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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조진범의 피플] 노장 철학 대가 최진석 명예교수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시민이 아닌 백성의 역할밖에 못한다."
노장 철학의 대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대한민국의 선도 국가 도약을 역설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단일화를 주장했던 최 교수는 "586 주사파들이 주도하는 특정 이념으로 국가를 관리하려는 태도로는 대한민국을 민주화 다음으로 건너가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권교체는 대한민국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라고 밝혔다. 국민통합에 대해선 "공화(共和) 정신을 회복해야 가능하다"며 "자기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수용할 태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합 주장은 허구다. 미성숙한 진영 정치 단계로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지난 8일 전남 함평을 찾았다. 노장 철학의 대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막 피어오르는 봄의 색깔들이 눈부셨다. 광주를 지나 도착한 함평은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그 한켠에 '호접몽가(蝴蝶夢家)'가 있다. 나비 꿈의 집이다. 최 교수가 세운 '새말 새몸짓 기본학교' 강의동이다. 호접몽은 중국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우화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내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묘하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도가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 교수의 고향이 나비 축제로 유명한 함평이라니. 호접몽가는 윤경식 건축가의 작품이다. 지난 2020년 세계건축상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호접몽가 바로 뒤편에는 최 교수가 기거하는 '만허당(滿虛堂)'이 있다. 손님으로 가득 차거나, 손님이 없어 비어있는 집이라는 의미다. 가득함과 비어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 호접몽가에 도착할 즈음 최 교수도 서울에서 막 내려왔다. 최 교수는 서울과 함평을 오가며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서울에서 한국능률협회와 공동으로 혜명원(慧明苑)이라는 강의토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호접몽가에서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하려고 애를 쓴다. '최진석의 새말 새몸짓'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최 교수는 철학자이자 교육자이지만, 정치가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정권교체를 위해 안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단일화를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호남 출신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최 교수는 "다급했고 또 옳은 길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건너가야 된다는 생각이 매우 강하고,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일을 하다가 가고 싶다"며 "정권교체는 대한민국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라고 했다. 최 교수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이제는 건너가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제는 건너가자'는 무슨 의미인가요."제가 생각할 때 우리나라는 지식수입국, 전술 국가 레벨로는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 도달한 것 같아요. 다음 단계로 상승하지 못하면 극심한 정체와 혼란, 혹은 하강을 하거든요. '전술 국가 레벨을 넘어서서 전략 국가로 상승해야 한다, 추격 국가로의 삶을 선도 국가의 삶으로 도약시켜야 한다'는 상황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도약하자, 전략 국가로 올라가자, 선도 국가로 올라서자라는 의미에서 이제는 건너가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최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인이 가장 깨어있다고 했다. "기업인이 공부도 제일 열심히 하고, 건너가려는 도전도 기업인들이 제일 활발하게 합니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진화시키는데 기업이 많이 공헌을 했습니다." 최 교수는 기업인을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에 대해선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 기업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조장하고 있다"고 정치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당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아 현실정치에 참여하셨는데요. 철학자가 바라본 정치판은 어떠했나요."사실 그 나라의 맨 얼굴은 정치입니다. 기업이나 BTS, 오징어게임이 아닙니다. 정치에 들어가기 전에는 '왜 이렇게 정치를 못하나' 여겼는데, 실제 보니까 이 정도 하는 것도 가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는 아직 생각하는 능력이 배양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영에 갇혀 있습니다. 식민지를 겪으면서 근대를 맞이하는 바람에 시민으로 형성돼 있지 않고 아직도 백성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아요. 어떤 정치적 위치를 갖고 있는 시민이라도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백성의 역할밖에 못합니다. 백성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홍위병을 닮은 정치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이루어지는 판을 진영 정치라고 합니다." ▶진영 정치의 문제점이라면."진영에 빠지면 생각할 필요가 없어져요. 진영이 결정해 놓은 어떤 이념을 확대 재생산만 하면 되거든요. 진영에 빠지면 생각하는 능력이 급격히 퇴화되고, 이념이나 감정에 쉽게 빠지죠. 그래서 정치 행위가 종교 행위와 거의 구분이 안 돼요. 사유의 정치는 사유의 문제가 돼야 되는데 믿음의 문제로 제한돼 버리고 말죠. 실제 정치 안으로 들어가 보니까 우리가 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영 정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배경은 무엇일까요."우리나라는 건국, 산업화, 민주화 단계로 오면서 생각하는 능력을 계속 성장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민주화 주도 세력이 특정 이념에 갇히는 바람에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돼 버렸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반성한다는 뜻이거든요. 반성하는 능력이 없으면 믿음을 계속 강화하는 일밖에 할 수가 없어요. 믿음을 강화하니까 진영이 더 공고해지고, 진영이 공고해지니까 분열이나 갈등이 더 심화되는 것이죠.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된 민주화 주도 세력이 국가 이익이나 국가의 진화보다 특정한 이념을 집행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져 버렸습니다." ▶건국, 산업화, 민주화 다음 단계는 어떤 것입니까."사실 민주화의 완성은 민주화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건너가면서 이뤄집니다. 민주화를 통해 어떤 사회, 어떤 나라를 만들었느냐가 민주화의 성공 여부를 결정합니다. 자칭 민주화 주도 세력은 오히려 민주나 자유에 대한 민감성을 후퇴시켰습니다. 저는 민주화 다음을 선진화라고 봅니다. 민주화 주도 세력들이 특정 이념에 갇히는 바람에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졌고, 민주화 다음의 비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럼 선진화를 주도할 세력은 어떤 사람들입니까."어떻게 선진화를 이룰 것이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모든 세력이 선진화의 단계로 건너가야 된다는 비전에 합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진화 단계부터는 전략 국가, 선도 국가 레벨입니다. 우리는 아직 가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잘 모릅니다. 1820년대를 대분기라고 하는데, 대분기 이후로 후진국이 중진국에 도달했다가 선도 국가로 올라선 사례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만큼 어려운데, 우리나라한테 축복이 왔습니다." ▶축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기존의 패러다임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우리나라도 선도 국가로 올라가지 못하는 경로를 따를 수밖에 없을 텐데, 패러다임이 깨지면서 세상에 균열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위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찬스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간판을 달고 깨지고 있는 이때가 찬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진국으로는 가장 강한 국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도 국가를 꿈꿔 본다면 지금이 절호의 찬스입니다." ▶선도 국가로 가기 위해 왜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셨습니까."586 주사파들이 주도하고 있는 특정 이념으로 국가를 관리하려는 태도로는 대한민국을 민주화 다음으로 건너가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586 주사파들에게 각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도 국가는 자유스럽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으로만 가능한데, 특정 이념으로 지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일들이 불가능하거든요." ▶막상 정권교체가 결정되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고향 친구들이었어요. 정치적 믿음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감정적인 것이거든요." ▶더이상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실 건가요."떠난 것도 아니고, 안 떠난 것도 아닙니다. 사실 철학하고 정치는 생년월일이 같아요. 한날 한시에 태어났습니다. BC 6~7세기 경에 정치가 시작되고 철학이 시작됐거든요. 우리가 배우고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철학 이론은 정치나 전쟁 속에서 태어났어요.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모두 정치인이자 철학자들이에요. 철학자가 갑자기 정치를 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철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지행합일(知行合日)의 한 형태입니다." 최 교수는 새 정부의 행보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아직 인수위 과정이라 잘잘못을 평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통합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요."우리는 민주공화국인데, 민주라는 관념은 적극적으로 제기되는 반면 공화는 너무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어요. 시민이 주인이 된 정치 형태가 민주주의라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함께 사는 게 공화주의입니다. 공화 정신을 회복해야 통합이 됩니다. 자기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수용할 태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합 주장은 허구예요. 지금의 미성숙한 진영 정치 단계로는 통합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한 가지 유심히 봐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좌도 우도 없고, 전라도 경상도도 없고, 남자 여자도 없고 하나로 뭉칠 때가 있었어요. 바로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였습니다. 월드컵 4강이라는 꿈처럼, 한 단계 높은 아젠다를 합의하면 가능합니다. 저는 그것을 선진화나 선도 국가로 도약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현재의 좌우 대립으로 형성된 정치판에서 어느 한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통합을 하려고 하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금이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예측이나 판단보다 의지가 중요해요. 대한민국이 선도 국가로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예측하는 일보다는 선도 국가를 이루는 도전을 한번 해볼 것이냐, 안해 볼 것이냐와 같은 의지를 따지는 일이 더 의미가 있죠.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레벨의 주제를 한 단계 넘어서야 해요. 통합이나 협치도 그것들을 통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선도 국가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통합이나 협치 자체의 중요성 때문에 강조되는 것은 아니죠." ▶우리나라 외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국제 무대에서 외교 관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이익이에요. 절대 특정 이념에 치우쳐서 국익을 왜곡시키면 안됩니다. 외교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검토돼야 될 것이 있는데 상대국이 대한민국의 영토와 문화, 역사를 존중하는지의 여부와 욕심내는지의 여부입니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외교 관계는 건강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영토와 역사, 문화를 경제적 이익과 바꾸기 시작하면 끝내 종속됩니다." ▶새말 새몸짓 기본학교에서는 어떤 주제로 강의를 하시는지요."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로 여깁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면 일단 자기 자신을 궁금해 해야 됩니다. 자신을 궁금해하는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내가 죽기 전까지 완수해야 될 소명은 무엇인가'입니다. 이 다섯 가지 질문을 계속 해야 합니다. 인간이 인격적으로나 지적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호기심이에요. 야생의 호기심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키느냐, 어떻게 다시 키워주느냐 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주제가 돼야 합니다." ▶시민의 역할을 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먼저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특정한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삶의 고유한 신화를 완성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노예적 삶이 무엇인지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계속 자기 자신한테 질문도 해야 합니다. 마음의 크기도 키워야 합니다. 진영에 빠지면 자잘해집니다."<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1959년생으로 광주 대동고를 졸업했다. 서강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중국 베이징대 대학원에서 장자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7년 서강대를 떠났다. 정년이 7년이나 남은 상태였다. 대학에서 최 교수를 붙잡기 위해 무급휴직을 주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으나, 홀연히 야생으로 나섰다. 당시 최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학생들에게 '편안한 데 머물지 말고 경계에 서서 불안을 감당하는 자가 돼라'고 했는데, 학교를 떠남으로써 비로소 언행일치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스타 철학자'다. 2015년 창의적 인재 양성 교육기관인 건명원의 초대 원장을 맡아 대중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했다. 또 '현대철학자, 노자'라는 주제로 EBS인문학 특강을 진행했다. 2020년 사단법인 새말 새몸짓을 설립해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호남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해 화제를 모았다. '5·18 왜곡처벌법'에 항의하는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시(詩)를 발표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탁월한 사유의 시선' '나 홀로 읽는 도덕경' '경계에 흐르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 그리는 무늬' 등이 있다.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인터뷰를 마치고 호접몽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전남 함평군 대동명 향교리에 위치한 호접몽가.
