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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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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검증의 시간
역대 대통령을 꼽아보니 나름 장점이나 공(功)이 다 있다. 노무현의 탈권위, 이명박의 '기업 프렌들리'가 대표적이다. 김대중은 이념과 진영을 넘어선 실사구시 정책이 돋보였다. 김영삼은 하나회 척결로 문민정부의 지반(地盤)을 다졌고, 노태우는 북방 진출로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 전두환은 군부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어둠에 침잠시켰지만 드림 내각을 꾸린 용인술은 평가해줄 만하다. 중화학공업의 초석을 놓은 박정희도 빼놓을 수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X파일이 등장했다는 건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됐다는 신호다. 내년부터 5년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위상을 다질 변곡의 시기다. 국가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차기 대통령은 어떤 인물이어야 할까. 역대 대통령의 장점을 고루 갖춘 인물이면 합격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세종'을 바라지만 실제론 무능한 불통 대통령이 등극할지 모른다. 무능한 리더십 아래선 국민이 훨씬 많은 기회비용을 치른다는 게 우리의 경험칙이다.이제 검증의 시간이다. 검증의 두 가지 홍심은 능력과 도덕성이다. 윤석열 X파일은 도덕성에 무게가 실린다. 파일엔 윤 전 총장 개인 및 가족의 사생활이 상당 부분 담겼다고 한다.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윤석열 X파일은 이미 두 달 전 정가에 공공연히 떠돌았다. 생산된 진원지 여러 곳이 거론됐다. 국민의힘, 검찰, 여권 등 설이 파다했다. 지금 나도는 파일은 4월에 작성된 10여쪽과 6월 초 만들어진 10여쪽 모두 20쪽 분량이다.야당은 "저급한 흑색선전"이라며 공기관의 개입을 의심한다. 민주당은 되레 "고발하라"고 맞선다. X파일의 존재가 드러난 만큼 철저한 수사와 검증은 피할 수 없다. 내용의 진위 여부는 물론 최초 작성자, 최초 유포자까지 밝혀야 한다. 불법사찰이 있었는지도 중대 변수다. 윤석열 X파일을 뭉개거나 덮을 수 없는 이유다.능력과 정책 검증은 더 가혹해야 한다. 민생에 미치는 영향은 도덕성보다 더 절대적이다. 하지만 정작 능력·정책 검증엔 국민도 언론도 소홀하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이슈에만 앵글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가장 뼈아픈 실정이 부동산이다. 온갖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직 부동산은 궤도 이탈 상태다. 개인적으론 내년엔 '부동산 해결사'가 대권을 거머쥐길 바란다. 난제 부동산을 해결할 능력과 리더십이라면 경제와 민생을 온전히 맡겨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문재인 정부는 소통을 거부하는 자폐 증상이 심각했다. 어설픈 반시장 정책을 남발하며 민생과 경제효율을 망가뜨렸다. 이를 내년 대선 후보 선택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K팝, K반도체, K푸드엔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한데 K정치는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태평성대란 사자성어를 탄생시킨 요순이나 서신으로 신하를 설득하고 민심을 헤아렸던 정조, '세 개의 거울'로 '정관의 치'를 이루었던 당태종이 아니라도 좋다. 국민과 소통할 줄 알고 정책의 무게를 서민에 두며 뼛속까지 민주주의 마인드를 갖춘 인물이라면 오케이다. 거기다 진영을 가리지 않는 인재 등용과 실용주의 정책을 구사한다면 금상첨화다. 능력 있는 대선 후보를 가려내야 할 검증의 시간이 왔다. 앞으로 9개월이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도 스크린 하겠지만 최종 검증은 국민 몫이다.배우 윤여정의 매력은 '윤며들다'는 신조어를 탄생케 했다. 국민을 스며들게 할 대선 후보는 없을까. 매력 정치인을 가려낼 '깨시민'의 혜안이 필요하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신상' 이준석이 넘어야 할 두 개의 산
