. TK신공항은 TK신공항 대로 역사성과 기능, 필요가 있다. 그건 제가 부산 시민들에게도 그대로 얘기했다. 대구공항도 군사공항이라서 가졌던 한계가 있다. 저는 이 두 공항을 경쟁적·배제적 관계보다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발전할 수 있다. 남부권 경제가 발전할수록, 항공물류·여행 수요가 많아질수록 두 공항은 상호보완적 기능을 갖는다. 거리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이쪽이 안 되면 저쪽을 이용할 수 있고 이렇게 되는 거다. 그런 면에서 저는 TK신공항도 빨리 되는 게 좋다는 관점이다. 두 공항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할 거라고 본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대구와 부산이 공조할 방법은 무엇일까. "부산 인구 중 대구경북 출신이 가장 많다. 25%다.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을 떼어 이야기하지만, 이건 수도권 일극주의에 대한 대응이 약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꼬시래기 제 살 뜯어 먹기'식으로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다. 대한민국을 큰 틀로 보면 수도권과 남부권이다. 수도권의 인천이 서울 때문에 발전 못한 게 아니라 서로 상생 발전한다. 울산만 가도 경북 경주와 연결돼 있고, 경남 창녕도 대구경북권이다. 통합의 시너지를 훨씬 더 많이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심지어 전남권까지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장을 넓게 쓰려고 해야지 좁게 쓰면 서로 손해다. 공항 얘기가 나왔을 때도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에게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균형 발전을 위해 '혁신 허브'를 생각해야 하는데 남부권에서는 혁신 허브가 될 수 있는 곳이 부산과 대구밖에 없다. 그 연계성만 강화하면 중간 지역은 함께 갈 수 있다고 본다."▶ 국민의힘 새 지도부 한달 정도 됐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최대한 정치적 발언을 안 하려고 하지만, 사실 총선이 걱정된다. 나 역시 국민의힘 당원이고, 그 지지를 받고 시장이 됐다. 현재 같은 상황으로 가면 총선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과거 총선들을 보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고 해서 그게 1년 동안 지속하리라는 법이 없다. 오히려 거꾸로 멀쩡하게 가다가 총선 앞두고 골대 앞에서 넘어지는 게 더 위험한 거다. 지금 좀 시간이 남았으니까 문제가 뭔지는 다 지도부도 인식할 것이다. 교정하고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대담=최수경 정경부장 justone@yeongnam.com정리=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11일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2030세계박람회 '의 부산 유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시청 제공
2023.04.13
[논설위원의 직터뷰] 서광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명장 "혁신적 사고 위해 스스로 채찍질…장치산업엔 대충이 있어선 안 돼"
명장(名匠). 뛰어난 기술로 이름난 장인을 뜻한다. 한마디로 특정 분야에서 최고라는 이야기다. 명예로운 이 타이틀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이 뒤따랐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아마 숱한 피땀 아래 고뇌와 좌절을 반복했을 것이다. 외롭고 고된 길을 뚜벅뚜벅 걸어야 했던 과거는 무척 힘들었겠다는 짐작만 가능하다. 하지만 명장 반열에 오른 사람들 대부분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설명할 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풀어낸다. 세월의 무게까지 컨트롤하는 듯한 노련함과 여유도 느껴진다. 글로벌기업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서광일(60·압연설비 1부 설비안전섹션) 명장도 그렇다. ◆흙수저에게 포항제철소는 운명이었다 서 명장은 포항 북구 송라면 조사리 출신이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그리 넉넉지 않았던 가정형편 때문에 송라중 졸업을 앞두고 일찌감치 이공계 고교 진학을 염두에 뒀다. 어업에 종사했던 부친이 오랫동안 원인 모를 병을 앓았던 탓에 철들 무렵부터 '실질적 가장'이라는 생각을 하고 책임감을 짊어지게 됐다. 부친은 총명했던 아들이 대학까지 학업을 이어가기 바랐지만 집안 사정을 뻔히 아는 서 명장은 그럴 수 없었다. 때마침 중3 때 운명처럼 포철공고 1기 모집공고가 떴고 부친에겐 비밀로 한 채 원서를 냈다. 학비 부담이 없었고 졸업 후 입사가 보장된다는 점은 당시 그가 그릴 수 있는 최고의 그림이었다.가난했지만 정신적 지주였던 부친은 결국 고2 때 먼 길을 떠났다. "아버지는 병명도 모른 채 돌아가셨다. 내가 번 돈으로 큰 병원을 찾아다니며 낫게 하고 싶었다. 진심이었고 간절했다. 가진 게 없었어도 가르침은 큰 분이셨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했고, 특히 모임에 초청을 받아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문하셨다." 서 명장은 이 말을 유언처럼 가슴에 새기며 지금까지 모토로 삼고 있다. 실제로 그는 선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소통을 했고, 무엇이든 배우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자세는 훗날 그가 명장으로 선정될 때 빛을 발한 대목이기도 하다. ◆입사 41년...소통과 열정으로 일궈낸 명장1982년 4월1일. 포철공고 1기 졸업생 서광일은 꿈꿔왔던 포스코맨이 됐고 1차 공장에 배치됐다. 지금은 공정이 첨단화·세분화되고 설비 자체가 워낙 다양하고 많아 소속부서나 근무지가 구체적이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누가 '어디서 일하냐'고 물으면 답이 간단했다. 1968년 출범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는 1973년 포항 1기 설비종합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서 명장은 포항제철소가 탄력을 받을 시기에 포스코와 인연을 맺었고 그렇게 4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매사 적극적이고 성실함이 돋보였던 그는 입사 7년 만에 자취 집 주인의 조카였던 4살 아래 권양미씨와 중매결혼을 했다.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며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은 서 명장은 부인을 '이쁘고 헌신적인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학습과 탐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현장에서 설비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기계설계자의 생각과 의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서 명장의 지론이다. 일본기술자들과의 협업이 많았던 시절에는 한동안 일어 공부에 매진했다. 냉연설비와 관련, 문서와 도면을 펴놓고 일을 하는데 시쳇말로 까막눈이어서 너무 답답하고 아쉬웠다. 본인의 노력과 회사의 지원에 힘입어 그는 미친 듯이 공부했고 일본기술자들이 알려주지 않거나 비밀로 하는 내용까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기를 수 있었다.크고 작은 실적을 내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던 그는 2017년 명장(전기강판 ZRM 압연기 Hybrid ACG제어기술)의 반열에 오른다. 포스코는 기능장 보유자 가운데 테크니컬 레벨을 충족한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명장을 선정한다. 2015년 도입된 명장제도는 기술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성을 포함한 동료들의 평가 역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소통과 협력을 중요시하던 그의 명장 선정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철강 명장' 열정과 소통의 41년 "현장설비 이해하려 일본어 공부 몰두 일본이 숨기려 했던 기술까지 알아내 원리원칙 지켜야 훌륭한 기술자라던 박태준 회장의 격려·주문도 큰 힘 돼" 침수 때 실감한 '위기극복 DNA' "경영진 판단·사원 단결력 감명받아 공장정상화 위해 헌신하는 모습 보며 MZ세대 후배에 대한 선입견 무너져" ◆근면·성실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서 명장은 고(故) 박태준 회장과 현장에서 홀로 마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수행원도 없이 냉연공장을 찾았을 때 그는 작업 중이었다.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던 그날, 박 회장은 그에게 "장치산업에서 대충이나 대강이 있어서는 안 된다. 원리원칙을 제대로 지켜야 훌륭한 기술자가 되고, 나아가 포철도 발전할 수 있다"고 주문한 뒤 격려해 주셨다고 전했다. 선견지명이 탁월했던 박 회장을 존경한다는 서 명장은 "돌이켜보면 그날의 격려와 주문이 큰 힘이 됐다. 사고의 폭이 넓어졌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계기로 작용한 것 같다. 일개 전기기술자지만 기계나 금속도 알아야 제철소를 제대로 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들려줬다.'하루에 1가지는 배우겠다'는 의지는 현재진행형이다. 명장이 된 이후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도 자기계발과 애사심에서 비롯됐다. 오전 8시 출근이지만 오전 5시30분~6시쯤 집을 나선다. 아침 준비 때문에 덩달아 새벽잠을 설치기 일쑤인 아내에게는 미안한 부분이다. 자체 정비와 함께 현장근무자들과 소통하면서 이곳저곳을 살피는 게 주된 일과다. 그에게는 부지런히 현장을 다니며 깨달은 보물 같은 믿음이 있다. '기계는 손이 많이 가면 고장이 안 나거나 덜 난다.'◆'영일만의 기적'...안 되면 되게 하라지난해 9월 인근 냉천이 범람하면서 포항제철소는 악몽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 포항을 덮친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공장이 물에 잠기면서 고로의 불이 꺼진 데다 변전소 기능이 멈추면서 암흑천지로 변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최대 170t에 달하는 압연기용 메인모터 30~40대를 1년 이내 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시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이었다. 그러나 명장들을 중심으로 뭉친 포스코 50년의 저력과 경영진의 현명한 판단은 끝내 '135일의 기적'을 만들어냈다."정말 앞이 캄캄했죠. 솔직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났습니다. 돌이켜보면, 기적이 가능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신의 한 수는 경영진의 '전원 차단 결정'이었습니다. 폭발이 일어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때문에 기적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복구대책을 고민하던 중 일본의 쓰나미 피해가 떠올랐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던 일본기술자들과 논의를 하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서 명장은 사투를 벌이면서 포스코의 위기극복 DNA를 실감했다고 했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단결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특히 MZ세대 후배들에 대한 선입견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덧붙였다. 이기적일 것으로 지레짐작했던 예단은 공장 정상화를 위해 놀랄 만큼 헌신하는 그들의 자세 덕분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현장을 신뢰하는 경영진의 끊임없는 소통과 지원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큰 힘을 실어줬다.'빠르게보다는 안전하게'라는 포항제철소 캐치프레이즈 아래 현장을 누비는 그는 "어떤 지시나 현안을 접했을 때 대안 없는 반발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조직에도 도움이 안 된다"면서 "후배들을 교육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솔선수범한다는 자세로 하다 보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밝힌 만 41년 직장생활의 소회는 간단명료했다. "힘들었지만 포스코와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장준영 논설위원 changcy@yeongnam.com포스코 서광일 명장이 전기강판 코일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서광일 명장이 자신의 업무와 포항제철소 41년 근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기태기자
2023.04.12
[토크 人사이드] 정치활동 재개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前대표 "TK, 총선 때마다 관심 못 끌어…신공항 이상의 어젠다 만들어내야"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해 당원권 정지로 잠행을 이어오다 3·8전당대회를 계기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정치권은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이 지도부 입성에 실패하면서 이 전 대표의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자신이 집필한 저서 '거부할 수 없는 미래'를 통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영남일보 사무실에서 이 전 대표와 만나 전당대회 총평, 총선 출마 여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김기현 당 대표에게 조언할 게 있다면."김기현 대표가 정상적인 집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김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등에 올라탔고, 윤석열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이로 인해 자기 정치 및 정책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성을 민방위에 보내겠다는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다. 또 학생들 아침밥(학식) 먹는 데 갔다. 이런 행보의 경우 인지도가 높은 대중 정치인이 하는 것인데, 김 대표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스스로 어떤 방식으로 대표직을 수행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뭔가 보여주려다 무리수를 두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선을 넘는 발언을 많이 하셨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이준석 때문에 표를 너무 많이 까먹어 질 뻔했다고 하셨다. 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더 나가아 이준석 지지층과도 결별해야 한다. 또 제가 (당 대표 시절) 내놓은 어젠다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어젠다를 어떻게 내놓을지 의문이다." "총선 대구 출마설 이어지는 건 대표 정치인에 대한 시민 갈망인재부족 TK 위계문화 더 문제불필요하게 싸우다 젊은층 떠나천아용인 멤버 개혁이미지 성과김기현 정상적 집무 어려울 것뭔가 보여주려 무리수 둘 수도한동훈 장관 총선 출마한다면당 위해 희생하는 지휘자 될지당선에 집중할지 명확히 해야" ▶'천아용인'은 보수의 새로운 신호탄인가, 조직력 한계인가."저는 당 대표 시절부터 자발적 당원 가입을 독려했을 뿐 조직화하지 않았다. 친윤그룹은 조직력 차원을 넘어 각 지역의 구·군·시·도 의원들이 단체 문자를 계속 보내며 김 대표를 도왔다. 그렇다고 그들이 김 대표의 조직이 될 수는 없다. 