2022.04.12
[이영란의 스위치] '人文을 공부하는 기업인' 윤동한 한국콜마그룹 회장 "이순신은 인내로 난관 극복…尹도 여소야대 인내의 리더십 필요"
"역사속엔 실패·성공사례 무궁무진유사한 경험과 모델도 찾을 수 있어젊은이들 구체적 인생 계획 세우고독서 통해 많은 간접경험 하길 바라경제는 흐름이고 물꼬만 터주면 돼새 정부 단기 성과 의식하지 말아야尹당선인 상황판단 탁월해 잘할 것"기업 운영에 매진하던 한국콜마그룹 윤동한 회장의 '사회'를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 하면서 시간이 많아진 그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 나가고 있다고나 할까. 청소년 시절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후 신문기자가 되려는 꿈을 꿨으나 대입 시험을 불과 40일 남기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장남으로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인생 항로를 완전히 바꿨던 윤 회장이다.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이순신 학교'를 운영하고, 최근 출간한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내면서 역사와 지리에 해박한, 인문(人文)을 공부하는 기업인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윤 회장은 지난 2월에는 영남대 총동창회장을 맡아 지역 공헌을 위해서도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서울 서초동 한국콜마 계열사인 '콜마비앤에이치' 서울사무소에서 21일 윤 회장을 만났다. 윤 회장은 지난해 이 빌딩을 신축 완공하면서 마치 화룡점정하듯 두 마리의 황소 조각상을 입구에 세웠다. 그의 경영철학인 '우보천리(牛步千里)'의 메시지를 회사 밖으로 꺼내 더 널리 전하려는 듯.▶왜 이순신인가."한국사를 둘러싼 '도전과 응전'의 많은 인물 중에 유독 이순신 장군만이 영웅보다 격이 높은 성웅(聖雄)으로 불리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충무공이 어떻게 수많은 전쟁에서 전승을 했고, 23년의 군 생활 중에 15년을 육군으로 지낸 분이 전투방법이 다른 수군 생활에 어떻게 적응했으며, 명량해전 같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긴 원동력이 무엇인지 의아하게 생각돼 많은 문헌 등을 찾아보고 연구했다. 공부해 보니 이순신은 단순히 용감하게 싸우고, 훌륭한 전술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을 예측하고 이를 미리 대비해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우보천리가 한국콜마의 경영철학으로 알고 있다. 이순신 정신과도 맞닿아 있나."그렇다. 차근차근 꾸준히 하면 결국 도착은 누구보다 먼저가 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삶이 우보천리 정신을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잘 알려지지 않은 '이순신의 사람'을 세상에 알리는 등 책 쓰는 재미에 푹 빠진 듯하다."수 년 전 이순신 장군의 호를 딴 여해재단을 만들어 이순신학교 운영 등 이순신 리더십을 전파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연구와 탐사를 계속하면서 이순신이 성웅이 되기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던 것을 알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류성룡, 정걸, 초계 변씨 등 세 사람이다. 이순신의 멘토를 조명한 '80세 현역 정걸 장군'과 충무공 어머니인 초계 변씨를 다룬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이상 가디언) 등 두 권의 책은 나왔고, 곧 서애 류성룡 선생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생각을 모으고 있다. 앞서 경영인 시각으로 문익점 선생을 새롭게 조명한 '기업가 문익점' '인문학이 경영 안으로 들어왔다' 등 두 권의 경영에세이집도 발간했는데 교보문고 상위에 랭크되는 등 독서가에서 꽤 인기를 얻었다."(웃음)▶대구가톨릭대 대학원에 국내 첫 이순신학과가 개설되었는데."이순신을 연구하는 석박사통합과정이다. 여해재단에서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대준다. 경영학 박사 학위가 있지만 나도 신입생으로 등록했다. 석좌 교수로 강의도 하면서 '이순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하나 더 딸 예정이다. 그리고 여기서 배출한 연구자들과 함께 '이순신학회'를 꾸릴 생각이다."▶검사 출신인 윤석열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순신'의 어떤 점을 본받으면 좋을까."이순신 장군의 모든 의사 결정과 행동의 밑바탕에는 '백성 중심'이 있었다. 윤 당선인도 국민과 국가가 중심에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순신 장군은 인내와 1년 정도의 준비로 여타 '수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난관과 반대를 인내로 이겨냈다. 윤 당선인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인내하며 국정을 펼칠 필요가 있을 것 같다."▶'코로나 이후'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활성화를 위해 조언하면."경제는 흐름이다. 물꼬를 터주는 일만 하면 된다. (윤 당선인은)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탁월하니까 잘될 것으로 본다. 다만 단기성과를 의식하면 안 된다."▶기업 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경제인이 많다."기업활동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일터를 제공하여 인재들이 모여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이 신나게 일하게 하기만 하면 된다. 돈은 사후 성과를 측정하는 수단일 따름이다.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더 효율적인 유통 단계를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익이 불어난다. 나도 이걸 깨닫는 데 제법 오랜 시일이 걸렸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기업인들을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독서광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시간이 되나."매월 한 차례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는 공부모임을 20여 년 운영하고 있다. 공부는 경영을 하기 위한 것이다. 기초 체력을 위해 책으로 경험하고 모방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내게 책은 스트레스 해소에 최상의 방법이다."▶역사공부에 천착하는 이유는."유사한 경험과 모델을 역사를 통해서 찾을 수 있다. 역사 속에서는 실패와 성공의 사례가 무궁무진하다."▶한국콜마의 사내 독서문화도 특별하다고 들었다."신입 사원부터 CEO까지 1년에 최소 책 6권을 읽고 독후감을 낸다. 사업장 11곳에 사내 도서관인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책을 빌려준다. 전자책과 오디오북도 이용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 생각이 정리된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는 능력도 키워진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우리 회사 직원 모두가 소중한 인재다."▶어떻게 해서 창업하게 되었나."대입 시험을 불과 40일 남기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사학과에 진학해 신문기자가 되려는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서울대 상대에 시험을 봤다가 낙방하자 재수하지 않고 당시 2차였던 영남대에 진학했다. 졸업하고 농협을 거쳐 대웅제약 부사장까지 했다. 사장 제안을 뿌리치고 나와 창업했다. 사회에 진출하면서 기자가 되려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대신 내 회사를 일구겠다는 계획을 실천한 것이다. 그사이 국회의원 출마 제안 등 정치입문을 요구받기도 했는데 다 물리쳤다. 선택하고 집중해 회사를 이 정도로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부모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자식들에게 권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나는 지금은 '자신이 지금 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웃음)▶인생을 설계하는 젊은이를 위한 덕담을 더해주면."꿈을 가지고 꿈에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독서로 간접 경험을 많이 하길 바란다."▶대구경북의 1인당 GRDP가 30년 가까이 전국 최하위다. 지역 발전을 위한 조언은."대구경북이 더 잘할 수 있는 업종을 골라서 집중 지원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쉽게 모방되지 않는 분야, 예컨대 기술과 생명이 중심이 된 업종이 좋겠다."<논설위원 yrlee@yeongnam.com>◆윤동한= △1947년 경남 창녕 출생 △1970년 계성중·고,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1990년 대웅제약 부사장 △1990년 한국콜마 창업 △2014년 보건의 날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2014년 다산경영상 수상 △ 2016년 5월 영남대 개교 69주년 기념 '자랑스러운 영대인' △2017년 사단법인 서울여해재단 설립 △2018 한국의 경영자상(한국능률협회) △2019년 한국의 100대 CEO(매경이코노미) △한국콜마 회장(현), 서울여해재단 이사장(현) 영남대 총동창회장(현)자수성가한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은 인생을 설계하는 젊은이에게 "어떤 사정 때문에 꿈꾸던 길을 가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이 지금 하는 것을 사랑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히 나아가다 보면 누구보다 먼저 큰 성취감을 느낄 날을 맞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2022.03.30
[조진범의 피플] 바둑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 "인공지능과 전재산 건 대결? 3점 놓고 두면 무조건 이길 자신 있다"
세계랭킹 1위 프로바둑 기사 신진서 9단이 인공지능과의 '내기 바둑'을 둔다면 3점을 놓겠다고 했다.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으로 불리는 신 9단은 "전 재산을 걸고 둔다면 인공지능에 3점을 놓겠다. 100% 이긴다는 것은 아니고 이길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보다 약한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너무 강하다"고 밝혔다. 춘란배와 LG배에서 우승하며 세계대회 2관왕에 오른 신 9단은 올해 한·중·일 바둑삼국지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서 4연승으로 한국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7점 놓으면 '즐겁게' 두실 수 있을 겁니다. 저한테 쉽게 지지는 않으실 겁니다." 타이젬 바둑 4단에 랭크돼 있는 아마추어 바둑애호가로서 굉장히 궁금했다. 도대체 몇 점을 '깔면' 세계랭킹 1위의 프로바둑 기사와 승부가 될 것인지. 신진서(22) 9단은 엷게 웃으며 7점을 제시했다. '정석'으로만 둔다는 단서를 달았다. 세계 최고의 '수읽기'를 자랑하는 신 9단이 날카로운 수로 마구 흔들어 댄다면 아무리 7점이라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7점은 신 9단의 배려가 담긴 접바둑 치수이다. 신 9단의 별명은 '신공지능(신진서+인공지능)'이다. 바둑이 인공지능에 정복당한 지 꽤 오래됐다. 지난 2016년 당시 세계 최강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1대 4로 패했다. 요즘 프로바둑 기사는 인공지능을 참고서로 삼아 공부한다. 신 9단은 인간으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수를 두면서 신공지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최근 신 9단은 천하무적이다. 지난해 춘란배와 LG배를 연달아 우승해 세계대회 2관왕에 등극했고, 한중일 바둑삼국지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에서 4연승으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농심배 한국 2연패의 주역이다. 신 9단은 지난해 농심배에서 5연승으로 한국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박정환 9단과 함께 일찌감치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대표로도 뽑혔다. 바둑계에서 가장 '핫'한 신 9단을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나."인공지능이랑 가장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라 당연히 좋다. 인공지능이랑 가장 비슷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좀 있다." ▶ 중국 커제 9단의 '화장실 발언'을 듣고 어땠나. (중국의 1인자 커제 9단은 올해 농심배에서 신 9단에게 완패한 뒤 중국판 유튜브 빌리빌리(bilibili)를 통해 '지인의 전언'임을 전제로 "신진서는 나의 77번째 수를 본 뒤 착점하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 상대가 두기 전 다녀와야 하는 규칙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신 9단의 치팅(cheating)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처음에는 커제 9단이 중국 팬들을 위한 방송을 했겠거니 생각을 했다. 지게 되면 중국 팬들한테 쓴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데, 변명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을 한 것 같은데, 질이 좀 안 좋았다. 일류기사라면 말의 무게감이 다르다. 예전에는 라이벌 기사들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신 9단은 농심배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명 기사일수록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중국 팬들이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며 커제 9단을 향해 '점잖게' 충고하기도 했다. 신 9단의 의연한 태도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신 9단은 한동안 바둑 매너가 좋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어렸을 때 승부욕이 강해 상대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안 좋은 습관들이 있었습니다. 바둑을 둘 때 조절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바둑을 안 둘 때라도 매너를 항상 좋게 하자고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커제 9단이 세계랭킹 1위였던 시절 신 9단을 무시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는데. (커제 9단은 신 9단보다 3살 많다.)"그때 커제 9단이 동급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화는 나지 않았는데, 이겨서 갚아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게 세계대회 결승에서 커제 9단에게 지고도 바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박정환 9단이라든지, 이창호 사범님처럼 겸손하게 인터뷰를 했으면 존중했을 것이다." 신 9단은 2019년 제4회 백령배, 2020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서 커제 9단에게 패했다. 신 9단은 "커제 9단이 백령배 결승에서 왜 돌을 던지지 않느냐는 식으로 바닥에 드러눕는 행동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최근의 승부 흐름을 보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올해 한국 기사들에게 몇 번 졌다. 중국 선수들에게는 한 번도 안 졌다. 중국 기사와 대국할 때 모든 걸 다 쏟아붓기 때문에 세계대회에서 성적이 잘 나는 것 같다. (승부에 대한) 간절함도 제일 크지 않나 생각한다." ▶세계랭킹 1위인데, 간절함은 어떤 의미인가."올해 들어 비로소 세계랭킹 1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랭킹 1위 소리를 들으면 약간 부끄러웠다. 세계대회 우승 경력이 너무 약했다. 지금은 세계대회 우승을 3차례 했고, 농심배 우승도 있기 때문에 세계랭킹 1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커제 9단은 세계대회에서 8회 우승했다. 이창호 9단은 21회, 은퇴한 이세돌 9단은 18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기풍은 어떠한가."일단 이기는 바둑을 두는 편인데, 선택권이 있을 때 항상 전투 쪽으로 가는 것 같다." ▶프로기사들은 유리하다 싶으면 모험을 하지 않는데 신 9단은 상대를 부러뜨린다는 인상을 준다."수가 보이면 두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안전하게 뒀을 때 승률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집 바둑으로 간다고 해서 100% 이기는 게 아니다. 선택권이 있으면 계가 바둑으로 가지 않고 끝내는 길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대회를 3개 꼽는다면."2020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와 2020년 LG배, 2022년 농심배다. 삼성화재배에선 마우스 미스의 영향으로 커제 9단에게 우승컵을 내줬고, LG배는 세계대회 첫 우승이었다. 올해 농심배에선 중국 미위팅 선수와 재대국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20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1국에서 신진서는 마우스 오작동으로 패하는 아픔을 맛봤다. 2020년 LG배에선 4강에서 커제 9단을 이기고, 결승에서 박정환 9단을 제압했다. 신 9단은 당시 박정환 9단과의 대결에 대해 "운이 좋았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신 9단은 올해 LG배에서 중국의 양딩신 9단을 꺾고 2년만에 우승컵을 되찾았다. ▶양딩신 9단과의 LG배 결승 1국에서 초반 많이 불리해 이기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있었다."LG배 직전에 삼성화재배에서 박정환 9단에게 패해 더 이상 준우승은 안 된다는 각오로 대국에 임했다. 양딩신 9단이 막판에 착각을 해서 운 좋게 이겼고, 결국 우승까지 하게 됐다. 세계대회 결승이라 양딩신 9단이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실 결승에서는 별 게 다 걱정이 된다." ▶농심배에선 중국의 미위팅 선수와 재대국 끝에 승리했다. 첫판 시간승이 무효로 처리됐는데. "팩트만 이야기하면 서로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 재대국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려고 하는 순간 일본 기원에서 이미 재대국 판정을 내렸다. 당시 판세가 50대 50의 박빙이었는데, 사실 끝까지 두면 이겼을 것이다. 재대국이 결정이 나면서 무조건 이겨야겠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고, 승리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농심배에 출전한 나머지 동료 선수들이 우승이 결정되고 무슨 말을 했나."고생했다고 말하더라. 고맙다고 한 선수도 있었다. 사실 농심배에서 좀 부진했는데, 지난해 농심배에서 5연승으로 올해 4연승으로 우승을 결정지어 마음의 부담이 좀 덜어진 것 같다." ▶하루에 바둑 공부는 어느 정도 하나."시간으로 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예전에는 10시간씩 했는데, 지금은 6시간 정도 한다. 인공지능과 두면서 공부를 한다. 카타고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포석, 중반, 끝내기 가운데 가장 어렵다고 여겨지는 분야는."끝내기가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초읽기에 들어가면 아직도 정신을 잘 못 차린다. 모든 기사들이 그런 것 같다. 아무리 끝내기가 강한 기사라도 초읽기가 시작되면 힘들어 한다. 끝내기에서 실수하면 만회할 수 없어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끝내기가 제일 무섭다." ▶바둑을 둘 때 몇 수 앞까지 보나."개인적으로 다섯 수라고 말하고 싶다. 필연적인 곳에서는 30~40 수도 읽을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변수가 있으면 다섯 수 이상을 내다보기 어렵다."신 9단에게 '다섯 수'는 가장 효과적인 착점을 의미한다. ▶전 재산을 걸고 인공지능과 대결하다면 어떻게 두겠나."3점을 놓겠다. 2점에는 절대 못 건다. 3점을 놓고 두면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다. 100% 이긴다는 것은 아니고 이길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보다 약한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너무 강하다. 인공지능은 실수가 없을 뿐아니라 판단이 100% 정확해 인간과 차이가 너무 난다. ▶앞으로 어떤 기사가 되고 싶나."한국의 1인자를 하셨던 분들을 보고 많이 배운다. 조훈현 사범, 이창호 사범, 이세돌 사범, 박정환 사범이 어떤 생각을 갖고 바둑을 뒀는지, 또 바둑 끝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배우고 있다. 배움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할려고 한다." 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신진서 9단이 한국기원 3층 회의실에서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중국의 커제 9단이 농심배에서 신진서 9단과 대국하고 있다.