정치판에 이준석 돌개바람이 분다. '신상' 효과다. 오랜 기간 우리 정치계엔 '신상'다운 '신상'이 없었다. 정치 신인도 금방 여의도의 탁류에 휩쓸리곤 했다. 심지어 재고상품, 떨이상품이 주류 행세를 했다. 하지만 이준석은 기존 정치문법과 공식을 파괴하면서 '신상'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했다. 경선 때부터 사무실, 캠프, 집단문자 발신이 없었다. 당대표가 된 후에도 과거의 루틴을 답습하지 않는다. 여론은 일단 우호적이다. '꼰대정치의 종언(終焉)' '유쾌한 반란' '정치가 재미있어졌다'…. 기득권 정치는 국민의 환심을 사지 못했다. 눙치기와 오불관언(吾不關焉)이 난무하고 도덕성과 공정의 좌표는 흔들렸다. 진영 충돌이 빚어낸 사회 갈등과 여야의 불협화음이 일상화되면서 경제와 민생은 피폐해졌다. 국민은 구태 정치에 식상해했다. '신상' 정치인에 갈증을 느낄 즈음 이준석이 등장한 것이다.'0선' 청년 이준석의 제1야당 대표 등극, 우연만은 아니다. 이준석은 정치인의 필요조건을 꽤나 장착했다. 우선 정치적 감각이 남다르다. '공정 경쟁'이란 멘트를 날리며 조국 사태 후 가장 민감한 화두가 된 '공정'을 벼락같이 낚아챘다. 대표 당선 다음 날엔 안철수와 번개 회동을 했다. 타고난 순발력이다. 첫 공식 일정은 대전현충원과 광주 방문. 보수층과 중도층, 호남을 고루 겨냥한 행보였다. 당직엔 여성을 중용했다. '안티 페미니즘' 색채를 희석하려는 포석이다. '미디어 친화력'도 이준석의 강점이다. 이슈를 만들어 언론의 관심을 끌 줄 안다. 당사 첫 출근 날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를 탄 게 단적인 사례다. 경선 후보 방송토론에선 단답형 질문으로 상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하지만 이준석에 대한 의구심은 엄연히 상존한다. 아직은 그의 '진짜 실력'을 모른다. '신상'은 분명한데 명품인지 짝퉁인지 헷갈린다. 정치철학과 정체성도 애매모호하다. 수구 반공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보수정당의 이념교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저서 '공정한 경쟁'에선 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를 두둔한다. 공정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공정경제 3법'엔 부정적이다. 보수언론에선 공정경제 3법을 '기업규제 3법'으로 표현하지만. 정책 판단 능력과 경제 안목도 오리무중이다. 공천 자격시험, 토론 배틀 따위의 지엽적 문제만 언급했을 뿐이다. 정책과 정치를 아우르는 밑그림을 그려낼 역량이 필요하다. 특유의 직설화법도 '이준석 리스크'다. 김종인 재영입이 몰고 올 파장 또한 예단하기 어렵다. '이준석 효과'를 실증하려면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하나는 대권 주자들의 플랫폼 정당 역할이다. 당내외의 범야권 잠룡을 모두 끌어들여 가장 경쟁력 있는 인물을 국민의힘 후보로 낙점해야 한다. 그러나 '버스론'에 '택시론'으로 맞받는 등 국민의힘과 윤석열 측의 밀당은 더 격해지고 있다. 플랫폼 정당으로의 여정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또 하나는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다. 이준석과 새 지도부 등장으로 국민의힘은 환골(換骨)까진 아니더라도 탈태(奪胎)는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책과 비전'은 낙제점이다. 부동산이 그 난리를 쳐도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복지담론을 담은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했다. 청와대·여당 때리기에만 골몰하며 정책정당·대안정당의 입지를 스스로 훼손했다. '신상' 효과는 지속성이 관건이다. 지속성은 품질 즉 실력이 담보한다. 실력주의, 능력주의를 주창한 이준석이다. 그는 '찐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의문부호는 남는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빌바오 효과'와 문화분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도권 집중이 이토록 심화한 나라가 또 있을까. '수도권 요지경' 대한민국 얘기다. 수도권 집중은 정치·경제·문화·교육·인구를 아우른다. 정치야 알다시피 정치권력이 통째 서울에 있고 입법은 100% 여의도에서 이루어지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방의회가 있지 않느냐고? 지방의회는 감히 국법에 손을 대지 못한다. 조례 제·개정이 고작이다. 경제 집중은 대기업 본사 90%가 수도권에 있다는 것으로 갈음하겠다. 문화 편차도 가관이다. 대구의 미술관 수는 3곳인데 비해 수도권은 104곳. 문화의 수도권 집중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관용어로 굳어진 'SKY 대학' '인(in) 서울'은 교육 허브 서울의 위상을 가감없이 노정한다. 국토의 11% 남짓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몰려있는 현상도 한국만의 풍광이다. 한데 1949년의 인구분포를 보면 마치 가짜뉴스 같다. 당시 2천16만명 전체 인구 중 서울은 145만명으로 시·도 중 7위였다. 321만명의 웅도 경북이 1위였다니…. 격세지감이다.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국가를 구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웬걸. 수도권 집중은 더 공고해졌다. 균형발전은 동력을 잃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분권 의지를 가늠할 이슈가 생겼다. '이건희 미술관'이다.대구시는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승부수를 띄웠다. 미술관 건립비 2천500억원 전액을 시비와 시민성금으로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장소는 옛 경북도청 부지.