천하람이란 인물은 전당대회 전에는 인지도가 낮았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대부분의 국민이 그를 알게 됐다. 컷오프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결선에 진출해 황교안 후보를 앞섰다. 나머지 3명의 후보도 컷오프를 통과했고, 모두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천하용인 멤버 모두 전당대회 결과에 만족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본다. 가장 큰 성과는 이들이 자신의 개혁 메시지(어젠다)를 일관되게 밝혀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정치적 동력이 될 것이다."▶대구 출마설이 자꾸 거론되는데. "제가 비대위원 처음 할 때 당시 박근혜 대통령 쪽에서 이재오 전 의원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려고 난리 쳤다. 그런데 은평구을에 나갈 사람도 없고, 당원들도 반발했다. 결국 무소속으로 이재오 전 의원이 당선됐다. 저는 정치적으로 최적의 판단을 할 것이다. 저를 건들지 않는다면 노원구병에 출마한다. 변수가 생기면 그에 따라 대처할 것이다. 대구시민들 입장에선 지역을 대표할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대구 출마설은) 저에 대한 갈망이라고 본다. 대구 지역구 의원 중 상당수가 공직자 출신이다. 환갑을 앞두고 대구가 고향이거나, 초·중·고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정치를 시작하신 분들이 지역을 위해 일을 잘 할지 의문이다. 지금 대구 국회의원 중 당 대표나 대통령에 나올 거라 생각되는 사람이 없다. 홍준표 시장님이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되고, 시장이 되신 것도 대구시민들의 대표 정치인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내년 총선에 '윤석열의 사람들' 대거 공천될 것인가."우리 당에는 왜 초선 소장파 의원이 없을까. 특히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경원 전 의원을 상대로 한 연판장에 이름을 올리신 의원들은 다 정치적으로 매우 곤란한 상황에 몰릴 것으로 본다. 이 부분도 공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한동훈 장관의 출마 가능성은. "한동훈 장관과 굉장히 비슷한 인물이 있다. 황교안 전 대표다. 황 전 대표도 박근혜 정부에서 50대 젊은 장관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통진당 해산이란 어젠다 때문에 더 유명해졌고, 이후 총리까지 되셨다. 당시 황 전 대표는 보수에서 좋아할 만한 '신언서판'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황 전 대표는 총선에서 당을 위해 희생하는 자리도 그렇고, 자신의 당선에 유리한 지역구에도 나가지 못했다. 한 장관이 출마한다면 황 전 대표의 길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다고 본다. 한 장관이 내년 총선에 나간다면 국민의힘을 위해 희생하는 지휘자 역할을 할 것인지, 자신의 당선에만 집중할 것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보수가 어려움 겪는 이유는 뭔가."보수는 인재 풀이 열화됐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18·19·20·21대 국회의원 명단을 보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결국 수도권 승부가 어려우니 영남으로 몰려가고 있다. 또 보수정당은 여전히 1960~70년대 개념의 '협박 정치'를 하고 있다. 보수가 3당 합당 이후 경상도와 충청도를 합쳐 호남을 고립시키는 전략이 전부다. 국민에게 공포심도 자극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이 대통령 되면 적화통일된다, 전교조가 득세한다, 경제가 망한다고 공포심을 자극했다. 대중에게 어필할 보수 비교우위가 사라진 것이다. 지금 2030세대에게 김정은은 조롱의 대상이다. 어느 누구도 북한과 전쟁했을 때 대한민국이 패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걱정하는 게 '핵'일 뿐이다. 이런 위기론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전근대적 사고다."▶대구경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안타까움이 많다. 대구경북은 갈수록 자존감이 떨어지고, 위상도 추락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커 갈 수 있는 토양이 부족하다. 인재가 부족한 것보다는 위계(位階) 문화가 더 문제다. 불필요한 위계와 싸우다 지쳐 대구를 떠나는 인재들을 많이 봤다. 이것이 문제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없다."▶대구경북 발전에 필요한 게 뭔가."대구는 TK 수부(首府)도시 위상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광주시에 복합 쇼핑몰 건립을 얘기했다. 당시 광주시민들이 크게 호응했다. 전라도 수부 도시인데 그런 것이 부족하다는 것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같은 측면에서 대구도 TK 수부 도시라고 하기엔 특색이 부족하다. 중앙정치에서 대구가 언급되는 사례를 보면 확실한 돌파구(어젠다)가 없다. 반면 부산은 굵직굵직한 걸 던진다. 예를 들어 바다를 메워 가덕도신공항을 짓는다고 했을 때 단순히 공항을 넘어 부산지역 건설사들이 국비로 몇십 년 동안 먹고살 거리를 만든다. '금융수도 부산'이란 어젠다를 통해 지역 결집도를 높이고 있다. TK는 신공항에만 집중하고 있다. 단순히 공항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부산은 KTX 타면 금정터널을 통해 부산역까지 지하로 도달한다. 대구도 경부선을 지하화했다면 어땠을까. 대구 도심을 통과하는 철도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서울 경의선 숲길처럼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역에선 이런 문제들을 강하게 밀어붙일 정치인도 없다. 부산은 모든 선거 때마다 정치적 역동성이 크기 때문에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큰 공약을 내세운다. 반면 대구경북에는 큰 관심이 없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26일 영남일보 서울본부에서 내년 총선과 향후 정치일정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서정혁기자
2023.03.29
[논설위원의 직터뷰]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정장 입고도 늘 운동화…구미경제 부흥 위해 열심히 뛰어야죠"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지금이야 '관광 핫플'이지만 과거엔 그야말로 '깡촌' 중에 깡촌이었다. 그곳 한 촌가(村家)의 늙은 아버지는 식전 댓바람부터 지게를 지고 쇠꼴을 베러 갔다. 하루도 어김이 없었다. 새벽 이슬 가득 맺힌 쇠꼴을 한 짐 해 온 아버지 모습에 자식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송구한 마음에서다. 그런 아버지를 유달리 안쓰러워한, 철든 자식이 있었다. 의외다. 8남매 가운데 막내아들이다. 소에게 먹일 저녁을 위한 오후 쇠꼴 베기는 온전히 그 아이 몫이었다. 소년은 다짐했다. "훗날 커서 엄마 아부지 호강시켜 주고, 이 집을 일으킬 사람은 나"라고. 그 의지를 놓지 않았던 소년은 어느덧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경북 구미 경제를 이끄는 수장이 됐다. 그 주인공은 제15대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인 윤재호(57) 주광정밀<주> 대표이사다. 주광정밀은 연매출 1천억원대를 찍고 있는 국내 '흑연전극 금형가공기술' 분야 강소 기업이다. 휴대폰·자동차 부품 등 흑연 제품 가공에서 남다른 기술력을 갖고 있다.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최근 구미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만났다. 패기 하나로 달려온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었다. 빈농 막내아들서 기부왕으로"어릴 때부터 기계 다루는 재주 남달라 당시 공고생 선망인 대우전자 입사도 배고픔 잘 알기에 창업 후 꾸준히 기부"발로 뛰는 현장형 상의회장"반도체 단지·방산클러스터 유치 전념 신공항 연계 고속도로·철도 확충 노력 구미와 경제공동체인 대구 도움 절실"▶빈농의 8남매 중 막내…'소년 윤재호'의 하루는 어땠나요."그 시절 모두가 어려웠지만, 저희 집은 형님 누나들 그리고 저, 입이 몇 개였겠습니까. 늦둥이 막내지만, 힘든 살림에 고생하는 부모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천성적으로 바지런했어요. 봄철 이맘땐, 학교 마치고 오면 책가방 던져 놓고 산에 가서 나물 캐느라 정신없었죠. 광주리에 나물을 가득 담아 오면 엄마가 '책 한 자라도 더 봐야지'라고 꾸중을 하셨을 정도였어요. 물론 속으론 막내아들이 기특했겠지요. 겨울방학 땐 산에 가서 나무하는 게 일과였죠. 그렇게라도 부모님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지요. 친구들과 논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하교 후 운동장에서 '오징어 가생' 놀이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고 들었습니다."아버지로부터 좋은 DNA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가 평생 농사일을 하셨지만, 제 기억엔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만드셨어요. 제가 코흘리개 시절 싱거미싱인지, 브라더미싱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낡은 재봉틀을 장난감 삼아 갖고 놀았어요. 그걸 일일이 분해하고 조립하는 데 푹 빠졌죠. 그러다 엄마한테 혼도 많이 났었죠.(웃음) 그런 취미를 갖다 보니 '기계'라는 녀석에 흥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손재주가 있다고 곧잘 칭찬해 줬어요. 사실 그땐 인문계가 뭔지, 실업계가 뭔지도 몰랐죠. 그저 손재주 좀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경북기계공고로 진학하게 됐습니다."▶'대구 유학' 시절 얘기가 궁금합니다."촌에서 올라온 학생들, 저뿐만 아니라 모두 고생했겠지요. 아버지가 부쳐 준 한 달 생활비로 방값·교통비 내고, 실습 기자재까지 사면 4천원가량 남을까 말까였지요. 아침은 언감생심, 점심도 굶을 때가 많았어요. 고육책을 썼지요. 교통비를 아껴 빵을 사 먹었습니다. 대구 달서구에 있던 경북기계공고에서 중구 남산동 자취 집까지 매일 걸어서 귀가했죠. 3시간가량 걷고 또 걷고….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기능경기대회'라는 동기 부여가 있었으니까요. 밤늦게까지 학교 실습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기능대회 학교 대표가 되면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라면을 끓이면 선배들이 건더기를 다 건져 먹었어요.(웃음) 남은 국물에 밥만 말아 먹어도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윤 회장은 고교 졸업반 때 대구기능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전국기능대회 출전권을 쥔 그는 결심을 한다. 그에겐 기능대회보다 빨리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키는 게 먼저였다. "전국대회는 후배에게 양보할 테니 취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담임교사를 졸랐다. 결국 당시 공고생 최고 선망의 직장인 대우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김우중 회장의 대우는 삼성·현대보다도 높게 쳤다. 윤 회장이 구미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8년간의 대우전자 생활을 마감한 뒤 1994년 자본금 2천만원으로 주광정밀을 구미에 차렸다.▶월급쟁이에서 기업가로…특별한 '경영철학'은."한 회사의 대표가 되니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더라고요. 매일 어김없이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는 습관부터 길렀죠. '회사를 위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구상을 위해서죠. 나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손자병법에 '이환위리(以患爲利)'라는 말이 있어요. 고난은 이겨내는 것이며,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죠.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제 회사 역시 몇 년 전부터 주력 물량 감소 등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긍정의 마음으로 이겨내는 수밖에요. 사업 다각화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기존 휴대폰·자동차 부품에 이어 반도체·항공기·수소연료전지 등 신산업 쪽으로 투자를 늘려나가는 중입니다. 곧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합니다."▶'기부왕'으로도 소문이 나 있습니다."배고픔의 한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학창 시절의 기억 때문이지요. 여력이 있을 때 도움을 주자고 다짐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구미 소년소녀가장 20여 명을 해마다 돕고 있으며, 마이스터고 장학재단을 통해 형편이 딱한 기술영재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어요. 내친김에 2015년엔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에도 들었습니다. 모교인 경북기계공고엔 꾸준히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작년엔 경북기계공고 다목적공연장 설립 기금으로 20억원을 기부했습니다. 기부를 계속하다 보니 '기부는 내게 주어진 기회이자 기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상의회장으로서의 어깨도 무거울 텐데요."요즘 구미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는 게 느껴지죠? '반도체 특화단지'와 '방산혁신클러스터' 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구미로 가져오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업을 따내고 기업 투자를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KTX 구미역 신설'이 선행돼야 합니다. 아울러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연계한 고속도로·철도망 확충도 중요합니다. 이는 구미의 힘만으론 만들 수 없습니다. 대구가 힘을 보태줘야 합니다. 저희 회사 부장급 이상 열 명 가운데 일곱이 대구에 주소를 두고 있어요. 이쯤 되면 대구와 구미는 이미 경제공동체입니다. 과거 구미에선 강아지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개 얘기가 나돌 정도로 경제가 번성했습니다. 그런 도시 부흥을 위해 국책사업 유치에 온 힘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훗날 어떤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솔직히 무슨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세상 이치가 그렇잖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무리수를 두게 되거든요. 누가 보든 안 보든 열심히 제 할 일을 해야지요. 저는 정장을 입고도 운동화를 신습니다. 젊은 친구들 말로 '덕후'급은 아니지만 집 신발장에 스무 켤레가량 놔두고 있지요.(웃음) '윤재호 저 친구, 열심히 발로 뛴 구미상의회장'이라고만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운동화 신고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 구미상공회의소 사무실 곳곳에 나붙어 있는 플래카드 속 슬로건이 눈길을 끌었다. '산업 역군과 기업인이 애국자다.' 기업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일에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는 윤 회장의 취임 때 다짐이 변함없이 읽혔다.△1985년 경북기계공고 졸업 △2012년 기능한국인 제70호 선정 △2014년 구미시 최고장인 선정 △2014년 구미상공대상 수상 △2015년 금오공대 명예공학박사 △2016년 대한민국 명장 선정(컴퓨터응용가공)△2021년 2천만불 수출탑 수상이창호 논설위원 leech@yeongnam.com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은 "인생에서 맞게 되는 고난은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무릇 기업가는 '긍정의 힘'을 믿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조규덕기자