2022.03.22
[이영란의 스위치] '사학 바로 알리기 앞장' 홍택정 경산 문명중·고 이사장 "私學의 대한민국 발전 기여 공로 인정 않고 자율성마저 뺏으려 해"
박근혜 정부가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로 불거진 대한민국 역사전쟁의 한복판에 섰던 경북 경산 문명중·고의 홍택정 이사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 당시 현장을 고스란히 기록한 '문명고, 역사지키기 77일 백서'와 새마을운동의 역사성을 되돌아보는 '대통령과 쇠똥소령'이라는 책을 연이어 펴내면서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사학법 개정 반대를 주도하면서 '대한민국의 사학' 바로 알리기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열린 '국가 발전을 위한 사학의 자율성 강화 국회 대토론회'에서 발표자로 참가한 홍 이사장을 인터뷰했다.▶국정 역사교과서 문제로 전국적 인사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사학문제를 들고 나왔다."올해 3월부터 사립학교 교원 신규채용 1차 시험 시도교육청 강제 위탁 및 학교운영위원회 심의기구 격상 등이 시행된다. 이는 정부가 사학의 자율성과 인사권을 빼앗는 것이다. 문명중·고를 포함해 경북의 사학계는 2017년부터 5년간 이미 참여법인 공동관리로 채용시험제도를 마련해 교사를 채용하는 등 인사를 투명하게 해 왔다. 왜 정부가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공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나와 모든 것을 국가가 주도하려는 것은 사회주의식이다. 이래선 국가경쟁력만 떨어뜨린다."▶문재인 정부에서 국가 주도의 교육정책과 표준화된 교육 과정 틀이 강화되었다는 건가."그렇다. 사학은 고유의 건학이념이 존중될 때 의욕이 넘치는 적극적 투자와 변화가 이루어진다. 지금은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사학의 공로를 인정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찾기 힘들다. 세계적인 야구선수 류현진·박찬호·추신수, 그리고 골프선수 박세리, 축구선수 손흥민,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등은 스스로 자신의 장점과 재능을 일찍 파악하고 키워나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분출돼야 하는 교육에 있어서 획일적이고 경직된 국가 주도는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고 급기야 낙오하게 된다. 맞춤식 개인훈련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국가 주도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손쉬운 국가 주도는 다양성을 말살하고 참여의식을 저하한다. 마침내 문재인 정부가 사립학교를 사립학교가 아닌 정의가 없는 기형의 학교로 만들어 버렸다."▶문명교육재단은 어떤 곳인가."1908년 증조부 홍석표, 홍규표, 김우곤 등 8인이 재산을 출연해 문명보통학교로 개교했다. 1945년 광복 전에 법인에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공립화돼 잊혔다. 선친 홍영기께서 칠곡초등과 이서고등공민학교(현 이서중·고교) 설립 준비위원으로 계실 때 6·25가 발발했다. 이서고등공민학교에 후퇴한 국군들이 주둔하게 되자 33명의 학생들이 학도병을 지원했다. 담임교사로서 보호자를 자임, 공병 병과로 동반 입대해 전사자가 3명에 불과했다. 그 후 10여년 군생활을 마치고 예편해 귀향, 농촌계몽 운동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과거 조부님이 설립한 학교를 찾아 1966년 학교법인 문명교육재단으로 조직 변경해 문명중·고를 설립했다. 이후 1992년 운문댐 건설로 경산시 백천동으로 이전하였다. 본교야말로 순수 민간이 설립한 민족학교라 자부한다."▶언제부터 학교에 투신했나."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좀 자유주의자다. 아무 데도 얽매이기 싫고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생각이 커서 사업을 하다가 조금 성공을 해서 살 정도가 된 40대 초반인 1992년쯤 은퇴했다. 그런 제게 선친이 감사하게도 학교 재단을 맡기셨다. 이사장은 월급 한 푼 못 받는 무급이다. 예를 들면 1만원짜리 이상 밥을 먹지 않고 검소하게 생활한다. 학교에 친족 채용이 전혀 없다. 무고한 진정 등으로 감사를 여러 번 받았지만 단 하나의 티끌도 나온 것이 없다. 선친은 한번 물면 안 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집념과 추진력이 대단한 분이셨다. 그런 DNA를 좀 물려받았는지 부당한 압력에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정당한 일일 때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을 한 것은 민족 사학이라는 자부심이 작용했나.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 대상 1호'로 찍어 박근혜 정부가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를 백지화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연구학교'로 지정되고 철회된 것도 한때의 소동으로 끝났다. 그런데 지난해 개편된 검정 역사 교과서 8종을 보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한 교과서는 우리 현대사 기술에서 '독재'라는 표현을 27회, 북한에 대해서는 한 번만 언급했다. 북한이 내놓은 주장 그대로 '유일(唯一) 체제'라고만 쓰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폭격 등 북한의 무력 도발은 빠져있고, 북한 정권을 평화주의자로 비치게 해놓았다. 불과 3년밖에 안 지난 촛불 집회를 '21세기형 민주혁명'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마주 서서 웃고 있는 전면 사진도 나온다. 대신 보수 쪽 전직 대통령들은 수의 입은 모습도 실려있다. 국정 교과서가 나쁘다고 폐기했으면 더 좋은 교과서가 나와야 하지 않나. 이런 교과서를 만들려고 그 난리를 쳤는지. 겨우 고교교사 2인과 교수 1인이 집필자인 검정에 비해 국정은 27명의 전공 석학들이 역사·문화·경제 등 분야에 걸쳐 완벽한 교과서를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국정교과서를 읽어 보았는지. 언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맞짱 토론을 하고 싶다."▶당초 '국정화' 추진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국정역사 교과서의 등장은 좌편향 왜곡된 8종의 검정교과서의 문제점 때문이다. 본교는 검정과 국정을 비교 연구하는 연구학교를 신청했다. 그럼에도 국정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호도해 민노총과 전교조, 농민회와 장애인 단체까지 교장실에 난입하고 입학식까지 무산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합법적인 과정을 거친 학교의 선택에 대해 단 한 번의 토론도 없었고,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이란 절차를 외면하고 불법폭력으로 포기시키려 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건학이념을 구현하며 학교의 정당한 학사진행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경영자로서 당연한 선택을 했다."▶'문명고, 역사지키기 77일 백서'를 발간했는데."학교 경영의 책임자인 나는 분노를 참으면서 '광란의 77일'을 지켜봤다. 당시에 입만 벌리면 '법치'니 '민주적 절차'라고 떠들던 전교조·민노총 등의 세력이 학교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그때 있었던 사실을 기록으로는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최근 발간한 '대통령과 쇠똥소령'이라는 책도 주목을 끄는데."청도군 운문면 방음동을 중심으로 농촌계몽운동을 처음 시작한 공로로 1968년 첫 5·16민족상을 받은 선친(홍영기 문명교육재단 설립자)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면서 새마을운동의 역사를 재조명해 봤다. 선친 쇠똥소령 홍영기는 평생을 국가와 사회를 1순위에 두고 사셨다. 선친의 활동상이 신문지상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KBS는 '인간승리' '기적은 없다' 등 수편의 다큐로 제작해 방영했다. 새마을지도자 연수원에서 성공사례도 여러 번 발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선친께 친서를 보내 격려해 주시기도 했다. 올해 97세인 모친은 선친을 내조하느라 정말 죽을 고생하셨다. 이런 과정을 더듬어 들어가다 보니 새마을운동의 역사에 오류가 발견되었다. 새마을운동 역사 연구를 하게 될 후학들이 이 책을 지침서로 삼기를 바란다."▶왜 그렇게 역사 문제에 천착하나."역사는 대한민국 정체성의 뿌리이기 때문이다."▶학교 재단 운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개인과 국가의 정체성이 확고한 애국시민 양성이 목표다. 상대를 존중하고 불의에 항거할 줄 아는 정의로운 사람, 약속을 지키고 행동에 책임지는 사람으로 양성하고 싶다. 진학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교 폭력이 없는 유기농 교육을 하는 학교가 목표다. 부수적으로는 경거망동 말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 사실 우리 학생들은 성적도 아주 괜찮은 편이다. 작년에도 서울대 둘이나 가고 올해도 하나 가고 카이스트·포스텍도 간다. 그래도 나는 학교에 오면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특별활동을 많이 강조하는 편이다. 동물원을 만들어서 닭도 키우고 토끼·개도 기르게 한다. 넓은 도서관에서 다양하고 많은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고, 수학여행도 직접 기획한다." (홍 이사장은 학생들의 원고를 묶어 발간한 교지 '문원'을 필자에게 건네며 자랑스러운 듯 흐뭇한 웃음을 던진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홍택정 이사장은?= △1946년 청도 출생 △마산고·영남대 졸업 △문명 중·고등학교 이사장(2008년부터 현재까지) △사립 경북법인협의회 회장(현) △국사문제연구소 이사(현)홍택정 문명중·고 이사장은 "정부가 사학을 왜 이렇게 천대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한국 교육의 조강지처가 사학이다. 광복이 되고 나서 나라에 큰 기여를 했는데 그 조강지처를 버리려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2.03.09
[조진범의 피플] 홍장표 KDI 원장 "소득주도 성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세계 경제가 어수선하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 경제에도 불똥이 튀지 않을 리 없다. 도대체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홍장표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을 만나 한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7일 세종시에 위치한 KDI를 찾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구에서 KDI까지 가는 데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KTX 오송역에 내려, BRT 노선의 B1 버스를 타면 된다. KDI 1층 로비에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KDI 개관을 기념해 쓴 '번영을 향한 경제 설계'이다. 장혁순 KDI 대외협력실장은 "감정을 받은 결과, KDI 건물에 걸려 있는 미술작품 가운데 가장 비싸다"고 했다. 홍 원장은 지난해 5월 제16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말이 많았다. 홍 원장의 이력 때문이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홍 원장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의 설계자이다. 스스로도 논란을 잘 알고 있다. 홍 원장은 "어디 가더라도 소문이 금방 났다. 청와대 갈 때도 그랬고, 소득주도 성장 특위에 있을 때도 논란이 됐다. 이상하게 좋던 싫던 화제의 인물 비슷하게 됐다"라며 웃었다. 홍 원장은 대구 출신이다. 대구 달성고를 졸업했다. 홍 원장의 모친이 수성구 시지에 살고 있다. 친형은 대구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전세계 유례가 없는 듣도 보도 못한 정책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실험실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소득주도 성장의 배경은. "소득주도 성장 이론이나 정책 체계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절대 아니다. 뿌리는 거시경제학을 만들었던 케인스까지 간다. 중요한 분수령도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IMF(국제통화기금), 월드뱅크에서 나왔던 얘기인데, 성장과 분배를 대립적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 수출과 내수 가운데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다는 흐름이 있었다. 그런 흐름 속에 문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정책을 새롭게 추진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유례없는 정책이라는 비판은 정치적 공방으로 이해한다." 홍 원장이 거론한 케인스(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영국의 경제학자로 거시경제학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스로 소득주도 성장을 평가한다면."절반의 성공, 절반의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많은 분이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을 최저임금이라고 이해하는데,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다만 소득주도 성장은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경제 패러다임에서 투자, 수출 못지않게 소비와 내수가 중요하다. 성숙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출과 더불어 튼튼한 내수 시장이 필요하다. 세계화의 속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터지고 역세계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수출 하나에만 의존했을 경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충격에 완전히 노출 된다. 내부의 성장 기반은 당연히 내수이고 서비스 시장이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제조업 기반에 서비스를 접목해야 하는 과제를 감안하면 (소득주도 성장은)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이다." ▶절반의 아쉬움은 뭔가."최저임금 정책이 자영업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게 아쉽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일부 부작용이 있었다. 특히 고용을 하는 자영업자들이 부담을 갖게 되면서 속도 조절이 불가피했다. 최저임금은 올리되 대대적인 자영업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어려움들을 다 커버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성장과 분배 중 성장 파트와 관련해 분수령에 와 있다. 특히 성장 잠재력의 지속적인 저하가 예상된다. 빠른 고령화와 저출생이 성장 잠재력 저하를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인데,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출생 고령화에 대응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 문화 모두 바뀌어야 한다. KDI가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을 연구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나."일본의 경제 구조와 다르기 때문에 일본의 정책을 100% 답습할 수 없다. 단시간 내에 출생률 저하를 막기는 어렵다.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서 잠재 성장률을 높이려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생산 현장에 관여하지 않은 분들을 유인한 것이다. 여성과 은퇴한 고령층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다만, 준비가 덜 돼 있기 때문에 교육 훈련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초중고, 대학을 나오면 끝이 돼서는 90세까지 버틸 수 없다. 평생 교육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교육의 투자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홍 원장은 최근 내국세의 20.79%가 연동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의 구조 개편을 주장, 교육계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와 중국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코로나 펜데믹부터 이야기해야 되겠다. 코로나 팬데믹은 대통령께서 표현하셨듯이 전례 없는 위기였다. 위기 속에 발견된 게 국민적 단결력이었다. 정부 정책에 불만도 있겠지만, 큰 틀에선 굉장히 협조적이었다.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경제 회복 속도가 빠르다. 회복이 빠르면 기회가 온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도 마찬가지다. G2의 갈등 국면에는 양면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과도 잘 협력해야 하고,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한다. 원자재나 소재 부품에서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요소수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중국에서 예상치 못한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우리한테 충격이 온다. 리스크 요인인데, 반면에 기회 요인도 왔다. 외교관들 얘기를 들어보면 백악관에서 한국의 우선 순위가 급부상했다. 반도체, 2차전지 등 미국이 필요한 것을 한국이 갖고 있다. 한국의 지위가 높아졌다. 중국과의 관계는 협력 관계이면서 동시에 경쟁 관계이다. 지금 미국은 중국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핵심 기술을 못 쓰게 한다. 우리한테는 나쁘지 않은 좋은 기회인 셈이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은 것 같다."인플레이션이 새해 경제의 화두가 됐다. 초기에는 일시적 공급망 혼란으로 봤는데, 점점 나아가 이제는 에너지 문제로 넘어갔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의 불확실성 때문에 유가가 단기에 안정화되기 힘들다. 모든 나라가 에너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중국은 화석 연료를 감축하고 있고, 유럽은 풍력 발전량 감소와 천연가스 공급 부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의 가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는 느리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이런 것들이 잠재돼 있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단 비축 물량을 늘려야 한다. 외교도 엄청나게 중요해졌다. 중국은 인프라를 깔아주고, 일본은 원조사업을 통해 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취임하고 부동산 연구팀을 만들었다. 과제는 뭔가. 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성적을 평가한다면."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요인은 복합적이다. 공급 부족 문제도 없지 않았지만, 부동산 수요관리 정책과 관련해 아쉬움이 있다. 코로나19로 돈이 풀리고, 저금리가 되는 상황이 집값을 부추길 수 있는데, 유동성 관리 대책이 미흡했다. 대출 규제 정책도 좀 더 빨리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집값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인데, 국민과 공유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부동산 연구팀을 출범하게 됐다. 국토연구원, 조세연구원 등 외부와의 네트워크도 늘릴 생각이다." ▶KDI 수장으로서 각오를 말해달라."지난해 KDI는 50주년이고, 올해는 새 50년의 원년이다. 한국 경제, 사회가 어디로 가야 될 것인지, 큰 그림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 아젠더 제시와 헤쳐나가야 할 문제 등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제시할 생각이다." 홍 원장은 지난해 11월 KDI의 기존 연구조직을 '3부 3실 1센터 4팀'으로 개편했다. 부동산연구팀, 플랫폼경제연구팀, 인구구조대응연구팀, 미래전략연구팀이 신설됐다. 글·사진=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홍장표 KDI 원장이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 원장은 사진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었고, 인터뷰를 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했다.KDI 본관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액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번영을 향한 경제설계'라는 붓글씨 작품이 담겨 있다.
