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희생자를 잊지 못하는 지인들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
"어젯밤, 우리 ○○가 제 꿈에 나왔어요. ○○의 얼굴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나왔는데, 그런 저를 보더니, 곁에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더라고요. 그 모습에 울면서 잠에서 깼는데 '무사히 좋은 곳에 도착했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들었습니다."지난 9일 발생한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 친구, 동료를 잃었다.희생자 중 한 명인 A씨는 평소 가족·지인들을 잘 챙기며 나들이, 맛집을 자주 다니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트로트, 발라드를 좋아했던 A씨는 지인들과 한 합창단의 공연을 본 후 지난 2020년부터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다.A씨와 함께 합창단 활동을 한 B씨는 "2018년쯤 A는 지인들과 함께 합창 공연을 보러 왔었다. 공연을 본 후 합창단 활동에 대한 열망을 품었고 2020년 초 합창단에 들어왔다"며 "모난 구석 없이 사람들에게 참 친절하고 착한 친구였다. 합창단 내에서 빠지는 일 없이 뭐든 열심히 해 2년 만에 임원으로 활동했다. 임원으로서 사무실에 모여 함께 합창단 관련 일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율동도 추며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지인들은 사건 발생 얼마 전에도 고인과 만났거나 연락을 나눴다며 눈시울을 적셨다.A씨의 대학 선배로 10여 년을 함께 알고 지냈다는 합창단원 C씨는 "고인의 사무실과 내 사무실이 바로 근처라 퇴근하고 자주 우리 사무실에 와서 공부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거의 매일 보던 사이라 아직 우리 사무실에는 그의 손때 묻은 물건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며 "사고가 난 후 지인이 'A와 연락이 안 된다'라며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그를 찾기 위해 사고 현장, 경찰서, 소방서 할 것 없이 수소문 했는데 아무도 어디 있는지 몰랐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러다 뉴스를 접했는데 사망자가 남자 5명, 여자 2명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 A씨의 사무실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망자 명단을 봤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갔다고 걸 인정할 수가 없었다"며 울먹였다.이들은 모두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된 첫날부터 발인식이 엄수될 때까지 A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A씨와 30년 지기 친구라는 D씨는 "얼마 전 A씨와 함께 카페를 같이 갔다. A씨가 당시 입었던 옷은 서울에 사는 친구가 사준 옷이었고, 예쁜 모습을 담아주고 싶어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이 A씨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젊은 사람이니 영정사진을 찍었을 리가 있겠냐. 빈소에 영정사진이 없어 당시 찍은 사진을 골라 배경을 없애고 영정사진을 만들었다. 장례식 절차가 진행되면서 A씨의 영정사진을 보니 말도 안 나올 정도로 기분이 참담했다"고 했다.지인들은 A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직은 인정하기 어렵지만, 좋은 곳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모았다.
한 지인은 "A씨는 맏이로서 부모님을 책임져야 한다고 항상 말했다. 자신보다 누군가를 더 위하던 그의 발이 떨어질까 걱정도 앞선다. A씨는 바깥으로 자유롭게 다니고 싶어 했던 친구였다. 늘 열심히 살아온 친구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남영기자 lny0104@yeongnam.com대구 수성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희생자들을 명복을 기리는 화환이 놓여있다. 이남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