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남 창녕 남지의 낙동강, 아직 늦지 않았다…끝없는 끝없는 듯한 유채꽃밭
남지는 창녕의 가장 남쪽에 있는 낙동강변의 마을이다. 산이 없어 바위도 돌도 볼 수 없는 땅, 어디를 보아도 모래뿐인 지대가 남지리였다고 한다. 찰나의 방심도 불가능할 정도로 구불구불한 중부내륙고속도로는 영산을 지나면서 한결 편안해지는데 바로 그곳이 남지다. 남지나들목을 나와 5분쯤 달리면 남지리 낙동강 강변길에 오르게 된다. 오른쪽엔 사람 사는 마을의 지붕들, 왼쪽엔 무섭도록 푸른 낙동강과 강 건너 아득한 절벽과 강을 건너온 다리의 북단이 드리워진 나대지가 있다. 너른 나대지는 예전에는 밭이었고 지금은 먼지가 퐁퐁 나는 주차장이다. 다리 아래 일제히 서쪽을 바라보며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자 환한 꽃밭이 펼쳐진다. 끝없는, 끝없는 듯한, 유채 꽃밭이다.하얀 이팝나무꽃길과 장미의 터널넓은 청보리밭에 메타세쿼이아길철거위기서 주민이 지킨 남지철교다리를 건너면 함안 칠서면 계내리강 절벽 위 능가사, 500년 은행나무◆남지체육공원 유채꽃밭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유채밭이다. 체육공원은 꽃 너머로 숨어버렸다. 벌써 초록이 왕성하지만 아직 노랑은 눈부시다. 낮은 지붕의 원두막과, 강바람 속에 신나게 도는 몇 개의 바람개비와, 고개만 내밀고선 자꾸만 부르는 오솔길들이 가없는 노랑의 유채꽃 속에 있다. 팔랑팔랑 나비가 날아오른다. 유채밭 너머는 튤립밭이다. 튤립은 일찍 졌다. 꽃대만 남은 튤립 너머는 또 넓디넓은 청보리밭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었고 땅콩밭이 넓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이 일대가 큰 피해를 보자 창녕군은 수해를 복구하면서 470여 가구를 이주시키고 제방을 축조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 유채꽃밭을 조성하고 2006년에 제1회 낙동강 유채 축제를 열었다. 지난 4월 중순에 축제가 있었다. 4년 만에 열린 축제였고 엄청난 인파로 들썩였다고 한다. 체육공원과 유채꽃밭 사이는 하얀 이팝나무 꽃길이다. 그 곁으로 이제 막 꽃봉오리를 내밀기 시작한 장미 터널이 5월을 부른다. 강변길 따라 점점이 희미해지는 초록의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서 있다. 무성한 이파리 사이로 두 개의 다리가 보인다. 남지교와 남지철교다. 다리가 놓인 강변에는 오래전 웃개나루터가 있었다. 그 물가에 주막들만도 수십 곳, 마방도 여럿 있었다 한다. 마을에서 나루로 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동편은 '아래깍딴', 서편은 '웃깍딴'이라 불렀는데, 아랫마을, 윗마을이라는 뜻이다. 1920년대에는 두 마을이 편을 나누어 강변 모래사장에서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아래깍딴 물개똥!" "웃깍딴 물개똥!"이라 외치며 온 힘을 다해 줄을 잡아 당겼단다. 이 응원가는 1960년대에 사라졌다. 그런데 물개 똥일까, 물 개똥일까. 등산복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노인들이 횡대로 앞서간다. 소리 없이 뒤를 밟으며 귀를 쫑긋한다. "영산 전투 때…" 바람 속에 막걸리 향이 난다. ◆남지철교남지철교는 일제강점기에 놓인 다리다. 1931년 9월에 착공, 1933년에 준공되었는데 파리 에펠탑과 동일한 양식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다리는 6·25전쟁 때 북한군이 강을 건너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미군이 중앙부를 폭파해 두 동강이 났었다. 이후 1953년에 복구되어 40년간 쓰이다가 1993년 정밀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차량 통행이 금지되었다. 그러다 2004년 2월 철거 선고를 받게 된다. 교량안전등급 D급. 새로운 다리에 대한 가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뭣이라? 그기 말이 돼?"아이였을 땐 놀이터였고 까까머리 학생이었을 땐 은밀한 힘겨루기 장소였고 스무 살 청춘의 나날엔 더없이 찬란한 데이트 장소였다. 남지의 중년들이 일어섰다. 철교 보존을 위한 비상 대책위를 조직했고, 온·오프를 아우른 반대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는 동안 문화재등록이라는 생각을 해낸다. 