2022.03.01
은해사 조실 법타스님 "민주화 운동 한 분들에게는 고마운 마음이지만 불교와 불교 문화 부정하면 안돼"
영남일보는 지난 14일 동안거(冬安居) 해제를 하루 앞둔 영천 은해사 조실 법타스님을 팔공산자락 운부암에서 만났다. 지난해 은해사 회주에서 산중을 대표하는 어른인 조실로 추대된 법타스님은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배려하고 살자. 코로나19 펜데믹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임인년 새해를 맞아 불자와 지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동안거 기간 수행에 정진하며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불자와 지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은 시절 보다 느슨해졌지만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스님으로서 수행에 철저하려 했다. 나이 먹었다고 안일하게 살면 안된다. 한국인 고질병 중 하나가 조급한 것인데 올해는 모두 느긋해졌으면 한다. 임인년 호랑이처럼 한 발을 내딛더라도 무겁게 뗐으면 좋겠다. 시류에 휘말려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진중한 생활을 이어가길 바란다. 스님 처럼 선방에 앉아 수행하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 인격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뽑으면 될 일인데, 흥분해 편을 가르는 것은 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스님 말씀대로 올해는 큰 선거가 있다. 어떤 정치인이 리더가 돼야 하나? "만해 스님의 시 '나룻배와 행인'을 좋아한다. 이 시를 나름대로 풀이하면 정치인이 '나룻배', 국민은 '행인'이다. 나룻배는 행인을 안전하게 데려가야 한다. 불교 관점에서 보면 피안의 세계로 중생들을 안내하는 배인 '반야용선'인 셈이다. 충직한 나룻배가 될 정치인이 리더가 됐으면 한다. 또한 출세나 당파의 이익이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를 아우르며 우리의 숙제인 평화통일에 기여 할 인물이 필요하다. 지도자라면 다리를 놓아 만인을 편안하게 하는 '월천공덕'을 베풀며 저울처럼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 또한 해 처럼 온 세상을 두루 비추고 하늘 처럼 일체를 덮을 수 있는 덕망을 갖춰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치에 실망하고 있다. 유력 대권 주자들을 보고 '믿기 어렵다' '너무 무지하다'는 식의 말도 돈다. 유교적 개념이지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 했다. 도덕군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리더가 돼야 한다."-현재 남북관계 매우 경직돼 있다. 스님은 그동안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1997년 북한 사리원에 '금강국수 공장'을 설립하는 등 남북교류에 앞장섰다. 남북관계 개선책이 있다면."남북대치 상황을 타개하려면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대 강국과 교류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논의를 진지하게 펼쳐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머리 위에 핵폭탄을 이고 산다. 만약 북한 정권의 권력이 변화가 있게 된다면 어찌 될 지 모르기에 남북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현 정권 역시 집권초기에는 잘 하는 듯 했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는 예전만 못하다. 우리 국민의 돈으로 지은 개성 남북협력사무소가 무너져 내려도 한 마디도 못했다. 국민 자존심이 상처받았다. 남북관계는 신중해야 하되 힘도 보여줘야 한다."-최근 몇몇 정치인의 불교 비하 발언이 불자들을 불편하게 했다."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여 년 만에 '전국승려대회'가 열렸으니… .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중 2천년 역사의 배경은 불교다. 대한민국이 문명국이라는 저력의 바탕에 불교와 불교 문화유산이 있다. 몇몇 정치인들에게 불교계는 표도 안되고 돈도 안되는 곳으로 인식된 듯 하다. 불교계를 향해 막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은 이제 정리되어야 한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에게는 고마운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와 불교 문화를 부정하면 안된다." -산중 어른인 은해사 조실로서 향후 계획은."은해사에서 가장 높은 어른으로서 은해사를 절다운 절로 만들고, 스님다운 은해사 스님들이 되는데 앞장서겠다. 개인적으로 젊어서 온갖 소임을 다 맡아봤다. 축적된 경험을 후배들에게 잘 전해주려 한다. 또 하나는 죽는 날까지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은해사를 비롯한 말사들이 지역사회와 지역민들의 정신적 귀의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코로나19로 지역민 삶 여전히 어렵다.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면."'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태어났으면 죽고, 만들어졌으면 부서지고, 현상이 생겼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빨리 해결되지 않아 답답한 것도 우리의 조급증 때문이다. 때론 어려운 상황에서 노력하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하고 박수도 쳐줬으면 한다. 어려울 때일 수록 이기주의자가 되기 쉽다. 절 안에 있으면서도 매일 마스크 쓰기에 열심이다. 조금만 더 배려하고 살아가자." 충북 청주 출생인 법타스님은 1965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추담(秋潭) 대종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동대학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북한 조선불교도연맹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은해사 주지, 동국대 정각원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법타스님은 1989년 평양축전 참여 후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는 등 누구보다 남북교류에 앞장서 왔다. 심지어 스님의 휴대폰 컬러링 조차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은해사 조실 법타스님이 운부암 뒤편 언덕의 고목 앞에서 차기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님 뒤편의 고목은 운부암 창건 당시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라는 전설을 품고 있다.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은해사 조실 법타스님이 운부암 선방에 정좌해 있다. 스님은 불자와 지역민들에게 시류에 휘말리지 말고 진중한 생활을 이어가길 당부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은해사 조실 법타스님이 자신의 통일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법타스님은 1989년 이후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2022.02.16
[이영란의 스위치] '국내 최고 癌 권위자' 박재갑 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 "팬데믹 시대…세포주은행이 대한민국 미래 성장동력 근간 될 것"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을 지낸 박재갑 서울대 명예교수의 명함은 '엣지'있다. 목을 꺾은 담배를 들고 있는 그의 캐리커처와 함께 '담배 제조 및 매매 금지, 운동화 출근 생활 속 걷기 운동, 건강검진'이라는 글이 이름 위에 적혀 있다. 모든 국민의 '안녕'을 위해 헌신한 그의 평생을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여러 공직을 거쳐 2013년 서울대 의대 교수 32년을 정년퇴직한 후 현재는 생명과학 분야 연구개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세포주를 국내외에 원활히 공급하는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유화, 민화, 서각, 판화, 전각, 조각, 도예, 서예 등을 두루 섭렵한 '취미 부자'로 살고 있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예술'은 그 수준이 아마추어의 경지를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이사장을 최근 서울대병원 내에 있는 한국세포주은행에서 만나 장기화하고 있는 코로나 시대, 현대인의 열망인 '웰빙(Well-being)'에 대해 물었다.▶명함이 이색적이다."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모두 운동화 차림이다. 발이 편해야 몸이 제 역할을 다한다. 오래전부터 생활 속에서 신체 활동량을 늘리자는 의미로 '운출생운(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걷기운동)'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건강 특히 각종 암 예방을 위해서는 금연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국가적으로 담배의 제조 및 매매 금지가 시행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금연운동을 맹렬히 전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명함에 담았다."▶활발한 신체 활동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제 전공인 대장암을 예로 들어보겠다. 예전엔 대장암을 예방하려면 고기를 덜 먹고 섬유질 성분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그랬다. 하지만 요새는 콘셉트가 바뀌었다. 교과서에 대장암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체 활동 증진으로 돼 있다. 운동이 주요 질병을 얼마나 줄이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했더니 암 사망이 10% 줄고 심혈관·뇌혈관 질환이 20~3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건 어마어마한 숫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건강기능식품도 암 사망률을 1%라도 낮췄다고 공식적으로 증명된 게 없다. 또 어떤 비타민도 암 사망률을 낮췄다고 증명된 게 없다. 운동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전 세계 항암제 검사용 세포주 중 7.4% 공급분양 가능한 세포 종류는 글로벌 상위 5위 내제약·바이오벤처 등 생명과학 산업 성장 지원운동화 신고 하루 30분 이상 빨리 걷기만으로암 사망률 10%, 심·뇌혈관 질환 20~30% 감소너무 짜고 달지 않게…건강하려면 식사도 중용"▶운동을 어떻게 어느 정도 하면 될까."전문가 심포지엄에서 내린 결론인데, 운동화 신고 하루에 30분 이상만 빨리 걸으면 된다. 빨리 걷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그 사람이 약간 숨이 찰 정도, 그게 그 사람한테 빨리 걷는 걸음이다. 모든 운동의 장점이 거기 다 녹아 있다."▶'운출생운' 캠페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2010년 국립중앙의료원장 때 당시 우리 국민 5대 질병 사망률을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됐다. 모든 국민이 운동화를 신고 햇빛이 좋을 때 나가 30분 이상 빠른 걸음으로 걷는 생활을 일상화하면 질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여기에 건강하게 살려면 '너무'라는 글자를 피하는 게 좋다. 너무 짜지 않게, 너무 달지 않게, 너무 기름지지 않게, 너무 고기만 먹지 않게, 너무 채소만 먹지 않게. 식사는 중용이다. 극을 피한다면 건강에 좋다."▶금연운동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담배의 제조 및 매매 금지를 요구하고 있는데."담배를 파는 거 자체가 사기다. 담배 속에는 발암물질이 70종이나 들어 있다. 발암물질이라는 것은 몸에 들어가서 내 몸의 유전자를 바꾸는 특징이 있다. 우리 몸의 유전자를 바꾸는 발암물질이 한 종만 검출돼도 난리인데 그렇게 많이 들어있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담배를 제조하고 팔게 하느냐 말이다. 국가적으로 담배의 제조 및 매매 금지가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 및 2대 원장을 역임하면서 TV나 각종 언론 매체에서 빈번하게 나오던 흡연 장면이 나오지 않도록 캠페인을 벌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것이 건강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리고 국가에서 해주는 건강검진만 꼬박꼬박 받으면 장수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이제 인류의 최대 적인 암을 정복한 나라라고 할 수 있나."현재 암 관리가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다. 그러나 1995년 내가 서울대 암연구소장을 맡았을 당시 암 예방이나 치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다. 그때 이미 미국은 암법, 일본은 암 극복 10개년 계획을 통해서 국가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바로 이거다 했다. '암 정복 10개년 계획'을 입안하고 국가암검진사업 확대와 암관리법 제정, 지역 암센터 설치 등 국내 암 치료 및 관리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는데 앞장섰다. 그 후로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 국립중앙의료원 초대 원장 겸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됐다."▶'세포주 은행'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982년 지도교수가 본인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 능력이 떨어졌다는 실험을 해보라 지시한 게 발단이 됐다. 그 과정에서 실험에 쓰이는 세포주가 모두 수입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평생 세포주 개발을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막상 연구에 들어가니 지도해줄 사람이 없었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우리가 은행 역할을 하는, 1991년에 한국세포주은행을 포함하는 비영리 공익법인 한국세포주연구재단을 만들었다. 이게 유엔 산하 WIPO(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세계지적재산권기구)로부터 '미생물 특허에 관한 부다페스트 조약상의 특허 미생물의 국제 기탁기관'으로 승인받았다. 현재 한국세포주은행이 제공하는 세포주가 전 세계 항암제 검사용 암 세포주 총 1천46종 중 7.4%에 해당하는 77종에 이른다. 분양 가능한 세포 종류는 글로벌 시장 상위 5번째 안에 든다. 생명과학 한다고 하는 제약회사, 식품회사, 바이오벤처할 거 없이 전부 우리한테 세포주를 가져간다."▶코로나 팬데믹으로 '세포주 은행'의 위상이 높아졌을 듯하다."좀 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마음속에는 생명산업계의 포항제철과 한국전력을 합한 것의 주식을 100% 다 가진 알부자라는 그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물론 밖으로 표시는 안 하지만 그만큼 속으로 흐뭇하다. 향후 이 세포주 은행이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의 근간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지금은 예술가로서의 활동이 활발한데."2011년 국립중앙의료원장 사표를 내니 아내가 '바쁘던 사람이 놀면 안 된다'며 취미활동을 권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당시 딸이 다니던 홍익대 평생교육원에 입학해 그림을 배웠다. 처음엔 유화를 그렸다. 이어 비단 채색·민화를 배우던 중 펜화와 펜담채의 세밀한 선에 매료됐다. 이것저것 관심 두고 배웠지만, 종래엔 자연에 가까워지는 게 순리인지 묵향 가득한 서예가 좋다. 서각도 너무 매력적이다. 남은 삶은 서예와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일평생 어려움 없이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한 것 같다."내 뜻대로 된 것보다는 주위 환경이나 주위의 권유나 부모님이나 여러 가지 주위 상황이 저를 만들어준 것 같다. 상주박씨인데 조선시대 사화로 멸문지화를 당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충청도로 이주했고 그 이후로 정치 쪽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것이 집안의 불문율처럼 내려와 정주하게 됐다. 부모님은 늘 '이 자식아, 배곯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했다. 한 번도 돈 벌어라, 성공해라, 출세해라, 이런 용어는 쓰신 적이 없다. 의대 가고 교수 되고, 국립암센터 원장·국립중앙의료원장에 이르는 과정도 비슷하다. 뭔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 적이 없고 그저 처한 환경 속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어려움에 처한 주변에 조언한다면."꿈보다 해몽이라고 아무리 나쁜 꿈을 꿔도 해몽을 잘하면 저는 좋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저라고 브레이크가 걸리고 안 되는 일이 왜 없겠나. 그러면 늘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해몽을 잘하면 어디나 천국이다' 스스로 주입한다. '평범하지만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것은 진리다."<논설위원 yrlee@yeongnam.com>◆박재갑= 1948년 청주 출생, 경기고·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의학박사, 서울대 의대 교수(1981~2013년), 서울대 암연구소장,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 아세아대장항문학회 회장, 국립중앙의료원 초대 원장 겸 이사회 의장, 세계대장외과학회 회장 등 역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8), 한국세포주연구재단 이사장(현), 한국종교발전포럼 회장(현), 서울대 명예교수(현)오래전부터 '운출생운(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걷기운동)'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는 박재갑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식사법과 관련해서는 "중용이 좋다"며 "너무 짜지 않게, 너무 달지 않게, 너무 기름지지 않게, 너무 고기만 먹지 않게, 너무 채소만 먹지 않게 극을 피한다면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영의 피플] 오둥이 낳은 군인부부 "2년간 임신 노력 끝에 만난 아이들, 행복"
