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피리 부는 공공기관, 따라나선 영주 평은면 마을
피리 소리는 달콤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공모로 60억원대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을 따낼 수 있다던 말은 '소멸'이란 단어에 지친 경북 영주시 평은면 주민 귀에 희망으로 꽂혔다. 공모 지침, 자부담, 운영비 구조까지 따져볼 틈은 없었다. 대신 설명회 몇 번, 도장 몇 번이 '주민 주도'의 증표가 됐다. 피리를 분 이는 누구였을까. 공모 구조를 꿰고 설계·집행 경험을 쥔 기관은 지자체와 공기업이었을 것이다. 주변 공직자들 사이에선 "정보를 쥔 곳이 먼저 움직였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사업 공모에 주민 참여가 있어야 가능한 구조라는 점을 놓고 보면 주민은 주체라기보다 '명분'이었는지 묻게 된다. 1단계 40억원 가운데 센터 건립 25억원, 부지 매입 6~7억원을 제하면 남는 돈은 대부분 교육 프로그램과 각종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흘러간다. 2단계로 20억원이 더 붙는 동안, 강사는 누가 뽑고 강사료는 어떻게 책정됐는지, 위탁기관인 농어촌공사와 업체의 계약은 어떤 구조였는지 주민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돈의 길이 보이지 않으면 책임도, 통제도 사라진다. 끝내 주민이 농식품부에 감사를 요청했다. 공모 과정과 사업 추진 전반, 특히 교육 프로그램 강사 섭외·강사료·유착 의혹을 들여다봐 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이를 다시 농어촌공사로 내려보내 '자체 감사'를 하게 했다. 피리 연주가 적절했는지 연주자에게 스스로 묻는 꼴이다. 실효성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추진위원장·사무장의 금품수수 의혹을 둘러싼 경찰 수사는 7개월만에 마무리됐다. 수사결과는 추진위원장의 업무상횡령으로 귀결됐다. 하지만 설계, 구조, 자금 흐름의 큰 틀을 누가 쥐었는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질문은 거꾸로 선다. "정말 이 마을이 사업의 주인이었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마을은 문제를 해결해 줄 외부의 기술자에게 길을 맡긴다. 대가가 틀어지자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계약은 '마을을 위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상대를 수단으로 삼는 거래였다. 공모 정보와 실행 역량을 독점한 공기업이 '이 길로만 가면 된다'며 방향을 정하고, 지자체는 절차로 받쳐 주고, 주민은 서류로 주체가 되는 구조. 그 끝에 남는 것은 갈등과 수사, 그리고 뒤늦은 자각뿐이다. 공공사업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권한이다. 주민이 위험과 책임을 충분히 이해한 채 의사결정에 참여했는지, 외부 위탁의 사각지대가 없었는지, 누가 무엇을 결정했고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 피리 소리가 다시 울리기 전에, 악보가 수정되길 기대해 본다. 권기웅기자 zebo15@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