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아듀! 파리올림픽
1020 태극 전사들이 이보다 활약했던 올림픽이 존재했을까. 파리 현지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안방 무대처럼 용감하고 씩씩하게 잘 싸웠다. 패배를 쿨하게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성숙한 태도, 집단에 매몰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 파리의 역사적 건축물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기장 등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듯하다.한국 김우진과 미국 브레이디 엘리슨의 양궁 결승은 세기의 명승부였다. 5세트에서 둘이 나란히 연속 세 번 10점을 꽂았고, 이어 승부를 결정짓는 슛오프(승부 쏘기)에서도 또 10-10. 결국, 4.9㎜ 차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결정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명장면은 이어졌다. 올림픽에서 은·동메달만 4개를 따낸 서른여섯살의 엘리슨이 자신의 패배 직후 활짝 웃는 얼굴로 김우진의 손을 번쩍 들어줬다. 말 그대로의 축하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도 "후회나 실망이 남지 않는 게임이었다. 김우진의 선전을 기원했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손을 번쩍 들어줄 것 같다"고 했다. 기자회견장에서도 둘은 서로를 양궁계의 '메시'와 '호날두'라고 비유하며 웃었다. 완벽한 경기를 펼친 그들은 과연 챔피언다운 행동과 말을 구사했다. 패배를 그토록 멋지게 받아들이는 엘리슨의 모습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감동했다. 그를 '엘리슨 형' '미국 양궁 아재'라고 부르며 열광했다. 28년 만에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은 또 어떤가. 그 순간은 그가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인생의 정점이었으리라. 하지만 안세영은 의례적인 인사를 뒤로 미루고 협회의 관료주의, 소통부재를 저격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안세영의 시대'를 막 열어젖힌 그가 자신의 '화양연화'를 스스로 미루는 것 같아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하지만 '잔칫상을 엎었다'는 식의 일부 기성세대들의 의견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보다 많은 어른들이 차마 컴플레인하지 못했던 것을 당차게 표현한 젊은 선수에 대한 응원이 주류를 이룬다. 그는 "나를 키운 원동력은 분노"라고도 표현했다. 안세영의 지적에 "그게 아니다"라고 조목조목 반박하는 협회는 문제의 본질을 진실공방으로 변질시켜선 안 될 것이다. 하나 더 이번 파리올림픽의 정수는 멋진 경기장에서도 발견됐다. 김우진도 파리 앵발리드를 두고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이라고 감탄했다. 베르사유 궁전 안에 임시 경기장을 만들고, 잔디밭에 길을 내고, 관중석 스탠드, 축사를 세웠다. 펜싱이 열린 그랑팔레에선 출전 선수들이 고풍스러운 건물의 층계를 중세 기사들처럼 걸어내려왔다. 올림픽 개최국 국민으로서 부럽기만 했다. 아쉬움도 없진 않다. 올림픽 내내 찜찜했던 것은 수십만 원에 달한다는 티켓 값이었다. 최하 20~30유로대(4만원 안팎)의 표도 있지만 제한적이었고, 고비용의 늪에 빠진 올림픽이 비싼 티켓을 팔아 적자를 메우려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숙박, 교통 등 고물가에 관광객들의 아우성이 한국의 이곳까지 들려왔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관중석을 다 채웠을지 예상하면 울적해진다. 정작, 평범한 파리지앵들은 파리올림픽을 직관했을까. 시민 참여의 관점에선 바람직하지 않았다.이효설 체육팀장이효설 체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