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 건립 의사도 밝혔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인교동 삼성 창업지와 이건희 생가를 공원으로 조성한다. 미술관 유치에 성공하면 이건희 생가~삼성창조캠퍼스~이건희 미술관을 잇는 '이건희 투어루트'도 운용할 방침이다.파격 제안이다. 다른 지자체에선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 설사 시늉을 해본들 저들에겐 삼성 발상지, 이건희 생가 같은 '스토리텔링'이 없다. 대구는 3합(合)이 맞아떨어진다. 삼성과의 인연, 삼성·이건희 스토리, 적극적 유치 전략까지.컬렉션은 수집한 사람의 삶과 향기, 역사관, 작품에 대한 안목까지 담아내는 만큼 한 곳에 모으는 게 맞다. 국립근대미술관과 '이건희 미술관'을 병합하려는 시도 역시 '이건희 컬렉션'의 심의(深意)를 퇴색시킬 뿐이다. '이건희 컬렉션'엔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희귀 진품들이 수두룩하다. 콘텐츠만큼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실험정신이 깃든 빌바오 미술관은 우아한 곡선의 자태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게리의 명품 건축물이라면 '이건희 컬렉션'과도 환상의 조합이 될 듯싶다.'이건희 스토리텔링'과 문화 아우라를 겸비한 대구는 '빌바오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곳이다. 한데 서울 쪽의 방향타는 대구의 기대치와 사뭇 다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관을 염두에 두고 서울 송현동 부지의 사용 가능성을 서울시에 타진했다. 한 중앙언론은 '이건희 컬렉션' 특집을 다루면서 '이건희 미술관'의 송현동 건립이 타당한 양 군불을 땠다. 그러나 수도권 건립은 오답이다.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기조에도 배치되지만 명소가 많은 서울에선 '빌바오 효과'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 문화 소비의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는 꼴이다.'이건희 미술관'의 송현동 낙점은 돌이킬 수 없는 '본헤드 플레이'가 될 것이다. 상식을 거스르는 무리수는 업보로 돌아온다. 한국은 이미 '서울 공화국'이다. 정부는 정녕 문화분권의 표상이 될 이벤트를 걷어찰 요량인가.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국민은 'Bespoke 정치'를 원한다
삼성 가전 브랜드 '비스포크' 돌풍이 거세다. 삼성전자 전체 매출에서 생활가전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비스포크의 성과다. 비스포크(Bespoke)는 소비자가 말한 대로, 즉 소비자 주문형이다. 영국 담배 던힐은 Bespoke 전략에 정통하다. 1907년 작은 담배가게에서 출발한 던힐은 한 세기 동안 무려 3만7천개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에 부응했단 뜻이다. MZ세대를 겨냥해 가향 캡슐 담배를 개발한 곳도 던힐이다.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IPTV 셋톱박스를 구동시키는 LG유플러스의 OTT '자동연결기능' 역시 Bespoke의 결과물이다.Bespoke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수요자 중심' '소비자 맞춤형'이다. 기업이 일찌감치 고객 중심주의로 변한 데 비해 우리 정치·행정은 여전히 공급자 편의주의에 빠져 있다. 국회와 정부의 Bespoke 기능은 고장 난 모양이다. 바람직한 민주정부는 여당의 협치, 야당의 생산적 비판, 관료의 합리적 정책이 조화롭게 돌아가는 정부다. 현실은 딴판이다. 우선 협치가 작동되지 않는다. 여당의 법안 단독 처리는 다반사였고 국회 인사청문회는 무력화된 지 오래다.야당의 견제도 헛발질이 많다. 민심 대변보단 정략에 치우친 느낌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현재 속도라면 집단면역이 6년 걸린다는 얘기도 있다"며 정부의 백신 대책을 힐난했다. 6년? 공감할 국민이 있을까. "~얘기도 있다"는 어법을 썼다는 건 제시할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어떤 정치인은 전체 맥락은 보지 않고 소득과 자산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시비를 건다. 쪼잔한 언설이자 말꼬투리 잡기다.당심(黨心) 우위도 마뜩잖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 룰이 그렇다. 본경선은 당원 투표 70%, 국민여론 30%가 반영된다. 이마저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둔데다 호남 할당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영수 산림(山林)은 사림(士林)의 여론인 청의(淸議)를 공론화해 세력을 키웠다. 산림의 권력은 사림의 여론에서 나왔던 것이다. 특정 세력이 여론을 주도했단 얘기다. 오늘날 정당의 당심이 청의에 해당한다. 하지만 청의는 민심이 아니다. 민주당도 '문빠' 같은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면 민심이 착근할 여지가 없어진다. 정치 소비자는 당원이 아닌 국민이다.'이준석 현상'은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민심의 표출이다. 