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에게 듣는다]치아가 마른나무처럼 부러지는 이유…‘치경부 마모증’
여름철이면 차가운 아이스커피 한 잔이 간절하다. 그런데 시린 치아 때문에 찬물을 삼키는 일조차 고역이라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충치를 의심하고, 어떤 이는 민감성 치약으로 버텨보려 한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경우 그 원인은 '치경부 마모증'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질환이다. 치경부 마모증은 치아 뿌리 근처, 잇몸과 맞닿는 부위에 발생하는 구조적 손상이다. 통증보다 시림이 먼저 나타나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증상을 간과하고 치료를 미루면, 결국 치아가 파절되며 씹는 기능까지 잃을 수 있다. ◆치경부, 가장 먼저 닳는다 치경부는 말 그대로 치아의 목 부분, 즉 치아 몸통과 뿌리가 연결되는 부위다. 이곳은 법랑질이 가장 얇고, 구강 내 자극이 집중되는 구조적 취약지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는 양치질, 음식 섭취, 무의식적인 악물기, 이갈이 등이 이 부위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손상을 유발한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대구 동구 치과 황인선 진료과장은 "치경부는 마치 나무 기둥의 아랫부분처럼 외부 자극이 집중되는 자리"라며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도 피로가 누적되면 금이 가듯, 반복된 물리적 자극은 미세한 마모를 유발하고 결국 구조적 결손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치경부 마모증은 단순히 시리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 질환의 본질은 '치아 구조의 파괴'에 있다. 마모가 진행되면 치아 내부의 상아질과 치수조직이 외부 자극에 노출되고, 구조적으로 부드러운 상아질이 손상되면서 치아가 건조하고 취약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고령자의 경우, 침 분비량 감소와 나이로 인한 치수 축소까지 겹치면서 치아는 점점 '마른나무'처럼 부서지기 쉬운 상태로 바뀐다. 황 과장은 "이미 한 번 마모가 시작된 치아는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가거나 갈라질 수 있다"며 "통증이 없다 해서 안심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젊은층도 예외 없다 치경부 마모증은 중장년층에서 흔하다고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2030세대에서도 환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유는 뚜렷하다. 이갈이, 스트레스로 인한 악물기, 거친 칫솔질 등의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이다. 또한, 교정치료 후 교합 변화나 턱관절의 불균형 등도 치경부에 반복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해 마모를 촉진할 수 있다. 황 과장은 "젊은층에서는 자가진단이 잘 안 되고, 치과 방문도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무증상이어서 늦게 발견될수록 치료 범위도 넓어진다"고 지적했다. 치경부 마모증의 치료는 치아를 살리는 '보존적 개입'이다. 초기에는 시린 증상만 줄이는 수준의 관리로도 충분하지만, 마모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반드시 재료를 이용한 수복 치료가 필요하다. 현재 임상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두 가지 수복 재료 중 글래스 아이오노머는 접착제가 필요 없는 자가중합 방식이다. 생체 적합성과 비용 면에서 장점이 있다. 보험 적용으로 경제적이며, 잇몸과의 친화성도 우수하다. 다만 강도와 내구성이 낮아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거나 마모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복합레진은 접착제를 사용해 강력히 부착하며, 심미적 효과가 높아 자연치아와 거의 유사한 색감을 낸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미용적인 만족도가 높다. 단점은 비보험 항목으로 비용이 높고, 장기적으로는 착색 가능성 있다. 황 과장은 "단순히 '채워 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치아 구조 자체를 보호하는 게 치료 목적"이라며 "기능과 심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방은 습관에서 시작 치경부 마모증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질환이지만, 일상 속 무의식적인 습관들이 그 발병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예방을 위한 첫걸음은 '올바른 생활 습관'이다.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는 잘못된 칫솔질이다. 많은 이들이 양치할 때 이를 '문질러 닦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수평으로 강한 압력을 가하며 앞뒤로 쓱쓱 닦는 방식은 오히려 치경부를 마모시키는 주범이다. 황인선 과장은 "수평 칫솔질은 마치 사포로 치아를 긁는 것과 같다"며 "칫솔은 부드럽게, 원을 그리듯이 닦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이갈이'와 '악물기' 습관이다. 현대인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무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 역시 치경부에 큰 압력을 가한다. 특히 야간 수면 중 이갈이는 치아에 수백㎏의 힘을 반복적으로 가하는 고위험 습관이다. 황 과장은 "야간 이갈이 방지용 마우스피스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치아 마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며 "치과에서 맞춤 제작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음식 섭취 습관도 간과할 수 없다. 오징어, 육포, 뼈 있는 고기 등 질기거나 딱딱한 음식은 치아 전체에 지속적인 물리 자극을 준다. 이로 인해 치아가 흔들리거나, 마모가 가속화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음식을 반복적으로 섭취하는 습관이 있다면 치경부 손상 위험은 더욱 커진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관리다. 많은 사람들이 치경부 마모와 스트레스를 연결 짓지 못하지만,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턱관절에 힘이 들어가고, 입 주변 근육이 긴장하게 된다. 이는 무의식적인 악물기로 이어진다. 황 과장은 "구강 근육 긴장을 줄이기 위해 명상, 수면 습관 개선, 스트레칭 등을 생활화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입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광역시지부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