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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임금님도 즐겨 먹었던 간식거리…“떡볶이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하굣길 분식집에서 만난 떡볶이. 그 옆에는 항상 납작만두와 순대가 놓여 있었다. 분식집 아줌마는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가래떡이 어떻게 고추장 소스와 잘 결합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어느 날에는 칼집도 넣고 또 어느 날에는 꾸덕하게 얼린 가래떡의 속을 도려내고 그 안에 치즈를 넣어보기도 했다. 매콤함과 달콤함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는 항상 난제였다. 이명박정부 때 적극 추진됐던 한식세계화사업. 그때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떡볶이를 한식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적극 밀었다. 그때부터 떡볶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 포스를 갖게 되고 별의별 퓨전떡볶이가 우후죽순처럼 대두한다. 서울 신당동은 16년 전부터 ‘떡볶이 축제’를 시작해 ‘한국 떡볶이 동네 1번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마니아는 대구발 떡볶이에 더 관심을 둔다. 지난해 8월28일 방영된 SBS 백종원의 3대천왕 떡볶이편에 출연한 대구 3대 떡볶이 명가는 ‘윤옥연할매떡볶이·중앙떡볶이·달고떡볶이’였다. 백종원은 최고의 떡볶이 맛집을 찾기 위해 대구 3대 떡볶이 맛집을 방문했다. jtbc ‘수요미식회’에도 소개됐던 윤옥연할매떡볶이. 이 가게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매운맛을 자랑한다. 특히‘천천천’이라는 주문방법이 인상적이다. 떡볶이(1천원)·어묵(1천원)·튀김(1천원)을 세트로 시키는 것이다. 저렴한 떡볶이 가격 때문에 떡볶이 하나만은 주문이 안 된다. 올해 36년 역사의 신내당시장 내에 있는 달고떡볶이. 가게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달성고 근처에 있어 ‘달고’란 상호를 붙였다. 올해 87세의 김점분 할매가 1대 사장이고 며느리 배미옥씨(60)가 2대 사장이다. 중간 크기의 밀떡을 사용하고 수제 납작만두와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한다. 순대와 계란이 떡볶이와 앙상블을 이룬다. 동성로에 있는 중앙떡볶이는 달고떡볶이보다 한 해 전에 생겼다. 떡볶이를 납작만두에 싸서 먹도록 한다. 특히 소스맛이 남달라 따뜻한 밥 위에 부은 후 전자레인지에 2분간 데워 먹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단다. 예전 궁궐에서는 궁중떡볶이가 인기 있는 주상의 간식거리였던 모양이다. 물론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민낯버전의 떡볶이다. 고추가 없던 시절이라 생나물·마른나물·쇠고기에 간장을 넣고 볶아 만들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궁중떡복이를 떠올리면 된다. 고추가 들어온 뒤 조선 중기의 증보 산림경제(1766년)에 최초로 ‘만초장(蠻椒醬)’이라는 이름으로 고추장 담그는 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8세기 이전까지는 간장 양념만 하는 맵지 않은 떡볶이를 주로 먹었다는 얘기다.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떡볶이가 처음 등장한다. 윤숙자 전통음식연구소장은 “당시 기록으로 볼 때 떡볶이는 원래 기름에 볶는 게 아니라 양념장과 물을 붓고 은근히 끓이는 찜의 한 종류였다"며 “만드는 법도 떡찜 조리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 매운 떡볶이의 등장 그럼 매운 떡볶이는 언제 등장했을까? 전문가들은 본격적으로 고추장을 이용한 매운 떡볶이가 자리 잡은 시기를 195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궁중과 양반집 음식에서 서민 음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매운 떡볶이는 고추장과 설탕, 물엿으로 매콤달콤한 맛을 갖게 된다. 서울의 대표 떡볶이는 ‘신당동 떡볶이’.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떡과 고추장 소스, 라면 사리, 어묵 등을 넣고 손님이 직접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도 이 동네에서 나온다. ‘맛의 비결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광고 카피로도 잘 알려진 ‘마복림 할머니집’이 유명하다. 70년대 들어 신당동에 떡볶이집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떡볶이 골목이 조성됐다. 초창기 떡볶이는 연탄불로 조리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MBC ‘임국희의 여성 살롱’이란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부터다. 70년대 중반 떡볶이 집 한 곳이 뮤직박스를 설치하고 DJ를 고용해 인기를 끌면서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들려주는 DJ 문화까지 상륙한다. 궁중·양반집 음식이던 떡볶이 1950년대 이후 서민 음식 변모 고추장·물엿과 만나 매콤달콤 영어 표기는 ‘Topokki’ 메뉴 다양화되고 브랜드화 추세 1∼2년 전부턴 떡찜도 보급 해물이나 갈비 등 추가 맛 독특 갤러리카페 스타일 전문점 등장 포장마차 음식에 머물던 떡볶이가 최근 몇 년새 브랜드화하고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깨끗한 인테리어의 점포 안 메뉴로 바뀐 것은 물론 메뉴도 다양화했다. 짜장 떡볶이, 마늘 떡볶이, 치즈떡볶이 등뿐만 아니라 떡 모양도 길쭉한 것에서 별·돼지 모양까지 무척 다양해졌다. 떡볶이에 해물이나 등갈비 등을 추가한 ‘떡찜’도 1~2년 전 보급되기 시작했다. 지역에 따라 케첩이나 후추, 겨자 등을 첨가해 독특한 맛을 내기도 한다. 떡볶이도 얼마든지 웰빙 트렌드에 맞춰 고급 건강식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떡볶이를 영문표기법으로 표기하면 ‘Tteokbokki’다. 하지만 이 철자는 너무 길고 복잡하다. 외국인이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렵다. 농식품부는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선 보다 친숙한 영문 표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언어학자·요리전문가와 영어권·비영어권 외국인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나온 떡볶이의 국제 이름이 ‘Topokki’다. 외국인에게 이국적이면서도 강한 청각적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 대구 수성구 만촌동 ‘떡볶이를 부탁해’ 처음에는 KBS2 개콘 인기 코너인 ‘끝사랑’에 등장하는 개그맨 정태호인 줄 알았다. 수성구 만촌동 수성대 근처 골목에 자리한 ‘갤러리카페’ 스타일의 떡볶이 전문점인 ‘떡볶이를 부탁해’의 박무호 사장(43). 진짜 정태호를 빼닮았다. 떡볶이집 사장 콘셉트에 딱인 것 같다. 가게 벽에 백종원과의 기념사진도 걸려 있다. 3대천왕 대구 떡볶이편 때 한 수 배울까 싶어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가게 입구가 눈길을 끈다. 노란색 톤의 입구 파사드(가게 입구), 참 모던하면서도 감각적이다. 입구 통유리창에 여배우 전지현·송혜교·김태희의 스티커를 부착해놓았다. 여기는 일반 분식점이 아니다. 갤러리가 있는 ‘떡볶이 카페’다. 실제 이 집에 와서 커피 운운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구석 자리에 별실이 있는데 그곳을 눈여겨본 대구 청년작가회가 이 가게를 ‘대구 작은갤러리 1회’로 정하고 신춘 전시회를 여기서 갖고 있었다. 20여 작품이 걸려있다. 떡볶이와 갤러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린다. 요즘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가수 샘 김의 사인이 벽에 붙어 있다. 알고보니 얼마 전 대구 경북대 북문쪽에서 어린이재단 기부를 위한 ‘희망푸드트럭’을 깔았을 때 샘 김이 이집 떡볶이를 주문한 모양이다. 통유리창 앞 자리는 혼자 앉아야 제격. 여느 커피숍 창가 자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커피 대신 떡볶이를 먹으며 폰질하며 멍 때리기에 좋은 것이 매력이다. 일단 두 종류(기본형과 나가사키떡볶이) 떡볶이를 주문했다. 불판이 깔끔하다. 인덕션 위에 냄비를 올려놓는다. 5분 정도 되니 끓기 시작한다. 쌀떡 대신 밀떡을 받아 사용한다. 어른 새끼손가락 굵기인데 미리 물에 담가놓아 말랑말랑하다. 전지 크기의 철판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놓은 걸 주문 때마다 종일 퍼내주는 걸 거부한다. 전골처럼 즉석에서 끓여먹도록 했다. 그래서 꼭 ‘떡볶이전골’같다. 아니 떡이 들어간 스파게티·어묵탕·짬뽕처럼도 보인다. 얼큰하면서 걸쭉한 전골 국물 같은 소스에 튀긴 김밥(충무김밥 크기)과 튀긴 파를 찍어먹으면 ‘이런 별미가 어디서?’란 급호감이 일어난다. 튀긴 파는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는데 먹을수록 은근히 당긴다. 박 사장은 ‘짬뽕 같은 궁중떡복이’를 구상하다가 현재 메뉴라인을 갖게 된다. ‘나가사키떡볶이’도 먹어봤다. 퓨전 나가사키라멘인 셈. 고춧가루가 없는 말간 육수에 우동사리, 새우, 홍합 등 여러 해물에 채소류, 그 위에 1천원이 넘는 튀긴 낙지 한 마리를 올려준다. 맛의 선도를 위해 매일 10인분만 판다. 식재료 안배에 적잖은 고생을 했다. 처음에는 주꾸미를 넣어보기도 했는데 영 모양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물밀가루반죽을 묻혀 튀기면 국물이 칙칙해질 것 같아서 마른 밀가루를 대충 발라서 낙지를 튀긴다. 밥이 생각나면 뭉쳐놓은 리소토 같은 주먹밥을 시켜먹으면 된다. 어떤 손님이 고추장 국물에 밥을 볶아먹는 걸 보고 착안했단다. 여긴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로 소스를 만든다. 콩나물, 김밥말이, 치즈, 오징어, 우엉, 인삼뿌리 등 1천500원대의 별별 튀김이 많다. 그래서 아이를 대동한 가족 단위 단골이 점차 늘고 있다. 맛은 매운맛과 순한맛 두 종류. 사장 박씨는 동구 효목동에서 ‘장안해물탕’, 수성구 만촌동에서 ‘만득이숯불촌’을 꾸려간 모친의 손맛을 많이 이어받았다. 한때 돈가스집을 운영했다. 북구 연경동 더덕 전문 한식점 ‘이가네’ 등에서 음식의 기본기를 익힌다. 1년간 식당암행어사인 ‘미스터리 쇼퍼’로도 활동을 했다. ‘떡볶이 이상의 떡볶이’를 위해 지난해 아내(이나영)와 일을 저질렀다. 만면에 미소 가득한 부부로 인해 떡볶이도 매일 방실거린다. 수성구 만촌3동 854-30 (053)744-0714 밤 10시 영업 종료. 매월 둘째 월요일 휴무.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6.01.22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대봉동서 음식점 3곳 운영, 이태운 대표
하는 포스가 꼭 ‘대구의 백종원’ 같다. 마흔을 눈앞에 둔 이태운씨. 그는 봉리단길(대봉도서관 앞 먹거리타운) ‘차세대 외식업 CEO’로 주목받는다. 새로운 버전의 이자카야인 ‘이노사케’에 이어 신개념 숯불갈비 카페 같은 ‘화친도가’, 한옥카페 같은 한식주점 ‘이가(李家)’ 등 3개의 식당을 이 거리에 연이어 론칭했다. 아내가 꾸려가는 ‘개정 인터불고 유통단지점’까지 측면지원해준다. 불과 1년 전까지는 대구식 이자카야의 개척자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일본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로 마케팅 투어를 하면서 외식사업가로 방향을 튼다. 아내와 함께 하늘의 별만큼 많이 널려 있는 동서양 메뉴를 ‘이태운 버전’으로 융복합시켜 식도락가에게 먹는 즐거움을 주고 싶다. 2~3년 멀리 보며 항상 새로운 개념의 식당 창업 청사진을 갖고 있다. 요리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요리 이외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다. 도처에 배워야 할 것이다. 인테리어도 발품 판 만큼 자기 색깔이 나온다. 그래서 비록 패션과 디자인 전문가는 아니지만 외국 패션잡지 및 건축과 인테리어 전문지를 롤모델로 삼아 새로운 컬러와 모양의 추이를 따라간다. 그가 중시하는 개념은 ‘마리아주(Mariage)’. 마리아주는 프랑스어로 ‘결혼’을 뜻하며 술과 안주의 환상적인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음식과 궁합이 맞는 조명, 인테리어, 음악, 그리고 와인, 사케, 막걸리, 전통주 등이 기존 소주·맥주문화와 어떻게 마리아주되어야 하는가도 고민한다. 곧고 우뚝한 콧날, 맑은 피부에 정감 있고 사려깊은 미소. 푸드 컨설턴트·식당 코디네이트 유전자를 함양시킨 그의 마지막 꿈은 식탁이 몇 개 없는 심야식당의 늙수그레한 오너셰프. 장만한 재료가 떨어지면 문 닫고,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는 ‘노랑 벤치’ 같은 식당을 관리하고 싶단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라서 그런 핑크빛 감상은 금물이란다. ◆ 바닥이 곧 자격증이다 이태운 사장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계명문화대 무역과를 다닌 그는 대학 동문이자 고교 친구와 제대 후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수성대 조리학과에 들어간다. 요리학원에서 이론을 배우고 할 겨를이 없었다. 바로 진검을 잡았다. 수성못 근처 현재 파스쿠치 자리에 있었던 레스토랑 ‘명성그린힐’에 주방 보조로 들어간다. 주방장이 2주간 자리를 비울 동안 필요한 요리 노하우를 그에게 다 전수해주었다. 행운이었다. 그는 이때 자기한테 남다른 요리본능이 있다는 걸 안다. 이 무렵 요리의 기본기를 대충 다 배운다. 신버전의 이자카야 ‘이노사케’ 신개념 숯불갈비집 ‘화친도가’ 한옥카페 같은 한식주점 ‘李家’ 음식·술과 궁합 맞는 인테리어·조명·음악 조화 개념 가장 중시 시장 조사차 3개월 한번 상경 이어 희망로 중식당 ‘예궁’에 들어간다. 7명이 포진한 주방의 막내가 된다. 그는 그곳에서 해당 메뉴의 식재료를 제때 웍(중식당용 배부른 프라이팬) 앞에 갖다 놓아야 하고, 주문받은 메뉴에 어떤 재료를 매칭시켜야 하는가도 배워나갔다. 식재료 배분과 음식 배식의 스킬을 연마했다. 처음에는 수프 하나도 국자로 제대로 떠넣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에 몇백 그릇을 떠야 하는데 수프 국물이 자꾸 떨어지면 일에 지장을 초래한다. 와인을 잔에 따를 때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와인 방울이 떨어지지 않게 갈무리하듯 그릇을 45도 정도 기울이고 국자 손잡이를 짧게 잡고 한 번에 붓는 감각을 길렀다. 예궁에 입사하자마자 연말연시 비상이 걸린다.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경험을 이때 하게 된다. 출근하면 20㎏짜리 양파 2망을 깐다. 대파 10단을 다듬어야 한다. 물론 찬물에서 작업해야 한다. 워낙 긴장하고 고되다 보니 화장실 갈 틈도 없었다. 짜장·짬뽕·우동용 면발 뽑는 방법도 배웠다. 계절마다 물과 소금의 양을 바꿔야 한다. 초창기에는 그가 만든 면발이 쉽게 불어버려 새 면발로 많이 교체해 주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그에겐 ‘일머리’가 별로였던 것 같다.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들었지만 음식은 그것과 전혀 다르게 나왔다. 오너셰프만의 비밀 레시피가 달리 있다는 걸 알았다. ◆ 싸고 좋은 재료는 없다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매천시장, 칠성시장, 서문시장이나 주요 식자재백화점을 종횡무진 다녔다. 그때 ‘싸고 좋은 식재료는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하절기 중식당 주방은 ‘불지옥’. 에어컨도 가동 안됐다. 기름이 튀어 팔에 화상을 자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만의 ‘비상약’이 있다. 감자 전분을 붙이거나 계란 껍질을 붙여서 임시 처방한다. 역시 현장에 진짜 지식이 있었다. 다른 요리학원에 가면 죽어도 알 수 없는 시크릿 정보를 중식당 시절에 익혔다. 세 끼를 정시에 다 챙길 수 없다. 아침은 오전 11시30분, 점심은 오후 4~5시, 밤참은 선택. 2년6개월 있다가 아카데미극장 골목에 있었던 ‘시안’에 주방장으로 갔다. 예궁의 과장과 함께 오픈 멤버로 가기로 돼 있었는데 과장이 개인 사정으로 안 가게 돼 얼떨결에 그가 주방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담감이 컸다. 보통 밤 10시에 퇴근하는데 그는 다음날 오전 1시까지 남아 일했다. 슬럼프가 엄습한다. 과연 요리가 내 길인지 고민한다. 비전을 분석해 봤다. 사직서를 내고 두 달 쉬다가 슬그머니 경력을 숨기고 북구 대구보건대 근처에 있는 주점 ‘짜샤’에서 알바로 일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시급 3천200원짜리 인생이었다. 낮에 투잡을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았다. 북구에 있는 ‘오션갤러리’란 뷔페에 취직한다. 뷔페 주방은 중식당보다 훨씬 편했다. 해병대 훈련병 같은 예궁 시절이 그에겐 ‘약’이 된 것이다. 그는 그 무렵 서울 홍익대 등을 돌면서 잘나가는 이자카야 벤치마킹에 나선다. 자기만의 식당을 창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본기를 더 익히기 위해 일식집으로 들어간다. 북구 유통단지에 있는 ‘귀선’이었다. 중식의 단점은 통조림과 냉동재료에 의존하는 것인데 비해 일식은 생물을 많이 취급한다. 하지만 지역의 일식은 누룽지탕·찜까지 취급하는 ‘한식의 연장’이란 느낌이 강했다. ◆ 나만의 이자카야를 찾아서 2010년 31세였다. 자금이 없었지만 지인이 도와준다고 해서 독립했다. 여러 곳을 물색해봤지만 인연이 안 됐다. 