아직 민주당은 '친문' 냄새가 폴폴 나고, 국민의힘은 '도로한국당' 색채를 지우지 못했다. 과거의 정치 문법으론 민심을 독해할 수 없다. 이준석 돌풍은 과거 회귀, 구태 정치에 대한 백래시(backlash)다. 메타버스(metaverse)에서 자신의 아바타에게 명품 옷을 사 입히는 시대에 장유유서는 고루하고 계파 논쟁은 한가하다.국민 다수가 탈원전과 친노조 정책에 반대한다. 반중 정서도 비등하다. 이를 정치와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게 Bespoke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엔 비스포크가 없다.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달빛내륙철도를 제외시켜 대구와 광주의 주문(注文)을 뭉갰으며,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여 대구경북 민심을 외면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가세했다. 국민 접근성을 내세우며 '이건희 미술관'의 수도권 건립을 시사했다. 지자체의 과열 유치 경쟁은 엄청난 국고 낭비로 이어진다는 궤변까지 늘어놨다. 흔히 나쁜 언행엔 '~질'이란 접미사를 붙인다. 갑질, 패악질, 첩질 따위다. 저급한 정치, 정파적 정치는 정치질로 폄훼돼 마땅하다. 국민은 정치질을 사양한다. 'Bespoke 정치'를 원한다. 그러니 세금 징수하듯 민심을 추렴해야 한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탈원전, 현실을 직시하자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온라인 설문 조사한 '초·중·고 진로교육 현황'을 보면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초·중생의 경우 의사가 희망직업 2·3위였으나 고교생의 희망직업순위에선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대신 초·중학교 때 10위권 아래 처져 있던 간호사가 고교생 희망직업 3위로 치고 올라왔다. 왜일까. 초·중 재학 땐 다소 막연한 상태에서 부담 없이 의사를 선택했지만 고교생이 되면 의대란 높은 벽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과거 학부모 사이에 회자된, 맥락이 비슷한 우스개가 있다.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땐 서울대 진학 목표를 세우고 서울우유를 먹이다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 연세우유로 대체한다. 중학생 땐 학력이 더 체화(體化)하는 시기다. 자녀의 실체를 알게 된 학부모는 건국우유로 브랜드를 맞춘다. '인(in) 서울'이면 족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녀가 고교생 때는 저지방우유로 바뀐다. 선택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하릴없이 지방대를 택해야 하는 학부모의 고뇌가 엿보인다.두 개의 에피소드엔 꿈과 이상이 원대해도 결국 현실을 직시한다는 함의가 내재돼 있다. 한데 문재인 정부는 현실과 괴리가 큰 탈원전 정책을 고수한다. 정부의 9차 전력수급계획엔 2020년부터 15년간의 전력설비계획이 담겼다. 2034년까지 11기의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석탄발전을 줄이는 게 골자다. 그 대체전력이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이다.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지난해 20.1GW에서 2034년 77.8GW로 대폭 늘어난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는 경제성이 낮고 환경훼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전기 생산량이 날씨에 따라 들쑥날쑥한다. ESS(에너지저장장치)가 필수적이지만 아직 ESS 기술은 갈 길이 멀다. 단위 용량당 건설비, 발전시설의 수명, 생애 발전량 등에서도 원전이 압도적 우위다. LNG발전은 탄소를 배출하는 데다 발전단가의 기복이 심하고 비싼 편이다. 한전이 발전 자회사와 민간회사로부터 구매한 전력 단가의 지난 5년 평균치는 ㎾h당 원자력 62원, 석탄 80원, LNG 110원, 태양광 168원이다.2017년 기준 석탄발전소의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2만7천t이지만 원전은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다 제로다. 1㎾h 전력을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석탄발전이 1천g, LNG는 490g인 데 비해 원자력발전은 15g에 불과하다. 원자력발전이 '궁극의 청정에너지'로 수식되는 이유다. 차세대 원전에 길이 있다. 차세대 원전의 세 가지 방식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고온가스로(HTGR), 핵융합 발전이다.지구상에선 해마다 510억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 한데 원전 없이 이게 가능할까. 원전은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으면서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최적의 기후변화 해결책이다. 적어도 2050년까진 원전을 현상 유지하는 게 옳다. 그러면 원전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고 원전수출의 정합성(整合性)도 명쾌해진다. 전기료 상승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신월성 3·4호기 건설 불발 시 발생하는 손실을 사장시키지 않아도 된다.2050년이면 에너지저장 기술과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SMR 등 차세대 원전의 비약도 기대된다. 그때 가서 에너지 믹스의 틀을 다시 짜자. 학생과 학부모도 종국엔 현실적인 선택을 하지 않나. 하물며 정부가 말랑말랑한 환상에 빠져서야. 마침 한국과 미국이 해외 원전시장 공동진출에 합의했다. 한·미 원전 공조가 탈원전 정책의 변곡점이 되기 바란다.<논설위원>논설위원