지난해 11월 코로나19로 모든 국민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와중에 다섯 쌍둥이 출산이라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다섯 쌍둥이 출산은 1987년 이후 34년 만이다. 한국에서 저출산 문제는 화급히 풀어야 할 난제다. 2020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기 수)은 0.84명이다. 세계 최저다. 수십 년간 정부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김진수(31)·서혜정(31) 대위 부부는 저출산 늪에 빠진 한국에 새로운 희망을 쏘아 올렸다. 특히 맞벌이 군인 부부가 인공수정을 통해 5명이나 되는 아기를 낳았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맞벌이 부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다섯 쌍둥이를 낳은 소감은.△김진수 대위= "많은 분의 관심 속에서 다섯 쌍둥이가 무사히 태어났다. 감사하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희망을 줬다고 하니 더 기쁘다. 출산을 축하해준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잘 키우겠다."▶다태아라는 것을 언제쯤 알았는가.△서혜정 대위= "인공수정을 했는데 임신 5주쯤 아기집이 5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병원 진료를 본 후 이 사실을 남편에게 전화로 말했더니 남편이 정말 반가워했다. 다태아 임신의 경우 조산 위험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컸지만, 내심 쌍둥이 임신을 바라고 있어서 아기집이 5개라는 사실이 기뻤다. 우리 부부에게 찾아와준 아기들을 반갑게 맞기로 마음먹었다. 결혼 후 2년6개월 만의 임신인 데다 다섯 쌍둥이라는 소식에 가족도 많은 응원을 해줬다."▶인공수정을 하면 선택적 유산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김·서 대위= "처음 다태아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병원에서 조산 위험성과 선택적 유산에 관해 설명해줬다. 처음에는 선택적 유산을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서울대병원에 다태아 출산 전문의(전종관 교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기를 다 낳기로 했다. 병원에서 선택적 유산을 하려면 8주 정도에 할 것을 권유했으나 6주쯤 작은 아기집에서 우렁찬 심장 소리를 듣고 나니 선택적 유산을 할 수 없었다."▶주위 분들의 조언도 다태아 출산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했는데.△서 대위= "전종관 교수께서 '어떤 애가 얼마나 훌륭하게 클지 알 수 없으니 애들한테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냐'라고 하신 말씀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게 했다. '세 쌍둥이 예비맘 방'이라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세 쌍둥이 출산을 앞둔 엄마들이 해준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지금 하루가 다르게 잘 커가고 있는 아기들을 보면 그때 선택적 유산을 하지 않은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여섯 쌍둥이를 임신했다가 한 아기가 자연 유산된 것으로 아는데 그때 가슴이 매우 아팠을 듯하다.△김·서 대위= "배 속에서는 둘째였고 지금은 천사가 된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더뎠다. 17주쯤 되자 무게가 절반 정도밖에 안 됐다. 24주쯤 진료를 볼 때 교수님께서 2주 뒤에 오면 사산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다. 27주쯤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동안 잘 버텨왔던 둘째가 하늘나라로 먼저 간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은 함께 있지 않지만, 엄마 배 속에서 형제들이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게 지켜준 천사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임신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서 대위= "임신 중에 입덧이 없는 편이어서 가리는 음식 없이 잘 먹었다. 몸 상태도 좋아서 20주까지는 무리 없이 출근하며 순탄하게 지냈다. 다만 21주 정밀 초음파를 볼 때 경부 길이가 짧아진 것이 확인돼 쉬로드카(자궁경부봉축술)수술을 했다. 이때가 가장 힘들었다. 다태아라서 28주간을 잘 버티는 것이 목표였다. 하루라도 더 품어서 아기들을 건강하게 출산해야 하는데 경부가 열리면 아기들이 훨씬 일찍 태어난다는 생각에 두려웠다."▶조산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때 남편이 큰 힘이 됐다고 했는데.△서 대위= "쉬로드카 수술을 한 뒤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돼 집에서 거의 누워 지냈다. 남편이 한 달 동안 매일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식사를 챙겨줬다.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었다."▶제왕절개로 여아 4명, 남아 1명을 낳았다. 현재 아이의 상태는 어떤가.△김 대위= "출산 당시 아기 1명은 몸무게 850g 정도로 작았지만, 나머지 4명은 모두 1㎏ 이상이 됐다. 많은 분의 축하와 응원 덕분에 현재 다섯 쌍둥이 모두 2㎏이 넘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며칠 전 첫째 아이는 퇴원했고 다른 아이들도 곧 퇴원할 예정이다."▶분만할 때 어려움은 없었는가.△서 대위= "수술예정일 일주일 전 갑자기 진통이 와서 응급수술로 진행했다. 분만 당시 의사와 간호사 30여 명이 동원됐다. 수술실에 의료진이 많아서 아주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분만할 때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섯 쌍둥이의 탄생을 축하해주는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수술이 이뤄졌다."▶요즘 한 아이도 키우기 쉽지 않다. 앞으로 육아계획은.△서 대위= "우선 1년 육아휴직을 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며 남편과 교대로 육아휴직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다섯 쌍둥이 육아를 위해 시어머니께서 창원에서 올라오셔서 도와주기로 하셨다. 그 외에 산후도우미와 아이돌봄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계획이다."▶출산 당시 전 사회적으로 축하 및 육아 지원 물결이 이어졌다.△김 대위= "여러 기업에서 다섯 쌍둥이 육아에 관심을 갖고 많은 도움을 줬다. KB국민은행, 포스코, 한미글로벌 등에서 양육비, 장학금, 다인승 차량과 카시트, 영유아식과 이유식 등을 지원했다."▶군에서도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아는데.△김·서 대위= "서욱 국방부 장관께서 직접 격려해주셔서 영광이었다.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고 앞으로 더 열심히 복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단에서는 다섯 쌍둥이 육아를 위해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출산 전 이사를 해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한결 덜 수 있었다. 사단장께서도 출산 전 직접 집 앞까지 오셔서 미역과 꽃바구니를 선물로 주셨다. 각계각층에서 활약 중인 ROTC 선배 등 군의 여러 선배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아기를 가지려는 부부나 난임 부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김·서 대위= "2년 동안 여러 노력 끝에 아기들을 얻게 됐다. 아기들이 주는 기쁨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우리 부부가 그랬듯이 아이를 낳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한국에서 34년 만에 다섯 쌍둥이를 낳은 김진수·서혜정 대위 부부는 "아기들이 주는 기쁨 속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출산을 축하해준 여러분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잘 키우겠다"고 말했다. 출산 전 만삭일 때의 모습. 서울대병원에서 최근 퇴원한 첫째 딸 김소현양.
2022.02.09
[김수영의 피플] 이형호 한복진흥원장 "한복 세계적 관심...삼국시대부터 우리 옷 100개 선정해 패션쇼 열 계획"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이돌그룹 덕분에 한복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들이 멋스럽고 독특한 무대의상으로 탈바꿈한 한복을 입고 세계공연무대를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며 한복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복 교복을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학교도 늘고 있어 한복 대중화에 포문을 열었다. 불편하고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한복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경북 상주시 명주테마파크 안에 한국한복진흥원이 개원했다. 국내 최대 명주 산지인 함창읍에 들어선 한복진흥원은 한복·한복 소재인 명주 등과 관련한 한복 콘텐츠 전시를 비롯해 한복 소재 및 옷 연구와 산업화 방안 모색, 한복장인 양성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이를 통해 한복 산업을 활성화하고 한복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초대 한복진흥원장을 맡은 이형호(61) 원장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한복진흥원에 오기 전 공직에 있으면서 한국전통문화와 관련된 일을 해온 것으로 안다."경북(청도)에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떠나 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돼 기쁘다. 그것도 공직생활을 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분야로 다시 오게 돼서 의미가 크다. 행정고시를 통해 공무원이 된 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 등을 지내면서 전통문화와 관련된 일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특히 문체부에서 일하는 동안 전통문화세계화전략을 추진했다. 이 사업 안에 한복에 관한 것도 있었다."▶한복진흥원의 목표는."말 그대로 한복을 진흥시키는 것이다. 이는 한복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의미한다. 진흥원은 누에를 키우고 고치를 생산하는 양잠부터 비단 직조, 한복 제작까지 한복과 관련된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한복 장인을 키우는 전수관, 다양한 한복을 선보이는 한복전시홍보관, 한복의 산업화 및 세계화를 책임지는 융·복합산업관 등이 있다. 한복 착용을 확산하고 한복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한다."▶개원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사업들을 추진했다."한복의 일상화를 위한 다양한 국비 공모사업을 추진해 성과를 냈다. 한복진흥원과 상주를 기반으로 한복을 널리 알리는 한복 문화 지역거점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한복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한복 배틀그라운드', 경북 한복 사진 공모전, 한복이 있는 마당 토크콘서트 등을 열었다. 한복 문화주간 사업에도 선정돼 한복 관련 기획전시 및 캐릭터 공모전, 한복 아트페스티벌 등을 개최했다."▶한복산업화를 위한 융·복합산업관에 대한 기대가 큰데."현재 한복과 관련한 4개 업체가 입주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입주업체는 천연염색업체 '마린도요', 한복디자인업체 '천지빛깔', 전통섬유(상주명주)업체 '장수직물', 한복 판매 및 렌털업체 '함창명주'다. 천연염색 체험 및 교육, 전국체전 주요 내빈 입장용 한복 디자인, 상주 방문객을 위한 한복 렌털 등 한복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명주 스카프 등 한복진흥원 기념품 제작, 비대면 한복 만들기 키트 및 온라인교육 영상 제작 등의 사업에서는 진흥원과 협업했다."▶최근 '우리 옷 100선' 국민 선호도 조사를 했다."내년에 우리 옷 100선이라는 한복 문화 콘텐츠를 새롭게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우리 옷 100선을 선정한 뒤 실물을 제작해 전시하고 패션쇼도 열 계획이다. 시대별·형태별로 다양한 우리 복식을 알리고 문화 콘텐츠로 만들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한복문화 콘테츠화를 강조했다. 이유가 뭔가."한복의 대중화·세계화를 위해선 한복의 문화 콘텐츠화가 가장 중요하다. 한복문화 콘텐츠화에는 시, 소설, 그림 등 예술과의 접목이 필수적이다. 이런 시도는 한복 디자인은 물론 소재 개발에도 중요하다. 세계 패션명품업체들이 쓰고 있는 치밀한 마케팅 전략도 필요하다. 계층별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옷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시급하다."▶2023년 세계모자 페스티벌도 기획 중인데."몇 년 전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업체 넷플릭스의 '킹덤'이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킹덤에서 선보인 한국 전통모자 '갓'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국은 모자의 왕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상에 따른 모자가 다양하다. 한복은 물론 전통모자의 세계화까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 모자 생산 및 시장 점유율 1위도 한국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 모자를 주제로 한 축제나 행사가 없다. 세계모자 페스티벌을 개최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하려 한다. 한국의 모자는 물론 세계 각국의 모자를 보여주는 전시, 모자를 써보는 체험행사, 모자를 만드는 경연대회, 모자 패션쇼 등을 선보인다."▶한복 메타버스 사업도 추진한다고 들었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환경에 대응하면서 디지털 전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한복 메타버스를 구축할 예정이다. 한복 메타버스는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화에 맞춘 뉴콘텐츠 개발 및 육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한복 전시 및 온라인 교육, 궁궐과 한복진흥원을 주제로 한 '가상 한복진흥원' 설립, 명절·한글날·한복의 날 전후로 온라인 한복 행사 개최 등을 진행한다."▶한복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복 인력 양성도 시급하다."한복 인력 양성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할 계획이다. 기존 한복 명장, 무형문화재와 최신 트렌드를 연구한 패션디자이너의 컬래버를 통해 한복 산업의 혁신과 성장 발판을 마련한다. 패션디자이너 아트 워크숍 개최, 한복 무형문화재 명장 네트워크 구축, 한복 디자인콘테스트 등의 사업도 진행할 것이다."▶그래도 현재 한복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인들이 한복에 관심을 가지면서 국내에서도 한복을 새롭게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왕과 양반의 옷이 유행을 만들었다. 현재는 연예인 등 유명인이 패션리더의 역할을 한다. 앞으로도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복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한복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다."▶한복에 대한 국민 인식 전환을 강조했는데."한복을 바라보는 외국인과 우리 국민의 의식 차이가 크다. 외국인은 아름답다는 반응이 많고 국민은 불편하다는 의식을 강하게 가진다. 국민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한복은 과거에는 예복이었던 경우가 많다. 한복은 예를 차릴 때 입는 옷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함으로 인한 거부감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복 확산 정책과 함께 국민의 인식 전환도 절실하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한국한복진흥원 이형호 초대 원장은 "최근 한류 열풍으로 한복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복의 세계화는 물론 국내에서의 한복 확산을 위한 정책 마련과 함께 국민의 인식 전환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22.01.12