마침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대봉동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해서 봉리단길에서 ‘이노사케’(이씨의 술집)를 연다. 특별한 메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연어사시미와 소고기다다키를 잘 만들었다. ‘얼리지 않은 한우를 사용한 다다키는 그 집이 유일하다’는 소문이 번져나갔다. 주종(酒種)의 선택도 무척 중요했다. 사케를 전문가처럼 알아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지식적인 부분은 대다수 손님은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가격대로 이 맛을 즐겼을 때 만족하느냐 못하느냐’에 손님은 더 관심이 있다. 7만원선인 월계관 준마이 다이긴조 등 모두 12가지 사케를 선택했다. 먹어보고 괜찮다 싶은 것만 팔았다. 병 디자인도 충분히 고려했다. 지금은 사케 전문 주류상이 있지만 그때는 없었다. 일단 손님이 사케를 맛보고 싶어하면 절대 저가를 권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가격에서 제맛을 느낄 수 있다고 고집했다. 그는 “10만원대 초반의 사케에서는 화사한 봄꽃 향기가 머문다”고 설명한다. 늘 그렇지만 식재료가 생명이라고 믿는다. 음악은 물론 조도와 분위기도 엄청 중요하다. 특히 음악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바람에 그는 직원에게 ‘절대 노래를 건드리지 말라’고 지시한다. 그만의 식당용 음악 원칙이 있다. 일단 음악감상실이 아니니 대화에 지장을 주는 클라이맥스가 있는 노래는 가급적 자제한다. 어딜 가도 들을 수 있는 최신곡은 가급적 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 선곡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노사케 창업시 수개월 걸려 100여 곡을 골라 3년간 집중적으로 틀었다. 조광기를 달아 기후와 기온에 따른 불 밝기를 조절했다. 그는 항상 “내가 만족해야 손님도 만족한다”고 믿는다. 손님 위주가 아니라 철저히 나 위주면 결국 그게 손님 위주로 간다는 걸 알았다. 별별 손님의 입맛을 다 맞혀줄 수는 없는 법. 음식의 간은 조절 가능하기도 하지만 막무가내식 개인의 취향은 ‘손님은 왕’이라는 식으로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다.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그는 일찌감치 감지했다. 음식 못지않게 서빙의 스킬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직원은 그걸 충족시켜주어야 하는데 호텔이 아닌 이상 그런 직원을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자꾸 그가 해결사로 등장한다. 초창기 손님들에게 이노사케는 ‘대봉동 대봉도서관 길에 가면 불 켜져 있는 집’으로 통했다. 이노사케가 뒤에 봉리단길을 불야성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2년 전까지는 직접 장을 봤다. 매일 구입해야 하는 식재료는 30여 가지. 이노사케를 거쳐간 직원이 문을 연 가게가 10여 군데 된다. 지금은 5군데. 모두 지인이 꾸려간다. 새로운 업장을 오픈했다. 화친도가의 경우 등심 사이의 막과 지방을 제외한 고기를 주고 직접 화로에 구워먹게 했다. 삼겹살을 이용한 수제꼬치도 있다. 연남동, 이태원, 홍익대 앞 등 시장 조사차 3개월에 한번씩 상경해서 유행하는 메뉴와 업소 스타일을 훑어보고 온다. 전통주만 파는 서울 연남동의 퓨전한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가란 한식주점을 차렸다. 인테리어라인도 꼼꼼하게 직접 챙겼다. 메뉴도 지난 식당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반달치즈감자전, 아롱사태수육, 차돌박이들깨탕, 아스파라거스 등심말이 등을 냈다. 수직적 욕심이 아니라 수평적 열정 때문에 그의 메뉴에는 설렘이 어른거렸다. 세 식당 모두 중구 대봉동 대봉도서관 앞 먹자골목에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6.01.08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음식 어떻게 홍보할까?…‘대구음식문화해설사회’해설사를 위한 제언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다가서면 ‘점입가경(漸入佳境)’. 대구시의 음식문화를 비판적으로 감상하려고 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보수적이고 자기 얘기를 길게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구. 그런데 최근 대구시민이 ‘스토리텔러’로 변신하고 있다. 지자체가 너도나도 각종 해설사를 양성하고 있다. 올해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대구음식문화를 전문적으로 해설할 작정인 대구시 지정 ‘음식문화해설사’ 50여명, 이에 앞서 124명의 ‘문화관광해설사’, 중구청 지정 70여명의 ‘골목문화해설사’, 50여명의 ‘대구식객단’이 배출됐다. 이에 촉발돼 수성구·서구·달성군 등 구·군청 단위에서도 지역의 랜드마크와 문화재 등을 알려주는 스토리텔러를 교육시키고 있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할 이들 해설사의 공통 관심사는 ‘대구에서 뭐무꼬’다. 이들 해설사는 아직 제대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금광처럼 박혀 있는 주옥같은 맛집 정보는 물론, 대구에서 태동한 ‘대구십미 스토리텔링’ 기본자료 찾기에 나섰다. 며칠전 대구시 남구 대명동 대구식 전라도 밥상을 볼 수 있는 한식당 ‘전라도밥상’에서 ‘대구음식문화해설사회’(회장 최태한)와 그룹 인터뷰를 겸해 저녁을 먹었다. 참석한 회원들은 음식에 문화를 입히고 그걸 푸드스토리텔러적으로 설명하는 기법을 갈구했다. 어떤 회원은 대구십미도 매년 갱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참에 대구십미 전용 해설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각 해설사끼리 윈윈 모임도 가능할 것 같다. 지난해 이들 음식문화해설사 지망생은 60시간 정도 교육을 이수하고 수료증을 받았다. 이들은 심화학습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기자는 그들과 헤어지면서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대구의 음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어떤 선행체험과 학습을 해야 하는지도 모색해봤다. ◆ 대구음식문화 해설하기 전에 요즘 전국 유명 푸드블로거 사이에 가장 핫한 도시로 급부상한 곳이 바로 대구다. 모르긴 해도 대구는 푸드스토리텔링 거리가 가장 풍부한 곳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시절 ‘대구음식 최악론’을 앵무새처럼 주절거리는 지역민이 의외로 많다. 해설사가 앞장서 ‘이제 대구가 예전의 그런 도시가 아니다’라는 걸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면서 계도해야 된다. 골목과 한옥 도시의 특성 음식의 역사 꿰고 있어야 즐비한 ‘빵지순례’부터 서문시장 ‘만원의 행복’ 잊지 말기를 홍콩에 빅버스가 있다면 대구에는 맛집·관광지를 순환하는 시티투어 2층버스가 있다 일단 워밍업으로 대구가 어떤 도시인가를 가늠케 해주는 ‘푸드뉴스’부터 챙겨보자. 국내 ‘쿡방의 지존’으로 군림한 백종원. 그에 의해 전국적 지명도를 갖게 된 칠성시장 ‘돼지석쇠불고기’와 중구 떡전골목 안 ‘뉴욕통닭’이 백종원의 3대천왕에 소개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KBS2 다큐3일에 방영된 남구 대명동 ‘안지랑곱창골목’과 ‘북성로 돼지불고기’, 탤런트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에 소개된 ‘서문시장 국수 난전’, 이영돈 피디의 ‘먹거리 X파일’ 검증단 선정 착한 칼국숫집이 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우리밀원조할매칼국수’. 게다가 시내 중구 동성로·중앙로변에 있는 삼송베이커리의 노랑 ‘마약빵’은 현대백화점 푸드코트에 들어가는 등 백화점 관계자로부터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뿐인가. 동구 파티마병원 옆 ‘평화시장 닭똥집골목’ 역시 전국 최고의 술안주 골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단 음식으로 ‘설’을 풀려면 음식을 감싼 한 도시역사의 기승전결에 대해 꿰차야 한다. 1601년 국내에 고추가 처음 등장하는데, 그때 대구에 왜 경상감영이 들어섰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학술적이 아니고 자기식으로 짜내야 한다. 스토리텔러는 학자가 아니고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대구 출신의 위인과 명망가의 족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현재 민족시인 이상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 시인 고월 이장희, 소설가 현진건, 르네상스적 서화가인 석재 서병오와 서양화가 이인성 등 무려 20여명의 근대 유명 인물이 포진하고 있다. 또한 대구읍성 주변으로 이상화 시인의 고택과 한강 이남 첫 성당격인 계산성당 등 중구 내에만 무려 29곳의 문화재가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배치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근대골목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음식문화해설사는 그 향토사를 음식과 결부시킬 줄 알아야 된다. ◆ 골목의 도시 대구 일단 대구는 골목과 한옥의 도시다. 2013년 8월 기준, 토지대장상 대구의 한옥은 총 8천102채. 이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은 총 33채인데 대부분 대구시 외곽에 위치해 있다. 이 중 대구음식과 관련된 고택은 한말 영남권 최고의 서예가 중 한 명이자 대구상무소(현 대구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이 된 회재 박기돈의 고택으로, 1933년 지어졌는데 후손이 이민을 가는 바람에 현재 ‘전동 안빛고을’이란 시래기 전문 한식당으로 자릴 잡았다. 그 집 바로 옆에 이상화 시인과 서상돈의 고택이 붙어 있다. 그곳을 본 뒤 ‘진골목식당’으로 가면 좋다. 일단 그 집은 이원만 코오롱 창업자의 자택인데 80년대 육개장 전문점으로 바뀐다. 그 집의 육개장을 먹으면서 조선조 선비 중 가장 독특한, 꼭 사마귀 형체의 미수 허목의 전서체 글씨가 그 식당 벽에 걸려 있다는 사실도 건넨다. 이와 함께 대구 따로국밥과 대구 육개장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준다. 참고로 대구는 육개장의 발상지이며 일제 때 육개장의 명칭은 대구권에서는 ‘대구탕(代狗湯)’이란 사실, 그 대구탕이 개고기(개장국)가 귀해 어쩔 수 없이 소고기를 사용했을 때 부르는 육개장의 별칭이란 걸 알려준다. 대구탕이 6·25전쟁 때 대구에서 따로국밥으로 태어났고 현재 선지와 우거지를 축으로 한 대덕식당형, 사골육수와 선지를 축으로 한 국일따로국밥형, 대구권 반가 소고기국 스타일인 온천골형 등 여러 스타일의 육개장이 있다는 걸 설명한다. 이때 관광객이 이렇게 물을 것이다. ‘따로국밥과 육개장의 차이는 뭔가’라고.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육개장은 사골, 등심 등을 결대로 찢어 끓이는데 따로국밥은 장터형국밥, 주막국밥, 민가의 소고기국 등이 합쳐지면서 사골육수, 선지 중심의 신 육개장 스타일이다.” 이렇게 다양한 소고기국을 갖고 있는 도시가 전국에서는 대구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서울의 반가에서는 대구식 얼큰화끈한 소고기국은 없고 고춧가루 대신 후춧가루를 사용한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이때 ‘제주도의 육개장은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끓이고 파와 무 대신 고사리만 사용한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누들로드’를 제안한다 다음으로 ‘삼성그룹의 오늘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 뭐냐’고 질문한다. 정답은 중구 인교동에서 오픈한 ‘별표국수’. 그러면서 대구의 국수 관련 정보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대구는 전국 최고의 국수소비 도시. 국수 종류도 A부터 Z까지 다양하다는 것,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구가 전국 국수시장의 50% 이상을 독점했고,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공장도 현재 대구에 있는데 그게 바로 북구 노원동에 있는 83년 역사의 ‘풍국면’(대표 최익진). 부산의 최고 국수공장인 구포국수의 역사는 73년. 50년대 미국발 밀가루 수입 덕분에 ‘국수전성시대’가 개막된다. 사람들은 국수와 칼국수를 구분하지 않는다. 국수는 보통 ‘공장표’를 말하고 칼국수는 홍두깨로 밀어 만든 ‘수제국수’다. 일제강점기 남해안 멸치 마케팅 전략으로 기획된 잔치국수는 일제 때 ‘왜국수’, 한국 공장에선 ‘세면(細麵)’으로 불린다. 흥미롭게도 대구는 국수, 부산은 잔치국수, 시골은 칼국수가 강세였다. 시골발 칼국수는 80년대부터 도심속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1970년대 대구 공장표 국수가 타지로 팔려나갈 때 포장에 반드시 ‘대구명산 국수’란 검인이 찍혔다. 그러면서 대구식 칼국수는 일반 칼국수와 다르다는 점을 알려줘야 된다. 대구식 칼국수는 홍두깨로 민 여느 칼국수와 포스가 다르다. 대다수 가내국수공장에서 가져오는데 면발의 모양새가 백자처럼 담백하게 생겼다. 국물 이상으로 집집마다 비법이 담긴 양념장이 매우 중요하고 육수를 뺄 때도 꼭 멸치를 사용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대목에서 진주냉면 얘기를 해주면 된다. 진주에서는 사골육수 대신 멸치 등 해산물을 갖고 냉면 육수를 뺀다. 대구의 ‘4대 할매 칼국수’를 알려준다. 달성군 동곡막걸리 맞은편 ‘동곡할매칼국수’, 대구백화점 남쪽 맞은편 골목 안 ‘경주할매칼국수’, 명덕네거리 근처 ‘할매집’, 대구기독교방송국 바로 북측 골목에 있는 ‘칠성동할매콩국수’ 등이다. ◆ 대구의 틈새 명물 음식을 노려라 지난해 대구시가 준비한 ‘빵지순례’부터 서문시장 ‘만원의 행복’, ‘대구 10미(味) 시티투어’까지 홍보하자. 사실 대구는 ‘빵의 도시’이기도 하다. 2000년 뉴밀레니엄 벽두에 전국을 강타한 달성군 가창면 찐빵 돌풍. 지난 연말 판교 현대백화점에 입점해 화제가 됐던 ‘삼송 베이커리’. 대신동네거리 동산약국 옆에서 태어난 58년 역사의 삼송은 ‘통옥수수빵’ 일명 ‘마약빵’이 대박났다. 마약빵이라는 별명 때문에 실제로 빵 속에 마약이 있나 싶어 경찰이 조사하러 왔다는 뒷얘기도 재밌다. 경주 황남빵, 천안 ‘학화호두과자’,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 등에 필적할 만한 ‘대구근대골목 단팥빵’도 있다.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대구근대골목의 인기에 힘입어 김준년 제과기능장이 지난해 스토리텔링 단팥빵을 개발했다. 단팥빵, 소보로, 소보로단팥빵과 젊은 층이 좋아하는 생크림단팥빵 4종류로 낱개(2천원) 판매와 5개의 빵을 한 박스로 한 선물세트(1만원)로 구성돼 있다. 그 다음에는 외지 투어객이 단위 시간당 가장 많이 찾는 방천시장 옆 김광석벽화길 맛집에 대한 얘기도 해준다. 대구 지역 첫 전문 마카롱가게가 방천시장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권순주 대한뉴스’는 한강 이남에서 토치로 고기를 굽고 고량주를 이용해 불쇼를 벌인다는 것도 흥밋거리. 서문시장과 대백 옆에서 번창한 매콤한 양념오뎅과 미성당, 교동시장, 남문시장 등 대구 ‘3대 납작만두 투어’ 뒤 반드시 서문시장 허둘순 할매의 ‘삼각만두’를 먹고 마지막엔 달서구에서 태어난 ‘잎새만두’, 달달한 게 생각나면 달성공원 옆 ‘적두병’의 대구식 월병, 서문시장 ‘씨앗호떡’을 맛보면 어떨는지. 홍콩에 ‘빅버스’가 있다면 대구에는 맛있는 ‘시티투어 2층 버스’가 있다. 루트는 2가지로 도심순환형과 외곽형이 운행된다. 도심순환형 코스는 평화시장 닭요리골목, 안지랑곱창골목, 반고개무침회골목 등 도심 맛집과 관광지를 보며 즐길 수 있다. 기타 맛투어 정보는 대구시관광협회. (053)746-640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6.01.01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수성구 범물동, 조상기 ‘민물박사’ 대표