[박규완 칼럼] 좀스러운 정책이 부동산 실패 불렀다
'문재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 78% 상승'(경실련). 구구절절 긴 말이 필요 없다. 부동산값 폭등시킨 죄 하나만으로도 문 정부는 이미 실패한 정권이다. '부동산 레임덕'이란 말이 괜히 나왔을까. '부동산 불패'는 '부동산 정책 실패'의 다른 말이다. 국민은 4·7 보선에서 '그 실패'를 응징했다.복기해보면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지질하고 좀스러웠다. 아파트 가격이 오를 때마다 어설픈 대증요법으로 일관했다. 강력한 한 방이 없었고 무엇보다 공급대책을 외면했다. 24번이나 깔짝거리기만 해 투기꾼들의 내성을 키웠다. '지역별 맞춤형'이라 자찬한 대책은 풍선효과만 불렀다.주택임대를 활성화한답시고 주택임대업자에게 특혜를 준 건 또 무슨 뻘짓 인가. 다주택자의 투기수요가 집값 급등의 진앙인데도 정부가 나서 다주택 보유를 독려한 꼴이니. 도대체 전두엽이 온전히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넘치는 유동성, 국민소득 증가, 가구 분화에 따른 주택 수요증가를 예측하지도 직시하지도 못했다. 4년간 78% 집값을 잡을 의지가 없었거나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다. 문 정부 임기 초기에 보유세 확 올리고 과감한 공급대책을 내놨다면 단언컨대 부동산 광풍은 없었다.임대차 3법은 굳이 법제화할 필요가 있었을까. 임대차는 부동산값 폭등의 본령도 아니다.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 청구권? 차라리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동하는 시장에 맡겼어야 했다. 타이밍 맞추는데도 젬병이다. 갭투자 규제와 임대차 2법 강행 시기가 겹치면서 전세난이 심화됐고, 전세난이 매매수요를 자극하며 집값 앙등을 부추겼다.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좀스러웠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그악스러웠다. 임기 초기 2년간 29%를 올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초토화됐다. '시간당 임금' 통제에만 매몰된 사이 취약계층 일자리는 증발했고 저소득 가구의 근로소득은 쪼그라들었다. 지금도 5인 미만 업체 근로자의 30%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다. 그냥 시장에 맡겨라. 일자리가 늘어나면 정부가 간구하지 않아도 임금은 오르고 근로시간은 줄어든다. 임대차 3법, 최저임금, 주 52시간제 모두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한 사례다. 상·하한을 정하는 규제는 시장의 수용성(受容性)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수요와 공급이 결정하는 시장이 가장 민주적"이라고 설파했다. 돌팔이 입안자 몇몇의 머리에서 나오는 정책을 민주적이라 할 순 없다.중국 전한과 후한 사이의 신(新)나라는 왕망이 세웠다. 사위의 왕위를 찬탈한 왕망은 재위 후 토지개혁과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등 혁신 군주로의 변신을 꾀했다. 하지만 경제현장과 시장 기능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으로 사회 혼란만 야기했다. 물가가 폭등하고 민생이 피폐해지며 신나라는 16년 만에 멸망했다.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에 대한 혜안(慧眼)이 없고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대북 정책, 탈원전 정책을 봐도 그렇다. 참모들마저 현실·현장 감각이 떨어지는 운동권이나 시민단체 출신으로 채웠다. 남다른 통찰력으로 합리적 시장경제를 강조했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같은 인물은 배제됐다. 문 정부의 정책 헛발질,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신나라의 국정 실패는 문 정부의 반면교사이자 사경(史鏡)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병원 떠났던 대구 수련병원 전공의 700여 명, 복귀 시점 마지날에도 '요지부동'
[의대 증원 집행정지 각하·기각] 탄력받는 정부의 의료 개혁…남은 숙제는 전공의 복귀와 의사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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