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인요한의 실험
인요한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거침없고 금기도 쉽게 깬다. 그저께는 유승민을 만나 '그는 애국자' '코리안 젠틀맨'이라 치켜세웠다. 홍준표, 이준석에게도 SOS를 쳤다. 의제를 슬쩍 던져 판을 흔들거나 선택을 유도하는 '너지 전략'에도 능하다. 과하지욕(跨下之辱)의 수모를 당했다(홍준표 대구시장), 할 말 없다(이준석 전 대표)는 이들을 굳이 대사면(?)하고, 다음 키워드는 '희생'이라고 하자 당이 요동치고 있다. 이슈 장악력만 놓고 보면 결코 백면서생이 아니다. 고수다. 야당이 '한 달짜리 아바타'로 치부하다간 큰코다친다. 술친구 김종대(전 정의당 의원)의 인물평을 들어보라.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일회용 반창고 노릇할 사람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얘기다. '말술'의 주량도 그의 캐릭터를 짐작게 한다. 지금 정치권에 A4 메모지 없이 자신 있게 술술 말하고, 유머 감각 있고, 그만큼 본이 될 만한 가족사를 남긴 사람 있으면 어디 나와 보시라. 예서 그치지 않는다. 김종대의 예언은 전혀 다른 상황 전개를 예고한다. "인요한·김한길 투톱 체제, 여기에서 대통령의 이념 지형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만난다. 소모적 이념논쟁의 대안으로 '리버럴(liberal)'이 등장해서 일정 정도 대통령의 이념 지형을 구성하고…신당의 전위대까지…." 과연 '뉴라이트'에서 '리버럴'로? 그럼 '올드라이트'는? 지금으로선 기승전결이 생략된 낯선 분석이다. 그러나 영 터무니없어 보이진 않는다. '대통령 신당'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당을 만들었다. 이승만 자유당, 박정희 공화당, 전두환 민정당, 노태우 민자당, 김영삼 신한국당,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박근혜는 비대위원장 시절 새누리당이란 완벽한 자기 당을 만들어놓고 대통령 됐다. 이명박은 타이밍을 놓치고 임기 말 새누리당의 등장을 지켜봤다. 윤석열 대통령과 인요한 혁신위, 김한길을 다시 보게끔 하는 충분한 역사적 증거들이다. '신당'이 아니어도 된다. 인요한은 왜 울산의 '김기현'을 콕 집어 험지 서울로 내몰고 있을까. 자신에 전권을 줬다는 당 대표를 옥죄는 건 불가사의다. 개인 의지일까, 부여된 '미션'일까. 이준석은 후자를 지목했다. '미션 부여'의 진위와 상관없이 당 대표를 내치려는 함의가 궁금하다. "(김기현이)결국 용퇴할 것"(신평 변호사)이란 얘기가 공공연하다. '포스트 김기현' 체제는 비대위? 뜸 들이던 김기현이 "현실성 없다"라고 짧게 반응한 건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를 두고 야당은 인요한을 '파란 눈의 윤석열'(박진영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라 프레임 씌웠다. 인요한에 기대하는 바는 사실 다른 데 있다. 저급한 '공천 싸움' 대신 '정치 혁신'이란 대도(大道)의 문을 여는 일이다. 180개에 달한다는 특권 포기를 선언하면 총선 100% 이긴다. 국민의힘 혁신을 넘어 정치 전체를 리빌딩하는 혁신, 국민은 그런 혁신을 원한다. 권력 게임의 소모품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는 게 인요한과 그의 가문다운 길이다. 130년 전 진외증조부 유진 벨부터 시작된 '린턴 가문'의 선구적 희생을 이어받아 존 린턴(John Linton·인요한의 미국 이름)이 대한민국 정치 발전의 소중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된다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인요한이 제대로 사고 한번 치기를 고대한다.논설위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