바다고기와 민물고기. 하나는 ‘생선’, 다른 하나는 ‘잡어’로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 회로도 변주되지만 해물탕과 매운탕으로 연주될 때 ‘진국’이다. 강촌에는 어김없이 다양한 천렵문화 인프라가 깔렸다. 남정네들은 천렵을 통해 잡은 각종 잡어로 어탕국수, 어죽 등을 끓여먹었다. 청도군 중심부를 흐르는 동창천변 주민들은 미꾸라지 대신 잡어를 갈아 추어탕을 끓여먹는다. 국내는 저수지의 천국. 특히 저수지에서는 참붕어와 가물치가 보물로 취급받는다. 가물치보다 더 귀한 몸은 상류 1급수에서만 잡히는 ‘쏘가리’. 논두렁 옆 도랑에서는 미꾸라지, 메기 등이 많이 잡히고 실개천에는 피라미가 지천이다. 잡어의 세계를 제대로 알려면 강태공이 되는 수밖에. 현재 대구의 매운탕 시장은 논메기매운탕 천국이다. 1993년 이전까지만 해도 양식어종은 볼 수 없었다. 거의 자연산이었다. 대구는 신천·금호강·낙동강에 둘러싸여 정말 유명한 매운탕촌이 즐비했다. 하양·청천·동촌·강창·강정·화원유원지, 옥포 용연사 등이 지역 대표 매운탕촌으로 한시절을 풍미한다. 90년대초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에 등장한 손중헌논메기매운탕과 서재할매메기매운탕의 대박행진으로 인해 지역 매운탕 문화는 기존 잉어·붕어시대에서 논메기시대로 이동한다. 하지만 상당수 마니아는 역시 매운탕의 대표주자는 ‘잡어탕’이라고 믿는다. 현재 들안길 ‘민물박사’, 내당네거리 ‘금강’, 복현동과 범어동의 ‘강나루’, 28년 역사의 수성구 수성4가동 ‘석순이네민물매운탕’(옛 반도매운탕), 후발주자인 북구 읍내동 ‘청룡매운탕’ 등이 잡어매운탕 명가로 손꼽힌다. ◆ 조상기는 민물고기 박사 민물고기 낚시광 아버지에게 탕 끓이고 회 뜨는 방법 등 배워 강의 고기 이동도 단번에 감별 ‘걸어다니는 어군탐지기’ 인기메뉴 쏘가리와 잡어매운탕 잡어탕은 물성과 비린내·살점 여물기 등 감안해 여러 고기 혼합해 끓여 좋은 재료와 맹물만 사용해야 끓일 때는 반드시 뚜껑 열어 상주시 낙동면 신오리에서 태어난 조상기 민물박사 사장. 다들 조 사장을 ‘민물박사’로 부른다. 강변에서 강물의 흐름새, 물 빛깔, 수면으로 떠오르는 물방울 상태 등을 보면 고기가 어디로 몰려다니는지 단번에 감별한다. 걸어다니는 ‘어군탐지기’인 셈. 그게 하루아침에 터득된 안목은 아니다. 아버지(조성규)는 못 말리는 강태공이었다. 집에서 잠을 자는 날보다 강과 저수지 옆에서 산 날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에 나가면 얼음이 얼 정도가 되어야 가족에게 빼꼼 얼굴을 내비쳤다. 어머니(정봉준)는 무늬만인 남편을 고기에게 뺏겨버렸다고 푸념했다. 아버지는 고기와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구미시 옥성면 대원저수지 곁의 한 허름한 집을 매입한다. 꿈에도 그리던 강태공이 된 것이다. 즉시 ‘산정횟집’이란 간판을 걸었다. 그는 그렇게 많은 고기가 저수지에서 잡힌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가물치, 잉어, 붕어, 메기, 장어, 참게, 논고둥, 민물새우…. 잉어와 붕어찜이 주력 메뉴였다. 특히 아버지는 가물치회를 잘 장만했다. 특유의 졸깃한 맛과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회를 치기 전 껍질 벗긴 가물치를 막걸리로 치대 빨았다. 잉어·붕어까지 회로 냈다. 저수지는 정말 광활했다. 가장 먼 곳은 건너편까지가 무려 2㎞. 대구·경북권 낚시꾼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저수지였다. 주말 많을 때는 500~600명이 장사진을 쳤다. 그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배를 타고 건너편 낚시꾼에게 차린 식사를 갖다주었다. 잡은 고기로 탕도 끓여주었다. 요리학원에 가서 달리 배울 필요가 없었다. 현장에서 모든 노하우를 다 익힐 수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배를 타고 100m 길이의 줄낚시에 1m 간격으로 피라미를 꿰달아놓았다. ‘저수지의 폭군’ 가물치를 낚기 위해서다. 그는 그 저수지에서 비상한 가물치의 꾀를 목격할 수 있었다. 가물치는 봄에 산란할 때 수초 위에 산란용 집을 짓는다. 가운데 알을 쏟아내곤 그걸 지키기 위해 수초 밑에서 종일 경비를 선다. 만약 개구리가 알을 먹기 위해 접근하면 수면 위로 올라와 개구리를 급습한다. 그는 그 생리를 역이용했다. 대나무 장대 끝에 바늘을 끼워 알 옆에 대고 수초를 아래로 눌렀다 뗐다를 반복하면 성난 가물치가 장대 끝을 문다. 마치 봄날 울릉도 어부가 뱃전에 수초를 깔고 알을 낳으려고 수초 위로 올라오는 꽁치를 맨손으로 잡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재치있는 고기잡이 방식이다. 가물치는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어 물리면 자칫 손가락을 잃을 수 있어 항상 긴장해야 된다. 가물치는 회로도 활용되지만 무엇보다 가마솥에서 푹 고아 기름만 됫병에 담아 파는데, 산모에게 많이 팔았다. 한겨울에도 고기잡이는 계속된다. 얼음이 30㎝ 이상 꽝꽝 얼면 얼음낚시를 했다. 78년 비로소 모친과 부친은 의기투합을 한다. 모친도 아버지를 도와 매운탕을 끓였다. 대구로 왔다. 동구 청구고 옆에 ‘장안매운탕’을 차린다. 거기서 3년 있다가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4년간 ‘소양강매운탕’을 꾸려간다. 다시 수성구 범물동 두성아파트 상가에서 지금의 ‘민물박사’란 상호를 사용한다. 거기서 12년 있다가 황금동에서 5년, 두산동에서 12년 있다가 2년전 현재 들안길 본점으로 옮겨온다. 현재 막내동생 조창기씨가 북구 읍내동에서 직영점을 운영한다. ◆ 나의 감각적 매운탕 레시피 현재 이 집의 최고 인기 메뉴는 쏘가리와 잡어매운탕. 식용유의 비등점과 온도관리를 잘해 졸깃하면서도 파삭거리는 도리뱅뱅이(피라미튀김), 어탕국수와 어탕수제비, 어탕해장국 등도 ‘역시 민물박사표’란 믿음을 준다. 수족관에는 쏘가리, 빠가사리(동자개), 꺽지, 뿌구리(동사리), 메기, 모래무지, 잉어, 장어 등이 있다. 잡어를 끓일 때 여러 고기를 믹싱해서 끓인다. 어종마다 맛을 내는 방식과 울림이 다르다. 어종별 물성과 비린내, 살점의 여물기를 감안해서 혼합한다. 그가 빠가사리·꺽지·뿌구리·모래무지·피라미 맛의 특징을 설명한다. “빠가사리, 뿌구리 등은 육질이 아주 졸깃하다. 국물맛을 내는 데는 역시 빠가사리가 제일이다. 통째로 먹을 수 있는 건 뿌구리, 담백함을 만드는 건 역시 모래무지다. 피라미는 감초처럼 다른 어종의 장점과 단점을 조화롭게 해준다.” 현재 잡어 중 빠가사리, 잉어, 메기 등은 양식이 되고 쏘가리는 잡어매운탕집의 최고급 어종으로 양식이 안된다. 쏘가리도 가물치처럼 산 고기를 먹고 자라는데 섬진강, 경호강, 덕천강, 낙동강 상주보 상류 등 1급수에서 잡힌다. 예전에는 혼자 1인3역을 해야 됐다. 직접 고기를 잡아와 장만하고 끓이고 서빙까지 해결했다. 요즘은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 유통업자의 고기도 받고 철이 되면 섬진강 순창 구역, 낙동강 예천 구역, 금강휴게소 건너편, 황간 원류봉 계곡, 대원·무월저수지와 운문댐 밑도 찾는다. 그는 누구보다 저수지와 강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안다. 한반도 기후온난화로 인해 금어기가 빨라져야 되는데 당국은 현장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걸 지적한다. ◆ 어떻게 비린내를 잡지? 비린내 잡는 건 매운탕 업자의 최대과제. 집집마다 비법이 있다. 그는 일단 돌에 푸른 이끼가 감돌기 시작한 하천의 고기는 잡지 않는다. 그런 걸 잡으면 엄청 비린내가 나고 살점에서 석유냄새까지 난다고 했다. 그는 끓일 때 뚜껑을 닫아놓으면 비린내가 제대로 제압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드시 열어놓고 끓인다. 또한 된장과 고추장의 절묘한 배합도 맛의 최대 승부처. “일단 매운탕은 고추장이 주인공이고 된장은 조연이다. 고추장을 두 숟가락 넣는다면 된장은 반 숟가락 비율이면 충분하다. 된장은 구수하고 고추장은 얼큰칼칼한 맛인데, 된장은 국물맛을 육중하게 만들고 고추장은 맑고 담백하게 만드는 성질을 갖고 있다. 알아서 믹싱해야 된다. 초보는 그 감각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는 정량주의가 아니고 ‘눈대중주의’를 존중한다. 직감이 제일 정확하단다. 매운탕은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해야 하고 찜은 구수한 맛이 생명. 그래서 찜에는 들깻가루를 넣는다. 단맛도 삶은 양파즙을 활용한다. 도리뱅뱅이튀김용 피라미는 역시 금강에서 잡은 게 최고란다. 피라미튀김은 덜 익으면 물렁물렁하고 너무 튀기면 타버려 딱딱해진다. 탱글거리는 파삭거림. 촉촉한 쿠키와 건빵의 중간 지점 탄성을 유지해야 된다. 그건 레시피가 아니라 연륜이자 감각이란다. 잡어맛은 역시 10~12월이 짱이란다. 가을에는 메기가 진미다. 붕어는 살 속에 박혀 있는 고약한 Y자 잔뼈를 제거하기 위해 칼집을 많이 넣는다. 붕어는 역시 30㎝ 남짓, 잉어는 45㎝ 남짓이 가장 맛있단다. 실력파는 역시 육수에 의존하지 않고 좋은 재료에 맹물만 사용해야 참맛을 알 수 있단다. 수제비와 고춧가루에 너무 의존하면 결국 국물맛을 텁텁하게 만든다고 했다. 진정한 매운탕 맛은 식어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란 사실도 덧붙였다. 수성구 들안로 47 (053)768-2104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2.25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대명9동 가정식 전문 카페 ‘라퀴진 드 마망’의 패밀리 셰프
‘엄마표 레시피’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패밀리 오너셰프가 포착됐다. 대구시 남구 대명9동 카페거리에 있는 ‘라 퀴진 드 마망(LA CUISINE DE MAMAN)’. 엄마(문정숙·64)는 아직도 상호가 낯설다. 김준영(38)·현영(36)·현아(34). 바리스타인 현영의 남편 송재준씨(33). 이렇게 5명이 이 푸드카페를 지키고 있다. 성격도 어머니는 온화하고 현영씨는 불같고 현아씨는 좋은 게 좋은 성격이고 송재준은 깔끔하다. 열을 가장 많이 받는 건 현영씨. 합천 출신인 어머니는 한때 해인사 아래 30여개가 모여 있는 치인리 식당가의 유명한 손맛이었다. 외할머니 때부터 내려온 가업인데 1999년 자식을 위해 대구로 오기 전까지 25년간 ‘별장가든’에서 산채정식과 매운 소갈비찜으로 명성을 날렸다. 식당에서는 소갈비찜을 팔았지만 집에 오면 아이들에게 돼지갈비찜을 잘 해먹였다. 그 손맛을 아는 큰딸이 어머니를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른 프랑스 풍 오픈 주방으로 모셔왔다. ◆ 큰딸은 터트리고 엄마는 수습하고 삼남매 모두 엄마를 닮아서인지 다들 요리 본능이 꿈틀거린다. 현영씨는 29세때 늦깎이로 요리의 길에 들어선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다국적 브랜드 호텔인 ‘오크우드’의 주방 멤버였다. 서울에서 4년 있을 동안 청담동 레스토랑 ‘안나비니 ’등 2곳을 거쳤다. 서울 힐튼호텔 출신 이광우 셰프 밑에서 도제식으로 스킬을 배웠다. 요리 입문 4년이 되던 어느 생일에 대구로 왔는데 오빠와 함께 앞산카페에 놀러갔다가 휑뎅그렁한 사무실이었던 현재 가게터를 발견한다. 평소 쿠킹스튜디오를 가지는 게 꿈이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상경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해인사 식당가의 유명손맛 출신 손님을 식구의 연장선에서 모셔 짝퉁 재료는 본능적으로 거부해 ‘프랑스풍 찜 같은’ 돼지갈비찜 돼지고기를 토르티야에 올리고 유자 샐러드·수제 피클과 먹으면 또다른 맛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반 섞은 햄버그스테이크 패티가 육중하고 쫄깃 오렌지빛 토마토 로제 소스 일품 그렇게 해서 2011년 카페거리에 새로운 스타일의 식당이 생긴다. 브런치 전문 ‘브런치 스튜디오’다. 수제 소시지를 베이스로 샌드위치, 햄버그스테이크, 토마토·샐러드플랫브레드 등 피자보다 얇은 3종의 플랫브레드를 선보였다. 자리가 잡힐 즈음 현영씨는 이태원에 있는 ‘파크’ 등 가정식 메뉴 레스토랑에서 무엇인가를 직감하고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가정식 메뉴 전문 카페로 리모델링했다. 그렇게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표 돼지갈비찜 때문이다. 2014년 8월 오픈을 위해 두 달여 내부 공사에 들어간다. 일손이 필요했다. 일단 동성로 로데오거리에서 8년 차 잘나가던 옷가게 주인이던 여동생과 당시 수성구 시지에서 휴대폰 가게 사장이던 오빠까지 식당으로 불렀다. 엄마까지 동참한다는 소식을 접한 오누이는 미련 없이 장사를 접고 셰프로 변신했다. 현아씨는 언니를 보름만 도와주려고 왔다가 눌러앉게 됐다. 자매는 디자인과 패션이 무엇인지 안다. 특히 장식품류부터 식기류 정보를 인터넷 등에서 비교해가면서 자기 집에 가장 맞는 것을 골라냈다. 항상 ‘제대로 된 걸 구입하자’ ‘아끼지 말자’고 다짐했다. 조명등도 특별한 걸 골랐다. 수성구 조명 전문숍 나이팅뷰에서 도자기갓 전등을 찾았다. 주방도 완전 오픈했다. 요리하는 모습도 손님의 식욕을 돋게 한다고 믿었다. 입구에서 볼 때 오른쪽은 커피와 드링크류, 정면에는 오븐기와 3개의 화구, 왼쪽에는 조리대와 식기보관대 등을 세팅했다. 식기는 프랑스제 ‘에밀앙리’, 밥그릇은 일본제 ‘포테리폴스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프랑스제 무쇠솥으로 유명한 르 크루제와 스타우브가 무게감과 두께가 있어 보온율이 높을 것 같아 구입을 하려다가 잦은 수저질 때문에 표면이 긁혀 자칫 이물감을 줄까 싶어 포기했다. 자기 소재인 폴란드 그릇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고 메뉴라인과 앙상블을 이룰 것 같아 구입했다. 식재료도 식자재 백화점을 통하면 얼마든 반제품 소스, 양념, 오일, 장류 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가정식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수고스럽더라도 천연 식재료와 직접 만든 재료를 최대한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요즘은 스타일 세상이다. 맛 이전에 일단 스타일에 안 맞으면 오지 않는다. 갈수록 자기 색깔이 뚜렷한 세상이다. 자기 색깔이 없고 이것저것 다 끌어안으려고 하면 다 놓칠 수 있는 세상이다.” ◆ 엄마표 요리는 못말려 개업을 하면서 업무를 분장했다. 어머니는 양념, 오빠는 요리(돼지갈비찜, 햄버그스테이크, 리소토, 플랫브레드 등), 현아씨는 서빙, 매장관리, 커피와 음료 파트를 커버한다. 커피는 바리스타인 형부가 로스팅한 코스타리카와 브라질을 블렌딩해서 낸다. 오빠는 현영씨에게 레시피를 전수했다. 매일 남구 대명동 관문시장, 식자재마트 등에 들른다. 여기는 갓난아기를 안고 오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인다.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소화해 낸다. 현영씨는 두 달 전에 스페인에 갔다. 2013년에 결혼한 바리스타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갔다. 유명한 ‘호프만요리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어학 준비중이다. 오는 29일 다시 스페인으로 간다. 현아씨는 오는 20일 결혼식을 올리고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엄마표 레시피는 ‘눈대중’. 표준화하려면 엄마는 솔직히 진이 빠진다. 엄마는 집에서 요리할 때 부엌에 있는 재료만으로 만드는데 식당에서 그럴 수는 없다. 딸과 함께 레시피 작성에 나섰다. 대량으로 하려니 집에서 하던 그 맛이 안 났다. 재료와 무게를 달리 하면서 2개월 이상 수십 번 시행착오를 겪었다. 손맛을 실제 식당에 필요한 표준 레시피로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절감했다. 표고가루가 감칠맛을 내지만 현재 국내산을 제대로 구입할 수 없고 정체불명이라 포기했다. 엄마는 손님을 ‘식구의 연장’으로 본다. 식구용으로 요리를 한다. 본능적으로 짝퉁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음식 속이는 건 용서 못 한다. 그래서 ‘군기반장’이다.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누누이 말했다. “최고로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안 팔면 안 팔았지 나쁜 재료로 이익을 취하는 건 벼락 맞아 죽을 짓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제대로 된 값을 받자”고 강조했다. ◆ 엄마표 레시피 ◇돼지갈비찜= 꼭 프랑스풍 찜 같다. 소스가 믿음직스럽다. 아줌마들은 집에서 밥 비벼 먹으려고 국물을 포장해 간다. 찜 위에 토핑된 굵직하고 아삭한 콩나물이 아이스크림처럼 올려져 있다. 돼지고기를 가제손수건 같은 토르티야에 올리고 유자 샐러드와 수제 피클과 함께 먹으면 또 다른 맛이다. 소스와 고기 삶기는 따로 한다. 생강, 마늘, 고춧가루, 배, 사과, 진간장, 고추장(엄마표)과 정종, 양파, 음료, 물엿, 소금, 설탕 등을 넣어 소스를 만든다. 10㎏씩 진공포장돼 들어온 돼지고기는 냉장고에서 5~7일 숙성. 고기는 2~3일 마다 그날 잡은 고기를 받는데 냄새, 색깔, 부드럽기를 판단해서 안좋으면 다시 돌려보낸다. 갈비만 초벌로 삶아놓고 주문이 오면 그때 재벌한 뒤 양념을 버무려 낸다. 초벌할 때 감초, 통후추, 월계수잎, 재래식 된장 등을 넣고 압력솥에서 10분 정도 삶는다. 압력솥을 사용하면 순간적 압력으로 인해 잘 쪄져 고기가 부드럽다. 반면 솥에 삶으면 육즙도 많이 빠지고 질겨진다. ◇햄버그스테이크=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반씩 섞어 사용한다. 패티가 정말 육중하고 쫄깃하다. 상당수 냉동 패티를 사용하기 때문에 건빵처럼 살점이 푸석푸석 떨어지는데 여기는 스테이크 같은 질감이다. 전분을 사용하지 않고 수제 빵가루를 적당량 넣어 점착력을 발생시킨다. 감자도 처음에는 통감자를 구워냈는데 로제소스 때문에 해시포테이토를 아래에 깔고 그 위에 패티와 체다치즈를 올렸다. 오렌지 빛깔의 토마토 로제 소스가 물건이다. 개발하는 데 몇 개월 걸렸다. 토마토홀을 끓이는 데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고추장처럼 은근하게 푹 끓여 깊은 맛이 나도록 한다. 다른 데는 30분 금세 끓여 사용하는데 오묘한 울림이 안 나온다. 3시간 이상 묵묵하게 끓인다. 패티 만들 때도 유달리 양파와 샐러리를 많이 사용한다. 먹어 보면 쫄깃하다. 스테이크 맛이다. 쟁반도 손님 성격에 맞게 빨강, 주황, 노랑, 가지색 등 여덟 가지 컬러다. 아이들이 오면 핑크와 노란색 접시를 낸다. 밥맛을 위해 올린 반숙란이 올빼미 눈 같다. 월요일마다 휴무. 밤 9시30분 문을 닫는다. 찜은 2인분 2만2천원, 스테이크는 1만3천원. 남구 대명동 509-2번지. (053)202-3456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2.18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착한 빵집을 찾아서 - (3) 대구 수성구 노변동 정환철 베이커리