당위성을 홍보하고 사료를 모으면서 남지철교의 설계도와 공사 보고가 담긴 문건도 찾아냈다. '콘크리트 작업은 기계 대신 노임이 싸므로 손으로 반죽함. 1932년 10월 현재 동원된 인부는 2만3천명임.' 인부는, 조선인일 것이었다. 철교는 지금 두 개다. 주황색은 남지교, 하늘색은 철거 선고에서 살아난 남지철교다. 2004년 12월 남지철교는 '등록 문화재 145호'로 지정되었다. '남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승리였다. 하늘색 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한량처럼 떠 있는 배들을 본다. 나루터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리 난간에 오래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1980~90년대 남지의 모습들이다. 싱싱 감자 수확 장면, 새농민대회 씨름경기, 남지오이아가씨 선발대회, 남지유아원 개원식, 모내기를 하다 새참을 먹는 모습, 야간에 횃불을 밝히고 모내기를 하는 장면 등 모두 체육공원도, 유채밭도 없었을 때의 모습이다. 사진 아래에 '남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적혀 있다. ◆다리 너머는 함안, 절벽의 능가사다리를 건너면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다. 두 개의 다리는 낙동강변의 절벽 위에 나란히 걸쳐져 있다. 그 사이에 수령 500년이 되었다는 거구의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강과 가까운 벼랑 중턱에서부터 솟구쳐있다. 높이가 25m나 된다. 그 뒤편으로 강 저편을 내다보는 카페와 강변횟집, 송도횟집, 철교단란주점, 모란주점 등의 간판들이 오밀조밀하다. 그 맞은편 벼랑 위 용화산 자락에는 능가사라는 절이 올라앉아 있다. 입구 오른쪽에 커다란 약사여래불이 강을 등지고 서 있고 대웅전, 감로당, 관음전 등이 산 아래 좁은 터에 바짝 붙어 동향으로 자리한다. 100여 년 전부터 수명을 주관하는 북두칠성과 수신인 용왕신을 모시는 작은 암자로 유지되어 왔는데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계종 절집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남지철교의 끝에서 약사여래불의 등 뒤 절벽을 따라 용화산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놓여 있다. 안내판에는 약사여래불을 기점으로 용화산을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하는 2.7㎞의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조금만 올라본다. 조금만 더 올라본다. 그러자 철교에서도, 유채꽃밭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전망대가 나타난다. 무섭도록 시퍼런 낙동강과 강 건너 유채밭이 아슴아슴하다. 조금 전 저 유채꽃 속에 있었다는 것이 사실 같지가 않다. 약간 멍해져서는,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주 비현실적이고 이 세계와 저 세계가 하나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걸음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Tip중부내륙 45번 고속도로 남지나들목을 빠져나와 우회전해 조금 가다 남지체육공원 이정표따라 낙동강 강변길로 가면 된다. 남지철교 아래 너른 나대지가 모두 주차장이다. 유채꽃은 4월 말까지, 이팝나무 꽃은 5월 초까지 피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남지리 낙동강변의 유채꽃밭. 강변길 따라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남지철교와 남지교가 보인다.하늘색 다리가 등록 문화재 145호인 남지철교, 후면의 주황색 다리는 2007년 6월에 개통된 남지교다.남지리 낙동강변 유채꽃밭 너머로는 청보리밭이 이어진다.다리가 놓인 강변에는 오래전 웃개나루터가 있었다. 물가에 주막들만도수십 곳, 마방도 여럿 있었다 한다. 지금도 강변은 나루터다.남지철교에서 바라본 함안 용화산의 능가사. 약사여래불의 등 뒤 절벽을 따라 용화산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놓여 있다.능가사에서 산책로를 따라 조금 오르면 철교에서도, 유채꽃밭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전망대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