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출석거지와 꼰대
꼰대가 돼버린 선배들의 조언 단단한 인생 지혜 담겨져 있어 성실성과 책임의식, 참을성 등 개근이란 말에 담겨진 가치도 시대가 달라져도 변할 수 없어 어릴 적 학교에서 주는 개근상은 기필코 받아야만 하는 상으로 세뇌됐다. 부모님은 "우수상은 못 받아도 개근상은 꼭 받아와야 된다"고 강요하다시피했다. 개근상 압박에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하는 어리석은 상황도 있었다. 아파서 선생님께서 조퇴를 시켰지만 병원에 간 뒤 다시 학교에 돌아갔던 기억이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던 까닭이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졌다. 교외 체험학습 제도가 있어 가족 행사, 여행, 친척 방문, 답사, 견학, 체험활동 등을 이유로 결석을 해도 일정 기간은 출석으로 인정해 준다. 이같은 활동도 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것만큼 아이에게 좋은 경험과 교육이 된다는 취지다. 일찍 태어난 것을 원망해야 할까. 하지만 그 부러운(?) 제도에 그림자도 있다. '출석거지'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사실 이 단어를 처음 듣고는 오랫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출석거지는 초등학교에서 해외여행 등을 가지 않고 매일 출석하는 친구들을 놀리는 은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빠짐없이 수업을 들으러 온다는 말도 내포돼 있다. 학교 개근이 평가절하되는 셈이다.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친구들에게 출석거지라는 말을 듣고 우는 초등 4학년 아들을 달래기 위해 저렴한 해외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다는 아버지 사연이 게재돼 논란이 됐다. 이 사연은 한 외신에서도 보도되며 한국의 '출석거지' 문화가 집중 조명됐다. 가끔 아이에게 '누구는 여행 갔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럴 때면 '출석 거지'라는 단어가 떠올라 움찔한다. 솔직히 해외여행을 가든가 해서 교외 체험학습서를 한번 제출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학교에 성실히 다녀 얻은 성과인 개근상이 자부심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출석거지라는 오명이 씌워질 수 있다는 현실이 참 슬프다. 출석거지 못지 않게 신경 거슬리는 단어가 또 있다. 바로 꼰대다. 꼰대란 젊은 세대를 무시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기성 세대를 의미한다. 하지만 꼰대라는 말이 변색돼 선배나 상사의 정당한 조언이나 지적도 '라떼는' '꼰대'라는 이름 하에 흘려버리거나 등한시하는 듯해 안타깝다. 그래서 나온 신조어가 역꼰대다. 역꼰대는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무조건 꼰대로 치부하며 소통을 차단하는 MZ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자기표현이 강한 MZ세대 중 일부에게서 보이는 유형으로 이들은 자신의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우기며, 선배나 상사를 이용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한 구인구직 플랫폼의 설문조사에서 역꼰대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로 '기성 세대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구식이라는 젊은 세대의 선입견'이 꼽혔다. 예전에 회사에 수습기자들이 왔을 때 당시 한 부장이 "수습은 인사만 잘 하면 돼"라고 하셨다. 솔직히 그 때는 '뜨아'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말이 뭔지 어렴풋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인생의 긴 세월이 묻은 어른들의 말은 단단하고 지혜롭다. 인생 선배들의 말은 지나고 나서 보면 사실 틀린 말이 별로 없다. 흘려들어야 할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자 선물이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경험과 연륜, 처세, 반성 등이 총집합돼 있어서다. 개근이라는 성취에 담겨 있는 성실성과 책임의식, 참을성 등의 가치가 시대가 달라져도 변할 수 없는 것과 다름없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