밀가루 반죽과 20여년 싸움 성한 손톱 없는 손이 자부심 佛의 최고급 고메버터만 써 오븐기는 국내에 흔치 않은 4천만원짜리 독일제 윙클러 하루에 많이 만들어야 15종 빵 이름에는 스토리텔링 가미 남은 빵 모두 푸드뱅크 기부 열정이 있으면 착해질까? 착한 빵집을 수소문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착하다는 건 정직하다는 것이고 정직하다는 것은 자기애가 있다는 것이고 그건 꿈과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밖에 할 게 없을 때 인간은 자신의 한계가 어딘지를 알기 위해 전력투구하게 된다. 대구 수성구 노변동. 수성IC권에 있으며 예전에는 경산 포도 벨트의 한 섹터였다. 그 언저리는 요즘 사월동과 함께 아파트촌에 잡아먹히고 있다. 최근 여기에 실력파 ‘파티시에(Patissier·제과제빵인)’ 한 명이 나타났다.서울 도심권에서 20여 년 잔뼈가 굵은 정환철 사장(42). 빵과 관련해 산전수전 다 겪은 몸. 겨울비가 내리던 날 정환철 베이커리를 노크했다. 상호 바로 아래에 ‘아뜰리에 & 베이커리’란 문구가 적혀 있다. 알고 보니 열 살 터울인 누나가 도예가였다. 베이커리를 오픈하기 전 이 공간은 누나의 작업실 겸 전시장이었다가 빵집으로 변신했다. ◆ 부모도 모르게 빵의 세계로 진입 그가 자신의 손을 보여준다. 얼마나 치열하게 밀가루 반죽과 싸웠던지 성한 손톱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기형적인 발톱이 떠올랐다. 그 손이 바로 자기 빵의 ‘자부심’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강북고 출신인 그는 1남3녀 집안의 독자. 그는 재수할 때부터 부모 몰래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 24세 때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한 베이커리학원에서 1년간 기본기를 쌓는다. 지하철 홍제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홍제동의 대표 빵집 ‘주재근 베이커리’에 입성한다. 월급 42만원, 월 2일 휴무, 오전 5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막장광부’처럼 일했다. 잠은 근처 기숙사에서 잤다. 당시 빵집에는 가마(오븐)장, 주단(반죽)장, 주마리(성형)장 등 모두 13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지금과 달리 해병대 훈련소만큼이나 군기가 셌다. 철저하게 도제식으로 기술을 전수했다. 오븐 시다로 1년 넘게 보낸다. 눌어붙은 철판을 말끔하게 닦아야 했다. 오븐이 뭔가를 배운 뒤 드디어 반죽팀으로 건너갔다. 5㎏, 10㎏ 등 중량별 반죽기가 6대 이상 종일 순차적으로 돌아갔다. 그는 제대로 반죽할 수 있게 반죽대를 잘 정리해두어야 했다. 학원에서 배운 지식은 현장에서는 무용지물.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빵 만들기 이전에 국내에 유통되는 밀가루 종류부터 알아야만 했다. 칼국수용과 빵집용 밀가루는 달랐다. 베이커리에는 강력·중력·박력분을 다 갖고 있어야 했다. 중국집과 국숫집은 중력분을 중점적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호주, 캐나다 등 수입 밀가루가 지천으로 깔렸다. 기능성 유기농 밀가루도 가세했다. 반죽을 1년 배운 뒤 과자와 쿠키, 롤케이크, 머핀 등을 배웠다. 이어 빵 성형 파트로 건너갔다. 주단팀과 주마리팀도 여러 단계가 있었다. 주단팀에서 2년 기술을 배우면 한 단계 위인 주마리팀 B급으로 인정받는다. 성형 파트에서는 반죽이 오면 단팥빵은 50g, 모닝빵은 30g, 식빵은 250~300g으로 분할할 줄 알아야 된다. 5명이 반죽을 자르고 밀대로 밀고 말았다. 그때 주력 메뉴는 단연 단팥빵과 소보루. 이어 일본 화과자의 상징인 ‘만주’까지 만들어야 한다. 6년 차가 되면 이제 빵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당시 근무여건은 너무나 열악했고 기술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툭하면 다른 빵집으로 이직해버렸다. ◆ 다람쥐 쳇바퀴 같던 수련기 그도 마찬가지였다. 1년6개월 후 쌍문동 ‘바게트플라자’로 가서 패스추리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이어 마포경찰서 옆 ‘리치몬드’로 가서 명장 권상범 문하에 들어간다. 리치몬드는 송파구 ‘코른베르그’, 김용모 베이커리, 나기학 베이커리와 함께 국내 5대 빵집으로 분류됐다. 리치몬드에서 성형의 디테일한 기술, 케이크의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다. 신당동의 ‘라띠에르’에서는 비로소 책임자가 될 수 있었고 거기서 기본기를 재검검한다. 다음에는 청담동 ‘아마폴라 델리’, 숙명여대 근처 ‘빵굼터’를 거쳐 서울에서의 마지막 베이스캠프인 불광동 ‘태극당’에 간다. 그가 한국의 제빵 시장이 유명 호텔빵, 공장빵, 프랜차이즈빵, 동네빵집 등을 거쳐 어떻게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 그 변천사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구세대 빵문화의 마지막 증인이랄 수 있다. 그가 제빵업계에 입문했을 때는 호황기라서 호텔빵이 국내 빵시장의 중심이었다. 그게 20여 년 전부터 점차 붕괴된다. 1980년대까지 서울빵, 샤니, 기린 등 공장빵과 일방 윈도 베이커리, 호텔빵집이 함께 호황을 누린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호텔빵이 먼저 추락한다. 그 중반에 동네빵집까지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쌍두마차에 당한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그들을 위협하는 유학파들이 고급·좋은빵집의 신지평을 연다. 파리바게뜨가 초창기와 달리 후반기에 양질의 빵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앞서 무너진 공장빵 시대 공장장을 대거 스카우트해 연구실 등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파리바게뜨도 분화돼 더욱 고급스러운 수제빵은 ‘파리크라상’이란 브랜드로 수도권에서만 팔린다. 국내 입지가 좁아진 파리바게뜨는 수도권에서 벗어나 지방과 중국·뉴욕권으로 진출했다. 그 자리에 유학파 오너셰프 베이커리가 홍대 앞, 강남 가로수길, 이태원 등지에 생겨난다. 이제 한국도 세계 각국의 빵 기술을 거의 섭렵한 상태란다. 일반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다는 정보 때문에 자꾸 체인점 빵을 멀리하고 하루 한정판만 구워내는 ‘유기농 수제시골빵 스타일’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2년 새 벌어진 현상이다. 이젠 커피숍 같은 빵집, 레스토랑 같은 빵집, 카페 같은 빵집, 서점 같은 빵집, 심지어 패션숍 같은 빵집 시대가 개막됐다. 색깔이 없으면 죽는다. 예전엔 빵만 고집해도 됐는데 이젠 스페셜티커피도 기본이란다. ◆ 내 빵 이야기 이젠 ‘경력파괴시절’. 그도 비전공 파티시에의 약진에 적이 당황하는 것이 사실. 그러나 지난 20년 경력을 굳이 앞세우지 않는다. 문 닫으면 지는 것. 역시 무서운 건 소비자다. 소비자가 변하니 주인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 하지만 “좋은 빵을 향한 그 열정만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일단 수돗물을 멀리한다. 고성능 정수기 물만 사용해 반죽한다. 견과류도 그냥 사용하지 않고 한 번 더 세척해서 사용한다. 르방(Levain·밀가루에 물을 섞어 오래 두면 자연적으로 생기는 천연효모)을 사용해 빵을 만든다. 프랑스 최고급 ‘고메버터’만 사용하고 마가린은 안쓴다. 오븐기는 국내에 그렇게 흔치 않은 4천만원짜리 독일제 ‘윙클러’. 일단 너무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빵은 멀리한다. 하루에 만드는 빵의 종류는 많아야 15종. 식빵류만 해도 용팔이, 에펠탑, 카푸치노, 빠삐코, 블루블루, 초콜릿스위스 등 10종류. 이들 단면 모양이 재밌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빵 이름도 밋밋하지 않다. 가능한 한 스토리텔링에 입각해 짓는다. 통헤이즐넛과 호박씨, 해바라기씨, 파인애플이 들어간 ‘완존영양빵’, 추억의 모카빵, 천연바닐라빈으로 만든 ‘슈크림’, 무항생제 계란과 유화제 없이 만든 ‘카스텔라’는 잘 숙성돼 계란 비린내가 풍기지 않는다. 주말에는 30여 종이 나온다. 빵이 남으면 푸드뱅크에 모두 기부해버린다. 부모는 모두 돌아가셨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아내, 세 살 된 딸, 도자기로 원격 지원하는 누나가 있어 다행이란다. 체험관광을 겸한 ‘농원형 시골빵집’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빵맛을 안 어느 커피숍에서 빵을 공급받고 싶다고 했지만 유통기한을 지키지 않을 것 같아 본점만 고수하기로 했단다. 청담동 수준의 빵인데 가격은 시골 버전이라니…. 그게 솔직히 안쓰럽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2.11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외식상권 이야기 - (5) 남구 대명동 맛둘레길
주택가와 카페. 아무 상관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서울 북촌 한옥마을은 차세대 카페 창업지망생의 러브콜 1순위 동네로 급부상한다.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란 의미를 갖고 있다. 가회동, 안국동, 삼청동, 사간동, 계동, 고격동, 재동 등이 맞물려 있다. 1930년대부터 근대화된 기와집이 들어선다. 한국일보 앞 안국역 2번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프로방스풍에서 일본 젠스타일까지 별의별 한옥카페, 한옥레스토랑, 한옥아트숍, 한옥박물관과 갤러리가 행인의 이목을 잡아끈다. 경복궁과 창경궁, 비원까지 옆구리에 차고 있어 ‘거리박물관’으로 불리고 정보센터와 해설사까지 생겨났다. 이 흐름을 비교적 잘 흡수한 곳이 바로 대구 ‘앞산맛둘레길’이다. 맛둘레길은 크게 대명9동을 축으로 한 ‘카페거리’, 앞산순환도로변에 있는 맛집, 안지랑시장 옆 안지랑양념곱창골목 등 3개 섹터가 합쳐져 있다. 현재 맛둘레길에는 안지랑곱창집을 포함해 100여 업소가 포진해 있다. ◆ 카페로 변신한 대명9동 주택가 대구시 남구 대명9동.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의 부자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저택을 많이 지어 한때 ‘부자동네’로 불렸다. 하지만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경일원, 녹원맨션, 신포빌라 등 수성구에 고급 빌라·아파트·맨션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부자들이 대거 수성구로 빠져나간다. 대명9동은 IMF외환위기 직후 대저택은 하나둘 원룸에 잡아먹히며 슬럼화되고 있었다. 그 흐름을 예의주시한 사람 중 한 명이 대구의 1세대 패션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변상일씨. 그는 75년 9월15일 동성로3가 현재 유니클로 앞에서 창업했다. 패션쇼를 50여차례 했고 삼익뉴타운점을 오픈했을 때 하루 2천500만원어치도 팔았다. 84년 대구백화점에 캐주얼숍을 처음 입점한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레스토랑 창업 컨설턴트 겸 카페 오픈 전문가로 변신한다. 2000년 겨울, 패션과 레스토랑을 매칭한 ‘F & P’를 남구 대명동 남명삼거리 동쪽 도로변에 오픈했다. 지역 ‘패션카페’의 신호탄이었다. 그게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그 구역이 전국 처음 주택가를 축으로 한 ‘명품거리’로 발돋움한다. 대명9동 축으로 한 카페거리 앞산순환도로변의 맛집 안지랑양념곱창골목 등 3개 섹터에 100여 업소 포진 디자이너 변상일씨 패션카페 폭발적 인기 누리면서 주택가의 명품거리로 발돋움 이탈리안 레스토랑 ‘국수’ 오너 셰프 구자덕씨 이색거리 만들기에 열정 쏟아 동성로에서 이전한 금은방 미성당, 패션숍 I’M HONG , 퀼트박물관, 뮤직홀 같았던 강민구 원장의 KMG내과 등이 들어선다. 당시 식당이라고 해봐야 한때 대구미문화원장 저택이었던 자리에 들어온 흑태찜 원조 ‘일송명가’, 대명9동 주민센터 근처에서 80년대 중반부터 세코시 전문 횟집 시대를 연 ‘정이품’과 복어 전문점 ‘용궁복어’ 정도였다. 그런데 F&P가 매각돼 아메리칸 스타일 레스토랑 ‘튜즈데이 모닝’으로 거듭난다. 튜즈데이 모닝은 990㎡(300평) 규모로 지역에선 괜찮은 인테리어와 큰 규모로 주목을 받았고 빠르게 정착했다. 묵직한 미국식 스테이크를 냈던 튜즈데이 모닝은 ‘다이닝 유(Dining you)’로 상호를 바꿔 리모델링된 뒤 현재 서울의 토러스 F&C가 임차해 필라프·전복 특선 등을 선보이고 있다. 연이어 대구발 프랜차이즈커피숍인 ‘시애틀의잠못이루는밤’, 브런치카페인 ‘빈스마켓’이 들어섰다. 변상일씨의 아들 창민씨는 카페거리 서쪽 끝에서 ‘파스타민’이란 파스타 전문점을 연다. 그곳은 한때 양념이 짙은 대구식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인기몰이했다. 2010년 6월 미성당 자리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국수’가 들어온다. 서울발 디저트카페 체인점인 투썸플레이스에 밀려났지만 도로 건너편으로 이전해 보란 듯이 자리를 잡는다. 낙천적 성격, 진취적 아이디어, ‘수제요리철학’으로 무장된 국수 오너셰프 구자덕씨는 시내 동성로에서 리틀이탈리아와 지오네 등 두 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구자태 사장의 친형이다. 형제는 지역에서 그 진정성을 인정받는 열정파 이탈리아 요리 전문가. 특히 동생 구자덕씨는 420g에 4만5천원인 육즙이 고급스럽게 형성되는 ‘티본 스테이크’를 이 거리의 명물로 만든다. 노모가 지키고 있는 고향 의성의 각종 허브, 채식 등을 적극 활용한다. 그는 이 거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명 체인커피숍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고 믿는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아트숍, 공연장, 식당, 주점 등이 절실한데 다들 도로변만 노려 지가와 임차료가 폭증해 자칫 공멸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카페거리란 평범한 이름 대신 ‘이탈리아거리’(가칭)로 정해 골목 하나하나를 이탈리아 관련 캐릭터로 치장해 나가면 분명 캐릭터거리로 성장할 거라고 믿는다. ◆ 오드리헵번 카페도 등장 아무튼 거리에 손님이 몰리자 다빈치와 카페베네, 더 브릿지, 스타벅스, 하바나, 파스쿠찌, 드롭탑 등 대구·서울발 유명 커피체인점이 들어선다. 최근에는 2013년 오드리 헵번 공식 재단과 론칭계약을 맺은 오드리헵번 카페 대구점이 18세기 파리의 커피하우스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쿠바의 ‘크리스탈마운틴 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이 커피는 ‘노인과 바다’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집필한 헤밍웨이와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도 즐겨 마셨다고 한다. 대명9동 카페거리는 다이닝 유를 중심으로 T자형을 이루고 있다. 현재 짬뽕카페 ‘블랙스완’, 일본 라멘 전문점인 ‘토로루’, 티하우스인 ‘코코로’, 아메리칸 다이닝이란 기치를 내건 ‘33스테이크 하우스’등이 서쪽 라인을 지키고 있다. 33스테이크 하우스는 대구에서 가장 푸짐한 스테이크라인을 자랑한다. 블루베리소스를 스테이크 위에 뿌렸고 곁에 구운 파인애플, 양파, 버섯류를 함께 올려준다. 1인분씩 대신 2명 이상이 한꺼번에 잘라 먹도록 했다. 또한 어머니와 오누이가 합심해 카페에서 가정식 돼지갈비찜을 내는 레스토랑이 있다. 바로 ‘엄마의 부엌(LA CUISINE DE MAMAN)’이다. 그 엄마는 합천 해인사 아래서 20년간 산채정식집을 꾸려온 대단한 손맛의 소유자. 쉬고 싶지만 자식의 성공을 위해 맘을 냈다. 얼굴에 작은 점이 있어 여배우 전지현을 연상시키는 이세희씨가 독학으로 터득한 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대명9동 치안센터 바로 옆 ‘로지로키로드’도 케이크 마니아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있다. 그 옆에 후발주자로 등장한 ‘앞산옛날통닭’이 있다. 튀긴 통닭 한 마리에 6천원, 두 마리 1만원. 생맥주도 500㏄ 3천원. 가격 대비 푸짐함을 느낄 수 있어 하절기에 가게 앞은 프라이드치킨족으로 장사진을 친다. 7분 전에 전화를 하면 포장을 다 해놓는다. 일본식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곳은 토로루와 키햐아. 키햐아는 돈부리(덮밥) 전문점이다. 대명중 북쪽 담 바로 옆에 있는 ‘어반 페어(URBAN FARE)’는 7세 미만은 출입금지. 여기는 입구 벽에 스테이크 고기굽기 정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레어는 10~20%, 미디엄레어는 20~30%, 미디엄은 50%, 미디엄웰던은 60~70% 익힌 것이라는 걸 적어뒀다. 일반 소고기 대신 일본의 명품 쇠고기인 와규(和牛) 스테이크를 판다. 와규는 일본 고베의 최고급 와규를 호주 앵커스 품종과 교배해 호주에서 청정하게 키운 것이다. 비싼 와규는 마리당 1억원선. ◆ 앞산순환도로변 맛집 대명중학교 정문에서 조금 남쪽으로 가면 앞산순환 구길과 만난다. 그곳에 지역 첫 김치 전문점이 있다. ‘김치단지’인데 특히 김치찜과 시래기비빔밥(6천원)이 입소문이 많이 나있다. 그 건물 아래 콩국수와 닭국수 전문점인 콩닭콩닭이 있다. 대덕식당쪽으로 걸어가면 82년 대구에서 맨처음 전라도의 곱돌로 만든 돌솥밥 전문점을 차린 ‘돌솥식당’이 나온다. 김상두씨(77)로부터 둘째 아들 도균씨로 가업이 전승됐다. 기계가 아니라 오직 손으로 직접 15분 정도 돌솥으로 지은 밥을 내고 갈치를 1인당 두 마리씩 낸다. 고급 냉동갈치를 사용한다. 초창기에는 연탄불로 갈치를 굽다가 이제는 가스를 사용한다. 한 음식으로 33년간 한 자리에서 롱런한다는 건 대구 실정에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대순진리회 대구교당 바로 옆 골목 아래로 내려가면 1만원을 내고 이렇게 푸짐한 전라도 음식을 먹을 수 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전라도밥상’이 있다. 앉으면 홍어 한 점과 직접 담근 갓김치, 수수부꾸미와 부추전, 가자미전이 세트로 나온다. 한강 이남 최고의 선지해장국 전문점 대덕식당도 이 거리의 터줏대감. 원래 그 자리는 ‘맹산옻닭집’이었다. 그 닭집 때문에 8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 첫 닭백숙 거리였다. ‘설록정’은 아직도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옻닭 전문점. 모르긴 해도 대구에서 가장 졸깃하고 만족도가 높은 민물장어를 먹으려면 온천골 국밥집 바로 옆 ‘대덕골민물장어’로 가라. 메밀 전문 업소가 3곳 붙어 있다. ‘오월의 메밀’은 메밀로 묵사발, 만두, 비빔밥, 칼국수, 수제비, 막국수, 전 등을 만든다. 그 옆에 ‘앞산손메밀묵집’과 ‘풍성손메밀묵집’이 있다. 수제메밀의 진수를 보여준다. ‘빨간우체통’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버전’이다. 입구에 아프리카풍의 조각품을 전시해 놓았다. 1만원대의 곤드레밥 정식을 먹으려면 역시 ‘백복 수반’이 딱이다. 빨래터 삼거리 근처는 한때 칼국수거리였는데 요즘은 지형도가 확 바뀌었다. 가족은 물론 연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두 셰프의 돈가스 & 마루’는 치즈퐁듀돈가스, 마약우동, 눈꽃볶음우동 등 메뉴 이름에 대한 상당한 감각을 갖고 있다. 근처에 ‘이박사 벌교꼬막정식’과 ‘뽕잎짬뽕 전문점’이 진을 쳤다. 밤에는 ‘영순이 육회집’이 불야성을 이룬다. 고압선 도로로 내려가면 국내 첫 산낙지 전문점이란 현수막을 건 ‘봉수낙지’가 왼쪽에 보인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2.04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더 브릿지’오남규 사장, 커피를 말하다