2023.03.22
[토크 人사이드] 대구은행 첫 외부 영입 여성임원 이은미 상무 "상사는 능력 갖춘 직원들이 자유롭게 사고하도록 이끌어야"
지난달 종영한 JTBC 드라마 '대행사'는 시청률 16%를 기록했다. 국내 대기업 계열의 한 광고대행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주인공 고아인은 계열사 최초 공채 출신 여성 임원에 오른다. 대구에서도 한 여성이 은행 임원 자리에 오르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올 1월 DGB대구은행 최초의 CFO(최고 재무책임자)출신 외부 영입 여성 전문가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이은미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DGB대구은행 경영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장기화한 경기침체로 DGB금융 계열사 다수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구은행도 향후 실적 개선이 절실하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 상무가 선택받았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점에서 DGB금융그룹 수뇌부가 재무관리 전문가인 이 상무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대구은행본점 PB센터 상담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부하직원의 사고(思考)를 위해 질문하는 상사이 상무는 팀워크를 중요시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스타일이다. 그는 직원들이 자료를 가져오면 항상 '왜'라고 묻는다고 한다. 이 안건을 이사회에 왜 올려야 하는지를 묻고 직원들이 명확한 대답을 하길 원한다. 이 상무의 질문은 부하직원들이 조직이 정한 관습에 매몰돼 본인 판단이 아니라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치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이 상무는 "정답을 바라고 질문하는 게 아니다. 상사가 원하는 정답에 부하직원이 맞추게 되면 더 이상 사고(思考)하지 않고 상사의 눈치만 살피게 된다"며 "금융 관련 데이터가 모이면 인공지능(AI)을 통해 정확한 답을 찾아낼 수 있다. 기술적인 것은 이미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기계는 인간처럼 생각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이 상무의 일과는 명상과 요가로 시작한다. 매일 오전 4~5시에 일어나 잠시 명상을 한 뒤 10분간 요가를 한다. 이어 30분간 조깅을 하고 오전 6~7시에 출근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거시적 관점에서 미국 동향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내 상황을 짚어보려고 노력한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전망을 나름 점쳐보고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는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까? 나빠질까? 그 안에서 은행 경쟁력은 뭐가 있을지 수없이 곱씹어 본다"고 했다.이 상무는 몸이 파김치가 돼서 퇴근한다. 퇴근 후 일상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저녁엔 주로 책을 읽고 유튜브를 시청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TV를 시청하고 주말엔 인터넷 쇼핑을 즐긴다.통역사→재무전문가 변신 "어릴때 외국생활로 영어 익숙 큰 세상 접하고 싶어 재무 공부 미래가치 내다보는 CFO 흥미 SC·도이치·HSBC서 역량 키워 유학 떠나 홍콩대 MBA도 취득"좋은 팀워크서 성과 나와 "조직의 관습에 매몰되지 않도록 직원에 "왜죠" 끊임 없이 질문 외국회사 커뮤니케이션 중요시 상사가 원하는 답에 맞추게 되면 본인 판단 없이 눈치만 보게 돼"◆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에도 하고픈 일 찾아 헤매드라마 속 고아인이 지독한 '워커홀릭'이 된 건 가난했던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이다. 엄마에게 버림받아 고모 손에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탓에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참고서로 공부하며 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성장했다.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성공하지 못하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고 믿는 여린 측면도 있다. 고아인은 불안 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린다. 퇴근 후엔 술과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든다. 투약 부작용으로 몽유병 증세도 있다. 이 상무는 유년 시절을 미국 중부 캔자스주에서 보냈다. 일 때문에 미국으로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낯선 땅으로 갔다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12세)에 귀국했다. 영어는 교사보다 능숙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다. 어릴 적부터 키가 컸던 덕을 봤다. 현재 그의 신장은 170㎝다. 수학에 재미를 느껴 서강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혼란을 겪었다. 오히려 부전공인 '경영학'에 흥미를 느꼈다. 그렇다고 전과나 편입을 하지는 않고 그대로 졸업했다. 이후 이화여대 통역학 석사과정을 거쳐 전문통역사로 한동안 일했다. 어릴 적 해외 생활로 단련된 영어회화 실력을 십분 활용하고 싶어서였다. 이 상무는 "사실 대학 때까지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무작정 유엔에서 연설할 수준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통역학과에 진학했는데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고 했다.통역사로 일하게 되면서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재무도 공부하게 됐다. 29세가 되던 2002년엔 삼일회계법인에 취업해 금융 부문 세무본부에서 일하게 됐다. 맡은 업무가 과거지향적이라서 미래가치를 내다보는 CFO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4년 뒤인 2006년 주식 애널리스트가 됐고, 이듬해 스탠다드차타드(SC) 금융지주의 전략팀으로 자리를 옮겼다.◆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은 몰린다이 상무의 지난 흔적을 들여다보면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는 것을 우대하는 한국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이 상무는 "한 가지 업무를 오랫동안 한다고 모두 잘하는 건 아니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게 중요하다. 직장에서 매일 자정까지 치열하게 일하면서 골치 아픈 일을 많이 해결했다. 덕분에 능력을 인정받아 그 보상으로 싱가포르에 가게 됐다"고 말했다.2008년엔 SC싱가포르 재무관리부에서 일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가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매일 오전 3~4시까지 직장에 얽매여 있었다. 글로벌 예산을 담당한 탓에 61개 예산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2011년 귀국한 뒤 도이치은행 서울지점 재무관리부문장을 맡았다. 이때 MBA(경영대학원)에 관심을 가졌고, 5년 뒤인 2016년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과 영국 런던 비즈니스 스쿨, 홍콩대 MBA를 거쳤다. 2년간 모든 휴가를 활용해가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2019년 귀국해 HSBC서울지점 재무관리부, 2021년 HSBC홍콩 지역본부 아태지역 총괄 상업은행 CFO를 지냈다."맡은 일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잖아요. 일하는 사람만 일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일도 않고 때가 되면 승진한다고 합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을 때 임원을 찾아가 하소연했어요. 일이 재미있고 좋은데 이걸 왜 자꾸 저한테만 주시느냐? 이렇게 따지니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어요. '일은 되는 사람한테 가기 마련이다. 너한테 가면 일이 되니까 그런 거다.'"직장생활은 2001년 결혼 후부터 시작했다. 경상도 출신인 남편은 오 남매 중 장남이다. 그는 "남편과는 대학교 2학년 때 만나 8년간 연애한 뒤 백년가약을 맺었다. 사실 남편과 시부모님이 도와준 덕분에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내와 엄마, 며느리로 살면서 동시에 직장을 다니는 게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하게 되면 여러 조건을 재게 된다. 돈을 선택하는 것보단 꿈을 좇는 게 낫더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 험난한 일이라도 내가 좋아하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승부수를 던질 수 있지 않으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명언도 있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이은미 상무는 한국과 외국의 직장인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직원의 개별적 능력이 뛰어난 반면, 외국은 평범한 편이다. 그런데 외국의 성과가 한국보다 뛰어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협업 때문이다. 외국은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DGB대구은행 제공〉
2023.03.08
[논설위원의 직터뷰]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디지털 매핑 이어 AR 도입…과학관 같은 역사박물관 만들겠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어디든 땅을 파면 유적과 유물이 발견될 정도니 도시 자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신라 문화의 정수를 오롯이 집약해 놓은 곳이 경주박물관이다. 쌀쌀한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달 23일,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 깨끗하게 정돈된 조경이 쾌적한 느낌을 준다. 몇 발짝 걷자 메인 전시관인 신라역사관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건축미가 돋보이지만, 전체 주변 풍경은 꽤 낯설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예전에 이곳에 왔던 건 수학여행 때 딱 한 번, 그것도 무려 40년 전이었으니. 오랜 세월을 핑계로 내 기억에선 희미해졌지만 경주박물관은 그 반대였다. 세월을 자양분 삼아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다. 박물관의 역할도 단순한 유물 전시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보고, 즐기고, 추억을 쌓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박물관 문외한일지라도 누구나 체감할 수 있다. 당초 경주박물관에서 신라역사관과 미술관, 특별전시관, 영남권 수장고 등 거의 전체 시설을 돌아볼 생각은 없었다. 더구나 있는 줄도 몰랐던 박물관 내 커피숍에 앉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월정교를 보게 될 줄도 몰랐다. 그건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친절한 안내 덕분이었다. 그날 운도 좋아서인지 때마침 열리고 있던 특별전(金鈴·어린 영혼의 길동무)도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다. 신라 능묘 금령총에 묻힌 아이의 삶과 사후 여정을 대형 영상으로 보는 것도 인상 깊었다. 스토리텔링과 디지털 기술 덕에 전시 유물의 생동감이 온전히 전해지는 듯했다. 분명 박물관은 살아 있다. 관람과 견학의 고유 역할에 더해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앞으로 박물관은 어떻게, 얼마나 더 진화할까. 지난해 9월 부임해 경주박물관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함순섭 관장으로부터 박물관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진화하는 경주박물관 "박물관은 이제 유물과 첨단기술 공존 내부 시설 싹 바꿔 관람 최적화하고 영상 접목 등 전시관 디지털화 속도 비밀 품은 월지유물 프로젝트도 추진"▶본인 소개를 하자면."경주 쪽샘(황오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곳은 그 당시에도 유적 발굴이 활발했기에 학교를 오가는 길에 발굴현장을 보는 게 일상사였다. 어릴 때여서 무슨 이유였는지는 몰랐지만 땅을 파헤쳐 나온 물건들을 붓으로 털고 하는 작업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나중에 경주어린이향토학교를 다니면서 문화재 발굴의 의미를 알게 됐다. 경주에서 태어난 덕에 역사문화 프로그램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게 향후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고등학교(경주고) 졸업 후 경북대와 대학원에서 사학과 고고학을 전공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리고 직장을 구할 시점에 아무래도 문화재 관련 업무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근무지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학예사, 큐레이터, 관장 등 박물관 종사자 중에 경주 출신이 가장 많다. 어릴 때 체험한 문화적 정서의 영향이 그만큼 큰 것 같다."▶거쳐온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박물관 업무와 관련해 상당한 능력을 갖춘 듯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본인의 경쟁력은."대단한 능력자는 아니고 관심을 두고 노력한 부분은 있다. 우선 기획전시를 많이 했다. 그중 10여 년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내 최대 규모 고분인 '황남대총' 특별전을 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최고 박물관에서 신라 문화의 정수를 소개했다는 점과 함께 당시로선 생소했던 스토리텔링 기법을 고고학 전시에 접목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느껴지는 고고학을 대중적 글쓰기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는데, 그 덕분인지 전시 기간에 발간했던 도록이 완판되는 이례적인 일도 있었다. 또 행사가 끝난 후 전시공간이 G20회의장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박물관의 다양한 활용도를 목격하기도 했다. 이외에 고고학 전공자로서 도면을 해석하고 그리는 데 익숙하다. 이런 장점이 반영돼 박물관 신축 및 이전 작업에 많이 관여했다. 중앙박물관 용산 이전, 부여박물관 재개관, 김해박물관·대구박물관 신축에 참여했다."▶오랜만에 와보니 예전에 알던 박물관이 아니었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전시관이 세련되고 고급스러워진 것이다. 경주박물관도 1975년에 지어진 건물 외관은 그대로지만 실내 인테리어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조명과 진열장 등이 관람에 최적화됐고, 전시관 입구는 호텔 로비를 연상케 할 정도로 실내 디자인도 품격을 갖췄다. 또한 전시관의 디지털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제 박물관은 고대 유물과 현대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장소인 셈이다. 