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칠면조가 X마스 파티하겠다고 나선다
칠면조는 오래전부터 북아메리카 원주민에 의해 사육됐다. 건국의 아버지(The 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흰머리 수리'보다 칠면조가 미국의 상징으로 더 적합하다고 했을 정도다. 크리스마스 요리가 거위에서 칠면조로 바뀐 이유는 단순하다. 몸집이 커서 온 가족이 먹을 수 있고, 요리가 간편하며, 거위보다 사육하기 쉽고, 닭보다 싸기 때문이었다.turkey. 칠면조의 영어 표기가 재미있다. '바보, 멍청이'란 뜻이다. 터키가 국호를 튀르키예(Turkiye)로 바꾼 하나의 이유다. 유사한 영국속담이 흥미롭다. 칠면조가 크리스마스 파티하겠다고 나선다? 스스로 축제의 제물이 될 줄 모르고 파티를 열자고 법석이니 멍청한 짓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일에 앞장선다'는 경계의 뜻이 담겼다.칠면조뿐일까. 내로라하는 사람조차 자기 무덤 파는 일에 정신 뺏긴 경우가 허다하다. 거짓 선동에 휘둘려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대중의 일탈도 비일비재하다.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칠면조 속담'을 소환했다. '윤석열 정부 1년' 평가를 요청받고서다. 책방지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숟가락을 괜히 얹었다가 타박만 받았다. 장하준은 "학점 주기에 앞서 수강 신청을 잘못한 과목이 많다"고 했다. "노동의 질이 중요할 때 노동시간과 관련한 과목을 듣고" "냉전도 아닌데 한·미·일 동맹과 관련한 과목을 듣고"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선 복지와 성차별과 관련한 과목을 들어야 하는데, 필리핀 가사 도우미 과목을 듣고 있다"고 했다. 절 모르고 시주하듯 애써 한 일이 보람 없게 된다는 지적이다. 칠면조와 닮은꼴이다.반시장적 포퓰리즘은 경제를 망가뜨리는 '칠면조 류(流) 정책'의 전형이다. 포퓰리즘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2010년 29.7%에서 지난해 49.7%까지 높였다. 이런 추세라면 장기재정 위험은 복지병을 앓는 그리스·포르투갈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한국재정정보원) 야당의 헛발질은 한술 더 뜬다. '이래경 혁신위 반나절 천하'는 이재명 체제의 본질적 결함을 드러낸 참사다. 당 대표 리스크를 혁신위로 덮으려다 빚어진 소동이다. 이런 꼼수로는 위기의 민주당을 구할 수 없다. 한계가 뚜렷한 이재명 체제는 움직일수록 수렁으로 빠져든다. 대표 거취에 대한 정리는 빠를수록 좋다. 공천권 때문에 X마스까지 신변 정리를 미룰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X마스 축제를 꿈꾸다 '칠면조 모순'에 갇히면 자신도, 당도, 총선도 망친다.칠면조 비유에 빠트릴 수 없는 게 있다. 검찰은 민주당의 마지막 1인까지 씨를 말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만만한 데 말뚝 박는다'고 야권만 때리는 게 지나치다. 공정이 생명인 국가기관이 정치의 한복판에서 활보한다. 수사·기소 기능을 넘어 국정 전반을 통제하는 검찰 절정의 전성기가 흡족한가. 가장 위험한 순간을 지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민주당도 사생결단 외 다른 방도가 없다. 언젠가 '검찰 대학살'의 예정된 참사를 짐작 못 한다면 어리석다. 검찰과 정당 간 피의 복수전이 반복될 터이다. 가장 우수한 엘리트 집단이 칠면조의 덫에 스스로 갇히는 건 유감이다. 이 불행의 구조화가 눈에 선하다. 최악의 저출산,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 영호남의 정파 맹목주의, 국민연금, 노동, 종교, 언론, 개딸, 태극기 부대 안에도 멍청한 칠면조의 속성이 꿈틀댄다. 다 자승자박의 덫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