난리다. 커피숍이 식당보다 더 맹렬하게 러시를 이룬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커피민국’인 것 같다. 특히 2년 새 수성못 주변은 대구 최고의 ‘커피토피아(Coffeetopia)’로 급부상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쌍화차 등을 앞세운 ‘마담 다방’이 호시절을 맞았고 이후 음악다방을 거쳐 이제는 커피숍시대로 접어들었다. 커피숍도 몇 년 새 진화해서 브런치 카페, 디저트 카페, 베이커리 카페, 스페셜티 커피숍, 초저가 커피숍 등으로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한국관세무역개발원이 내놓은 ‘국내 커피 수입시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1명이 마신 커피는 평균 341잔. 전년도 298잔보다 14.4%(43잔) 늘어났다. 국내 수입커피 시장도 매년 확대일로. 지난해 국내 커피 수입시장은 5억9천만달러로 최근 10년간 해마다 15.3%씩 성장했다. 나쁜 맛을 알면 좋은 맛도 알게 돼 5천만원어치 생두 테스팅으로 날려 신맛에 대한 소비자의 호불호 갈려 에티오피아 커피 가능한한 적게 사용 청년백수 상당수는 부모가 조금만 지원해주면 자기만의 커피숍을 차려보겠다는 각오다. 재력가 부모는 이렇다 할 기반을 잡지 못한 자식을 위해 커피숍을 쾌척한다. 9년 역사의 더 브릿지(The bridge). 대구 커피 시장의 급성장 흐름을 몸소 체험해 왔다. 드물게 가게 입구를 오렌지 아크릴 보드로 휘감아 행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현재 20여개의 가맹점을 갖고 있다. 본점은 지산동에 있다. 유독 대구만 고집한다. 오남규 사장(36). 그는 자신을 바리스타로 여기지 않는다. 실력보다 호기심을 파고드는 남다른 열정이 무기라고 했다. 청주대 체육교육과를 나와 제주도 모 병원 총무과에서 근무했다. 1년 정도 근무하다 매형의 권유로 커피를 접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스타벅스는커녕 대구 브랜드인 다빈치와 시애틀조차 몰랐습니다.” 매형 선배인 이길우 대표를 만나면서 커피맨으로 변신한다. 2008년 초 KBS대구방송총국 앞 브릿지 범어점이 오픈하기 전 맨땅에 헤딩하듯 커피의 비밀을 캐기 시작한다. “일단 사전 지식 없이 그냥 죽도록 커피를 마셔보고 싶었어요. 무지막지하게 통째로 생두와 원두 공부, 로스팅, 드리핑 등을 몸으로 익혀나갔어요. 길우형이 내려준 걸 많이도 먹었습니다. 많을 때는 하루 100잔을 넘었어요.” 에티오피아와 예가체프가 그를 가장 강하게 흔들었다. 그외 국내에 잘 유통되는 30여종의 커피를 접한다. “나쁜 맛에 더 치중했습니다. 나쁜 걸 알면 좋은 건 자연히 알게 되잖아요. 4천만~5천만원어치 생두를 볶아서 테스팅을 위해 다 날려버렸죠.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오직 커피에만 매달려 있었어요. 연애조차 시시해 보이던 시절이었죠.” 그해 4월 오픈하면서 이길우-오남규 브릿지 라인이 형성된다. “로컬브랜드지만 로스팅룸을 가졌어요. 초창기부터 브릿지만의 향을 정착시켰습니다. 체인 사업을 위해 커피보다 커피숍의 생리를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전국 유명 커피숍 벤치마킹에 나섰어요. 좋은 데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저를 만족시키지 못했어요. 그들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다들 환상을 팔고 분위기를 팔고 멋을 팔고 있었습니다. 애송이에 불과한 브릿지가 살기 위해선 맛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믿었어요.” “커피 맛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기호식품이라서 정답이 있는 건 아니죠. 커피는 아는 대상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알아가는 대상이라고 봅니다.” 로스팅과 관련해 전통적인 8분류법에 따라 1단계 ‘라이트’, 2단계 ‘시나몬’, 3단계 ‘미디엄’, 4단계 ‘하이’, 5단계 ‘시티’, 6단계 ‘풀시티’, 7단계 ‘프렌치’, 8단계 ‘이탈리안’에 해당되는 컬러와 향을 비교했다. 독일제 프로밧 등 국내에 등장한 각종 로스터와 커피드리퍼별 특징도 익혀 나갔다. 수망에 넣고 숯불을 이용해 직화로 구워보기도 했다. “생두가 좋다면 웬만하게 볶고 갈아 드립하면 다 괜찮은 커피라고 봅니다. 썩은 생선 같은 저급한 생두로는 답이 안 나오죠. 저는 커피 맛을 결정하는 것이 생두는 90%, 로스팅은 5~10%로 봅니다. 바리스타 영향은 별로 없다고 봐요.” 브릿지 규모로는 해외 현지 농장에서 대량 구입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분석했다. 이 회사 저 회사 물건을 다 받아서 볶아 테이스팅을 해봤다. “모두 좋은 걸 가진 유통상은 없죠. 어느 건 좋고 어느 건 나쁘니 알아서 판단해야죠. 그런 건 책에도 안 나오고 스스로 터득해야 합니다.” 그가 커피 블렌딩의 철학을 얘기해 준다. “3~6종류의 커피를 섞는 건 부족한 향을 충족해 자신만이 원하는 목표점을 향해가는 과정이죠. 저희는 콜롬비아를 축으로 과테말라나 탄자니아를 사용하면서 케냐나 예가체프를 적당히 안배해 질감을 조절합니다.” 그가 이 대목에서 신맛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대다수가 신맛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어요. 일부 손님은 신맛을 탄맛이나 쓴맛으로 몰아버리기도 합니다. 신맛은 식으면 텁텁해집니다. 신맛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 심해 에티오피아 커피는 가능한한 적게 사용합니다.” 브릿지는 2011년부터 가맹사업을 시작한다. 처음엔 체인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교육생과 지인들 때문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실력 이전에 열정…돈 때문이라면 쉽게 지치니 가능한 한 하지 마라” ■ 예비 창업자에게 한마디 하루에 커피를 3~5잔 마신 사람이 더 오래산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상태다. 커피숍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커피전문점업은 저성장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에서 고속성장하는 몇 안 되는 업종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위면적당 전국에서 가장 커피숍이 많은 도시가 대구다. 커피시장도 고가와 저가로 양분될 전망이다. ‘백주부’ 백종원 바람을 타고 ‘빽다방’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6년 첫 개점 후 지난해 말까지 30개 매장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11월 현재 300개를 돌파했다. 핵심 전략은 ‘싸고 큰 커피’다. 아메리카노 한 잔(500㎖)에 1천500원이다. 당장 미투 브랜드들도 줄을 잇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커피식스’도 최근 테이크아웃 전문점 ‘커피식스미니’를 통해 1천원대 커피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9년 건국대 인근에서 생긴 생과일 주스 전문점 ‘쥬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M 사이즈가 1천원이다. 이와 같은 저가 커피는 기존 이디야커피의 성장 모델을 뒤쫓고 있다. 주로 2천원대 음료를 파는 이디야커피는 과거 ‘스타벅스 옆에 있는 더 저렴한 커피 가게’로 성공했다. 반면 저가 못지 않게 고급 스페셜티 커피숍도 동반 강세를 보일 것이다. 진짜 수제커피의 진수를 맛보려는 꾼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커피는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사업인가” 묻는다. 돈이라면 식당이 더 잘 벌 것이다. 상당수 돈을 가진 사람들은 “식당할래? 커피숍 할래?”라고 물으면 “커피숍이 있어 보이고 우아해 보여서 선호한다”고 말한다. 주말의 바글거리는 메이저급 브랜드 커피숍의 상황만 보고 돈이 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건물에 들어가 유명체인점을 하려면 5년 계약으로 투자금 회수도 어려울 수 있으니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커피숍은 직장생활보다는 좀 나을지 모르지만 다른 걸 감내해야 한다. 개인 생활이 없다. 가족과도 함께할 겨를이 없다. 수족 같은 직원과 매니저 구하기가 어렵다. 손님은 적잖을지 모르지만 회전이 잘 안 된다. 앉으면 평균 3시간 이상, 심할 경우 8~9시간 쉬다 간다. 창업해 봐야 그 고충을 실감할 것이다. 많이 문 열고 많이 망할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실력 이전에 열정이다. 돈 때문이라면 쉽게 지치니 가능한 한 하지 마라. 커피전문업체인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의 2014년 손익계산서를 보자. 스타벅스 원재료가격 비중은 13%, 인건비 25%, 임차료 20%, 감가상각비 7% 등이다. 골목안 커피숍이라면 1명에게라도 최선을 다하라. 1명 단골이 100~200명도 데려온다.
2015.11.27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수성구 범어동 감포은정복어 정명화 오너셰프
복어. 중국에서 발흥해 일본으로 갔고 나중에는 한국에까지 스며든다. 복어는 한·중·일의 전유물이다. 유럽 등 그 밖의 나라에선 거의 먹지 않는다.한국의 복어요리는 원래 일제강점기 일식당에서 비롯된다. 일식당의 풀코스 요리 중 하나가 복어요리였다. 거기서 기술을 배운 요리사가 광복 직후 독립해 자기만의 복어요리를 선보인다. 일본은 코발트빛 큰쟁반에 얇게 썰어낸 사시미를 한점씩 올리는데 멀리서 보면 ‘매화’가 피는 것 같다. 대구는 부산 못지않게 복어 마니아가 엄청 많다. 특히 1960~70년대 경제도약기 숱한 사장과 고위 공직자의 숙취해소에 일조했다. 북어국과 대구탕도 메이저급 해장국이었다. 참고로 복어를 끓여냈을 때 탕보다는 국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사골 정도를 우려내야 ‘탕’ 자격이 있다. 부산에서는 복어국을 ‘복국’이라 한다. 대표적 식당은 1992년 도청사건으로 대서특필됐던 ‘초원복국’. 그런데 요즘은 ‘이름보다 못하다’는 평가다. 마산시 남성동 어시장 근처에 전국 첫 ‘복요리거리’가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에는 대신동 네거리, 반월당 근처에 복 전문점이 적잖게 포진해 있었다. 특히 복명초등학교 근처에 있었던 ‘대하림’이 좌장격이었다. 상당수 사라지고 현재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복어집은 반월당 근처 ‘광성식당’과 계산동 ‘거창복어’, 서구 원대동의 ‘자갈마당복어’, 달서구에는 ‘성당·본동·월성복어’, 동구 ‘해금강’ 정도다. ◆ 참복의 메카…감포은정복어 대구MBC 바로 동쪽에 있는 ‘감포은정복어’. 아는 사람만 아는 참복 전문점. 알록달록한 박제 복어가 벽에 수북하게 걸려있다. 태극문양을 그려놓은 복어도 보인다. 정명화(53)·엄홍섭(67) 부부 오너셰프. 호흡이 척척 맞다. 남편이 복어를 사와서 손질까지 해주면 아내는 그걸로 국을 끓인다. 절정의 복어 맛을 위해 가족이 똘똘 뭉쳤다. 부부를 비롯해 두 아들 창수·성준씨까지 가세했다. 정 셰프는 누가 인사를 해도 가끔 멍하게 받아넘길 때가 많다. 항상 장화차림. 음식에 올인한 탓이다. 맛의 일관성을 위해 체인사업도 고사했다. 아무튼 은정은 참복을 중심으로 한 고급 복어 시대를 열었다. “공판장에서 ㎏당 6만~7만원에 거래되는 참복은 그 시절에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맛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감포 해역의 참복만 사용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 같습니다.” ◆ 경주 감포항에서 태어난 은정복어 대구에서 태어난 건 아니다. 당시 경주 월성군 감포읍 현재 감포항 옆에서 ‘감포은정횟집’으로 출발했다. 시어머니(이윤분)는 경주는 물론 서울, 부산, 울산 등 경남권에서 더 알아주는 복어 전문가. 당시 은정은 33㎡(10평) 남짓한 허름한 식당. 호구지책으로 횟집을 열어 미주구리(물가자미), 도루메기, 참까삼(참가자미) 등도 팔고 복어 국도 팔았다. 나중에 복어로 특화된다. 국내 첫 대중적 음식칼럼니스트였던 소설가 벽파 홍성유는 월성군 식당 중에서 은정만 소개했다. 70년대 후반부터 감포항에도 수족관이 생기면서 ‘활어회 시대’가 개막된다. 항 주변에 은정을 비롯해 호궁, 한일 등 횟집이 들어선다. 은정은 오직 감포산 참복만 고집했다. 경주의 첫 호텔인 코오롱호텔 VIP 고객도 1시간 남짓 걸려 참복을 먹기 위해 은정으로 차를 몰았다. 시어머니는 2005년까지 일을 했고 이후에는 정 셰프 내외가 가업을 잇는다. 2000년대가 밝아지면서 동해안 국도7호선 주변에 횟집이 봇물 터지듯 생겨난다. 더 넓고 나은 시장을 찾아 2001년 생면부지의 대구로 건너온다. ‘그래도 감포은정복어인데…’라면서 승부수를 띄운다. 그런데 대구는 복어 요리만 즐겼지 복어 종류에는 캄캄했다. 대일 수출 때문에 대구에선 참복조차 맛볼 수 없었다. 고작 밀복·까치복·졸복·은복 정도만 유통됐다. 2000년대 고만고만한 복어집은 제일 저렴한 수입 냉동 은복에만 기댄다. “다들 은정복어가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더군요. 초창기엔 복어 마니아라면서도 복어와 아귀조차 구별 못하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진실과 정성은 통한다고 믿고 버텨나갔죠.” 은정은 요즘 가장 바쁘다. 참복 철이기 때문이다. “매년 10월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철이죠.” ◆ 은정복어의 요리 비법 은정의 참복지리는 국물 포스가 남다르다. 잘 끓인 ‘설렁탕국물’ 같이 뿌옇다. 왜 그렇지? 기자는 무즙을 사용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알아보니 수컷 ‘정자(곤)’를 천연조미료로 활용하고 있었다. 진미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을 때 울림이 더 큰 법. 참복도 마찬가지. 그녀는 육수를 거부한다. “대구에 와보니 다들 식재료 구분도 없이 맹목적으로 같은 육수를 사용한다는 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식재료가 좋다면 육수가 왜 필요할까요. 참복에는 절대 별도 육수를 사용할 필요가 없죠. 맹물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대신 수컷 정자인 곤을 적당히 넣으면 참복의 진미를 그대로 전해받을 수 있어요. 곤이 천연조미료 구실을 하기 때문이죠. 비법도 아닌 그 레시피를 시어머니한테 배웠어요.” 그녀는 요즘 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은복에 딴죽을 건다. “솔직히 ‘김 빠진 맥주’ 맛 같다”고 했다. “싸면 그만이란 지역정서 탓인지 모르겠어요. 제철 제대로 된 참복을 제대로 된 가격에 먹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녀는 대구에서 태어난 복불고기도 불편해 했다. “양념이 들어가고 각종 식용유가 들어가면 복어를 먹는 건지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먹는 건지 통 분간이 안 가죠.” 남편 엄씨가 참복 사시미에 대해 도움말을 준다. “썰기 어렵다고 얼리면 맛이 죽어버립니다. 반드시 생물 상태로 얇게 베어내야 합니다. 복사시미 전용 칼은 면도칼처럼 생겼어요. 1㎜ 이하로 정교하게 썰어내야 하는데 절대 쉽지 않죠. 칼날이 밖을 향하지 않고 몸쪽으로 메스질하듯 포를 치는데 5㎜를 넘으면 질겨 먹을 수 없습니다.” 엄씨는 파란 접시는 일본 스타일이라 싫어하고 흰 접시 위에 포를 올린다. 가끔 미나리로 묶어낼 때도 있다. 고수일수록 고추냉이장에 찍지 않고 폰즈소스를 사용한다. 더 고수는 아무것도 찍지 않고 사시미째로 먹는다. 변하는 맛의 스펙트럼을 느끼기 위해서다. 10년전부터 국내에도 참복이 유통된다. 현재 은정 수족관에는 3종류(참복, 밀복, 까치복)의 복어가 있다. 참복도 혼참복과 까마귀(가라스)참복으로 갈라진다. 혼참복은 배쪽 지느러미가 흰색이고 까마귀참복은 검정색이다. 여긴 혼참복만 사용한다. 현재 참복사시미 한 접시 15만원. 참복지리는 1인분 3만5천원. (053)752-5271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1.20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구본건 인터불고 엑스코점 대표이사에게 지역 외식사업을 묻다
