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치솟는 환율의 경제학
20일 원·달러 환율은 1,392.50원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월 1,200원대를 넘어섰고, 6월22일 13년 만에 1,300원대에 진입한 이후 기업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350원마저 돌파하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사태의 대응으로 사상 초유의 유동성 공급을 해온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1년 10월 6%를 넘자 11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작으로 2022년 3월 기준금리를 인상(0.25%포인트)했고, 5월에는 빅스텝(0.5%포인트), 6월과 7월에는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을 단행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 조짐에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달러 가치는 올라가 2010년 대비 무려 28%나 평가절상된 것이다.원화의 평가절하가 수출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논리는 오랜 세월 '수출입국'을 지상과제로 살아온 우리에겐 고정관념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가격 경쟁력은 올라가지만 수입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부담은 가중된다. 지난 8월 수입액은 661억5천만달러에 달해 역대 8월 중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8월 15억8천만달러 무역수지 흑자에서 올해 8월 94억9천만달러 적자로 전환됐다. 문제는 세계경기 침체로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에너지를 포함한 원자재가격 고공행진이 계속되면 연간 누적 무역적자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역적자는 외국인이 국내주식을 매도할 확률을 흑자일 때보다 평균 28.3% 증가시키고, 달러공급 감소로 환율이 더욱 오르면서 환율이 1% 오를 때마다 소비자 물가는 0.06% 상승한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그러면 물가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로 인해 주식·채권시장과 부동산 경기까지 위축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점은 그동안 금융위기 때마다 환율 폭등을 막을 수 있었던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기대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3월에서 6월 4개월간 234억9천만달러나 감소했다. 위기 때 방패 역할을 할 외환보유고의 중요성은 지난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홍역을 통해 이미 충분히 경험을 했지 않은가. 고환율에 따른 고금리와 고물가의 십자포화는 지난 1분기 기준 1천859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폭탄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는 물론, 영끌해서 내 집을 마련한 서민을 수렁에 빠뜨리고 소득이 좀 나은 가계라 하더라도 이자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어 내수침체가 불 보듯 하다. 역대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경우는 1997~1998년 IMF 외환위기, 2001~2002년 닷컴버블 붕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세 차례다. 하지만 이번 환율급등 사태는 코로나19의 장기화에 의한 세계 경기침체 속에 과잉 유동성과 원자잿값 상승으로 촉발된 물가상승, 즉 스태그플레이션이 고금리와 한꺼번에 겹쳐 우리의 전가의 보도인 수출증대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전례가 드문 상황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성적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문제와 '한미 통화스와프' 타결 진전에 달려있다.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에서 보조금 혜택을 못 받는 불이익 해소와 달러 유동성 공급 장치로서 통화스와프 체결은 바로 우리 목전에 닥친 고환율 대응에 핵심과제이기 때문이다. 권업 객원논설위원※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권업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