우리 박물관에선 이미 디지털 매핑 영상을 적용해 이차돈 순교비를 비롯한 유물 전시에 활용 중이다. 유물에 담긴 스토리를 입체적이고 생생한 영상으로 접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이와 함께 휴대폰으로 관람의 재미를 배가할 수 있는 AR(증강현실) 기술도 도입할 예정이다."▶관람객의 눈높이에 맞게 박물관도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박물관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하고픈 일은."가장 중요한 게 이용에 차별이 없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박물관이 오래된 편이라 장애인, 노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한 형편이다. 박물관을 찾는 누구라도 불편함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편의시설 확충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리고 월지프로젝트도 10년간 추진할 계획이다. 월지(月池)유물은 3만3천점이나 되지만 70년대 중반에 발굴돼 대부분 수장고에 쌓여 있는 상황이다. 박물관 직원들이 먼저 건의해 시작하게 됐는데, 월지유물 분석을 통해 통일신라의 생활문화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경주 문화관광의 시작과 끝"차별 없는 박물관 이용이 가장 중요 장애 노약자 편의시설 확충에 주력 수려한 조경 속 휴식…석양도 일품 체험 가득한 천년보고 봄나들이 추천"▶경주박물관에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줄 몰랐다."박물관 정원에 다보탑과 석가탑 모형이 있는데 그걸 진짜 탑으로 아는 사람도 일부 있다. 모형을 전시하는 건 박물관 취지에 맞지 않기에 그 탑들은 남쪽 부지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박물관 뒤뜰에 있는 고선사 삼층석탑과 건물지를 옮길 계획이다. 고선사는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유서 깊은 사찰인데, 1970년대 덕동댐 공사로 수몰되기 전 탑과 건물지가 지금 자리로 급하게 옮겨진 것이다. 고선사탑을 중앙 정원에 다시 옮긴 후에는 AR기술을 이용해 탑과 함께 옛 고선사 모습을 영상으로 다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과학관 같은 박물관인 셈이다. 성덕대왕 신종, 신라금관에 더해 고선사 탑도 경주박물관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경주박물관 100배 즐기기 팁 같은 것도 좋고 마무리 인사를 해달라."박물관은 단지 유물을 관람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깼으면 좋겠다. 먼저 매년 이슈가 되는 주제로 여는 기획전시회를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경주박물관은 조경미도 뛰어나다. 곧 봄이 오면 50년 된 벚나무와 꽃들이 만개해 수려한 자태를 뽐낼 것이다. 또 커피숍에서 보는 석양도 일품이다. 올해 경주박물관 방문객이 130만명쯤 될 것인데, 모두가 편안하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나아가 우리 박물관을 경주 역사문화관광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만들고 싶다."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함순섭 관장 주요 경력=△중앙박물관 고고부 학예연구사 △중앙박물관 개관전시팀장 △대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 △대구박물관장
2023.03.01
[토크 人사이드] '금니사경 국내 최고 기록' 대구 이순자 명인 "800m 고려장지에 56만자 금니사경…20년간 땀과 혼 녹여낸 역작"
올해 초 우연히 한 신문을 보다가 서울에서 열린 '이순자 금니사경 KRI 한국기록원 공식 최고기록 인증서 수여식' 관련 기사를 보고는 '도대체 금으로 어떻게 사경을 해서 한국기록원 최고기록에 도전한다는 말이지' 하며 궁금해했다. 박물관 등에서만 보던 금니사경으로 이런 도전을 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 주인공이 대구사람인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궁금증과 함께 귀하디귀한 금으로 일필휘지해야 하는 금니사경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작동했다. 수소문 끝에 금니사경의 명인인 이순자(67) 작가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사경은 고려시대 때 전성기를 맞았으나 조선 숭유억불정책 영향으로 전통의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이 작가는 집념과 열정으로 사경의 맥을 살리는 데 온 힘을 다했고 고려 천년의 혼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천년 전의 고려사경 제작방식으로 필사했으며 고려장지 위에 이를 재현했다. 그의 작품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고려때 방식으로 법화경 필사 맥 끊겼던 고려장지 위에 재현 사경은 왕족과 귀족들의 문화 종교적 의미 넘어선 종합예술 올해 유럽 전시회 진출도 추진 남편 기운 북돋우려 사경 시작 작업하며 더 큰 환희·발심 경험 금강경·아미타경 등 작품 다수 16개국 韓대사관에도 소장돼" ▶'금니사경'이란."한마디로 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 즉 금니(金泥)로 불교경전을 베끼는 일이나 그런 경전을 의미한다. 금니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때 사용하며, 어두운 바탕의 종이에 사용하면 일반 먹과는 또 다른 독특한 효과를 낸다. 선조는 후세에 전하거나 축복을 받기 위해 경전을 필사했으며 사경을 수행의 한 방법으로도 활용했다. 우리나라 사경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때 전성기를 누렸다."▶사경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됐다니 놀랍다."사경은 고려시대에 번창한 불교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다. 왕족과 귀족들이 앞다퉈 사경을 했다. 하루 일 중 사경하는 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도 했다. 고려 사경은 종교적인 것을 넘어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서예와 회화, 공예적 요소가 포함된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사경이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한 한 방편이었지만 예술성과 수행으로서의 중요한 가치가 오늘날까지 그 맥이 이어지는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어떻게 사경을 하게 됐나."어릴 적이었다. 오빠가 베트남전에 파병 참전하자 아버지께서 전역해 귀국할 때까지 3년 가까이 매일 새벽에 개울에 나가 세수하고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기도드리는 모습을 봤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빠져들었다. 사경은 결혼 후 남편이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할 때 처음 하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이 사업가로 탈바꿈하는 게 쉽진 않았다. 남편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기도와 함께 사경을 했다."▶사경공덕을 강조했는데."불교에서는 본래 세상에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또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릴 때 공덕이 된다고 가르친다. 사경은 공덕을 쌓는 신행이다. 한참 사경에 빠졌을 때는 2~3시간만 자고 했다. 지금도 가급적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밥 먹을 때와 잘 때 외에는 사경을 한다. 늘 비우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사경이 여러 변화를 일으켰다고 했는데."사업하는 남편의 마음을 좀 더 편하게 해주려고 시작했는데 내 마음부터 편해졌다. 사경 수행을 통한 내 마음의 평온이 남편에게도 그대로 전해진 것 같다. 집안 전체가 그 전보다 훨씬 따뜻하고 웃음이 많아졌다. 믿기 어렵겠지만 몸도 건강해졌다. 특별한 병이 없는데도 온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경을 한 뒤 어느 순간부터 그런 현상이 잦아들었다."▶금니사경 작가로 특히 유명하다. 금니사경을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남편 때문에 집에서 기도사경을 하다가 한 박물관에서 금니사경을 봤을 때 느낀 환희심이 금니사경으로 이끌었다. 금니를 사용한 경전을 장엄경이라 하는데 일반 작품과 달리 금니사경은 회화성이 강한 입체적 작품이라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더 공을 들이는 과정이다. 더 큰 환희심과 발심을 일으키는 경험을 하게 됐다."▶금니사경을 하는 데 여러 도움이 있었다고 했다."금니사경에는 세 가지 요건이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첫째는 금이라 재료가 워낙 고가이고 글씨가 세필이라 감정 기복이 없어야 해 가족의 도움이 절실하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모든 생활을 절제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잔소리 한번 없이 재료를 사도록 도와준 남편, 평온한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준 가족에게 감사하다. 성파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금니사경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옻칠한 고려장지였는데 성파 스님이 명맥이 끊긴 고려장지를 되살려내셨다. 그 귀한 것을 아낌없이 주셨다. 이런 귀한 인연이 금니사경 제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금니사경을 고려장지에 한 이유가 있나."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반 한지에 사경을 했다. 하지만 사경에 깊이 빠지다 보니 사경의 역사, 재료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그동안 일본종이에 사경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를 큰 돌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박물관에 잘 보관된 금니사경처럼 전통 금니사경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고려장지가 필요했다. 옻은 금과 궁합이 잘 맞는 데다 금의 색감을 더욱 잘 살려준다. 옻은 한지에 방수벽을 형성해 금니가 종이에 흡수되는 것을 막아주고 한지의 생명도 더 길게 한다."▶사경한 작품은 어떤 게 있나."국내 최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법화경 금니사경을 비롯해 금강경, 아미타경, 보현행원품, 반야심경, 변상도, 길상도 등이 있다. 초기작인 법화경 금니사경은 대구 대견사와 경기 천태종 대광사에 봉안되어 있다. 동화사 약수암에서는 금강경, 충남 고왕암은 아미타경을 봉안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유엔 16개국 한국주재 각국 대사관에도 작품이 두루 소장돼 있다."▶국내 사경 명인 1호 인정에 이어 한국기록원 최고 기록에 도전해 성공했다."2016년 한국예술인총연합회에서 사경명인 1호로 인정받았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폭 33㎝, 총길이 800m 이상의 고려장지 위에 금니로 묘법연화경을 필사했다. 이 작품은 1세트에 7권이고 총 8세트로 구성돼 있다. 총글자 수만 56만자에 달하는 역작이다. 오랜 시간 땀과 혼이 녹아있는 이 작품이 KRI 한국기록원 공식 최고기록 인증을 받아 감격스럽다."▶앞으로의 계획은."2019년 중국 국립섬서성박물관에서 외국작가로는 처음 초대돼 전시를 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일본, 중국 전시는 물론 유럽으로 전시를 넓혀나가고 싶다. 유럽 진출은 조만간 결정이 날 듯하다. 내친김에 미국 WRC세계기록위원회 등 해외 기록인증업체에도 인증 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8세트인 법화경을 10세트까지 채우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욕심내지 않는 부처님의 일하는 사람으로 금니사경을 재현하는 일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고 싶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20년에 걸쳐 완성한 56만 글자의 '묘법연화경' 금니사경 작품으로 KRI 한국기록원 공식 최고기록 인증을 받은 이순자 명인은 사경을 하면서 비우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며 올해 유럽 진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긴 사경 제작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묘법연화경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지용기자이순자 명인(불교문화)이 20년에 걸쳐 완성한 56만 글자의 '묘법연화경' 금니사경작.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23.02.15
[토크 人사이드] 강성환 대구 달성복지재단 이사장 "이웃집 굴뚝 살피며 음식 나눴듯 더 촘촘한 복지망으로 사각 줄일 것"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현 최재훈 대구 달성군수와 국민의힘 공천을 놓고 치열한 혈투를 벌이다 낙마한 강성환 전 대구시의원. 그가 제9대 달성복지재단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임기는 2년. 강 이사장 선임에는 최 군수의 애정 담긴 지원 사격이 있었다. 지역사회 대다수는 쌍수를 들어 반대했지만 최 군수는 특유의 뚝심과 통솔력으로 관철시키며 달성의 새 역사를 썼다. 소통과 통합으로 하나 되는 달성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다. 최 군수는 민선 8기 취임할 때 달성 발전을 위해서라면 가치와 지향점이 다른 사람과도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겠다고 약속했고, 그걸 실천했다. 강 이사장도 이런 부분에 놀라워하며 달성 발전에 함께 뛸 것을 다짐했다. 지난 19일 강 이사장을 화원읍 달성복지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나 운영 방향 등을 들어봤다."위드코로나에선 복지 정책 다양화 비대면 확충 등 효율적 서비스 준비 고독사 위험층 발굴과 지원도 강화 복지재단 모든 직원들 자부심 품고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달성에서 기업체 운영하는 분들도 지역 환원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 최재훈 군수가 지역 사회의 반대에도 소통·화합 큰 뜻으로 내게 중책 맡겨 달성 혁신의 꿈 이루도록 힘 보탤 것 이사장·상임이사 모두 구지 동향 탓 일각선 지역 편향적 선임 주장하지만 출신보다 잘할 수 있는 능력 봐주길"▶취임 소감은."흔히 경쟁 대상자를 중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진영 논리에 의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중용해 준 최재훈 달성군수에게 온 마음으로 감사드린다. 통 큰 가슴으로 배려해 준 점에 대해선 한편으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그리고 늘 지역 발전을 위해 밤낮으로 열과 성을 다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서도원 군의회 의장을 위시한 군의원, 기관 사회단체장에게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단체장 공천을 못 받은 뒤 무소속 시의원에 출마해 낙선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선거일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새벽에 나와 밤늦게 귀가했다. 그러다 한순간에 할 일이 없어졌다. 처음엔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중 산과 하천에서 맨발 걷기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던 인생인데 이제는 옆을 쳐다보고 뒤도 돌아보며 자연을 만끽할 생각이다. 