[김수영의 피플] '남인도 기행' 펴낸 최영일 여행가 "레바논 민병대 향해 카메라 플래시 터뜨렸다가 총 맞을 뻔...그래도 여행은 늘 설레"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여행길이 꽉 막혔다.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고갈된 에너지를 재충전하던 이들은 2년 가까이 발이 묶이자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여행이 그리운 이들에게 반가운 책이 나왔다. 여행가 최영일(79·전 영남일보 편집부국장)씨가 쓴 '남인도 기행- 드라비다인과 시바(Siva)의 세상'이다. 남인도는 인도 대부분 지역과는 차별화된 색다른 문화가 있고 원주민의 삶이 진하게 녹아 있다. 전 세계를 두루 돌아다닌 여행 마니아들이 가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지역이다. 책은 오랜 역사와 위대한 문화를 가진 인도의 모습을 여행서 특유의 감미로운 필치가 아닌 르포기사 형식으로 보여준다. 영남일보에서 20여 년간 기자 활동을 했던 내공이 군더더기 없는 담박한 필치에서 느껴진다.인도 7차례 찾아 구석구석 돌아봐생생히 묘사하려 르포기사 차용도기자생활 필치 자연스레 녹아들어힘들고 아팠던 일 여행이 묻어줘자연·유적과 일체감 언제나 설레평균고도 해발 4500m '세계 지붕'티베트 아리지구 꼭 가고 싶은 곳▶20년 정도 해외여행을 다녔다. 인제야 여행서를 낸 이유는."한국 문화유적에 관심이 많아 2004년 '문화유산 속의 큰 인물들'을 펴내고는 다시 책을 내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내 나이를 실감했다. 그렇게 많은 여행을 하고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게 좀 아쉬웠다."▶인도 여행을 많이 다닌 것으로 안다."일곱 번이나 된다. 첫 여행은 2005년 북인도 트라이앵글(델리-아그라-자이푸르)과 갠지스였다. 이어 석가모니 탄생지 룸비니, 동인도, 북인도, 서인도 등을 두루 돌아다녔다. 여러 차례의 여행을 통해 나름대로 인도 구석구석을 살폈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을 시작해 초창기에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집중했다. 2010년대 들어서부터 실크로드와 히말라야산맥 언저리를 돌았다. 많은 나라를 가보면 다시 찾고 싶은 곳이 있는데 인도와 이집트, 티베트다."▶왜 남인도인가."북·동·서 인도 지방은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시크교 등과 토속신앙이 합쳐진 종교를 가졌다. 히말라야산맥 등줄기를 타고 동서로 가르면 티베트, 부탄, 시킴, 라다크 등지의 중국령과 인도령이 있는데 모두 라마 불교를 신봉했다. 남인도만이 힌두교 시바 신의 세상이다. 인도 원주민 드라비다족이 사는 지방이기도 하다."▶르포기사 형식의 글이 눈길을 끈다."책에 30여 편의 기행문을 담았다. 초창기에는 여느 여행기처럼 기술했다. 그렇다 보니 발로 밟고 눈으로 보고 겪은 느낌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어 르포기사 형식으로 바꿨다. 기자로 활동하면서 체득한 필치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오히려 더 내 글답게 느껴진다."▶기자로 활동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은 것으로 안다."1980년 언론 통폐합 조치가 내려질 당시 정치 가십난에 대구에 내려온 김대중씨를 '재야인사'라 쓰지 않고 '김대중'이라고 이름을 밝힌 것이 문제가 됐다. 그 당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재야인사로만 썼는데 영남일보에서 기사는 물론 제목에까지 김대중이라고 밝혀 전국에서 주목받았다. 이로 인해 통폐합 때 특정 정치인과 유착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하고 취업금지 조치까지 받았다. 영남일보가 복간할 때까지 8년 동안 취업도 하지 못하고 서문시장 등에서 일했다. 영남일보 복간 멤버로 다시 일하게 됐을 때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다."▶100여 회의 해외여행을 다녔다. 이미 여행전문가들에게는 '와암(臥岩)'이란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2000년대 중반 여행 다녀와 쓴 글들을 'blog.chosun.com'에 수십 편 올리면서 파워블로거로 이름이 좀 알려졌다. 하지만 2017년 블로그가 폐쇄되면서 글들이 자취를 감췄다."▶여행의 매력은."내 블로그 대문에 '떠돌아다니고픈 마음 가득하답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영원히…'라고 적었다. 역마살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여행을 떠나면 잡념이 사라진다. 아무리 힘들고 아팠던 일도 여행이 모두 묻어버린다. 누군가는 '하늘에서 떠도는 사람'이라고도 하더라. 자연과 유적을 돌아보며 자연의 위대함에 놀라고 인간이 남긴 흔적과 혼연일체 되는 기분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중동지방 여행 때다. 여행 이틀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공항에 도착했다. 당시 레바논은 제4차 중동전에 휩싸여 이슬람과 기독교도들 사이에 충돌이 심했고, 각파 민병대와 정부군이 엉켜 내전 상태였다. '호텔 바깥출입을 삼가라'라는 가이드 요청이 있었는데도 저녁에 카메라를 가지고 산책하러 나갔다. 호텔 주변에는 민병대들이 기관포·로켓포를 설치하는 등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을 대상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자 바로 총구가 목덜미와 등판에 닿았다. 아차 싶었으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총구를 그대로 겨눈 채 내가 묵던 호텔로 끌고 갔다. 호텔 지배인이 뛰쳐나와 그들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 후에야 내 카메라 칩을 빼내곤 총구를 거뒀다. 이외에 '비 오면 곧 죽음'이라는 몽골 고비사막에서 비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던 일, 여권·카메라·돈 등이 들어있던 가방을 도난당해 혼비백산했던 일 등 에피소드가 많다. 여행을 많이 할수록 에피소드는 늘게 마련이다. 특히 전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여행자에게 위험은 곳곳에 도사린다."▶앞으로 꼭 가고 싶은 곳은."아직도 가보지 못한 티베트 아리(阿里) 지구에 가고 싶다. 티베트의 행정구역은 1시(수도 라싸)와 6지구(나취, 창두, 산난, 린즈, 르카쩌, 아리)로 나뉜다. 아리 지구는 티베트 서쪽 부분에 있는 가장 넓은 지구다. 히말라야, 곤륜, 카라코람, 강디쓰산맥 등이 둘러싼 '세계의 지붕'이다. 평균 고도는 해발 4천500m이고 인도·네팔과 국경지대에 있다. 자달현(禮達縣)에는 9세기 티베트를 지배했던 구게왕국(古格王國)의 유적지가 남아있다. 라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그리고 티베트 토착 종교인 본교가 신성시하는 '세상의 중심' 수미산(카일라스산), 인도령 라다크 지방(25%)과 중국령 아리 지구(75%)에 속한 판공호수, 히말라야 제2봉 K2 봉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길'인 신장공로도 걷고 싶다. 황양(黃羊)과 야크, 야생마가 마른 풀 찾아 헤매는 진경도 보고 싶다."▶코로나19 때문에 국내 여행을 많이 떠나지만,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다시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추천할 만한 국내와 해외 여행지는."국내 여행지는 전남 신안군 천사섬의 풍광이 좋다. 안좌도, 팔금도, 암태도, 자은도를 두루 거치는 여행길을 강추한다. 해외 여행지는 인도 잠무카슈미르주 동부지역의 라다크 지방을 추천하고 싶다. 일상에 쫓기는 이들에게 힐링과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남인도의 속살을 보여주는 여행서 '남인도 기행- 드라비다인과 시바(Siva)의 세상'을 펴낸 여행가 최영일씨는 "자연의 경이로움, 인간이 남긴 흔적인 유적과 혼연일체 되는 기분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며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끝나 모든 사람이 마음껏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22.01.05
[이영란의 스위치] 6전7기 박사익 경부공영 회장 "매출 100억원 될 때까지 양복 입지 않겠다 결심"
"사는 것이 힘든 것 같은데 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자수성가한 출향인사 박사익 경부공영 회장이 6번의 사업실패 속에서도 주변에 피해를 안기지 않고 결국에는 재기에 성공했던 이야기를 전하며 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화려한 수사로 포장되지 않은 이 말에 울림이 적지 않았던 이유는 요즘 너무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부산으로 내려가 칠전팔기로 일어선 '의지의 한국인' 박사익 경부공영 회장을 최근 인터뷰하고, 전화 통화 등을 통해 보충했다.▶상주 출신이 부산에 정착해 성공하기까지 여러 사연이 있을 것 같다."상주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마치고 부산으로 왔다. 대농으로 괜찮게 살았던 집안 형편이 갑자기 크게 나빠졌다. 가세가 기울자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던 형에게 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전공을 토목으로 선택했는데 어린 나이에도 일단 집부터 살려야 되겠다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3년 〈주〉남광토건에 입사했다. 이때 중장비 운전면허를 따서 사우디아라비아·리비아 현장으로 가서 토목 관리를 맡았다. 무척 더웠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겁날 것은 없었다. 무한한 미래가 있다는 생각에 참 열심히 일했고 많은 걸 배웠다. 그런데 취업 3년 만에 남광토건이 부도 났다. 재취업을 하지 않고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해 사우디 근무 때 사 온 아끼던 고급 전축을 팔아 경남에 있는 화명동 석산을 샀다. '사우디 시절'에 골재 사업이 내 성격과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골재라는 것은 썩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으니 안 팔리면 놔둬도 되는 제품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벌써 37년이 됐다."▶그럼 사업은 순탄했겠다. "그렇지 않다. 첫 시작부터 꼬였다. 어렵게 골재 채취 허가를 받는 데는 성공했으나 사람을 잘못 만나 쓴맛을 봤다. 다시 여기저기 자금을 끌어들여 석산을 샀으나 개발지역으로 묶여 헐값으로 수용당했고 결국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그 후에도 고비가 많아서 6번의 사업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고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했다. 마음만 바로 쓰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것이 재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사업은 남자로서 해볼 만한 사업인데 진짜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재기 에피소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나."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직원들과 덤프트럭을 타고 다니며 현장을 누볐다. 지금도 작업복 차림으로 직원들과 함께 소리 지르고 땀을 흘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당시는 늘 작업복 차림이었다. 구매하러 온 기업인들에게 노무자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때 매출 100억원을 할 때까지는 양복을 입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오늘날 양복 차림은 내게 있어 참으로 특별한 의미를 준다. 성실성과 정직을 인정한 어느 지인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어 재기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지금도 이 고마운 분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요즘 어려움을 호소하는 젊은 층에 할 이야기가 적지 않겠다."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어려움도 결국 극복할 수 있었고, 그 뒤에는 큰 성취감이 찾아왔다. 삶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늘 반복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힘들 때 용기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극복 못 할 어려움은 없다. 삶이 힘든 것 같아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두려워 말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경부공영이 석산개발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최대기업이 되었다고 들었다. "지난 30년 동안 부산·경남지역은 물론 전국 건설 현장에 모래와 자갈 등 원활한 골재 공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석산개발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최대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회사의 근간이 돼 왔던 석산개발, 건설, ENT서비스 분야 내실화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성장사업인 철강, 무역업, 정보기술(IT) 분야로 영역을 확대·발전시켜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해 나갈 것이다."▶상주에는 여전히 가족이 많이 계시겠다. "8남매인데 아들로는 셋째다. 형님과 누님 세 분이 상주에 계신다. 매년 내 생일에는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고향 상주로 간다. 환갑이 다 된 지금까지 내 생일파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 산소를 찾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자식이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 나의 생일 행사다. 내 생일을 챙기는 것보다 고향 어르신을 위해 경로잔치를 하는 것이 더 보람 있고 기쁘다."▶부모님 산소에 가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나."2001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 손을 꼭 붙잡고 술을 마시지 말 것과 정치에 휘말리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그 후로 좋아하던 술을 딱 끊었다. 정치하겠다는 생각도 완전히 접었다. 어머니는 '5·16쿠데타' 전후 시기에 집안 어른들이 정치를 하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다. 집안 어른들이 가산을 탕진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같은 길을 갈까 노심초사하셨다. 유언으로 나를 지키신 셈이다."▶정치 지망생이었나."이 사업은 장치 시설을 해 놓으면 직원들이 움직이니까 시간이 좀 난다. 세상을 좀 봐야 되겠다 싶어서 당시 집권당이던 민정당에 청년 요원으로 입당했다. 2009년 작고한 부산 출신 서석재 전 의원을 '정치적 아버지'로 모셨다. 출마 권유도 꽤 받았는데 선출직에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치를 안 한 것은 정말 잘한 것 같다. 성격상으로 뭘 하면 굉장히 몰입한다. 정치를 본격적으로 했더라면 사업은 거덜 났을 것이다. 다만 한번 맺은 인연을 중시하는 터라 정당활동을 그만둔 이후도 여야 정치인들과 계속 교유해왔다."▶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나."첫째 정직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국가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의리를 지키지 않고 자기 것을 챙기는 데 열중하는 사람은 정치를 못하도록 유권자들이 잘 걸러내야 한다."▶터키 명예대사를 지냈는데."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재직 때 그의 추천으로 주한 터키 명예총영사를 맡아 수년간 활동했다. 명예총영사를 하면서 터키를 일곱 번이나 다녀왔다. 살아계신 터키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제2의 도시 부산의 컨테이너 처리 물동량이 세계 5위이고, 서울의 한강 다리가 25개나 된다고 하면 안 믿는다. 이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초청해 우리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다 못해 아쉽다."▶앞으로의 계획은."대구경북 향토기업 태창철강 창업자인 유재성 회장을 만나고, 그분이 군위에 조성한 수목원 '사유원'을 둘러보며 느낀 것이 많다. 유 회장께서는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지역의 원로다. 그만큼은 될 수 없겠지만, 조그마한 재단 하나 만들어 고향과 지역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한 10년 (있다고) 본다. (사업을 일구어) 내가 잘되겠다고 욕심을 내본 적은 없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병원 건립, 실버타운, 장학사업 등으로 사회 환원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다. 서석재 선생의 수필집 제목처럼 사람 좋은 '영원한 촌놈'으로 계속 살아가고 싶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박사익= △1958년 경북 상주 출생 △1986년 경원건업 창업 △1994년 경부공영 창업 △2007년 경부ENT 창업 △2009년 경부농산 인수합병 △주한터키 명예총영사(2013~2019년) △〈주〉경부 건설·공영·ENT 회장(현)경북 상주 출신인 박사익 경부공영 회장은 "지역의 태창철강 창업자인 유재성 회장을 만나고, 그분이 군위에 조성한 수목원 '사유원'을 둘러보며 느낀 것이 많다"면서 "앞으로 10여년 더 열심히 일한 뒤 은퇴해서 유재성 회장을 롤모델로 삼아 지역사회에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2021.12.22