2000년 31곳이었던 대구의 호텔은 현재 10개 수준으로 줄었다. ‘호텔 하면 뷔페’란 등식이 무너진 지도 오래다. 침체일로의 지역 호텔업계에 새로운 뉴스가 생겼다. 지역 외식업계의 리더로 불렸던 구본건씨(61). 그가 1993년 열었던 전국 최초의 죽 뷔페 ‘마이 하우스’를 정리하고 인터불고 엑스코점 대표이사가 됐다. 지난 3월27일 그는 인생 3라운드의 첫 단추를 끼웠다. 구 대표는 1981년 중구 대봉동 한일회관을 시작으로 훼미리가든, 훼미리뷔페, 두산동 동아스포츠 후레시아 레스토랑 등 15개 이상의 각종 식당을 운영했다. 대구국제음식박람회 초대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던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지역 외식업계의 산증인. 큰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식당업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구 대표는 고급 모텔에 추격 당하고 있는 게 현재 대구의 호텔이라고 지적했다. 호텔이 호텔 밖의 식당 수준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고객의 변화하는 욕구를 읽지 못하고 있으며, 오락실·나이트클럽·부동산 투기 등에 쏠린 안일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했다. 토털마케팅 관련 전문 경영인 부재도 문제로 꼽았다. 구 대표를 만나 지역에서 식당 사업이 얼마나 힘들고,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뷔페 로컬푸드화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봤다. ◆ 한일회관 시대의 실험적 경영 그의 지난 세월은 모험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대구시 중구 대봉동의 대표적 중식당이었던 ‘만리장성’ 맞은편에 있었던 한일회관. 그는 29세 때 한일로부터 전무 제의를 받는다. 훗날 이 회관은 동아백화점 바로 옆 대구회관과 함께 대구 칭기즈칸 요리의 심장부로 발돋움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회관은 적자 상태였습니다. 1주일간 고민했어요. 과연 이걸 키울 수 있을까?” 일단 식당 분석에 들어간다. 이후 그가 제시한 경영술은 지금 봐도 ‘신의 한 수’란 생각이 든다. 고정고객이 없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지역 최초의 ‘VIP 멤버십 회원 카드’를 도입한다. 카드를 받을 만한 인사를 물색했다. 전화번호부를 보고 관공서 각종 사회단체장 정보를 수집했다. 대상자를 1천명 뽑았다. 가입 권유 엽서를 보냈는데 250명에게서 회신이 왔다. 인맥이 엄청 넓어지는 계기가 된다. 당시 ‘VIP멤버십’이란 개념은 서울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흔한 게 카드지만 당시는 주민등록증 이외에는 별다른 카드가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하루 매출이 30여만원이었는데 반년 후 무려 5배 이상 신장한다. 그가 졸지에 화제의 인물이 된다. 특히 호텔 관계자로부터 숱한 러브콜을 받는다. 수성관광호텔까지 한일의 신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15개 이상의 식당 운영경험 지역 외식업계 리더로 불려 ‘VIP멤버십 회원 카드’ 지역서 처음으로 도입 ‘직원 부조계’로 단합 도모도 인터불고 엑스코점 운영 맡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뷔페 개선 80가지 메뉴 가운데 40%를 대구·경북 로컬푸드로 세팅해 가격 낮춰 10월 매출 목표초과 영업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그는 연이어 혁신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직원들의 마인드 개조에 나선다. 직원이 소극적이면 결국 망한다고 믿었다. “80년대초까지만 해도 식당 직원은 최하급 인생으로 치부됐습니다. 그들은 서비스 정신이 뭔지 친절이 뭔지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입에 풀칠하는 것에 만족했죠. 음주와 도박이 상습화되었고 식당에 대한 사명감도 없어 툭하면 연락두절이었습니다. 직원들을 사장의 마인드로 바꿔나갔습니다.” 즉시 ‘직원부조계’도 도입해 홀과 주방 직원을 하나로 묶었다. 봉급 받아 일정액을 복지계금으로 운용하니 이직률도 훨씬 줄어들었다. 계금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 없다는 걸 역이용한 것이다. 만성피로를 해소시키기 위해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주 6일제’를 실시한다. 매출이 폭증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해수욕장도 가고 조기축구, 등산, 낚시, 선진지 견학도 했다. 방긋 웃는 눈 인사를 교육시키기 위해 거울 앞에서 자기 표정을 보며 제대로 웃게 했다. 그는 항상 “직원이 웃으면 손님도 웃는다. 그럼 식당이 된다”고 역설했다. ◆ 내가 친절하면 손님도 친절하다 종업원에게 부수입이 뭔지도 가르쳐준다. “제가 그랬어요. 가령 삼대가 같이 올 경우 인사만 할 게 아니라 어르신과 아이의 손을 잡고 입구에서부터 자리까지 모셔다 드려라. 그럼 손님의 대우가 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죠.”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그가 도입한 경영기법 중 아주 인상적인 게 있다. 바로 계산을 카운터가 아니라 식탁에서 하도록 유도했다. “카운터에서는 다들 거스름돈을 챙기죠. 하지만 식탁에서 하면 고생하는 것 같은 담당 웨이터에게 거스름돈은 팁으로 줍니다.” 당시 웨이터 급료가 3만원 정도인데 10만원이 넘는 팁이 들어왔다. 내친김에 ‘테이블 실명제’도 도입한다. 웨이터 혼자 5개 테이블을 커버하도록 했다. 누가 더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면 담당자가 무한리필을 해주도록 했다. 아직 식당가에 리필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3년간의 한일회관 시절을 끝내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창고에 있는 온갖 기물을 끄집어내 정리를 다 해주었다. 화장실 소변기도 직접 염산을 사용해 때를 다 벗겨놓았다. 후임자에게 1급 정보까지 다 인계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도는 봉변의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한 번은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고 단단히 화가 난 고객한테 봉변의 뺨을 맞았다. “순간 울컥하는 게 올라왔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했죠. 참아야 화난 고객도 숙질 거란 판단이죠. 몸을 꺾어 사과를 했어요. 지금도 얘기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고객과 다투지 마라.” ◆ 갱시기 1번지 골목길 식당 창업기 이제 독립의 시각. 자기만의 음식을 찾았다. 옛날 가마솥을 1인용으로 축소시킨 공예대상작품을 한 신문을 통해 봤다. 화제의 교수를 찾아가서 그의 기물이 필요하다고 간청했다. 주물공장에 가서 가마솥, 화로 등 5종을 한 세트로 만들었다. 그걸 갖고 동성로의 한 골목 안에서 ‘즉석 가마솥밥’과 콩나물갱시기를 24시간 팔았다. 더 큰 야심을 가졌다. 당시 큰 덩치의 대구백화점 별관을 봤다. 세를 얻어 지역 첫 카페테리아 레스토랑인 ‘훼미리가든’을 오픈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망한다. 자신감과 자만이 패인이었다. 너무 컸고 위치도 안 좋았고 접근성도 별로였다. 떠안은 빚만 1억5천여만원.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자살충동도 느꼈다. 하지만 꿈 있는 자에게 절망은 없었다. 동서가 그에게 국내 첫 뷔페인 인천 해진뷔페 정보를 알려주었다. 뭔가 감이 왔다. 당장 찾아간다. 주방 청소로 환심을 산 뒤 하루 만에 뷔페의 레시피를 장악했다. 86년 한강 이남 첫 뷔페인 훼미리뷔페를 대백 별관에서 오픈한다. 88년부터 지역에 뷔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90년 남구 대명동 대덕빌딩에서 당시 지역에서는 단일 평수로 제일 넓은 회갑 및 웨딩을 겸하는 300석 규모의 뷔페레스토랑을 연다. 미군부대 퇴직 조리사를 불러 지역 첫 고급레스토랑인 ‘마이하우스’를 연다. 그런데 이 레스토랑은 앞산 등산객을 위한 샐러드바를 갖춘 죽뷔페 전문점으로 유명해진다. 당시 회원만 2만5천여명. ◆ 예그리나 로컬푸드 힐링 뷔페 일단 호텔 뷔페부터 개선했다. 이 호텔 뷔페 ‘예그리나’의 80가지 메뉴 중 40%를 대구와 경북의 로컬푸드로 세팅하는 ‘모험수’를 던졌다. 그동안 무궁화 5개 국제급 호텔에서는 솔직히 로컬푸드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비즈니스 모드에 맞춰야 하니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메뉴 라인을 구축했다. 하지만 구 대표는 “외국인은 물론 힐링푸드에 대한 욕망이 큰 내국인 단골을 겨냥해서라도 로컬푸드 중심의 힐링 뷔페 하나 정도는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 일단 지역의 특산물과 향토음식 리스트를 작성했다. 하지만 조창래 조리팀장 등 조리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로컬푸드가 외국인에게 잘 어울릴지 확신할 수 없고 각 재료를 제대로 요리하기도 번거롭다’면서 반대했다. 구 대표는 2개월간 난상토론을 벌이면서 자기 생각을 관철시켰다. 세계 주요국 선호 한국음식 다섯 가지도 조사했다. 그래서 일본은 감자탕, 닭갈비, 해물파전, 불고기, 돌솥비빔밥, 중국은 국수전골, 잡채, 제육보쌈, 갈비찜, 순두부찌개 등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도 메뉴 수정이 진행중이다. 현재 예그리나의 경우 경북 23개 시·군 173개 메뉴와 대구의 대구십미 등 17가지 메뉴, 미국, 일본, 중국, 홍콩, 베트남, 멕시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외국인 선호 메뉴 50가지 등 모두 250가지 메뉴가 대기중이다. 그걸 30명의 조리사가 맡는다. 가격도 많이 다운시켜 4만2천원에서 3만2천원, 점심은 1만7천원으로 낮췄다. 지난 10월 매출이 목표 매출의 148% 신장. 현재 따로국밥, 납작만두, 반고개 무침회, 동성로 우동을 비롯해 예천 용궁순대, 포항 물회, 안동 헛제삿밥, 울릉도 오징어순대, 예천 청포묵탕평채, 영천 육회, 영천 다슬기국 등이 줄을 잇는다. 여건상 현지 맛과 동일할 수 없어 조만간 해당 음식 장인 초청 즉석요리 이벤트도 기획중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1.13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레스토랑 ‘아소다이닝’ 이수길 오너셰프
셰프는 자기 음식을 닮아간다. KBS 대구방송총국 정문 맞은편(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퓨전 일식 레스토랑 ‘아소다이닝’ 오너셰프 이수길씨(34)도 그렇다. 일식 조리사의 깔끔함과 진지함, 그리고 담백함이 얼굴에 묻어 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의 몇몇 메뉴는 미식가로부터 적잖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일본과 똑같이’는 싫어한다. 자기 기질과 상상력을 동원한 메뉴를 구축하고 싶어한다. ◆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던 학생시절 어릴 때 만드는 걸 무척 좋아했다. 초등 3학년 때 TV에 나온 꽤 어려운 튀김요리를 그날 바로 따라 했다. 아버지는 대충 봐 넘겼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어떤 ‘감’을 느낀다. 무난하게 지나간 중·고교 시절. 대학으로 가기 전 자신이 뭘 잘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몰랐다. 그 무렵 고모부가 서울 청담동에서 트렌디한 중식당을 오픈했다. 거기서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하는 손님을 보면서 ‘이런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하고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삶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느낌을 품고 경주 동국대 호텔경영학과에 들어간다. “그때까지만 해도 훗날 제 꿈이 셰프란 확신은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학도 사실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걸 가르치잖아요. 그냥 학점에 매달려 보내는 시절이었죠.” 교수였던 아버지는 보수적이라서 아들이 요리사 되는 걸 반대했다. 거기서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알려고 거의 3년간 고민했다. 졸업하기 바로 전 일이 터진다. 아는 형님과 사업을 했다. 요리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 1년간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마음도 돈도 많이 상처받았다. 패닉 상태로 반년 정도 칩거에 들어간다. 신장결석 등 여러 질환에 노출된다. 어머니가 ‘아들 살리기’에 나선다. 서울의 한 수제두부 가게에서 잠시 일해 보라고 했다. 혼자 상경해 서울 목동에 거처를 마련한다. 그 형님이 그런대로 장사도 잘 되니 그걸 익혀 대구로 가져오자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다. 선인장 추출물을 간수로 사용한 특허 웰빙 두부였다. 어떤 노부부가 그를 보고 ‘참 친절해 보기 좋다’고 칭찬했다. 이런 게 사는 맛인가 싶었다. ◆ 요리 배우러 일본행 서울의 수제 두부가게서 일하다 요리사의 길 들어서 “제대로 배워보자” 일본 유학 세계 3대 요리학교의 하나 쓰지 요리학원에 들어가 기본의 소중함 배우고 맛국물 우리는 법 익혀 2014년 대구서 퓨전 일식집 오픈 일식 중심으로 한·중·양식 세팅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 추구 비늘까지 먹을 수 있는 옥돔구이 4주 숙성 한우채끝등심 스테이크 루콜라에 우엉·연근·고구마칩 올린 독특한 아소 샐러드 등 일품 20여 종 메뉴 수시로 바뀌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 2010년 일본 오사카로 간다. 우메다에 있는 한 일본인이 경영하는 한일 혼융 스타일의 한식당이었다. 거기서 알바를 했는데 시급 880엔을 받았다. 설거지만 했다. 처음에는 ‘왜 설거지만 시키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리의 전제 조건이 설거지라는 걸 후에 깨닫게 된다. 그들은 위생에 목숨을 건다. 잠시 밖에 컵을 찾으러 나갔다가 들어올 때도 손을 씻는다. 주방 뒤에 쪼그려 앉아 흡연한다는 건 우리는 일상사지만 일본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설거지 하는 틈틈이 식재료와 기물 용어를 익혔다. 드디어 오사카에 있는 ‘쓰지 요리학원’에 들어간다. 이곳은 미국 CIA, 프랑스 코르동 블루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통한다. 심화과정에 40명이 입학했다. 수업료는 1년에 220만엔. 한국, 중국, 대만, 미국, 프랑스 등 세계 전역에서 유학생이 온다. 항상 두 조로 움직였다. 한 조는 음식을 만들고 한 조는 시식을 했다.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망했다. “입학 직후 대단한 요리부터 배우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도 기본, 나중에도 기본, 끝에도 기본을 강조했습니다. 그때는 지겹던데 기초를 탄탄하게 닦아놓으니 지금 엄청 도움됩니다.” 맛국물 우리는 법도 정립할 수 있었다. 콘부(다시마)의 경우 83℃ 이상 고온에 넣으면 다시마의 안좋은 맛과 진액 등이 빠져나와 맛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 대형 프랜차이즈 요정인 ‘카가만’ 시절 기본기를 몸에 품고 ‘오사카의 긴자’로 불리는 우메다 기타신지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료테이(요정) ‘카가만’에 들어간다. 카가만은 업장 7개가 모두 미슐랭(프랑스의 유명 식당 가이드북) 스타 식당이었다. “학원의 요리와 식당의 요리가 천양지차라는 것을 그때 알았죠.” 주방장 배려로 일본의 풀코스 정식인 가이세키를 비롯해 어묵과 뎀뿌라(튀김) 등을 조금씩 익혀나갔다. “가이세키를 하면서 한국인에게 잘 맞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요리를 한국화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취미가 아니고 장사를 염두에 뒀기 때문입니다.” 스시도 해봤는데 자기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드디어 오사카 최고의 먹거리 타운인 도톰보리 근처에 있는 식당 ‘츠보미’에 들어간다. 그곳은 가이세키 및 장어 전문점. 그는 튀김에 능했다. “한국은 튀김옷에 목숨 거는데 일본은 재료에 중점을 두죠. 일본 튀김은 싱싱한 재료를 튀김옷이란 옷에 입혀 고온에 찐다는 개념입니다. 일본 뎀뿌라가 비싼 이유는 내용물이 모두 고급이기 때문이죠. 재료마다 온도가 달라요. 새우의 경우 210℃, 고구마 130~140℃. 일본에서는 온도계 대신 감으로 알아차려요. 밀가루 반죽을 넣었을 때 바닥에 닿았다가 올라오면 160℃, 중간에 바로 올라오면 170~180℃죠.” 츠보미에선 툭하면 지적받고 깨졌다. 주방장은 멀티플레이어였고 몸에 여러 개의 촉수가 있었지만 그는 한 개밖에 없는 탓이다. 주방장은 그를 일본인처럼 대했다. 외국인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요리에는 국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일본 주방에선 실수한 것만 혼내지 사람 자체를 미워하진 않아요. 마지막에 장어구이는 실력을 인정받았어요.” ◆ 대망의 귀국길 2013년 3월 귀국한다. 서울 서초동 교대역 근처 이자카야 ‘하레(晴)’에 들어간다. 주방 멤버가 4명인데 모두 츠지 학원 동문이다. 하레는 대표 메뉴가 ‘서비스’. 손님이 부르기 전에 알아서 찾아간다. 그는 튀김류를 담당했다. 그가 개발한 광어와 앤초비 소스를 섞어 만들어 낸 카르파초 같은 회가 인기였다. 그는 육류보다 생선 요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귀국할 때 일본에서 수제 참숯화로를 구입해 왔다. 1년6개월가량 후 지인 소개로 명동의 한 프랜차이즈 퓨전 일식집에서 책임자로 있었지만 독립해야 되겠다 싶어 대구로 온다. 집약된 열정 탓에 그의 창업 시기도 훨씬 앞당겨진다. 이우진 작가의 도움을 받아 흰색 부직포로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 형상으로 천장을 치장했다. 야생화 전문가인 어머니가 액자 대신 각종 야생화를 군데군데 세팅한다. 일단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일식을 축으로 한·중·양식을 그려내려 한다. 전채로 인사하는 ‘크림깨두부(고마토후)’는 찹쌀떡과 치즈를 젤리식으로 합쳐놓은 것 같다. 그의 감각이 녹아 있다. 생크림·우유·칡전분을 이용해 도토리묵처럼 굳혀 매일 낸다. 간장·설탕·맛술(미림)이 섞인 소스에 고추냉이를 결부한 달달매콤한 맛은 이 집의 트레이드 마크. 제주도 생물 옥돔구이의 경우 비늘까지 버리지 않고 파삭하게 먹을 수 있게 화로에서 직접 굽는다. 4주 숙성한 한우채끝등심스테이크는 직화에서 꼬치처럼 구워내고 직접 썰어 내온다. 하지만 소금, 소스, 와사비 등은 별도 용기에 담아서 맛의 강도를 손님이 선택하도록 했다. 국물 요리로는 아롱사태와 우엉채(긴삐라)를 이용한 ‘긴삐라고보나베’가 있다. 그의 자작품이다. 아소 샐러드도 독특하게 루콜라 위에 파삭한 우엉·연근 고구마칩을 올려준다, 메뉴는 20여종. 수시로 바뀐다. 소고기는 영주 소백산 한우만 사용한다. 생선류는 모두 당일 제주도에서 직송해 온다. 오징어와 한치류는 포항, 루콜라와 가지 등은 청도에서 가져온다. 식재료 리스트만 100여 가지. 소스의 경우 돼지고기덮밥용 소스, 샐러드 드레싱, 장어타레, 스테이크소스 등 20여 가지. 일본 지바(千葉)현에서 나오는 ‘야마사 간장’을 사용한다. 대구에 와서 알게 된 진승화 매니저의 콧수염도 이 집의 명물. 알바 포함 모두 5명이 매일 오후 2시~다음날 오전 1시 전쟁을 치른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 (053)217-100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1.06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외식상권 이야기 - (4) 중구 대봉도서관 앞길