이게 더 아름다운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취임 6개월이 지난 최재훈 달성군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사실 처음에는 여러 경험이 부족해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고, 지금은 많은 군민으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고 있다. 타 지자체로부터는 시샘을 받을 정도다. 일선 지자체 단체장이 가질 수 있는 허례허식(虛禮虛飾)을 멀리하는 모습은 귀감이 된다. 그리고 직원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오직 군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는 최 군수가 이루고자 하는 꿈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생각이다."▶이사장 선임을 놓고 잡음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 해결해 나갈 계획인가."정치권의 진영 논리로 최 군수가 많은 비난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를 중용한 것은 최 군수가 화합하고자 하는 큰 뜻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잡음이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열심히 하면 해소될 것으로 본다. 이사장과 상임이사가 달성 구지 출신인 탓에 지역 편향주의란 말도 있는데,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화원에서 거주한 지 43년 됐다. 고향인 구지보다 화원에서 더 오랜 기간 생활해 이제는 화원 사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달성군 전체 인구 중 달성이 고향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10%도 안 될 것이다. 고향보다는 한 분야에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느냐를 봐줬으면 좋겠다."▶달성복지재단 조직이 축소되는 분위기가 많다."1인당 국민소득 3만5천달러, 살기 좋은 세상에 세끼 배를 못 채워 굶거나 학비가 없어 배움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촘촘히 살피겠다. 어릴 때 부모는 이웃집 굴뚝에 연기 나는지 살펴 먹거리를 나눴다.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살펴 베풀면 잘사는 달성이 될 것으로 믿는다. 가장 중요한 고객은 달성복지재단 식구다. 제 임무는 복지재단 직원들이 자부심을 품고 군민을 위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화합하고 배려하며 전국 제일의 달성복지재단을 만들도록 하겠다."▶달성 복지 발전을 위해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점 과제는."최근 언론에서도 많이 지적하는 내용이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모든 부분은 그분들이 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고립돼 살아왔다는 것이다. 홀로 외롭게 쓸쓸히 고인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심지어는 고인이 된 지 몇 개월, 1년 후에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이 안 계시도록 달성복지재단이 발굴해 지원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민들의 열렬한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비대면·고령화·저출산 등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복지정책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위드 코로나 상황에서는 대면과 비대면이 같이 가야 한다. 그동안 비대면에 대해 생각하지 못해 대처가 늦어진 경우가 간혹 있었다. 이제는 복지서비스도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 단계별로 코로나19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비대면 서비스를 강화하고, 완화된 상황에서는 대면 서비스를 강화하는 식이다.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대비하겠다. 앞으로는 복지도 대상자와 그 상황에 맞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잘 먹고 잘살게 해 주는 게 복지이기 때문에 대상자 욕구를 최대한 반영해주는 그런 복지가 필요하다. 그런 복지를 추진하는 중심에는 달성복지재단이 분명 있을 것이다."▶달성복지가족과 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복지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군민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본인과 복지재단 가족들이 노력하고, 군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달성군 복지 사각지대는 해결되리라 믿는다. 달성에서 기업 하는 분들이 지역 사회에 환원 사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어려운 분들을 돕거나 기부하고 싶어도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부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복지행정을 펼쳐 나가겠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강성환 대구 달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달성복지재단을 전국 제일의 복지재단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023.01.25
[토크 人사이드] 이재하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대구發 원천기술 확보 위해 연구개발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절실"
이재하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의 조속한 추진을 제안했다. 그는 "대구에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까 대구 청년이 계속 빠져나간다"면서 "통합신공항을 빨리 건설해 교통 인프라를 갖추면 젊은 인력이 지방에 남을 것이다. 교통인프라에 고급인력이 있는 지방에는 대기업도 유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오후 이재하 대구상의 회장이 그룹 대표로 있는 대구 달서구 삼보모터스〈주〉 본사를 방문, 대구 경제에 대한 의견과 CEO로서 걸어온 길에 대한 소회를 짧게나마 들어봤다."물가가 싼 대구는 임금 올라가면 기업 경쟁력 떨어질 수밖에 없어 대기업 유치 통한 임금상승 유도 지역의 실정에는 맞지 않는 대책 지방대 살리고 교통 편하게 해주면 좋은 기업 오고 인재들도 남을 것 주 52시간제는 기업 발목 잡는 정책 일감 몰려도 일 더 못해 납기 지연 현행 근로시간 관리단위 개편되면 업종별 효율적 사용 여건 조성돼야"▶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건설하면 젊은 인력들이 지방에서 일할 것이라 예측했는데. "통합신공항이 건설되면 신공항 연계 교통망 구축과 공항 배후도시 조성, K-2 부지 개발사업 등을 기반으로 우리 지역이 한층 더 발전할 것이다. 인력 부족은 우리 지역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대구 청년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있는데, 젊은 고급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서 그렇다. 윤 대통령이 지역에 방문해 건설, 교통 등 인프라에 대한 약속을 여러 차례 했다. 인프라가 갖춰져야 젊은 인력이 지방에서 일하려고 할 것이다. 경기도민들은 서울로 출근하는 데 불편이 없다. 대구 역시 인근 도시로 편리하게 출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신공항 건설로 장거리 국제선이 운항되면 출장, 휴가를 위해 대구에서 인천공항까지 반나절 걸려 이동하는 불편이 확 줄어든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생활할 수 있어야 좋은 일자리도 생기고 좋은 기업도 유치된다."▶대구상공회의소는 지역 기업의 애로사항을 주기별로 수합하는데, 대구 기업들의 가장 큰 애로는 무엇인가 ."올해 세계 경제를 뿌리째 뒤흔든 것은 '3고(高)'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다. 세계적 인플레와 미국의 금리 인상이 국내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환율이 급등해 수입가격도 급등했다. 여기에 유가까지 치솟아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소비마저 위축돼 자금사정 악화로 힘들어하는 지역 기업들이 즐비하다. 연말이 되면서 자금 사정은 더 힘들어지고 있다. 금리 때문이다. 문제는 내년에도 더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리 차이가 1.25%포인트인데, 더 벌어지면 외국인 자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유출될 것이고, 원화가치도 따라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국내 금융 외환시장의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글로벌 경제 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지역 경제에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위기 속에서 우리 지역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대내외 환경 변화에도 끄떡없는 기초체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역 경제의 현안해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대구상의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구 경제의 가장 큰 현안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 광역교통망 구축, 미래차·로봇·헬스케어 등 미래 신산업 육성과 동력 확보, 대기업 유치 및 중견기업 육성, 지역 특화산업 경쟁력 강화다.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대구 특성상 연구개발(R&D)을 통한 원천기술 개발이 기업 성장에 꼭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역기업들이 연구개발에 전념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1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는 데 대부분의 기업들이 찬성하고 있다. "대구상의가 최근 지역기업 270여 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6.9%가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개편하는 데 긍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업종별로는 제조업의 90.9%, 비제조업의 77.1%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제조업의 긍정 답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인력이 중요한 제조업은 주 52시간제도에 민감하다. 예를 들면 농기계업체는 상반기에 일감이 몰려도 일을 추가로 할 수 없어 납기를 맞추지 못하기도 한다. 고무화학제조업체는 신규인력을 못 구해 설비를 멈추기도 한다. R&D는 또 어떤가. 기업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기업연구소에서 주 52시간만 근무하는 게 가능하겠나. 결론적으로 주 52시간제는 그동안 기업의 경쟁력에 발목을 잡는 정책이었다. 개편되면 업종별로 여건이 다른 만큼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대구시와 지역 경제를 위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경제라는 것이 어느 한 주체만 잘해선 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주체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내년엔 올해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현재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경제 발전의 주역은 바로 우리 지역 상공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자는 것이다. 기업들은 지역 경제가 힘들 때마다 경제를 앞장서 이끌어왔다.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정부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의 해결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뉴노멀 시대의 기업 역할이다. 또 '기업이 곧 국가'란 말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가발전을 위해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기업과 경제는 국민 생활과 직결돼 있다. 그만큼 기업인의 역할은 중요하다."▶대구 근로자들의 임금, 왜 이렇게 낮나."물가가 싼 대구는 임금을 올리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 대기업을 유치해 대구 중소기업들의 임금상승을 유도한다는 대책도 우리 지역엔 맞지 않다. 대기업 입장에선 교육, 교통 등 환경이 안 좋아 대구로 안 내려온다. 지방대를 살리고 교통을 편리하게 해주면 대기업도 오고 지역인재도 계속 남아 있는다."▶성공한 CEO라는 평을 받고 있는데,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오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다 잊고 살겠다. 1979년 사업을 시작해 43년간 내 시간 없이 쉼 없이 달려왔다.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이제 혀 빠진 칠십 아닌가. 사람들은 내가 이룬 삼보모터스를 떠올리며 대단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든 43년 한길을 파면 이 정도는 다 해낸다. 겸손이 아니라, 한 가지에 매진 안 하니까 못하는 거지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건 없다."▶사람을 뽑을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보나."집념이 있나를 유심히 관찰한다. 척 보면 안다. 능력 있어도 떠날 사람은 안 뽑지만, 능력 좀 부족하더라도 일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두말없이 뽑는다."▶CEO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나."법인(法人)이 뭔가. 한자 그대로 법이 만든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 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CEO는 이런 능력자인 사람들을 잘 조합해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굳이 특별한 재능을 갖출 필요까진 없다. 대신, 사람들을 잘 보살펴 어우러지도록 조율하는 지휘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지금은 머리 좋은 한 사람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해가 강하면 그림자가 짙어진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이재하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조속히 건설해 공간 이동이 편리해지면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2022.12.28
[토크 人사이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에게도 할 말 하는 당대표 필요…전대출마 상황 지켜볼 것"
