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챗GPT 등장해도 '완행의 미학' 존재…인간이 직접 책 쓰는 과정 소중
지난 주말, 대구문학관에서 김연수 소설가의 낭독회가 열렸다. 문학관 5층 로비에 마련된 의자는 어림잡아 100개가 훨씬 넘었다. 행사가 시작할 무렵 빈자리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서서 듣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문학관이 위치한 곳이 향촌동이어서인지 중장년층이 많았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곧 시작할 낭독회를 기다리는 어른들 얼굴을 보면서 한때 종로, 향촌동, 북성로 일대 다방과 살롱에서 활발하게 교류했던 문인과 화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김연수 소설가는 이날 '젊은 연인들을 위한 놀이공원 가이드'를 낭독했다. 그는 낭독회가 열릴 때마다 미발표 단편 소설을 읽는다. 강연 대신 낭독을 하는 까닭은 독자들과 '이야기'로 교감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날 낭독한 소설 역시 이틀 전 주최 측에 전송했던 소설을 조금 더 고쳐 쓴 것이었다. 한편에선 고쳐 쓴 문장의 미묘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낭독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낭독을 마친 후에 그는 글을 고쳐 쓰는 일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어느 에세이에서는 자신은 일기까지 고쳐 쓴다고 했는데, 오늘처럼 낭독한 소설도 청중의 반응을 보고 또다시 원고를 고친다고 했다. 고치고 또 고칠수록 글이 좋아진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청중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김연수 작가는 한때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소설가가 되었지만, 그가 쓴 소설 속에는 대게 음악이 깃들어있다. 이야기의 시작이 음악이기도 하고, 이야기 속에 음악이 흐르기도 한다. 이야기가 끝난 후 여운 또한 음악으로 남는다. 낭독회 장에서도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선셋 롤러코스터(落日飛車, Sunset Rollercoaster)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Here comes a Bomb of Love~~" 해가 질 무렵 조명이 켜진 놀이공원 한복판에서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청중에게 이 이야기와 음악은 어떻게 가닿았을까. 아마도 저마다의 한때를 회상했으리라. 젊은 시절 음악다방 DJ를 추억했을 수도 있고, 연인과의 유치하고 사소한 다툼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놀이공원 같은 것일까 생각했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고, 하이라이트와 지루함이 공존하고, 긴 대기와 짧은 환호가 반복되는…. "Here comes a Bomb of Love~~" 폭탄처럼 오는 사랑이라니, 말이 좀 거창하지만 역시 사랑은 폭탄처럼 와서 터진다. 폭탄처럼 오지 않고서야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설이 음악을, 음악이 소설을 무한 반복재생한다.생성형 AI(인공지능)가 화두다. 명령어를 입력하면 글도 써주고 이미지도 만들어준다. 'chatGPT'와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책을 펴낸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검색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네이버, 다음, 구글 등 포털에 접속해서 단어 검색을 하는 수고를 이제는 인공지능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른 속도로 수집하고 분석하고 추론한다. 그리고 그 능력이 갈수록 향상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초여름에 열린 디자인 관련 학술 발표장에서도, 대학 교수학습센터 특강에서도 발표자들은 생성형 AI에 대한 적지 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하던 미래가 벌써 와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고도화된 인공지능 기술 속에서 교육의 의미, 디자인 산업의 변화, 디자이너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질까 고민이 깊어진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준비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새로운 판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예보 없이 닥치는 지진처럼 당혹스러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 무력한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잠시 유예하자는 약속 정도일까. 어차피 출현할 인공지능 로봇이라면 대체 불가능한 직업을 예측하고 아이들의 진로를 고민하는 정도일까.주변을 둘러보면 호기심에 'chatGPT'를 써본 사람이 많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술로서 '의식 / 호기심 / 창의성 / 협업'을 말한 그렉 옴(Greg Orme)의 주장처럼 인간의 직관적 호기심이야말로 인간과 기계의 근본적인 차별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지의 신기술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이 어쩌면 인공지능의 성장과 활약을 돕는 형국인 것 같다. 당장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나는 'chatGPT'에게 원고 작성을 부탁하고 싶은 호기심과 유혹을 느낀다. "안녕, 나는 북 디자이너야. 한 달에 한 번씩 일간신문에 글을 연재해. 이번에는 'ㅇㅇㅇㅇㅇ'라는 주제로 쓰려고 해. 중학생 이상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되어야 하고 글자 수는 3천500자 정도로 써야 해." 그러면 인공지능은 기다렸다는 듯이 친절하게 글을 써내려 갈 것이다. 그리고 몇 차례 수정을 요구하는 내 부탁을 반영해가면서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어 줄 것이다. 게다가 공짜로. 하지만 연재 원고라는 '결과물'이 내가 바라는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아니라서) 글을 쓰는 일이 무척 즐겁다. 마감의 괴로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텐데 아무튼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헤매고 좌절하고 고민하는 복잡한 상념이 좋다. 정답을 쓰는 글쓰기가 아니니까 애초에 맞고 틀린 것은 없다. 불특정 다수가 나의 디자인 생각을 읽는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은 책상 앞에 앉은 내 자세를 바로잡게 만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두 번 세 번 고쳐 쓰게 만든다. 걱정과 기대를 품고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정리되지 않았을 (나만의) 보물이 하나씩 다듬어진다. 글을 쓰면서 조금씩 삶을 배워가는 나 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런 '과정'의 소중한 기회를 'chatGPT'에게 넘기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 게다가 공짜로. 흔히들 디자인을 '결과물'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북 디자인'이라면 서점에 놓인 종이 뭉치 표지에 인쇄된 그림과 글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그 책을 디자인하기 위해 지난하게 흘렀던 시간과 여러 사람과 주고받은 업무 이메일, 디자이너의 컴퓨터 폴더 속에 잠자고 있는 시안들도 '당연히' 디자인이다. 결과물이 훌륭한 디자인이라면 분명 과정도 훌륭하다. 저자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것이 비록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책이라는 존재가 온전히 제 목소리와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세심한 편집 과정이 동반된다. 책을 이윤 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본다면 결과물만 다뤄도 될 테지만, 적어도 한 사회의 문화적 산물로 여긴다면 책을 만드는 과정에 담긴 이야기의 가치는 소중하다. 경제성과 효율성만 추구하는 디자인 산업의 시대는 이제 지나왔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의 편리함도 좋지만,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리면서 마주하는 풍경과 색다른 공기가 주는 의외성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빠른 속도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세상의 이면에는 여전히 '완행'의 미학이 존재한다.그날 향촌동의 문학관에는 많은 청중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김연수 소설가를 책이나 전자책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여전히 저자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직접 듣기 원한다. 글은 고치고 또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작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번지르르한 결과물보다, 끊임없이 고쳐가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를 자신은 없지만, 당분간 그 아름다움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북디자이너·영남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정재완 (북디자이너·영남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