“어, 어, 어! 여 미친 거 아이가!” 2년새 많은 음식점이 들어선 대봉도서관 앞 길을 지나던 한 행인이 탄성을 지른다. 행인의 반응처럼 요즘 대구시 중구 대봉도서관 앞 ‘봉리단길’이 상전벽해의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거리 이름은 두 가지. 봉리단길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트렌드 푸드 스트리트’로 각광받는 걸 빗대는 과정에 생겨난다. 또 다른 이름은 ‘대로수길’. 서울 홍대거리의 높은 임차료를 견디지 못해 피해온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새로운 빅상권으로 발돋움한 서울 강남 가로수길을 염두에 두고 ‘대봉동 가로수길’을 대로수길로 작명한 것. 원래 이 거리는 80년대초까지만 해도 경북고와 대구상고의 주무대. 수성학군이 뜨기 전 대구 최강 학군이었다. 하지만 1984년 9월 대구상고가 상원고로 교명을 바꿔 달서구 상인동, 이듬해 경북고가 수성구 황금동으로 이전한 후 썰렁해진다. 두 학교가 떠난 자리에 청운맨션, 대봉도서관, 2000년대 들어 대구상고 자리에 센트로팰리스가 들어선다. 수성구에 고급 아파트가 생기기 전 대봉동은 대구·대봉·청구·대구맨션 등이 포진하면서 ‘1급 주택지’로 각광받는다. 그 옆에 중식당 ‘만리장성’, 일식당 ‘다미초밥’ 등이 있어 탈 동성로 상권 중 가장 핫한 곳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초 수성구에 대구 첫 고급빌라인 경일원과 녹원맨션 등이 들어서면서 상당수 대봉동 부자는 수성구로 거처를 옮긴다. 특히 수성구 들안길 및 외곽지 상권의 급부상 등으로 인해 대봉동 상권은 갈수록 추락한다. 나중에는 교학사, 희망서적 등 10여개의 대형 서적총판이 밀집하게 돼 일명 ‘책총판거리’로 탈바꿈한다. 1999년쯤 삼겹살 전문점 ‘오늘은 특별한날’ 필두로 현재 73개 업소가 영업 중 20∼30대가 주단골층 식당 종류 다양한 것도 특징 낮에는 유동인구 적어 메이저 브랜드 커피숍 없어 ◆ 대봉상가번영회 그런데 이 거리가 최근 2년새 ‘빅뱅 먹자골목’으로 급부상. 급기야 지난 5월 ‘대봉상가번영회’가 발족한다. 현재 61개 회원업소가 있다. 기타 12개 비회원업소가 모여 있다. 이 거리에 맨처음 등장한 업소는 1999년쯤 문을 연 삼겹살 전문점 ‘오늘은 특별한 날’(사장 천종순). 천 사장은 부산의 모 언론사에서 정년을 하고 대구로 와 대봉도서관 바로 옆에서 식당을 오픈했다가 1년전 현재 자리로 옮겼다. 삼겹살집이지만 포스는 일반 백반정식집 못지않다. 공기밥 대신 15분 걸리는 즉석 뚝배기밥을 내 밥 맛있고 반찬 탄탄한 고깃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0년 또 한 명의 무시무시한 내공의 셰프가 이 거리에 나타난다. 현재 남쪽끝에 있는 이자카야 스타일의 퓨전주점인 ‘이노사케’를 오픈한 이태운 오너셰프(37). 그는 지난 10년간 중식당 ‘예궁’ 등 주방에서 빡센 나날을 보내왔다. 수성대 조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구의 백종원’이 되리란 결심을 하고 서울발 프랜차이즈에 도전장을 냈다. 이노사케는 소고기다다키와 생연어사시미가 인기 메뉴로 등극. 오는 11월 지역에선 처음으로 자기 식당 이름을 건 ‘전속주’를 출시한다. 이 셰프는 이노사케의 파워를 이 동네에서 계속 증식시키고 싶었다. 일본식 화로구이 전문점 ‘화친도가’와 전통주를 취급하는 한식주점 스타일의 ‘이가(李家)’를 연이어 론칭한다. 이 거리에 무려 3개의 업장을 직접 관장하고 있다. 리모델링한 한옥이 인상적인 이가는 14종류의 막걸리와 12종류의 청주를 베이스로 아스파라거스등심말이 등을 인기 메뉴로 팔고 있다. 봉리단길 초기 3인방 오너셰프 중 마지막 사장은 초벌구이 삼겹살 전문점 ‘소금쟁이’를 2011년 6월 오픈한 윤재철씨(46). 그는 식당을 대학이라 여기고 젊은시절부터 중구 삼덕동에서 외식의 노하우를 몸소 체험한다. 22세에 이 바닥에 나타나 24세 때 삼덕소방서 뒷길에서 ‘올드 스탠드’란 커피숍 사장이 돼 8년간 운영한다. 지역 와인바의 신지평을 연 ‘WES’를 삼덕동 관음사 앞에 세팅한다. 어느 날 그는 20대 고객 상대의 외식업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30~40대를 겨냥한 삼겹살집을 해보고 싶었다. 그는 ‘20대는 새로운 메뉴와 분위기에는 빨리 적응하면서도 쉽게 식상해 하고 쉽게 단골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잘 옮겨간다’는 걸 눈치챈다. 그렇게 해서 찜한 공간이 한적한 주택가 이면도로 같은 봉리단길. 밤이 되면 주차전쟁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허름한 삼겹살집 시대를 접고 ‘카페같은 삼겹살집’을 기획했다. 일단 도자기 화로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가스 대신 참숯을 사용했다. 그는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굽는 것보다 주인이 석쇠에서 초벌해서 내주면 그림도 더 좋고 양질의 고기맛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스테이크용 그릴을 주문제작한다. 초벌시간은 5~7분. 고온에서 짧은 시간 앞뒤만 한번씩 굽고 손님 테이블에서 가위로 잘라 재벌을 해준다. 사실 여기로 오기 전 그는 삼덕동에서 이 버전의 삼겹살집을 1년간 실험적으로 운영했다. 그때 단골이 대봉동으로 따라왔다. 요즘 아내와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현재 삼겹살 취급업소는 이밖에도 노천 드럼통, 정육, 돈꾸앙 등이다. ◆ 스타벅스는 덤비지 않는 먹자타운 아무튼 지금 여기는 20~30대가 주 단골층을 이루지만 50~60대도 눈에 자주 띈다. 이 거리 상권을 분석한 결과, 체인점과 본점의 비율은 30대 70. 자기 건물을 소유한 식당주는 없다. 모두 임차인이다. 초창기에는 평당 지가가 500만원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1천만원을 훨씬 상회했다. 보증금의 경우 5천만~1억원, 월 임차료는 250만~500만원에 달한다. 또한 재개발 아파트도 추진 중이어서 향후 이 거리의 명운도 불투명한 상태. 흥미로운 사실은 이 정도로 거리가 뜨면 스타벅스, 다빈치 등 공룡급 커피브랜드가 뛰어들기 마련인데 여기는 이상하게 그렇지 않다. 대봉도서관 정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카페 C, 모스그린, 205 등 마이너 브랜드 커피숍만 포진해 있다. 이유는 뭘까? 이 거리는 대낮에는 유동인구가 너무 적고 손님도 퇴근 이후에 집중된다. 또한 가게 평수도 다들 협소하다. 타산이 맞지 않아 메이저 브랜드 커피숍이 덤벼들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카페 C’는 요즘 매주 토요일 방영되는 TBC 리얼인터뷰 ‘통’의 인기 리포터이자 일가족 ‘콜롬비아 이민기’로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커피 마니아 이재선씨가 후발주자로 이 거리에 가세하면서 차린 커피숍. 여기는 다양한 브랜드 원두를 믹싱하지 않고 콜롬비아 한 종만 사용해 ‘싱글 오리진 커피숍’으로도 불린다. 이재선신체극 대표이기도 한 그는 최근 남산동에도 ‘남산 Responce’란 2호점도 오픈했다. 이 거리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식당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 지난 3월 기존 문어집에 들어온 ‘가족뜰’은 정기환·김영희·정성윤 가족이 운영하는 만두 전문점이다. 소고기 전문점은 ‘소와 나무’, ‘흑우바비큐’, ‘그릴바 8’, ‘한끼야끼’, 양꼬치는 ‘고양’과 ‘미스타양꼬치’, ‘뭐양’, 곧 출시 중인 부산발 ‘징기스’는 양고기 전문점으로 등장할 태세다. 국수는 서문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대한칼제비’, 막창곱창은 의외로 부진해 도서관 입구 ‘단지막창’만 하나 있다. 족발은 ‘대봉족’, 해산물은 ‘또오징’, ‘대봉머구리’ ‘회소랑’ ‘어부해산물’ 등이 있다. 퓨전주막도 강력한 세를 형성하는데 그중에서도 수제맥주의 맛을 보여주는 맥주전문점도 몇 개가 있다. 2013년 6월에 문을 연 크래프트 비어 펍인 ‘퍼센트(Percent)’. 금융맨에서 펍의 주인으로 변신한 태영성 사장(41)을 만나면 에일 맥주와 라거 맥주의 차이를 알려준다. 또한 수제하우스맥주인 크래프트맥주와 그냥 독일 스타일인 생맥주인 드래스트 맥주의 차이도 배울 수 있다. 현재 카운트 뒤편에 모두 10개의 수도꼭지처럼 생긴 탭이 있는데 가장 향미가 풍부한 건 벨기에 맥주인 ‘대동강’이다. 이 밖에 ‘탭스’ ‘쇼디치’ ‘비턴’ ‘빅토리’ 등에서도 수입산 맥주와 크래프트맥주를 즐길 수 있다. ‘방 드라쿱’은 와인 전문점이다. ‘대구육회’와 ‘바른생활’은 생고기와 육회를 판다. 또한 ‘조가박가’는 철판볶음, ‘만복국수’는 쌀국수와 홍탁삼합, ‘소기찬’은 고기와 해산물을 동시에 낸다. ‘모던술상’ ‘정선생’ ‘전국지’ ‘대화’ 등에서는 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도 주차문제. 이른 저녁부터 주차단속을 하니 임차인들은 죽을 맛이란다. 재개발 과정에 고만고만한 주머니 사정인 임차인들의 권익이 희생되지 않아야 될텐데….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0.30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대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요즘은 서로의 장점이 협업으로 매칭된 ‘콜라보마케팅’이 대세. 대구시 수성구 들안길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도 그렇다. 최근 의기투합한 일신학원 이사장인 김상환 대표(61)와 윤경수 오너셰프(31)도 ‘환상의 복식조’. 김 대표는 지난 10년간 매월 최소 2~3개 팀을 집으로 초대해 풀코스 이탈리아 음식을 대접해 프로추어 셰프로 소문이 났다. 이탈리아 음식 쿠킹클래스는 물론 중국요리에까지 도전했다. 그의 음식을 접한 사람들은 늘 ‘교육보다 요리 쪽이 더 잘 어울리겠다’면서 레스토랑 운영을 강력히 추천했다. 그런 그의 눈에 윤 셰프가 포착됐다. 윤 셰프는 남구 대명9동 카페거리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12 Kitchen & Bar’를 경영 중이었다. 30여 종의 허브를 직접 밭에서 재배하는 것을 유심히 본 김 대표가 그에게 러브콜을 날렸다. 깐깐한 입맛의 김 대표와 윤 셰프, ‘수제본능’이 출중한 두 사람이 최근 레스토랑을 열어 찾아가봤다. ◆ H602 스토리 김 대표는 폭탄주 위주의 우리의 음식문화가 늘 못마땅했다.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찾던 중 이탈리아 음식을 접하게 된다. 2000년대 초 수성구 카페골목에 위치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나폴리’의 쿠킹클래스에 들어간다. 그의 생애 첫 요리본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발휘된다. 교과서에 소개된 된장찌개를 응용해 고추장을 넣은 찌개를 만들었다. 나폴리 오너셰프 조르지오 스코파에게 기초·중급·고급까지 60여 개의 레시피를 배운다. 이탈리아 요리용어는 물론 성악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그의 표정이 더없이 환해진다. 배운 요리는 지인을 초대해 대접한다. 그게 그의 낙이었다. 2005년부터 10년 동안 2천800여 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한 친구가 그의 홈레스토랑 이름을 ‘H602’로 지어주었다. 그는 효성타운 602호에 살았다. 가장 긴장했고 오랜 시간 준비한 풀코스요리는 바로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세계육상연맹 집행위원 부인 초청 오찬이었다. 행사 8개월 전에 그가 참여하고 있는 ‘와인 & 피플’이라는 모임의 회원들을 초대해 타당성 검토를 위한 1차 리허설을 했다. 행사 1주일 전에는 실제 오찬 당일과 똑같은 음식과 이벤트로 아내의 친구 등 여성만 초대해서 두 번째 리허설을 했다. 10개월을 준비했는데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전기과부하 때문에 승압공사를 하였다. 핑거푸드 크기를 토핑이 흘러내리지 않게 한입 크기로 수정했다. 프로슈토와 멜론, 브루스케타 등 핑거푸드 위주의 메뉴와 메인에는 스테이크 샐러드 등 9가지 메뉴에 3가지 와인을 매치시켰다. 프라이즈 공연도 마련했다. 테너 최덕술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도르마’를 불렀다. 공로가 인정돼 대통령 표창도 받는다. 지난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지휘자인 바르바치니 내외도 초대에 응했다. 부인의 고향인 시칠리아의 대표 음식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준비했다. ◆ 행복을 나누는 레스토랑 만들기 김 대표는 본인이 직접 요리하는 레스토랑은 좀 무리다 싶었다. 1년 전 지인의 소개로 윤 셰프의 수준급 음식솜씨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윤 셰프의 공간은 너무 협소했다. 더 넓은 공간에서 요리경력을 쌓아가려는 그와 좋은 메뉴를 갈구하는 관계자의 권유에 힘입어 식당을 오픈한다. 깐깐하게 색을 골랐다. 레스토랑의 주조색은 화이트, 하지만 동쪽 포인트 벽 컬러는 오렌지색으로 정했다. 원하는 게 없어 아파트에서 바라본 여명과 같게 조색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오렌지빛이 식감을 풍성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공용 타월에 물기를 닦는다는 게 뭔가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 1인용 손수건 같은 타월을 별도 비치해두었다. 윤 셰프는 말이 별로 없다. 요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메뉴라인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국민은행 옆 골목에 있는 임정식 셰프의 ‘정식당’ 스타일. 일종의 ‘분자요리’ 기법이다. 정교하면서도 심플하고 그러면서도 재료의 맛에 충실하다. 유행하는 것은 가급적 피한다. 군위 출신인 윤 셰프는 체육교사의 꿈을 접고 셰프의 길을 선택했다. 2010년 이탈리아로 갔다. 피렌체, 알프스 산맥 경계 지역 알토아디제에서 머물렀다. 일단 파르마에 있는 요리학교 ‘알마(Alma)’에 입학했다. 그가 머문 식당은 피렌체의 ‘아르놀포’, 알토아디제의 ‘로자알피노’ 등 미슐랭가이드 별 두 개짜리였다. 아르놀포의 오너셰프인 자이타노가 그의 사부. 사부가 붙잡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식당을 그린다. 아이스크림 기계, 생면 뽑는 기계, 저울, 라비올리 만드는 소품 등 10여 종을 이탈리아에서 사 갖고 왔다. 서울 이태원 오키친에서 메인요리와 애피타이저를 맡았다. 그의 호기심과 창작욕은 남 밑에 있을 수준을 넘어선다. 윤 셰프는 유기농 식단을 추구한다. 허브도 직접 컨트롤하기 위해 텃밭에 심어 30여 종을 관리한다. 현재 200여 종의 식재료를 직접 챙겨 40여 종의 메뉴를 만들고 있다. 두 사람은 스테이크에 엄청 민감하다. 윤 셰프는 지역의 셰프들이 거의 손대지 않고 있는 차세대 첨단 조리법 중 하나인 ‘수비드(Sous-vide)’조리법을 많이 알렸다. 저온 진공 분자 조리법인 수비드는 71년 퀴진 솔루션의 수석 연구자 부르노 코소 박사가 탄생시킨다. 김 대표는 쇠고기카르파초를 즐겨 요리하는데, 특히 레어급 스테이크를 즐기는 그는 안심·등심 대신 주먹시 등을 잘 사용한다. 또한 스테이크스시, 40여 일 숙성시킨 T본스테이크도 단골 메뉴. ◆ 접시 대신 수제 플레이트 현재 이 집에서는 고기를 40~60일 건식과 습식으로 숙성시켜 사용한다. 수비드 방식은 좀 더 보강한 뒤 내려고 보류한 상태다. 윤 셰프는 음식을 담는 기물에 무척 신경을 쓴다. 접시 대신 직접 짠 수저통만 한 나무갑에 유리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올린다. 사실 메인요리보다 전채요리 직전에 나오는 입을 즐겁게 만드는 ‘아뮤즈부시(Amuse Bouche)’가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식전빵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데 보통은 그 레스토랑에 온 손님에게 ‘우리 레스토랑의 콘셉트나 맛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날 아뮤즈부시는 바닷가 몽돌 위에 세 가지 음식을 앙증맞게 올렸다. 연어타르타르와 프로슈토, 리코타치즈에 올린 무화과, 홍시·단감·곶감을 편육처럼 합쳐 냈다. 스테이크는 정말 덧칠이 없어 심플해 보였다. 40일 숙성시킨 안심, 으깬 감자 위에 뭉친 캐비어 같은 겨자씨피클을 매칭시켰다. 현재 8종류의 파스타를 갖고 있는데 이날 스파게티니를 사용해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참고로 스파게티의 명칭은 굵기에 따라 달라진다. 2㎜ 조금 넘는 것을 ‘스파게토니(Spaghettoni)’, 1.6㎜ 전후인 것을 ‘스파게티니(Spaghettini)’, 1.3~1.5㎜는 ‘페델리니(Fedelini)’, 1.2㎜ 미만은 ‘베르미첼리(Vermicelli)’라 한다. 모둠 디저트 라인도 열정이 실려있다. 마카롱은 물론 화이트초콜릿, 비트·치즈·유자·허브크림을 점점이 찍어놓았다. 다음 달 세계3대 진미로 불리는 생 트러플(송로버섯) 요리를 선보일 계획이다. 오는 30일에는 영남대 음악대학장인 테너 이현 교수와 이탈리아 공식 소믈리에인 김미경 대표가 ‘가을에 기대어 음악에 물들다’란 주제로 디너 토크 살롱음악회를 갖는다. 주차문제만 잘 해결되면 미식가를 기분 좋게 만들 것 같은 예감. (053)652-8007, 수성구 무학로 11길 1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5.10.23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외식상권 이야기 - (3) 대봉동 방천시장 상권