차기 유력 당권 주자인 나경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여권의 관심은 뜨겁다. 나 부위원장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이어 외교부 기후환경 대사 등 정부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몸값을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대구경북(TK) 시·도민들은 나 부위원장의 차기 당권 도전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서 나 부위원장은 TK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인단(책임당원) 투표에서 이준석 대표를 앞섰다. 지난달 영남일보 창간기념 당 대표 적합도 조사(10월5~7일·에이스리서치·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참조)에서도 나 부위원장(23.0%)은 TK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 주호영 의원(19.0%), 안철수 의원(17.9%)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나 부위원장은 "(인터뷰하면) 맨날 정치적인 것(주제)만 뽑아내서"라며 '정치인 나경원'에 대한 질문에 부담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러 정치 현안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으며 차기 당권 도전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어떤 기구인가."대통령 직속위원회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위원장이시고, 제가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에 관한 정부 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집행기구는 아니지만, 대통령께서 저에게 임명장을 주시며 집행기구처럼 일하라고 하셨다. 그만큼 윤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강력한 해결 의지를 보이셨다."▶경북도 저출산·고령사회의 대표적 지역이다."저출산·고령사회의 원인은 굉장히 많다. 특히 경북을 비롯한 지방은 의료서비스가 충분하지 못하다. 대응 핵심 어젠다 세 가지는 '건강' '돌봄' 그리고 '일자리'로 요약된다. 지방에선 내가 아플 때 빨리,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아이를 낳아도 돌봐주고,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수도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도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제가 그 대안들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을 평가한다면."승복하지 않는 야권으로 인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해 안타깝다. 지금 대한민국은 인구와 기후변화란 두 가지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우리 사회가 인구 구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기후 문제는 인류 생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녹색 기술이란 미래 먹거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미래 어젠다인데 이런 부분을 논의하기에는 (야권이) 발목을 너무 많이 잡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국정 어젠다에 부응하는 법안은 한 건도 통과시키지 않고, 예산 심의조차 제대로 안 해 주려고 한다. 마치 윤석열 정부는 양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는 것처럼 한 걸음 나가기가 굉장히 힘들다. 모래주머니를 뗄 수 있는 것은 민심이다. 대한민국 미래에 항상 책임감 갖고 도와주시는 TK 유권자들께서 마음을 모아주셔야 한다."▶차기 당권 도전 의사는 있나."상황을 지켜보겠다. 아니, 진짜 지켜보게 된다. 왜냐하면 (차기 당 대표) 하시고 싶다는 분이 너무 많다. 솔직히 두 가지 어젠다(저출산고령사회와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을 하루빨리 내놓고 싶다. 지금이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굉장히 중요한 어젠다이기 때문에 한 걸음이라도 나가고 싶다. 그런데 이런 어젠다를 해결하는 힘은 첫 번째가 대통령에게서 나온다. 두 번째 힘은 정치에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당이 잘되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당이 안 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야당이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막고 있다. 여당이 야당에게 단호하지도, 그렇다고 협조를 받지도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여당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당심은 나경원, 민심은 유승민 전 의원'이라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다."우리 당이 어려울 때 당원들과 함께 일으켜 세우려고 많이 노력했고, 고생했다. 광화문에서, 동대구역 앞에서 당원들과 애환을 같이 했고, 당에 대한 애정이 가장 많다고 보시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의 집권 여당 대표는 단호할 땐 단호하고 협력을 이끌어야 할 땐 협치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부합한다고 당원들이 생각하시는 것 같다. 강단 있으면서도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당원분께 늘 고마울 따름이다."여전한 당대표 출마 카드"내부 잡음·분열로 국민 피로도 높아 당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리더십 절실TK출신만이 꼭 TK를 대변하지 않아오히려 지역발전 동력 떨어질 수 있어"저출산·고령화 해결 의지"급격한 인구 감소와 기후변화 위기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회될 수도대응 핵심어젠다는 건강·돌봄·일자리지방 열악한 의료·보육 해법 찾겠다"▶당 대표로서 본인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강단 있는 리더십, 용기 있는 리더십, 그러면서도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이라 생각한다. 저는 계파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우리 당은 차기 총선을 앞두고, 공천 때문에 친윤·비윤으로 갈라져 싸우지 않을까 걱정된다. 당내 잡음과 분열로 국민의 피로도가 높아져 있다. 지금은 협치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을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리더십과 쓴소리도 할 수 있는 당 대표가 필요하다."▶강성 보수라는 평가가 많다."그런 시기에(20대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렇게 처절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너무 왼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잡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저는 여러 가지 사회 이슈에 있어 상당히 진취적인 편이라 스스로 생각한다. 4년에 한 번씩 국회가 새롭게 구성되면 한국정치학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이념 지표를 조사한다. 그러면 늘 (저는) 우리 당에서 중도 쪽에 가까운 TOP 10 안에 포함됐다. 대북, 안보 문제에선 보수, 사회·복지 등 기타 분야에선 진취적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한다."▶국민의힘 차기 총선 필승 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차기 총선은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윤석열 정부 지지율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이냐가 관건이다. 지지율 상승의 핵심은 경제에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현 정부에 여러 가지 불만이 있지만, 경제 상황보다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집값 하락, 이자율 상승, 인플레이션 등 우리 경제는 어느 것 하나 좋은 것이 없다. 결국 경제 위기를 유능하게 헤쳐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팀이 유능한데 여기에 정무적 감각이 필요하다. 그 부분만 조금 더 강화한다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도 올라갈 것이고, 총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여당이 대통령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내에서) 대통령께 지나치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런데 (당) 밖에서 불필요한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잘한 것에는 아낌없이 힘을 보태고, 아닌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당 당 대표는 대통령과 신뢰 관계가 깊은 인물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신뢰하지 못하는 인물이 당 대표가 되면 원활한 소통은 어려워진다."▶친윤·비윤 간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권력을 두고 싸우는 것이다. 친윤·비윤 갈등뿐만 아니라 친윤 내부에서도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같은 내부 갈등으로 우리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과거에도 친박·진박이 자기들끼리 권력을 잡으려다 더 내리막길을 걷지 않았나.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선당후사의 마음을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선사후당하면 공도동망(共倒同亡)할 수 있다."▶대구경북의 숙원 사업이 많다."TK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꼭 TK 출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발전에 동력 또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올바른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TK 정서와 가장 비슷한 정치 철학을 가진 인물이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야 TK 숙원 사업들도 신속하게 이루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나경원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am.com
2022.11.23
[토크 人사이드] 김정길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초대 원장 "통합된 조직 독립성 깨지 않고 혁신경영 기본방향 다듬어 갈 것"
재공모 끝에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초대 원장으로 김정길 전 TBC 대구방송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그가 수장을 맡은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대구문화재단·대구오페라하우스·대구관광재단·대구문화예술회관·대구콘서트하우스·대구미술관 등 총 6개 문화·예술·관광 관련 기관이 통합돼 이달 초 출범했다. 지역 문화계에선 각자 다른 분야 기관이 합쳐진 만큼 각 기관의 기능과 위상 저하를 우려하면서도, 개혁이 필요한 일부 기관에 대한 재정비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18일 김 원장을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사무실에서 만나 앞으로 진흥원 운영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초기 1년 체계 무너뜨리기보다기관 대표 중심 본부장 체제로재정 건전성 살리는 지혜 수렴시민참여 메세나 운동 펼칠 것관장·본부장 공모는 엄정하게계파인맥 등 풍문 불식시켜야시립예술단 역량있는 우수단원정년땐 촉탁직 신분 고용 적합 ▶진흥원 조직 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계획하고 있나."출범 초기 1년은 기존 조직 체계를 크게 무너뜨리기보다는 기관별 대표를 중심으로 본부장 체제로 구성하고, 내년 사업계획이나 연속성 있는 문화사업 등은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규모로 혁신경영의 기본방향을 다듬어가겠다. 수익이 중심이 되는 다른 시 산하 기관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수익 경영으로 예산을 쓰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불합리한 부분은 보완하고 시민의 문화 향유권을 높이면서 재정 건전성도 살리는 그런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다."▶통폐합 기관 중 문화예술회관, 문화재단에서 수장을 맡았다. 그때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통합된 조직 운영에 큰 도움은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문화예술계 원로, 대구예총·대구민예총 등 지역 예술인단체와 지역 대학 예술학부 교수 등 다양한 문화 영역 인사들의 조언과 지원을 얻어내면 난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과거 수장으로 있을 때와 비교해 지역 문화계 변화가 큰데,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과거 문화재단은 대구시로부터 예산을 받아 규정과 공식 관행에 따라 나눠주는 형태의 경영구조가 중심이었다고 기억한다. 현재 재단 업무 보고 자료를 토대로 살펴본다면 재단 규모도 엄청나게 확장되었고, 문화예술계 역량 또한 새로운 장르를 포용해가며 다양한 편제를 짜서 수행되고 있는 것 같다. 구성원의 직무 역량도 그만큼 성장했으리라 믿어진다. 시에서 파견 근무를 오는 건 앞으로 해소되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려면 스스로 역량을 축적해야 할 것이고, 이를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각자 전문성 있는 기관이다 보니 제대로 된 통합이 가능한지 우려하는 시각이 여전히 있다.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중요하고 어려운 과제인 건 맞고, 우려도 이해하고 있다. 물리적 통합만으로는 시너지나 혁신의 효과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본다. 목표 공유는 하되 조직별 업무 특성이나 독립성이 깨지거나 축소·변형되지는 않아야 하고, 이를 유의하려고 한다. 다만 조직간 목표 공유를 전제한 운영을 해나가면 직무·부서 간 업무 효율성 등 부수적인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8개 본부의 본부장 공모가 완료되면 구체적인 업무융합 방안을 정립해 실행해나가겠다."▶문화재단 대표였을 당시 메세나 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한 계획은."향후 수년간 시 재정을 건전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이는데, 문화예술 분야 예산 확대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문화예술재정의 건전성을 위한 메세나 활동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인구 18만인 스위스 바젤은 시 미술관에 피카소 작품을 사서 소장할 것인가에 대해 주민투표를 진행해 54%가 찬성했고, 이것이 계기가 돼 없는 예산을 빚내가며 그림을 사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 아트 바젤은 세계 3대 아트페어로 성장했고, 프랑스의 피악(FIAC)을 능가하고 있다. 우리도 시민들을 대상으로 '예술사랑 캠페인'과 '메세나 운동'을 전개해 시민 20%의 참여만 끌어내도 가능한 일이다. 18만 바젤시민이 한 것을 대구시민이 못 할 것도 없다."▶진흥원 운영 방향에 있어 향후 관장·본부장 인사도 중요하다는 게 대구 문화계의 의견이다."공모 절차의 요강 입안을 끝냈고, 조만간 공고가 될 예정이다. 공모를 엄정하게 하는 것은 칼날처럼 지킬 것이다. 업무 전문성을 기본으로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계에 '카르텔' '계파인맥'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비생산적 풍문을 잠재우고 불식하기 위해선 훌륭한 분들이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다."▶시립예술단 위탁운영을 진흥원이 맡게 됐다. 어떤 식으로 운영해나갈 계획인가."예술단이 성실하게 활동을 펼쳐나가고, 기량 향상을 치열하게 해나가도록 지원과 독려를 해나갈 것이다. 예술단 또한 스스로 자신들의 역량과 기량을 높이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전국에서 제일 우수한 예술단이라는 자긍심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수한 단원의 경우, 정년까지만 일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자원손실이다. 대신 무조건 정년을 늘리는 게 아니라 몇 차례에 걸친 고강도 오디션으로 충분히 기량을 검증해 보수를 약 80% 정도로 지급하는 촉탁직 신분으로 2~4년 정도 고용하는 등의 방법이 적합해 보인다."▶진흥원이 예술인과 시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예술인에게는 재정 확대,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 시민에게는 문화시설 접근성을 개선하고, 세계적인 예술·문화의 접촉 빈도를 높이는 등 문화 향유 기회를 늘려나가도록 하겠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김정길 대구문화예술진흥원장이 진흥원 운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2022.10.26
