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바다' 등 범행 암시 메모 발견…피의자 사망해 실체적 진실 규명에는 한계 (종합)
'대구 변호사 사무실 빌딩 방화사건'을 수사해 온 경찰이 피의자 사망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하고, 건물주와 관리 책임자 등을 업무상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대구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이 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일부가 처벌을 받게 됐지만, 방화 피의자가 현장에서 사망하면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방화범, 입구 쪽에 불 붙이고 흉기까지 들어…"피해자 대피 못해"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범행 동기는 피의자 A(53)씨가 소송에 계속 패소하게 되면서 상대 측 변호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경찰이 A씨의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디지털포렌식 한 결과 그는 올해 1월 "변호사 사무실을 불바다로 만들고자 휘발유와 식칼을 오래 전에 구매했다"라는 내용의 글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또 A씨는 지난해 6∼7월에도 방화 사건이 발생한 변호사 사무실에 협박성 전화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A씨의 이 같은 행위는 실제 범행으로 이어졌다. 지난 달 9일 A씨가 벌인 방화사건으로 7명이 사망한 것. 사망자 일부에게선 '예기 손상'(끝이 뾰족하거나 날이 예리한 흉기에 의한 손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흉기를 찾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가 A씨의 범행도구로 추정하나, 왜 사망자 일부(2명)에게서만 자상이 발견됐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A씨의 흉기가 사망자들이 신속히 대피하지 못하게 하는 '위협의 도구'로 쓰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당시 입구 쪽에 먼저 불이 붙고, A씨가 흉기까지 든 채였기 때문에 사망자들이 제대로 대피도 못한 채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밖에 A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까지 지인들에게 보낸 협박성 문자 3건 정도가 발견됐으나, 이번 사건과는 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경찰 "건물 구조적 문제 확인"…법정 공방도 예고경찰은 건물의 구조적 문제 등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단, 건물의 문제가 사망자들의 사망에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사망자들은 불이 붙고 짧은 시간 내에 바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경찰 관계자는 "건물 자체의 구조적 문제점 혹은 소방시설 유지, 관리상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봤고, 그 과정에서 건물 각층의 비상구로 통하는 통로와 유도등 이 누구나 식별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지 않고, 구획된 사무실 벽에 가로막혀 있음을 확인했다"라며 "또 피해자 중 상당수는 비상구 및 비상계단의 존재나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평소 건물의 소방시설 등 관리 소홀이 피해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건물 관리 책임이 있는 5명에 대해 각각 소방시설법 또는 건축법,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와 관련해 향후 법정 공방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물 관계자 일부는 변호인을 선임하고 방어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입건된 건물 관계자 관련 한 변호인은 "건물주는 건물을 경매받았는데 한 층을 빼놓고는 경매받을 때부터 건물 형태 그대로다. 그전부터 설치된 그대로 받아서 세를 놓고 있었다"주장하며 "이번 사건의 상해와 '비상계단 피난'이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 부분을 법률적으로 다투자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리고 말했다.이어 "사건 발생 당시 이미 연기가 가득 차서 비상계단 여부와 별개로 사무실 밖을 나가기 힘든 이들이 적지 않았다"라며 "특히, 이번에 경찰이 적용한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의 경우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지난달 9일 화재가 발생한 대구 수성구 범어동 빌딩 내부 변호사 사무실이 검게 그을려 있다. 영남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