[이영란의 스위치] '국민훈장 모란장' 엄우종 ADB 사무총장 "한국청년들이 국제기구 취업에 적극 도전했으면"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지원한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엄우종 사무총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21 개발협력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정부 포상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 엄 총장이 속한 ADB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가들의 빈곤 퇴치와 경제협력 촉진을 목적으로 유엔이 주도해 1966년 설립한 다자간 국제금융기구다. 엄 총장은 지난 2월 말 한국인으로서는 15년 만에 ADB 최고위급인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그는 공직을 끝내고 필리핀에서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아버지를 따라 11세 때(1975년) 이민 갔으나 지금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엄 총장이 국제금융기구의 최고위직에 진출하자 글로벌 리더로서의 한국의 위상이 강화되고 소프트 파워 강국으로 도약할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훈장 수여와 TV조선의 글로벌리더스 포럼 참석차 방한한 엄 사무총장을 지난달 25일 인터뷰하고, e메일을 통해 보충했다. 엄 총장은 "한국을 잘 이해하는 사무총장으로서 ADB와 같은 국제기구에 한국인 전문가들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며 "한국 청년들이 자신감을 갖고 국제기구 취업에 적극 도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의 세계적 위상 크게 올라서ADB 사무총장 선임 결정적 요인韓·개도국 가교역할 충실히 할 것한국인 매사 근면하고 포기 안해전란 딛고 OECD 국가로 급성장자신감 갖고 국제기구에 도전하길▶훈장을 받은 소감이 남다르겠다. "어머니가 졸업한 이화여대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학교라는 생각이 박혀 있다. 내 어머니 나라로부터 명예훈장을 받는 것은 꿈 같은 일이다. 46년 전 한국을 떠난 이후 항상 고향으로 돌아가 건설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 메달로 인해 한국 정부로부터 세계 무대에서 진정한 한국인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건 꿈이 실현된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 같다."▶고국으로 돌아와 일하고 싶었다고."이제 구순을 넘기신 아버지(엄익호)께서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공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상공부에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했다. 공직을 떠난 뒤 기아자동차 등 민간 영역에서 일하다가 필리핀에서 사업을 일구셨다. 아버지가 고국 발전을 위해 일하신 것을 들으면 가슴 뭉클할 때가 많았다. 저도 모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ADB 사무총장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20년 넘게 ADB에서 우직하게 전문성을 쌓아온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다. 특히 (모국인) 한국이란 나라의 위상이 크게 오른 것이 사무총장이란 중책에 선임된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ADB는 어떤 일을 하나."68개국 회원국의 투자금과 금융시장에 투자해 얻은 자금을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들에게 빌려주는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의 지속 가능한 발전, 다시 말해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환경적으로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 투자에 중점을 두고 있다. ADB 성공투자의 가장 좋은 예가 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의 발전이다. 늦게 합류한 중국도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특별히 한국과 ADB의 관계는 긴밀해 보인다. "한국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ADB의 가장 큰 차용 국가였다. ADB가 한국에 대출한 첫 번째가 60년대 후반 경인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것이었다. 가장 큰 금융지원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IMF 구제금융 570억달러 중 ADB가 분담한 40억달러가 그것이다. 이후 한국은 ADB의 지원금을 빠른 기간에 상환했고, 현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지역 출자국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아태지역 개발도상국들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ADB 요청으로 20만달러 규모의 긴급 지원금을 제공했다. K방역 경험과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한 디지털·그린 뉴딜 등 정부 정책을 적극 공유하는 등 코로나19 대응 분야에서 ADB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ADB에 종사하는 직원 수는 5천여 명 정도이고, 그중 한국계 직원은 100여 명 정도나 된다."▶임기 중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빈곤을 장기적으로 근절하기 위해 ADB와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개발도상국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한국을 잘 이해하는 사무총장으로서 한국과 개발도상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얻은 교훈과 경험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다른 개발도상국들에게 잘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은 대중교통 인프라도 취약한 나라가 많다. 한국의 우수한 대중교통 인프라 노하우를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면 자동차 매연 감소 등 탄소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ADB와 같은 국제기구에 한국인 전문가들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도 하고 싶다."▶북한에도 투자하고 있나. "북한은 회원국이 아니다. 비회원국에는 투자를 못한다."▶한국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한국은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적인 나라다. 정말 특별한 나라다. 우리는 전쟁 피란국에서 OECD국가로 한 세대 만에 간 유일한 나라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매우 근면하고 매사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일한 덕분에 생긴 일이다. 우리 젊은 세대들은 이것을 기억하고 선배들이 한 일을 계속해서 이어받아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오도록 해야 한다. 개발 분야를 비롯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차세대 방탄소년단·손흥민이 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면 좋겠다. 한국 청년들이 자신감을 갖고 국제기구 취업에도 적극 도전하길 바란다."▶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려는 청소년들을 위해 조언하면."우선은 본인에게 맡겨진 일을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도록 완벽하게 완성해 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둘째로 큰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동료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 동료들이 열심히 해줘야 일의 성과를 낼 수 있다. 팀워크의 중요성과 동료의 성장이 나의 성장임을 자각하고 협조해야 한다. 셋째로 상대의 말을 집중해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말을 정확히 듣고 파악해야 본인의 생각이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공감능력, 언어 소통능력, 네트워크를 갖춘 사회적 자산을 스스로 키워가길 바란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엄우종= △1964년 서울 출생 △1975년 필리핀 이민 △마닐라국제학교 졸업 △미국 보스턴 칼리지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뉴욕대 경영학 석사(MBA)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에서 근무하다 1993년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입사, 지속가능개발 기후변화국장·행정국장 △아시아개발은행 사무총장(현)엄우종 아시아개발은행 사무총장은 "한국은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적인 나라"라며 "우리 젊은이들이 선배들이 이룬 업적을 이어받아 개발 분야를 비롯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차세대 방탄소년단·손흥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1.12.08
[김수영의 피플] 홍덕률 사학진흥재단 이사장 "고등교육 정부 재정투자,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국사학진흥재단 홍덕률(64) 이사장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보지 않으면 그냥 대구·경북 사람이려니 생각한다. 대구대 교수를 거쳐 총장을 지내고 대구사이버대 총장, 경북도 평생교육진흥원장, 경북행복재단 이사장 등을 두루 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고향은 인천이다. 대학 시절은 서울에서 보냈다. 타지 출신이지만 30여 년간 지역에 살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해 왔으니 지역 사람이라 여기는 게 당연하다. 두 개 대학의 총장을 지내면서 인재 양성에 앞장서 왔던 그가 지난 6월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지역 출신이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사립대학 총장 출신이 수장을 맡은 전례도 없었다.지방 사립대 재정 위기는 지역인재 양성의 위기'고등교육 재정 교부금법' 적극적인 입법 절실해사립대 경영 투명하게 공개 국민 공감대 얻어야회생 가능성 없는 부실 사학은 과감한 정리 필요폐교대학 구성원 피해·충격 최소화 최선 다할 것▶오랜 시간 대학에 있다가 한국사학진흥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에서 1년 정도 정년을 남겨놓고 떠난 것으로 아는데."8년여의 대구대 총장과 4년 가까운 대구사이버대 총장을 지내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 원 없이 일했다. 오랜 분규로부터 대학을 정상화하기 위해, 각종 국가사업에 도전해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환경과 취·창업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름의 성과가 있어 보람을 느꼈다. 학교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자연스레 마지막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 그동안 쌓은 경험을 활용해 위기에 처한 사립대학을 돕고 싶어 재단에 왔다."▶비수도권 사립대학 총장 출신이 이사장을 맡아 어려움을 겪는 지방 사립대학들의 기대가 큰 것으로 안다."이사장에 취임한 뒤 전국의 사립대학 총장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대학 상황이 너무 어려우니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주문이 많았다."▶사립대학의 가장 큰 어려움은."재정난이다. 13년째 등록금이 동결됐고 학생 수는 급감한 데 반해 인건비를 비롯한 경상비 등 지출은 증가했다. 사립대학 대부분이 최소한 필요한 교육의 질조차 유지하기 버거울 정도다. 낡은 시설 교체도 어려운 상황이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신규 투자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교육환경은 악화되고, 교수들은 더 많은 강의에 내몰리면서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폐교 사태가 속출하고 있는데."재정난 때문에 파산하는 대학도 있다. 재정 문제는 지방 사립대학에서 더 심각하다. 폐교한 대학이 있던 지역은 경제와 문화까지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의 위기는 고등교육과 인재양성의 위기를 의미한다. 이는 국가와 미래의 위기로 이어진다. 재학생들과 지역사회, 교수와 교직원들의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재단이 폐교 및 청산 절차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가려 한다. 최근 재단이 '폐교 대학 종합관리기관'으로 일할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과 재단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였다. 폐교로 인한 대학 구성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사립대학의 위기 극복 방안이 있다면."재정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사립대학의 재정은 보통 세 가지로 확충된다. 첫째 등록금 수입, 둘째 기부금 수입, 셋째 국가로부터의 재정수입이다. 우리나라의 대학등록금 수준은 절대 낮지 않다.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따라서 등록금 인상은 답이 아니다. 기부금 수입도 기대난망이다. 유일한 답은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투자를 늘리는 것이다."▶재정투자를 늘릴 방안은."OECD 국가들의 고등교육 재정 정부 부담은 GDP 대비 평균 1%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0.7% 미만이다. 정부 재정투자를 OECD 평균으로 끌어올리는 게 최선이다. '고등교육 재정 교부금법'이 국회에 발의돼 있는데 적극적인 심의와 입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항 논리가 만만치 않아 지지부진하다."▶정부의 재정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사립대학의 경영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국민에게 대학재정이 교육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건전하게 쓰인다는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재단의 비리, 대학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 등이 없어야 한다. 둘째는 이미 대학의 기능을 심각하게 상실한 부실 사학을 정리하는 것이다. 대학을 엄정하게 평가해 어려움을 겪는 한계 사학 가운데 회생 가능성이 있는 대학은 지원해 구제하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 대학은 안타깝지만 폐교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학령인구 감소도 문제다."학령인구 감소로 재정 위기가 더 심각해졌다. 재단에서 이 위기를 잘 넘기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부터 향후 3년간 학령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힘든 고비가 될 것이다. 재단은 고유사업인 융자사업은 물론 행복기숙사 사업(대학에 기숙사를 지어주는 사업)의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학교가 혜택을 누리게 할 계획이다. 급변하는 고등교육 환경에서 대학들이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대학경영 컨설팅사업과 사학 교육행정 연수사업도 강화할 예정이다."▶재단이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일은."사립대학에 필요한 사업들을 기획해서 교육부와 국회를 상대로 입법 내지는 정책화하는 일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일선 대학의 고민을 풀어갈 방법 등과 관련해서는 재단 임직원들이 가장 뛰어난 전문가들이다. 재단 전문가들이 주어진 사업을 잘 집행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책을 구상하고 입안하는 역할, 즉 정책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겠다."▶재단의 중장기 발전 전략도 추진 중이다."취임 후 곧바로 '비전 2030' 기획을 위한 중장기 발전전략 TF팀을 발족 시켜 최근 최종안을 보고받았다. 12월 3일, 창립 32주년 기념식 때 공식 선포하고 전 직원들과 재단의 미래 비전, 신규 사업들을 공유할 예정이다. 다시 뛰는 재단으로 새 출발한다." ▶'비전 2030'에서 그리는 미래 발전 방향은."첫째 '학생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지금까지 해온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융자사업, 행복기숙사 건립 사업뿐만 아니라 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발굴하고 강화해 나갈 것이다. 둘째 사립대학들의 재정난을 덜어주기 위해 대학들에 필요한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확충할 계획이다. 대학의 신뢰 회복과 재정 건전화를 위한 다양한 신규 사업도 준비 중이다. 셋째 '혁신적인 미래 교육 기반 조성'을 위해 고등교육 정책을 선도하고 공유기반의 미래 교육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넷째 'ESG 경영체제 구축'을 위해 사회적 가치 실현을 통한 지속가능성 확보, 고객 중심형 경영 인프라 혁신을 이루려 한다. 4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학교를 튼튼하게, 학생을 행복하게, 미래 교육 선도기관'이라는 새로운 비전도 설정했다." sykim@yeongnam.com한국사학진흥재단 홍덕률 이사장은 "학령인구 감소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학교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사립대학들이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 주는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21.12.01
[이영란의 스위치] 국민의힘으로 돌아온 임태희 "보수가 대선서 이기려면 여성·청년 지지 얻은 홍준표를 참조하라"