[토크 人사이드] 김도은 안동 수운잡방 전통음식체험관장 "수운잡방은 고춧가루·생마늘·돈육 사용 않는 유일한 민가 조리법"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수백 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온 종가가 많다. 그중 광산 김씨 예안파 설원당 종가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최고(最古) 조리서인 '수운잡방'의 존재 덕분이다.수운잡방은 탁청정 김유(1491~1555)와 손자 계암 김령(1577~1641)이 대를 이어 집필한 조리서로 지난해 8월 보물로 지정됐다. 1550년대쯤 쓰인 이 책의 제목은 '격조를 지닌 음식 문화(수운·需雲)의 여러 가지 방법(잡방·雜方)'이라는 뜻이다. 덕분에 경북도는 해외 귀빈들이 도청을 방문할 때마다, 접견 음식으로 수운잡방을 내놓고 있다. 최근 경북도청을 방문했던 주한 네덜란드 대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지사 등도 이 음식을 맛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주한 대사 부인회가 한국 전통문화를 탐방하면서 직접 조리 체험을 하고 음식 맛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궁중이 아닌 민가의 음식 조리법이 그대로 담긴 수운잡방은 한식의 산 역사다. 김도은 수운잡방 전통음식체험관 관장을 만나 수운잡방 500년의 역사를 들어봤다."광산 김씨 종가서 代를 이어 집필 500년 전통 지켜온 한식의 산 역사 주류 57종, 채소절임·김치 14종 등 114종 음식 조리와 관련 내용 수록 꿩 육수를 사용한 물김치도 유일해 수운잡방은 모든 음식이 메인요리 각 그릇에 담아 하나씩 따로 내놓아 한식 세계화 목적으로 전통 음식을 외국인 입맛에 맞춰 만들어선 안돼 있는 그대로의 한식을 찾도록 해야"▶'수운잡방'은 어떤 책인가."'수운잡방'은 광산 김씨 종가에서 대를 이어 집필한 조리서다. 광산 김씨 예안파 설원당 종가에서 500년 넘게 고이 간직해 왔다. 설원당 종택 주춧돌에 땅을 파고 묻어 임진왜란 등 각종 난리통을 피할 수 있었다. 2권(1책)의 표지 모두 온전하고, 종가 간인도 찍혀 있다. 사대부 남성이 집안의 요리 비법을 세세하게 기록한 조리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문과에 급제한 선비가 쓴 조리서로는 '수운잡방'이 유일하다. 오늘날 와인이나 플레인 요거트, 안동 찜닭 등과 유사한 요리의 제조법이 담긴 것도 특색이다. 수운잡방보다 80년 정도 앞선 것으로 알려진 산가요록(山家要錄)은 궁중 어의(전순의)의 생활기록이다. 민간의 음식 조리 기록을 담은 수운잡방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수운잡방에는 어떤 음식이 소개돼 있나."총 114종의 음식 조리와 관련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김유 선생이 지은 앞부분에 86항, 김영 선생이 지은 뒷부분에 36항 등 총 122항으로 구성돼 있다. 항목별로는 주류가 57종으로 가장 많고, 채소 절임과 김치류 14종, 장류 9종, 조과(과자류)·당류(사탕류) 5종, 찬물류와 탕류 각 6종, 두부 1종, 타락 1종, 면류 2종 등이다. 오천양법(烏川釀法·안동 와룡면 오천리의 술 빚는 법)을 비롯해 당시 안동지역 양반가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던 법이 포함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수운잡방' 음식의 특징은."고춧가루·생마늘을 쓰지 않는다. 돼지고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찰음식을 제외하고 한식에서 고춧가루·생마늘을 쓰지 않는 것은 유일하다. 수운잡방은 상대적으로 사찰음식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운잡방의 음식들은 슬로푸드(slow-food) 또는 식치(食治·좋은 음식으로 건강을 다스려 전염병 등을 예방) 음식이다."▶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화·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외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무슬림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다. 최근 경북도청을 방문했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지사가 그랬다. 돼지고기가 나오지 않으니 종교적 부담 없이 맛있게 먹었다. 수운잡방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제사를 받들어 모시고 손님을 대접하는 문화)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그중에서도 손님에게 최고의 접대를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주한대사 부인회나 최근 주한 네덜란드 대사를 비롯해 경북도청을 방문한 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자신 있게 음식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최고의 접대를 위한 손님맞이 음식'이라는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개인적으로는 냉면을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먹어 본 그 어떤 냉면 육수보다 더 훌륭했던 동치미가 가장 궁금하다."수운잡방에선 '동치미'가 아닌 그저 '김치'다. 꿩 육수로 만든 김치."▶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선 가장 맛있어서 그렇다."이해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익숙한 음식과 (새롭게 접해 본 음식을)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꿩 냉면 육수랑 흡사할 수는 있으나 수운잡방의 물김치는 꿩 육수를 사용해 담그는 김치다. 500년간 이어져 온 전통 방식으로 김치를 담근다. 꿩 육수를 사용해 물김치를 담그는 건 수운잡방이 유일하다."▶2번 먹어본 수운잡방 음식은 기존의 한식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 한식이라고 하면, 한 상을 가득 채워 나오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수운잡방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음식이 하나씩 따로 나오는 게 인상 깊었다."우리 민족은 1인 1상의 전통이 있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상차림은 잔칫상 정도를 제외하면 없었다. 모두가 모여 앉아서 먹는 상차림(둘레상)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보급됐다. 일제가 우리 전통의 밥상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1인 1상을 법으로 제한했다. 1인상으로 나가는 것이 잘못됐다고 알고 있는 게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는 의미다. 일제 잔재를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이를 개선하지 않는 것도 상당히 잘못됐다. 수운잡방에서 각 음식을 하나씩 따로 식탁에 내놓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다."▶애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까지 모든 것을 각각의 그릇에 담아 내놓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수운잡방은 내놓는 모든 음식이 '메인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나가는 '타락'을 이야기하면, 현대식 플레인 요거트다. 맛도, 모양도 똑같다. 수운잡방에 쓰인 타락의 조리법을 보면, 과거 신라의 양(羊) 사육 등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런 유서 깊은 음식이 가장 먼저 나온다고 애피타이저라고 할 수 있을까. 내놓은 모든 음식을 메인 요리라고 하는 건 이 때문이다."▶한식 세계화에 관심이 높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방법이 있다면."한식 세계화를 목적으로 음식을 개발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동안 한식 세계화를 이유로 쓸데없는 짓을 저지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김치 세계화를 위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김치 셔벗'을 만들었다. 한국인도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만들어놓고, 한식 세계화를 논하는 게 말이나 되나.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우리 전통 음식을 외국인 입맛에 맞도록 개발하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한식을 있는 그대로 찾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한식 세계화'다. 그 길로 가야 한다."▶수운잡방 전통을 계승하는 종부로서 앞으로의 전통 음식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 달라."한식 세계화나 전통주 보전 등이 최근 우후죽순처럼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음식이나 전통주에 집중하는 것보다 '몇 백 년'이라고 홍보하는 데 치중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데 어떻게 몇 백 년 전통의 음식·술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통은 마음 편하게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돼선 안 된다. 전통 음식·술을 개발하고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대로에 집중해야 한다. 종가의 역사가 음식 조리의 역사와 같지 않다. 전통을 제대로 지키며 이어가는 사람(종가)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김도은 수운잡방 전통음식체험관 관장이 체험관에서 수운잡방 음식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은 관장 제공수운잡방 상차림. 〈김도은 관장 제공〉
2022.09.21
[토크 人사이드] 김종달 대경에너지미래포럼 대표 "대기업 유치만큼 중요한 건 지역 중소·중견기업 탄소중립 연착륙"
김종달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는 대구경북지역 산·학·연·관·민·언을 아우르는 대경에너지미래포럼 대표이자 좌장이다. 그동안 지역 에너지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세계적 탄소중립 강화 움직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새 정부 출범 및 민선 8기 시대 개막으로 에너지 정책도 적잖은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를 만나 그간 활동과 지역 에너지 부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봤다."첨단 산업 통해 4차 産革 이끌려면 기업들 에너지 효율적 사용이 관건 대구시의 방향성 제시와 지원 중요 2030년부턴 소형원자로 시장 본격화 인프라 풍부한 경북 중심지역될 것 우리 포럼은 교수·기업인·연구원 등 각계 전문가의 에너지 공부 플랫폼 포럼발족 후 55회차 조찬모임 가져 대구 수소 분야 정책개발에도 기여"▶2017년 1월 설립한 대경에너지미래포럼의 좌장 역할을 도맡아 왔다.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포럼 발족 이후 지금까지 총 55회차에 걸쳐 조찬모임을 열었다. 특히 대경에너지미래포럼은 교수, 연구원, 관료를 비롯해 기업인, 시민단체,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 30여 명의 전문가들이 에너지 공부에 나서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포럼을 통해 에너지 분야 관련 기술과 정책, 이론 등 각종 정보를 공유하면서 환경과 경제 분야의 안목을 키우고 각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포럼 활동을 통해 대구시의 수소 분야 정책개발에 기여하는 등 에너지 정책 입안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점이다. 1년에 한 번씩 수소 또는 탄소중립 관련 세미나를 열고, 필요하면 서울이나 해외의 에너지 전문가들까지 포럼에 참여시켜 지역에너지 정책 아이디어 발굴에 주력했다. 다만 경북지역 에너지 전문가 참여가 부족했던 점은 아쉽다. 향후 경북도 및 경북지역 에너지 전문가들의 참여를 활성화 하겠다."▶세계솔라시티총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경제학자로서 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환경계획학을 공부하면서 에너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당시만 해도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는 대립하는 개념이었다. 상반되는 두 가치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 당시 서울대 학보사에 '국토 이용의 한계와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기고까지 할 정도로 연구에 온 힘을 쏟았다. 이후 미국 델라웨어대 에너지환경정책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성장도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1995년 3월 경북대 교수로 부임하고 1997년 경북대 에너지환경경제연구소를 만든 이후 지금까지 에너지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세계적 탄소 중립 흐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크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변화가 대구경북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미 2050년까지 탄소중립 완료를 선언했다. 결국 풍력, 수소,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고 그 사용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물론 천연가스는 기존 화석연료와 친환경에너지의 징검다리 격인 에너지여서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중동 산유국으로부터 가스를 원활하게 공급받고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러시아 사할린 천연가스 개발권을 한국이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원자력 또한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순 없겠지만 SMR(소형 모듈식 원자로)에 대한 이야기는 다르다. 현재 SMR에 대한 기술발전과 투자 기대감이 크고, 글로벌 리더들도 SMR에 관심을 둔다. 원자력 인프라가 풍부한 경북이 SMR 분야에서 중요한 지역이 될 것이다. 특히 2030년대부터 글로벌 SMR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보여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된다." ▶홍준표 대구 시장의 주요 경제 공약에서 에너지 부문이 제외됐다. 대구지역 에너지 산업 육성에 관한 조언을 한다면."산업에서 에너지가 매우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에너지 부문이 지역경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반도체 등 선도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와 미래차 등 첨단산업과 에너지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이다. 