광복 직후부터 수십년 호시절을 구가했던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2000년을 넘어오면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런데 2009년부터 이 시장에도 회생의 볕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 기운은 바로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다. 문화관광부가 주도한 사업인데 중구청이 잘 이용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시장’과 ‘예술’은 상생의 꿈을 모색한다. 이후 회화, 국악, 목공예, 금속공예, 조각,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빈 점포를 전시장과 작업실로 꾸민 20여명의 예술가는 상인과 손잡고 콘크리트 벽면에 김광석의 일대기를 벽화로 치장했다. 김광석 동상도 섰다. 이와 함께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이하 김광석길), 속닥속닥 수다방, 아트스페이스 방천, 리뉴얼 도미노 상점, 방천시장 사진전, 예비작가 아카데미, 방천신문, 방천 라디오 스타 등 유무형의 문화상품을 개발했다. 올해 1월 김광석길 야외 공연장이 문을 열었다. 대구MBC의 ‘골목방송국’도 생겨났다. ◆ 다크호스… 대한뉴스의 등장 문전성시만 북적거렸지 초창기 시장 상권은 ‘어둑어둑’했다. 일부에선 문전성시 사업이 사라지면 시장도 ‘즉사(卽死)’할 거란 전망이 파다했다. 시장에는 새로운 투자 바람이 전혀 일지 않았다. 하지만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김광석길과 방천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잘 활용하면 뭔가 일이 터질 수도 있겠다’고 직감한 사람이 있다. 바로 대구에 ‘불쇼 고깃집’ 돌풍을 일으킨 1++(투플러스) 숙성한우 전문점 ‘대한뉴스’의 권순주 대표다. 안동 출신의 권 대표는 한우와 20년 동고동락한 고기전문가. 사육·유통·해체·부위별 특징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실력파. 그 덕분에 얼마전 모 방송에 직접 출연해 한우 해체쇼를 실연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2010년 9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장터 한 구석에 추억 어린 대한뉴스 간판을 걸었다. 당시 근처에 쇼킹, 동곡·은자골막걸리, 춘천식당, 30년 구력의 김태순 할매가 지키는 방천찌짐집 정도가 있었다. 다들 ‘장터에 웬 최고급 한우?’란 반응이었다. 캠핑 마인드·일식 감각 접목 음악도 김광석에 올인 불쇼 광경 동영상 타고 소문 대한뉴스 대박 나고 김광석길 다양한 업소 생겨 업소 늘어나자 임차료 껑충 건들바위 상권과도 묶일 전망 대한뉴스는 반전의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 일단 100마리 중 8마리꼴로 나오는 최고급 한우를 선택했다. 승부처는 일식 철판요리·다타키(불을 이용해 겉만 살짝 굽는 히비키 방식을 이용한 요리)에서 곧잘 선보이는 ‘토치그릴링’. 고량주를 불판에 붓고 고온의 토치를 갖고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낸 고기를 구워준다. 권 대표는 캠핑 마니아로 캠핑 마인드와 일식의 감각을 끌고 왔다. 음악도 김광석에 올인했다. 종업원 대신 주인이 직접 불쇼를 보여주었다. 후식은 돌판에 직접 토장국물을 넣고 밥을 볶아주었다. 된장국물이 증발되면 꼭 ‘된장 리소토’ 같다. 식당에 들어오기 전 이미 김광석길에 최면이 걸린 20~30대에겐 이 모든 게 남에게 자랑하고픈 ‘푸드스토리텔링’거리. 이 집 불쇼 광경은 동영상과 블로그 등으로 입소문이 난다. 밀려드는 손님을 다 소화 못해 옆 건물을 인수해 극장처럼 2관, 신관을 증설했다. 주말에는 소 3마리를 팔기도 했다. 하루 매출 1천만원 소문이 났다. 현재 대구 5개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모두 13개의 가맹점을 갖게 됐다. 대한뉴스를 벤치마킹한 투뿔이 2개 점포를 바로 옆에 낸다. 동서 장터거리가 ‘고기거리’로 자릴 잡는다. 연이어 가족족발, 방천소갈비, 육회로 유명한 영천영화식당, 대구막창, 치킨대디, 뿔닭, 튀김아즈씨 등이 진용을 갖춘다. 임차료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한다. 초창기 15만원에 불과했던 월세는 1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평당 땅값도 초창기에는 200만~300만원이었는데 최근에는 최고 1천500만원대로 진입했다. ◆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상권도 급부상 방천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세 군데. 시내에서 수성교로 가다 첫 입구 남북간 골목은 ‘패션카페거리’, 수성교 바로 옆 세 번째 길은 김광석 야외공연장과 로라방앗간을 축으로 한 350m ‘김광석길 버스킹 로드’로 자리를 잡았다. 이 밖에 대한뉴스를 중심으로 동-서 한 축이 있다. 김광석길과 패션카페길 좌우 동-서로 이어지는 무려 13개의 사이골목에도 새로운 업소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방천시장권에 모두 4개의 상권이 피고 있는 셈. 방천시장 상권이 급부상하자 덩달아 건물 신축 붐이 이는데 그 수는 현재 13여채. 방천시장 상권은 갈수록 몸집을 키우고 있다. 최근 중구청이 전수 조사한 결과 대백프라자~수성교 서쪽 끝 김광석길 초입, 대구도시철도 2호선 경대병원역 3번 출구~도시철도 3호선 대봉교역 근처 이경외과를 잇는 구역 내에 90여개의 커피숍·카페·식당·갤러리·아트숍 등이 포진해 있다. 4년새 30개 이상 각종 술집이 밀집한 대봉도서관길(일명 봉리단길)은 물론 최근 핫한 카페로 부상한 ‘큐바이쿼트(QBYQUOT)’를 축으로 한 건들바위 인근 상권과도 벨트식으로 묶일 전망이다. 그럼 대봉동 자체가 한 상권으로 통째로 묶일 수도 있다. 대한뉴스의 대박에 힘입어 김광석길에 새로운 업소도 자잘하게 생겨났다. 30년 구력의 한 방앗간은 2013년 1차 리모델링을 거쳐 전격적으로 떡볶이, 어묵 등 분식을 잘하는 세련된 ‘로라방앗간’으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이 골목길과 동떨어져 있던 박동준 갤러리 6층에 있는 카페 ‘프란체스코’와 그 옆 레스토랑 ‘테라스’ 등도 이 길 상권과 한 몸으로 뭉쳐졌다. 이 밖에 이 골목의 첫 카페인 ‘오톰(Autumn)’, 달고나 등 200여 종의 재밌는 물품을 파는 ‘추억의 문방구’ ‘ZART’(아이스크림)’, ‘그린포스트맨’(스냅사진), ‘필리코프레쉬’(꽃집), ‘모이야부탁해’(수제 고로케), ‘락스페이스’(핫도그), ‘별난호떡’ ‘커피명가’ ‘바람이불어오는곳’(카페), ‘오짱’(오징어튀김), ‘김광석길 예술상점’ ‘Mr 양꼬치’ ‘이야기 2015’ ‘드보크’, 금속주얼공방 ‘참새와 작가’, ‘B2’(갤러리카페), ‘마듀’(베이커리카페) 등이 라인을 형성했다. 그 길 안쪽 샛골목에는 화가 이동원씨가 꾸려가는 지역 첫 마카롱 전문점 ‘마카롱굽는화가’, 카페 ‘플로체’, 사진카페 ‘방천’, 카페퓨전일식 전문점 ‘바라지’ ‘방천국수’ 복합문화공간 ‘랜드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몬도미오’, 허브양초 전문점 ‘Burning wicks’ 등이 대한뉴스·김광석길을 바짝 잡아당기고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요즘 방천시장 땅주인은 눈빛이 ‘반짝반짝’…예술가·상인·전세인은 ‘가물가물’ 방천시장 상권의 선배는 대봉동 웨딩한복거리 바로 동쪽 이면 도로 남북으로 형성된 ‘패션거리’다. 1993년 대백프라자가 등장하면서 이 일대 땅값은 미친 듯이 뛰었다. 땅값이 주춤한 틈을 타 98년 전상진 패션, 2000년 석미용실, 2003년 이영도 패션, 2004년 박동준 패션, 2005년 송죽미용실, 2007년 미스김테일러 패션이 자리잡는다. 미스김테일러 바로 옆에 갤러리 커피숍인 ‘엔죠(ENZO)’가 등장하고 그 뒤를 이어 한옥카페의 새로운 흐름을 개척한 커피숍 ‘모가’, 수제 커피숍 창업의 선두주자인 ‘프란체스코’가 13년 흐름을 정리하고 2013년 패션거리에 브런치 스타일의 커피숍 ‘선댄스팜’을 오픈한다. 이어 플라워카페 ‘ZART’, 카페 ‘마조’ ‘웰메이드초콜릿’ ‘ IST 피자’, 커피숍 ‘루시드’ ‘블루마운틴’ ‘테드’ ‘봄봄’ ‘LEFLAN’ ‘소영이네 떡볶이’, 화로구인 전문점인 ‘수박설탕’, 카페 ‘MOON 101’ 등이 닻을 내렸다. 패션거리에서 ‘패션카페거리’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요즘 방천시장 땅주인은 눈빛이 ‘반짝반짝’ 예술가·상인·전세인은 ‘가물가물’. 당연히 반사이익을 노리는 ‘작전세력’을 조심해야 한다. 손영복씨 등 시장 만들기에 헌신한 예술가가 높은 임차료 등으로 인해 한숨 남기고 여기를 떠났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예술가와 상인이 손을 잡고 ‘방천시장 아트페스티벌’(가칭)을 이어갈 모양이다. 지주·세입자·임차인·예술가가 모두 ‘갑’이 되는 지혜가 아쉬운 시점. 예술이 쏙 빠진다면? 모르긴 해도 방천시장 상권도 ‘골다공증’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2015.10.16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착한 빵집을 찾아서 - (2) 포항 이동 베이커리 카페‘스위트 스텝’
모든 걸 건다는 것. 그것은 숭고하면서도 일견 ‘처절’하다. 하지만 거기서 ‘카타르시스’가 발생한다. 철강도시 포항에도 최근 베이커리 카페 특수가 일고 있다.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남구 이동 베이커리 카페 ‘스위트 스텝(Sweet Step)’. 상업지역 이면 도로에 있다. 지난해 4월 그랜드오픈했다. 주인 부부 김경덕(58)·김수희씨(52)의 ‘배수진 마케팅 전략’ 덕인지는 몰라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집은 특이하게 커피와 빵이 1대 1의 비중으로 균형을 이룬다. 빵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여느 베이커리 카페와는 포스가 다르다. 주차장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지도가 적은 마이너 브랜드로 초기에 과도한 투자를 한다는 것. 한마디로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하지만 이들 부부는 극복 중이다. 착한 마음씨와 열정 덕이다. ◆ 부부는 은행원 출신 부부는 은행원 출신. 포항 동지상고를 나온 남편은 1998년 대동은행에서 퇴출된다. 그는 경력을 십분 활용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조선소관리본부장, 모 철강회사 전무이사에 이어 2005년에는 부동산개발사를 창업했다가 물을 먹는다. 2007년 상경해 기업인수합병 및 재무분석 관련업에 종사하고, 2009년 모 자동차 부품회사를 인수 운영했지만 2010년 또 파산했다. 절망의 끝에서 잡은 것이 커피였다.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강릉 테라로사 커피숍의 김용덕 대표를 매주 찾아가 커피 사업의 핵심을 배운다. 2013년 한해 그는 커피 외에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다. 특히 로스팅 공부에 올인했다. 카페 ‘스위트 스텝’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ㄷ’ 자 구조에 오픈 테라스까지 겸비한, 물찬제비처럼 날렵하면서도 세련된 동선. 입구 왼쪽 로스팅룸은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놀이터다. 그가 4년째 기록한 로스팅 일지를 보여준다. 직접 드립한 커피에는 묵직한 산미(酸味)가 살아 있다. 향에 날이 서 있다. 재료가 좋지 않으면 절대 그런 맛이 안 나온다. 한 사람이 커피와 제과제빵에 능통할 수는 없다. 아내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은행원 출신 부부가 올인 운영 빵은 천연발효종 만들어 굽고 모든 시럽은 매장에서 자일로스 설탕 직접 끓여 사용 가수 양하영이 알고 찾을 정도 포항대와 산학협력 계약 체결 가게 모든 시설 학생들에 개방 11월쯤 북구에 직영 2호점 오픈 공연장과 전시실까지 갖출 예정 커피와 빵교실도 운영할 방침 5천만원 목표 장학금도 적립중 아내는 포항 동지여상, 포항대 유아교육과를 나오고 남편처럼 IMF 외환위기 때 대구은행을 떠난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일단 조선왕조궁중요리로 인간문화재가 된 고(故) 황혜승 문하에 들어가 1999년까지 한식요리를 배웠다. 일본 도쿄제과학교의 1급 제빵기술자인 해운대 데이지 빵집 성지현 대표를 사사한다. 매일 부산으로 달려가 오후 7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공부하고 돌아왔다. 사부는 “빵 기술이란 것은 책을 봐서 해결되지 않고 단기간에 아무리 노력해도 익혀지지 않는다. 오직 세월 속에서 터득된다”면서 부부를 긴장시켰다. 서울 서래마을에서 유명한 디저트카페인 마망갸또도 사사하며 일본 왕실의 제과 흐름도 엿본다. 부부는 항상 그렇게 다짐했다. ‘모르면 지배당한다. 알면 기술자를 부릴 수 있다. 만연돼 있는 조리사의 횡포도 결국 기술은 없고 욕심뿐인 식당주가 만든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제빵에 대해 공부를 할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동참한다. 아내도 남편의 로스팅 기술을 함께 익혔다. 그래야 서로를 즉시 지원사격해 줄 수 있다. 부부의 지난 2년간은 병영생활과 진배없었다. 동창은 물론 지인과의 사소한 모임도 다 뒤로 돌렸다. 도움을 청할 데는 ‘하늘’밖에 없다고 믿었다. ‘하늘이 아무나 도와주나. 자신을 돕는 자만을 돕기 때문에 전 재산은 물론 생명까지도 바치지 않으면 진다’고 채찍질했다. ◆ 좌충우돌 창업기 기존 프랜차이즈점은 대부분 대로를 끼고 있는 점에 착안, 가게를 골목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평생을 같이해온 친구들뿐만 아니라 친척들의 반대와 우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래도 꺾이지 않았다. 자기만의 베이커리 카페를 구축하고 싶었다. 비록 포항이지만 최강의 베이커리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 유명하다는 커피점은 전국 어디를 가봐도 정상의 풍미를 가진 ‘스페셜커피’를 사용하고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며, 베이커리와 디저트를 접목했다. 일단 남들이 다 하는 뻔한 실내인테리어는 멀리했다. 테라스 같은 정원을 갖추고 바위수국, 꽃무릇, 노랑할미꽃 등 10여종의 야생초를 심었다. 광장 같으면서도 옥탑방 분위기가 나고, 그러면서도 다중이 모여 오순도순 수다를 떨 수 있는 복층 구조의 스페이시한 건물이었다. 통유리창도 잘 배치시켜 어디에 앉아도 정원이 보일 수 있게 했다. 로비·옥탑방·밀실·미팅룸·가족실·커플실 등도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 3층에는 10~30명이 모여 회의나 세미나까지 가능하다. 멀티플렉스 스타일의 베이커리 카페가 탄생한 것. 부부의 세심하고 꼼꼼한 안목이 없다면 시도 못할 사업이었다. ◆ 이 집만의 콘텐츠 커피 생두는 케냐 AA 니에르 루기·과테말라 에르모사·코스타리카 헬사·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콩가·인디아 아티칸·브라질 사오주다스 등 모두 9종이 있다. 이 집의 대표 블렌딩 커피는 산미가 좋은 ‘몰비도스텝’이다. 케냐AA 예가체프 콩가·코스타리카 헬사·과테말라 에르모사·COE(Cup Of Excellence·올해의 커피란 뜻을 갖고 있는데 국제 커핑 심사관들의 향미 평가를 통해 순위에 입상한 커피)를 혼합해 만든다. ‘스윗스페소’는 단맛을 추구한 블렌딩커피로, 케냐AA·브라질·과테말라·인도 커피를 사용해 라테·카푸치노·마키아토의 베이스로 사용한다. 가장 큰 장점은 2대의 수천만원대 독일산 로스팅기계인 ‘프라밧(PROBAT)’을 갖고 매일 15㎏의 생두를 볶아낸다는 사실. 매 시간 원두의 표면 상태를 관찰한다. 베이커리 카페에서 그런 인프라를 발견하기란 현 상황에서는 어렵다. ‘착한 빵집’답게 그날 만든 빵은 그날 모두 판다. ‘재고를 없애’는 것이 원칙이다. 수제(手製)와 저당(低糖) 등 특히 재료라인이 믿음직하다. 과일 등으로 천연발효종을 만들어 빵을 만든다. 강원도 양구 민통선 부근에서 생산한 아까시 벌꿀과 프랑스산 고메버터를 과자 만들 때 사용한다. 기존 설탕의 강도를 줄이기 위해 ‘트레할로스’를 사용한다. 이건 효모나 어떤 종류의 균류에서 얻어지는 백색 결정상의 비환원성 천연 이당류. 버섯, 해초류, 수산물 등에서 추출하므로 중국에서는 해초당, 유럽에서는 ‘머시룸당’으로 불린다. 음료에 들어가는 모든 시럽은 자일로스 설탕을 사용하여 매장에서 직접 끓여 사용한다. 바닐라시럽은 바닐라빈을 구입하여 매장에서 직접 끓인 것을 소스로 사용한다. 세 가지 과일티(슈퍼베리티·레몬티·딸기티)에는 자일로스 설탕을 사용한다. 빙수에 들어가는 팥은 매장에서 직접 삶아 숙성시킨 것.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수제잼류도 있다. 숙성 발효를 이용한 반죽에 절인 크랜베리와 크림치즈를 넣은 ‘크랜베리크림치즈’, 열반죽으로 식감을 더해 쫀득한 반죽에 크림치즈가 들어간 ‘모찌모찌’, 국산 단호박과 고구마를 절여 사용하며 발효종을 이용한 ‘고구마·단호박 바게트’, 경주 농장에서 매일 수확하는 딸기와 부드러운 시트와 천연 생크림을 이용한 ‘딸기생크림케이크’, 레몬과 오렌지를 3일간 삶고, 보름간 숙성시켜 파운드를 만들어 시럽을 바른 후 장식한 ‘파운드케이크’ 등이 인기 있다. 재료가 깐깐해서일까, 입맛이 깐깐한 가수 양하영씨도 일부러 여길 찾아와 감동받고 갔다. 지역에선 방부제와 화학첨가제를 넣지 않은 빵집으로 소문난 상태. 수익금의 일부는 부부의 몫이 아니란다. 포항대학 외식학과 계열과 산학협력계약을 체결했다.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가게의 모든 시설을 학생들에게 개방한 바 있다. 청년 채용 기회를 늘리고 5천만원의 장학금까지 축적 중이다. 커피와 빵 교실도 운영할 방침이며 11월쯤 북구에 공연장과 전시 시설을 갖춘 양덕동 2호 직영점을 오픈할 예정. 포항시 남구 이동 657-1. (054)276-0020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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