정가를 떠나 있던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민의힘 대선 공약 개발기구인 '시민소리혁신정책회의' 공동의장을 맡아 여의도로 돌아왔다. 임 전 실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조기 종료와 2009년 세계 경제 위기 극복을 주도한 경제통. 재무부 공무원을 거쳐 16~18대 경기 성남 분당을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명박정부 시절 고용노동부 장관 재직 중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이 대통령의 소환에 응해 '지역구'를 던지고 청와대에 입성해 정권 재창출의 토대를 쌓았다. 이후 박근혜정부에서 국회로 다시 돌아가려 했으나 '진박' 논란 속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유랑생활에 나서야 했다. 이명박·박근혜 대선 경선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임 전 실장을 지난 8일 만나 국민의힘 경선 후유증과 그 회복 방안 등에 관해 물었다.▶국민의힘 대선 공약을 개발하는 '시민소리 혁신정책회의' 공동 의장을 맡았는데."임기 4년의 한경대 총장을 지난 10월 초 그만두었다. 조금 앞당겨 업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당의 요청을 받고 공약 개발을 추스르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진도율이 80%쯤 된다. 나머지 20%는 대선 후보와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다. 경제, 교육, 주택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정치가 역할을 하지 않으면 하나도 풀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정치가 문제 해결의 핵심인 거다. 세계적으로 경제 10대국에 들어갈 정도로 민간 부문은 국제 경쟁력이 있는데 정치는 어떤가. 너무 차이가 나니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매우 크다. 정치가 선도해야 행정도 따라가고 공공기관도 따라가는데 지금은 모든 게 정치쟁점화되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섣불리 못 움직인다. 공공기관은 더하다. '새로운 정치'가 시대적 요구다."▶여의도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명박-박근혜 대선 경선'을 치렀다. 그때와 이번 국민의 힘 대선 경선을 비교하면."오십보백보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정치임을 재확인했다. 국격에 맞는 지도자 선출이 난망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교훈 없는 역사, 발전 없는 정치가 악순환되고 있어 정말 안타깝다. 홍준표 후보가 4% 지지율에서 40%까지 올라갔다. 흥행을 이끈 주인공이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네거티브가 극심해 비전 경쟁은 오히려 시선을 끌지 못하고 끝났다. 정말 아쉽다."▶이명박·박근혜 두 정부가 성공한 정부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것도 사실상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경선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승자진영의 태도에 달려있다. '진영'을 강조한 이유는 후보보다 측근 '공신'이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더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실 후보는 통합하고 싶어 한다. 경쟁했던 후보와도 하나로 가길 원한다. 그런데 후보 진영에서는 승자이기 때문에 전리품을 챙기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결국 그 부분이 후보를 망치고, 그 진영 전체도 망친다고 본다. 그때도 그랬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저는 중립을 지켰다. 여의도연구원장을 했기 때문에 중립을 지킨 건데 경선에서 이긴 이명박 후보가 저를 비서실장으로 내정했다. 진영 내부의 반발 때문에 임명이 10일 넘게 미뤄졌다. 소위 '고생은 죽으라고 누가 했는데'였다. 그런데 이번은 정권교체가 확실시되었던 그때와 다른 점이 많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거대 여당 정권과의 싸움이다. 국민의힘이 가진 잠재역량을 총결집해서 최선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경선에서 윤 후보와 함께한 측근들의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윤 후보도 역량 있고 도움이 될 만한, 그러니까 역할을 할 만한 사람들은 누구라도 불러 모아야 된다."윤석열, 원팀 이루길 원하지만경선 공신 후유증 극복이 관건홍준표 어정쩡한 태도 계속땐스스로가 더욱 고립될 수 있어보수·진보 '절대 지지층' 역전중도층 표심 60% 이상 얻어야이준석·김종인 역할 도움될 것▶홍준표 후보가 경선 패배를 수용하지만 선거운동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대장동 의혹과 고발 사주 의혹 건을 같은 무게로 두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 '홍준표 지지'를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어떻게 보면 반사적 이익이다. 계속 그렇게 나가면 본인이 더 고립될 수가 있다. 대선이라는 게 전쟁처럼 싸우는 게임이다. 내 편 아니면 상대방 편으로 생각하는 이 상황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안 된다. 일단 힘을 합쳐야 한다."▶정권교체 여론이 높지만 보수 승리를 장담하긴 어렵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전문가들은 '고정 지지층이 야권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여러 개의 여론조사를 가지고 민심의 장기 추세선을 뽑아본 결과 절대 지지층이 완전히 역전됐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우리 보수우파 진영을 절대 지지하는 층이 30% 플러스 알파이고, 저쪽은 25% 플러스 알파였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바뀌었다. 그러니 정권교체 지수가 높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쉽지 않은 구조다. 40~50%의 부동층·중도층 선택을 어느 후보, 어느 진영이 더 받느냐가 이번 선거를 좌우할 것이다. 다만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높고, 문재인정부 기간 동안 국민 고통이 늘었다. 청년 세대의 미래불안감도 커져 정권교체 여론이 50%를 훨씬 넘는 상황이라는 점이 야권 진영에게 유리하다."▶보수의 승리방안을 말하면."중도층의 지지를 60% 이상 받아야 한다. 그래서 전략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중도확장에 맞춰야 한다. 선대위 구성, 인물, 행동 양식, 정책 비전 등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과감하게 중도에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후보 인식, 그리고 당과 캠프의 인식 공감대가 확고하게 정립되어야 한다."▶구체적으로 중도 확장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4년 전에 그렇게 인기가 없던 홍준표 후보가 이번에 여성층, 젊은 층의 지지를 엄청 받았다. 이런 점을 참조해서 그런 층을 커버할 수 있는 인물부터 전면에 내세우는 게 필요하다. 선거에서는 이미지나 메신저로서의 적합성이 있어야 한다. 청년층에는 이준석 대표가 도움이 될 것이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중도 성향에 호남 출신이어서 우리 당이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정치 공백이 길었다. "정치를 시작할 때 확고한 원칙과 꿈이 있었다. '정도를 걷는 정치-정도를 지키며 성공하는 정치인'이라는. 되돌아보면 보람보다는 아쉬움이 많다. 정치는 명분과 세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정도 정치인의 양성과 주도력을 실천하지 못해 아쉽다."▶인구절벽 문제가 심각하다. 지방 대학 총장으로 재직했으니 피부로 느꼈겠다."인구절벽은 교육계, 특히 학교에는 운영 차원의 문제지만, 국가적으론 미래운명의 핵심 문제다. 교육 수요가 줄어 학교가 기본적으로 존폐위기에 처해 있다. 학생만 대상으로 하는 학교로는 한계가 있다. 학교가 지역과 사회혁신의 중심되게 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국가적으로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한 담대한 준비,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앞으로의 계획은."대선 승리에 집중할 계획이다. 민간, 특히 청년들의 역량이 정치를 바꾸고 주도하도록 길이 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겠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임태희= △1956년 경기 성남 출생 △서울 경동고·서울대 졸업, 영산대 경영학 명예박사 △24회 행정고시 합격 △재무부·재정경제원 근무, 청와대 경제비서실 금융행정관 △16~18대 국회의원 △대통령실 실장 △한국정책재단 이사장 △제7대 한경대 총장 △국민의힘 대선 공약 개발 '시민소리혁신정책회의' 공동의장대선을 앞두고 여의도 정가로 복귀한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유증과 관련, "후보 한 사람이 아니라 승자 진영 전체가 중요하다"며 열린 자세를 주문했다.
2021.11.17
[김수영의 피플] 김영애 前 대구시 시민안전실장 "감염병 사태 극복하려면 병원·전문가집단과 협력 중요"
지난 7월 퇴임한 김영애(57) 전 대구시 시민안전실장은 재직 당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목받은 공무원이었다. 의료인 출신인 데다 민선 지방자치 이후 대구시 첫 여성 2급 공무원으로 발탁돼 눈길을 끌었다.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재난관리 분야 컨트롤 타워인 시민안전실장까지 맡아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지난해 초 대구에서 시작된 1차 대유행 당시에는 감염병과 다소 거리가 있는 시민행복교육국장으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기구인 코로나19비상대응본부에서 환자분류 및 의료기관 대응반을 맡았다. 중증·경증환자 분류 및 입·퇴원 관리, 병원 협조체계 구축, 환자 이송 지원 등 핵심 방역대책을 진두지휘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일만 해왔던 그가 퇴직 3년을 앞두고 명예퇴직을 했다. "직장생활을 더 오래 하다가는 인생 2막을 시작할 용기마저 잃을 것 같아 고민 끝에 결정했다"고 한다. 익숙한 것이 싫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왔다는 김 전 실장의 삶이 궁금해지는 이유다.▶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계명대 의과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달성군에서 의무사무관으로 특별임용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달성군보건소장, 중구보건소장을 거쳐 대구시 보건과장·보건복지국장,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대구본부장 등을 지냈다. 25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고생도 했지만 보람이 컸다."▶지난해 2급 공무원에 발탁돼 지역사회의 관심이 컸는데.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시대적 관심이 높아지고 권영진 시장의 배려에서 나온 인사라고 생각된다. 행정직이 아닌 기술직으로 보건소장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시민안전실장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선배와 후배, 동료 공무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직에 들어왔을 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를 했으며 늘 이를 실천하려 했다. 그 노력이 운 좋게 인정받았다."▶보건소에서 일한 경험도 도움이 됐나."일선 보건소에 근무하면서 신종인플루엔자를 겪었고 대구시 보건복지국장을 하면서 메르스 사태를 치렀다. 이를 통해 전문가 집단, 병원 등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020년 2월 코로나 1차 대유행이 시작됐을 때 공공병원의 전담병상 확대, 민간병원의 감염병 전담병원 전환을 통한 병상 확보 등의 업무를 맡았다. 과거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시민안전실장으로 일하면서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지난해 7월 그 자리를 맡다 보니 코로나 극복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태풍과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긴장을 잠시도 풀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재난 복장 하면 떠오르는 노란 민방위복을 계속 입고 다녀 그 옷이 평상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직원들의 도움으로 큰일을 잘 극복해 나갔다. 직원들에게 다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코로나 비상대응본부에서도 큰 활약을 했다."대구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2020년 2월18일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늦은 밤이었지만 감염병 대응 자문단 교수들에게 전화를 했고 자정에 시청으로 오라고 해 바로 '비상대응자문단'을 꾸렸다. 8개반 34명의 비상대응본부로 확대·운영했으며 자문단 교수들은 그날 이후 두 달 넘게 시청에서 근무하면서 공무원들과 함께 코로나와의 전쟁을 치렀다. 자문단 교수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이겨낸 비결이 있다면."급증하는 환자를 입원시킬 격리병원이 대구의료원만으로는 부족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도움으로 대구동산병원에 격리병상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결정이 초기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전국으로 병상을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중증환자 치료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인공호흡기 등을 갖추고 전문의료인력도 있는 중환자 병실을 늘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북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서도 많은 지원을 해줬다. 1차 대유행 초기에 코로나 확진 환자 이송은 119 구급차가 전담했다. 전국에서 지원해줘 확진자 이송이 가능했다. 전국 소방관들의 노고가 컸다."▶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1년 넘게 격무에 시달리면서 공무원의 퇴직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근무 여건이 매우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공무원과 의료진이 우리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꿋꿋하게 버텨내 왔다. 주말과 휴일이 없는 격무로 건강 악화, 육아 문제 등이 발생해 휴직·퇴직이 증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개인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인사나 근무방식 등의 개선을 통해 코로나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코로나 사태 이후 대부분의 국민이 잘 따라주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국민도 1년 넘게 이어져 온 코로나 사태로 인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지쳐있다. 그러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최근 위드 코로나로 잠시 주춤했던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다. 감염 확산세를 꺾기 위해서는 마스크 쓰기 등 기본방역수칙 준수도 중요하다."▶앞으로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이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행정이나 의료 차원의 대책도 필요할 듯한데."유사한 사태의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역량과 체계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의료체계 위기 사례를 통해 민간의료의 공공의료 전환을 위한 지원방안,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역할 분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준비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힘들었던 시기에 대구를 지켜낸 것은 결국 시민의 힘이다.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의 장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여성공무원이 많아지고 있다."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성공무원 수가 적었고, 차별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공무원 수가 많아졌고 이들에 대한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 여성공무원을 보면 당당하게 자기 역할을 잘 해낸다. 부럽고 선배로서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공직사회에서 유리천장이라는 단어가 하루빨리 사라질 수 있도록 후배 공무원들이 열심히 뛸 것이다."▶인생 2막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공공보건의료 최일선 기관인 보건소에서 일한 것을 비롯해 대구시에서 여러 직책을 맡으면서 보건의료행정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메디시티 대구'를 위해 지역 의료역량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현재 계명대 의과대학에서 일하는데 또 다른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의료인 출신인 데다 민선 지방자치 이후 대구시 첫 여성 2급 공무원으로 발탁돼 눈길을 끌었던 김영애 전 대구시 시민안전실장은 퇴임 후 계명대 의과대학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메디시티 대구'를 위해 지역 의료역량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지용기자 sajuhu@yeongnam.com
2021.11.10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정부, 非수도권 국립대 건의 전격 수용…의대 신입생 모집인원 조정 허용
의대생 유효 휴학계 제출 건수 소폭 늘어 총 만585건…수업 거부 대학 10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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