각 산업 부문의 기업들이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 대기업 유치만큼 중요한 것이 지역 중소·중견기업들이 탄소중립 시대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대구시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가 '고준위방폐물(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안 마련'이다. 경북은 국내 최대의 원전 집결지로 관련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방폐물 처리는 매우 민감한 사안인 탓에 정부는 물론 지역사회의 고민이 크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고준위방폐물은 10만년 이상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원전 건설과 비교도 안 되는 중대 사안이다. 경북지역 원전의 고준위방폐물 저장량은 포화상태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고준위방폐물 처리장이 어느 지역으로 갈지는 알 수 없으나 반드시 지방정부와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객관적이고 책임 있는 조직을 만들어 관련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법적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문제를 미리 인식한 핀란드도 고준위방폐물 처리장 마련에 18년이나 걸렸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친환경 에너지 분류 기준인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에 원전을 포함시켰는데 그 조건으로 '2050년까지 고준위방폐물 처리 계획 마련'을 내걸었다. 고준위방폐물 처리장에 대한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 지역 기업들 사이에 ESG경영 바람이 거세다. ESG경영의 주요 가치 중 하나가 환경인데 이는 에너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일각에선 ESG경영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는데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들이 ESG경영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 자산 운용사들이 ESG 실천 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환경이나 윤리 및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의 수익률이 더 낫다는 통계가 있다. 포스코가 친환경 수소환원제철로 가는 것도 외국 주주들의 요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안다. ESG경영은 소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소비패턴은 환경을 중요시하는 '그린 컨슈머리즘(Green consumerism)'으로 대표된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친환경차를 구매하거나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등의 행위는 이미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되고 있다."▶에너지 전문가 입장에서 지역사회에 특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려면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이 중요하다. 탄소중립의 파고를 넘고 첨단산업의 발전을 위해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의 에너지 관리도 중요하다. 전국적으로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기관들이 들어서고 있다. 대구경북에도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움직임이 가속화돼야 한다." ▶향후 활동 계획은."평생 에너지를 중심으로 고민을 거듭했고, 경제와 환경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이러한 활동이 미래세대와 지역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개인적으로 대구경북이 에너지전환에 잘 적응하고 선진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대경에너지미래포럼을 더욱 활성화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김종달 대경에너지미래포럼 대표가 지역 에너지 부문의 당면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2022.08.10
[토크 人사이드] 정태옥 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데이터사이언스는 4차産革 핵심 학문…미래산업 즉시 투입 인재 양성"
정태옥 전 국회의원이 지난 3월 신설된 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의 원장에 임용됐다. 임용 1년 전인 2021년 3월에 경북대 정교수에 임용된 바 있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정태옥 원장은 책과 논문을 읽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적성에 참 맞다고 말했다. 다시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고 현재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과는 찰떡궁합으로 경북대 도약에 힘을 보태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의 교수자문 단장으로 특히 대구시를 반도체 중심도시가 되도록 노력 중이라고 한다. 29일에는 정부가 설립한 재단법인 차세대지능형반도체 사업단장과 산업부 차관이 대구시 공무원·지역대학 교수들과 만나는 자리도 마련하는 등 조용하면서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인공지능·빅데이터 집중교육 통해기존 학문·산업 디지털 전환·고도화6개월 과정 정부 위탁교육도 운영1기 수료생 사실상 전원 취업 추진경북대 IT·반도체 강점 대학 명성대학·산업체 고급 인재 구인난에도우수 교수진 확보 어려움 없이 진행"▶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에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서울대는 차상균 현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주도로 2020년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설립됐다. 2021년 이용섭 광주시장이 교육부와 서울대에 협조를 요청해 전남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을 추진했다. 그때 대구가 고향인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경북대사범대부설고 졸)이 경북대가 전통적으로 IT에 강점이 있는 대학임을 감안해 경북대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을 나를 통해 권유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차상균 원장, 홍원화 총장과 같이 자리를 하면서 경북대에도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문대학원 설립은 교육부의 승인과 학내의 합의가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저의 역할도 있었지만, 홍원화 총장의 적극적인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데이터 사이언스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핵심 학문 가운데 하나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인데 간략한 설명 부탁드린다."4차 산업혁명은 AI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상승작용을 해 발전하는 분야다. AI와 알고리즘에 의해 데이터가 모이고, 데이터에 의해서 AI가 학습을 통해 고도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가진 학문 및 산업 분야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시기를 디지털 전환의 시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존 종이에 기록된 아날로그 기록을 디지털 자료로 바꾸고 디지털을 통해 업무를 개발하고 고도화시키고 더 나아가,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통찰과 가치를 확보하는 것이 디지털 전환이다. 데이터를 모으고 처리하고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데이터사이언스란 도메인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AI와 빅데이터 교육을 통해 기존의 학문과 산업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고도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사이언스는 다양한 도메인을 전공한 사람이 AI와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대한 지식을 겸비하도록 해 데이터 처리를 전문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 분야다."▶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어떻게 운영되나."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전문대학원이다. 전문대학원은 산업 분야에 즉시 적용 가능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대학원의 신입생은 기본적으로 학부에서 인문, 사회, 자연, 의학 등을 전공한 학생들로 AI나 빅데이터를 전공하지 않은 학생이 대부분이다. 학문적 연구 외에 이미 학생이 가지고 있는 도메인 학문 분야를 배경으로 AI와 빅데이터 등에 대한 라이브러리나 패키지를 숙달하게 운용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을 목표한다. 대학원을 졸업한 학생은 즉시 각 분야에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인재가 되는 셈이다."▶대학원 설립 초기라 우수 교수 유치에 어려움은 없나."지금 전 세계적으로 빅데이터, AI, 반도체 등에 대한 박사나 박사후과정을 이수한 우수 인재에 대한 수요는 대학 교수뿐만 아니라 산업체에서도 엄청나다. 특히 산업체에서는 고연봉과 수도권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우수 교수 확보에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경북대는 전통적으로 IT나 반도체에 강점이 있는 대학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2022년 9월 학기 교수 임용 채용에 2명 채용에 26명이 응모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응모한 분 중에 세계적인 논문과 연구 실적을 보이는 분도 여럿 있어 어느 분을 모셔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다."▶향후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지향하는 목표는."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경북대 IT에 대한 오랜 전통과 실력을 배가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데이터 사이언스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기적으로는 비수도권에서 최선두권이 되는 것이고,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이 되고자 한다."▶위탁 교육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고용노동부로부터 K-Digital Training 과정과 K-Digital Platform 과정 등을 위탁받아 5년 동안 청년 학생들에게 디지털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약 6개월 과정으로 총 1천200시간 정도의 빅데이터 분석가 양성 과정을 운영하여 벌써 1기생이 졸업하고 2기생이 교육 중에 있다. 1기생의 경우에 평균 98.8%의 출석률을 보이고, 사실상 전원 취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은 1기생 28명 수료에 수도권을 비롯하여 대구경북지역 약 15개 기업으로부터 50여 명의 취업 요청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이 청년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디지털 인력이 부족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교육한 학생이 지역 IT 기업에 단비와 같은 인재로 뽑혀 가는 것을 볼 때, 지역 산업발전에도 우리 경북대가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한다."▶지금 반도체 인력부족 문제 해결책의 하나로 수도권 대학 첨단학과 정원규제 완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첨단인재는 지방대 육성 차원에서 지방대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대학원장 견해는."당장 인재가 부족하다고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완화해 버리면 지방 대학은 더욱더 피폐해질 것이고, 지방 대학이 피폐하면 지방 산업이 몰락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모든 역량을 오히려 지역, 특히 지역 거점 대학에 집중 지원함으로써 인재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지역에서 길러낸 인재가 지역 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고위관료, 국회의원을 거쳐 경북대에 오셨는데 지방대 현실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경북대 학생은 실제 매우 우수하고 성실한 학생이 많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아직 가정 형편이나 주위 환경으로 인하여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공무원이나 공기업 시험에 치중하는 안타까운 사실을 보고 있다. 그래서 제가 교육하는 방향 중 하나가 학생들에게 좀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세상에 대응하라고 지도하고 있다."▶정치권이나 정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2000년대 이후 포퓰리즘의 영향으로 일부 사관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하던 무료 국립대학이 거의 없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대학에 국가가 반값 등록금을 지원할 게 아니라 국가 거점 국립대 정도는 전면 무료 교육 제도를 실시해 지역 산업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가난한 학생에게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한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정태옥 원장은△대구 대륜고 졸업 △고려대 법과대 졸업 △경북대 행정대학원 석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가톨릭대 행정학 박사 △1986년 제30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2008년 대통령실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 △2009년 안전행정부 선진화기획관 △2010~2013년 인천시 기획관리실장 △2013~2014년 안전행정부 지방행정정책관 △2014~2015년 대구시 행정부시장 △2016~2020년 20대 국회의원(원내부대표, 원내대변인, 당 대변인, 정책위부의장) △2021년 3월 경북대 정교수 임용 △2022년 3월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임용정태옥 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이 4차 산업혁명시대 데이터사이언스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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